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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벌 눈바람아 이야기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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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0-10-26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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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벌 눈바람아 이야기 하라

길바닥의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이제는 만주벌 눈바람이 이야기 할 차례이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질 듯한 승계를 두고 전 세계 입들이 다 한 번 씩 방아를 찍어 대었다. 이에 침묵하자 한마디 왜 말이 없느냐고 윽박질러도 할 말을 모른다. 말하지 않기로 한 것이 입장이라고 하니 욕설을 퍼부어가면서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예수는 인간들이 말을 안 하면 길바닥의 돌들이 소리 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북부 조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이젠 만주벌 눈바람이 말 할 차례이고, 밀림의 긴긴 밤이 이야기 할 차례이다. 왜 김일성과 그의 대가 대를 이어가야하는 지를 이들이 말해야 할 차례이다.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오늘의 이 선택이 우리의 통일 조국에 어떤 행.불행을 가져 올지를 아무도 말할 수 없고 말 할 자격도 없다. 오직 장백산 줄기 줄기마다에 압록강 굽이굽이 마다에 그의 전설은 적혀 있다. 이들이 말 할 차례이다.

말을 강요하는 자들은 더 이상을 인간을 윽박지르지 말고 만주벌 긴긴밤의 속삭임을 들어 보아라. 겨울 장백산 소나무들이 윙윙대는 소리에 귀 기우려 보아라. 압록강 소리쳐 흐르는 물줄기들에 귀를 대어 보아라. 그들이 모두 말해 줄 것이다. 누가 만고의 애국자인가를.

만주벌 눈바람은 이야기 한다.

겨울이 되면 만주벌은 눈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허물어져 쏟아진다. 눈송이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눈뭉치, 눈사태 같은 것이 소리도 없이 그냥 천지를 메우며 끝없이 쏟아져서 쌓이고 또 싸인다. 그것은 완연 눈으로 된 하나의 크나큰 장벽 같은 것이었다. 그 눈 장벽 앞에서 나무들은 마치 흙벽 속에 박힌 산자와 같이 형체를 감추고 말았다. 평지가 평균 해발 1000미터를 넘는 동만주 룡강 산맥을 지금 김일성 부대가 넘고 있는 것이다. 온통 산맥 전체가 눈으로 덮이니 산등성이도 골짜기도 없어진 그대로 였다.

이날 이 산맥을 넘던 훗날 기상학자들은 100 이래 대강설이었다고 한다. 눈은 어느 새 길을 메우고 밀림을 메우고 있었다. 지난 해 마당거우 작전도 눈 속에서 겪었지만 이 해는 시작하는 잡도리 자체가 심상치 않겠다고 김일성 사령은 혼자 말하고 있었다. 보통 눈 속을 행군할 때에는 앞선 부대가 눈을 다져 놓고 그 뒤를 따라야 한다. 7연대 끌끌한 대원들이 눈다지기 역할을 하였다. 안 다져 놓으면 허망을 짚고는 어느 골짜기에 굴러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치 히말라야야 빙벽같이 말이다.

이렇게 시련은 날마다 시간 따라 간고해졌다. 말파리떼(일제토벌대)를 습격하여 해결해 온 식량도 부대에 골고루 풀어헤치니 이틀을 못가서 바닥이 났다. 숲은 점점 깊어지는 데 산막하나 오솔길 하나 만날 수 없었다. 100리 안쪽에는 채벌장도 없었다. 적들은 주민 지대 쪽으로 밀집대형을 짓고 서서 유격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서는 혼마 여단이 바싹 꼬리를 물고 죄여들었다. 어떤 때는 후위 놈들의 선두척후의 거리가 5리 안쪽으로 다가설 때도 있었다. 이제는 전투의 시작과 끝을 가르기 힘들게 되었고 그 회수도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거리가 밭아지면 한바탕 전투가 오고가는 데 행군은 그 불길 속에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눈보라는 사흘째 계속된다. 산천도 밀림도 하늘땅의 모든 것이 눈보라 때문에 기가 질려버렸다. 무엇이나 머리를 쳐들고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완강한 이깔 나무도 사흘 밤낮 눈보라에 시달리자 이제는 공손히 바람이 하자는 대로 굽어들고 휘고 종당에는 불어져 나갔다.

하늘땅 어디에나 휴-휴 하고 아츠러운 비명소리를 집어 삼키며 우르르 탕탕하고 마냥 울부짖는다. 그래도 광풍은 성이 차지 않았는지 마냥 울부짖는다. 눈 더미를 덮씌우고 눈가루를 휘뿌려 세상만물을 추위와 공포 속에 다 몰아넣을 잡도리다.

아무도 바로 걷는 사람이 없다. 얼굴을 쳐들고는 눈보라가 쳐 갈겨서 한걸음도 발을 옮겨 놓을 수 없다. 그래서 모두 소매로 눈앞을 가리고 모르 서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심술스러운 존재와 밀기내기라도 하듯 한걸음 한걸음을 안간힘을 써가며 앞으로 나갔다.

사지는 말을 듣지 않는다. 과연 죽은 것이 이보다 더 괴로운 것일까? 얼어들고 지치고 허기진 육체는 이렇게 되묻는 것이었다.

북청물장수의 아들이 사상가라고?

지성은 북청물장수의 아들이었다. 아버지가 물장수 하며 일본 유학까지 시켜 놓았는데 아버지의 정성도 다 배신을 하고 무슨 사회주의 운동을 한다고 나섰다 서대문 형무소에 갇히고 말았다. 면회를 찾아 온 아버지의 첫 마디 말이 “이 자식아, 세상에 무엇을 못해먹어서 사상가 노릇을 한단 말이냐. 그것은 돈 있는 놈들이 배가 불러서 하는 놀음이다” 였다.

그러한 지성이 김일성부대에 들어 와 눈보라 속 룡강 산맥을 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말이 다시 귀에 쟁쟁하다. “다 보기 싫다. , 주제에 사상가라...저 약수선생은 너 같은 것을 열 개를 합쳐도 못 따를 독립시사였지만 늘 수신제가 후에 치국평천하 하라고 했다. 북청 물지게장수 아들이 나라를 찾아놓을 때까지 딴 사람들은 다 무얼 하고 자빠졌단 말이냐” 아버지의 이 말씀 속에는 있는 놈 자식들 다 어디가 나자빠져 있는데 불쌍한 내 아들이 이 고생한단 말이냐는 눈물어린 한탄이 서려 있었던 것이다.

눈구덩이에 쓸어져 이런 생각을 하자 지성의 입에는 인간 체력의 한계가 더 이상 견디어 내지 못해 입에서 구역질과 함께 치미는 쇠비린내가 울컥 올라 왔다. 저 앞 언덕배기에는 철구 아주머니(평양 장철구 상업대학이 이에서 유래)와 채옥이가 기어오르다가 다시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철구 아주머니가 끼고 있던 벙어리장갑은 주인도 모른 채 눈 더미 속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러다가 다 죽겠구나. 차라리 죽음이 이 보다 편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할 생각이 뇌리 속을 스쳐 지나간다.

이런 와중에 김일성 동지는 소년 병 재영이를 꼭 외투자락에 감싸 안고 한 손으로는 지성이의 배낭을 밀어 올려주고 있었다. “동무들 적들은 10이상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더 참읍시다. 참 놀랐습니다. 적들은 우리들 보다 몇 갑절 잘 먹고 잘 입었는데 종시 따라오지 못합니다. 얼마 전 5리 거리를 10리로 벌려 놓고 말았습니다. 과연 혁명가들의 의지란 무섭습니다. 저 언덕에 올라 불을 피우고 쉬어 갑시다. 이제 적들은 우릴 따라잡지 못합니다. 따라잡기는커녕 총 한 방 쏠 기력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지성의 두 눈에는 어느 듯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사상가도 아니고 혁명가도 아니다. 오직 잃어버린 조국을 찾기 위해 아버지 말도 듣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 나왔을 뿐이다. 져서는 안 된다는,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는 크나큰 의무감이 아득히 가슴 밑바닥에서 솟구쳐 올라 올 뿐이다. 아버지 말씀도 옳다. 그러나 누가 한다고 내가 하고, 누가 안 한다고 안 할 일이 아니다. 이러다가 눈구덩이 속에 몸을 묻어도 내가 있을 곳에 내가 있었다는 그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아버지 얼굴이 밉기는커녕 더욱 그립기만 하다. 살아 돌아가는 날 까지 살아주시기만 바랄 뿐이다. 어머니인들 남편과 아들 사이에서 얼마나 마음 고생하실까 생각하니 가슴이 미여진다.

“만고의 애국자가 누구인가를”

이때에 이미 정상에 먼저 오른 동지들은 누가 먼저 부르지도 않았는데 일제히 한 목소리 되어 노래 부른다. 그날 만주벌 눈보라 속에서 사선을 넘는 투쟁의 고비 고비마다 겪고 살아남아 돌아 온 동지들 입에서는 ‘동지애의 노래’가 절로 작사 작곡이 되어 장백산 구비 구비 마다 울려 퍼졌다. 그 험상스럽던 눈보라 광풍도 반주가 되어 같이 합창을 한다.

가는 길 험난해도 시련의 고비 넘으리

불바람 휘몰아쳐 와도 생사를 같이 하리

천금주고 살수 없는 동지의 한없는 사랑

다진 맹세 변치말자 한별을 우러러 보네

돌우에 피어나는 꽃은 그 정성 키운 것이고

죽어도 잃지 않는 생은 그 사랑 주신 것이라네

비가오나 눈이오나 가야할 혁명의 길에

다진 맹세 변치말자 한별을 우러러 보네

이렇게 ‘한별’ 이란 이름은 장백산 눈 장벽 위에 붉게 깊게 적혀 나갔다. 그 때 그와 함께 행군했던 동지들은 그의 아들을 옹위했고, 그의 손자마저 옹립하려 한다. 인간들의 판단은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 장백산과 압록강은 알고 있다. 누가 이 민족의 장래를 맡아야 할지를 이들은 알고 있다.

그렇다. 세습이든 무엇이든 북조선의 오늘을 말 할 당사자는 만주벌 눈바람과 밀림의 긴긴밤이다. 지금도 밤은 노래하고 산맥은 합창한다. 수구들이여, 보수들이여, 관동군 후예들이여 귀 있으면 들어라. 민노당 이정희에게서 들을 것이 아니라 장백산 밀림에서 울려 퍼져 나오는 저 합창 소리에서 들으라.

만주벌 눈바람이 이야기 한다

밀림의 긴긴 밤이 이야기 한다

만고의 애국자가 누구인가를

절세의 애국자가 누구인가를

삼지연 푸른 물이 너무 고요하드냐. 들을 귀 있는 자들만 들어라.

 
 
[작성 : 김상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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