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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평화] 김일성.리콴유.김대중, 누가 가장 똑똑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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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0-10-17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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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평화] 김일성.리콴유.김대중, 누가 가장 똑똑한가?

- 김일성이 본 아시아적 가치 논쟁

부제: ‘의회민주주의’란 미제국주의의 놀이게 감에 불과

세습과 절대악

북조선의 권력 승계를 ‘3대세습’ 이니 ‘후계자’니 하면서 봉건잔재적 상투어들이 지상파와 신문지면위에 광야의 무법자 같이 난무하고, 진보 진영은 연일 난타를 당하고 있어도 말문이 막힌 마당에 김기협의 글 “세습은 절대악이 아니다” 는 한 줄기 여름날 소나기와도 같았다. 김기협은 싱가포르의 리콴유의 예를 들어 세습을 해도 잘 만 살고 세계 모범국가 까지 되더라고 하면서 세습이 절대악은 아니 라고 했다.

그러나 김기협의 글이 자칫 북조선의 권력 승계를 세습 인냥, 그리고 싱가포르의 경우가 북조선의 경우랑 동일한 것과 같은 듯한 인상을 준 것은 유감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만약에 싱가포르의 경우를 북조선의 경우와 서로 비교한다면 그 이전 1990년 대 초반 리콴유와 김대중 사이에 있었던 ‘아시아적 가치 Asian value´ 논쟁을 먼저 말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리콴유의 경우는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기 전에 든든한 그 이론적 철학적 배경을 탄탄히 만들었다. 그 일환으로 부쳐진 것이 바로 아시아적 가치 논쟁이었다.

아시아적 가치 논쟁의 발단

문명 충돌론에 이어 ‘아시아적 가치’ 논쟁은 1994년에 미국의 외교정책 잡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봄호(3·4)에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수상이 〈문화는 운명이다(Culture is Destiny)〉라는 주제의 글을 실어 논쟁의 불씨를 지피었다. 리콴유는 1965년에서 1990년까지 싱가포르 총리로 있으면서 개발독재 방식으로 싱가포르의 고도 경제 성장을 이끈 인물이다.

리콴유의 아시아적 가치 옹호론에 대해 한국의 김대중은 역시 《포린 어페어스》의 1994년 겨울호(11·12)에 〈문화는 운명인가?〉라는 글을 게재해 “민주주의가 운명이다” 라고 리콴유를 반박 했다. 김대중의 반박이 있은 뒤 리콴유는 《타임(TIME)》 지에서 ‘아시아적 가치의 방어(In the Defense of Asian Value)’ 하는 글을 실었다.(1998 3 16일자),

리콴유는 1994년 《포린 어페어스》에 글을 싣기 전에 이미 그의 자서전 《싱가포르 이야기(The Singapore Story)》에서 아시아적 가치에 이상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은 홍콩의 마지막 영국 총독인 크리스 패튼의 《동양과 서양:중국, 권력, 그리고 아시아의 미래(East and westChina, Power, and the the Future of of Asia)》에 대한 도전장과도 같은 것이다. 홍콩을 1996년 중국에 돌려주기 직전, 패튼은 이솝의 ‘여우와 신포도’ 우화를 예로 들며 과연 중국이 홍콩을 물려받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주도해나갈 자격과 능력이 있느냐며 힐난했다.

이에 대해 리콴유는 중국 같은 대국에서 서구식 민주주의를 해가지고는 나라를 이끌어나갈 수 없으며, 중국에는 강력한 중앙집권이 맞고 그것은 유교 정치 덕목이라고 강변한다. 사실 이 두 사람 사이의 견해 차이가 아시아적 가치 논쟁에 불을 붙였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함재봉, 2001, 186194).

산업혁명 이후 자신감을 얻은 백인 코카시안들 가운데 막스 베버 같은 학자는 아시아를 두고 개인주의가 없어서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못했다고 폄하했다. 그러면서 유교적 가치를 권위주의, 정실주의, 수구 연고주의, 애니미즘적 조상 숭배 등으로 자리매김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적 견해를 서슴없이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견해가 오리엔탈리즘의 논리적 배경을 제공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유럽인들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아시아 국가들의 지도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감히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전 싱가포르 수상 리콴유가 아시아의 기적은 끝나지 않았고 ‘아시아적 모델(Asian model)’은 유효하다며 강변하고 있다. 한편, 리콴유의 이러한 강변에 한국의 김대중은 반론을 펴고 있다. 그러면 먼저 유럽 언론들이 아시아적 가치를 비판한 몇 가지 관점들을 소개하고, 리콴유가 《포린 어페어스》를 통해 반론한 내용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유럽인들이 지적하는 아시아적 가치의 가장 부정적인 것은 아시인들의 독특한 정실주의에 입각한 ‘패거리주의(Cronyism)’이다. 크로니 자본주의, 크로니 정치, 크로니 학연주의에 따른 부패상이 아시아 사회의 가장 큰 병폐라고 보는 것이다. 학연·지연·혈연에 따라 다이아몬드보다 더 공고하게 결속되어 있는 아시아 사회는 희망이 없다고 한다. 두번째는 권위주의이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학계·경제계·교육계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뿌리내리고 있는 관료적 권위주의가 아시아적 가치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세번째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 정책이다. 상호지급보증을 해주면서 선단식 경영을 해나가는 한국 재벌 경제는 마치 옛날 군주가 신하를 거느리고 행차하는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지금 북조선의 권력 승계 과정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은연중에 자기도 모르게 서양의 이런 오리엔탈리즘에 깊게 함몰 돼 있는 것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다. 3대로 권력이 한 가문을 통해 세습되는 것이 왜 나쁘냐고 할 때에 그 이론적 그리고 철학적 배경은 19세기 서양 사상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그 중 막스 베버와 헤겔의 영향은 자못 크다 아니할 수 없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제럴드 시걸 소장은 1991 12 30일자 《파이낸셜 타임(Financial Times)》 지 기고에서 위의 세 요소를 종합해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위기는 비합리적인 정치 제도 외에 패거리주의, 족벌주의, 학연주의, 비효율적인 금융 구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1970년대에는 그렇게도 부러워 하던 아시아적 발전 모델이 지금은 가장 추잡한 것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고 했다.

지금 서방 세계가 북조선의 권력 승계를 비판하는 시각은 남한과 북조선을 싸잡아 하는 것일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핏줄을 통한 혈통에 의한 계승은 악이라는 것이다. 한국 재벌과 북조선을 싸잡아 같이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시민은 한국 재벌은 세습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비판의 배경에는 베버의 영향이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서양가치에 대한 리콴유의 비판

아시아에 대한 구미 언론들의 이 같은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 리콴유는 다음 몇 가지 논지를 들어 아시아적 가치를 옹호하면서 강변하고 나왔다. 먼저 아시아적 가치를 변호하기에 앞서 리콴유는 미국의 가치관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미국은 ‘정부(government)’가 비대해져 정부가 모든 구실을 다해주려고 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는 마약·교육·폭력을 꼽았다. 아시아 같으면 이들 문제를 모두 ‘가정(family)’이 도맡아서 해결하려고 할 터인데, 미국은 정부가 전권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콴유는 마약 문제를 해결하려고 남의 나라(파나마)에 가서 대통령을 잡아오는 그런 무례한 짓을 할 수 있느냐며 일침을 놓는다.

한마디로, 어떻게 1 1표가 옳으냐 하는 것이다. 4060세 사이 유권자는 1 2표를 행사하고, 60세 이상 40세 이하는 1 1표만 행사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리콴유는 보고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김대중의 비판 글에서 언급되기 때문에 여기서는 리콴유의 기본 견해만 밝혀두기로 한다.

김대중의 “민주의의가 운명이다”

김대중은 “가족 중심적이라는 동양 사회도 이기적인 개인주의로 급속하게 전환하고 있으며, 인간 역사에 영원불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Foreign Affairs, 1112, 1994, 190)며 대응했다. 김대중은 한국의 반상회를 예로 들며, 정부가 가정의 일상사를 도외시한다는 말로 일축하고 있다. 그러면서 싱가포르 정부가 개인이 껌을 씹는 것까지 간섭하는 것은 개인사에 대한 국가의 지나친 개입이 아니냐며 실례를 든다. 김대중은 싱가포르 사회가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묘사된 사회를 방불케 한다며 격하게 비판한다.

김대중은 서구 사회의 도덕 붕괴 원인이 서구 문화의 본질적인 단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업사회의 단점에 있다고 했다. 리콴유는 19581991년 사이에 개발독재형 지도자로서 성공한 정치가이다. 거꾸로 김대중은 같은 기간을 거치며 거의 전생애를 개발독재형 인물들(박정희·전두환·노태우)과 싸워오면서 투옥까지 당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김대중의 눈에, 리콴유가 서구의 민주주의가 아시아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독재자 ‘자신의 입지를 위해 견강부회’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아직 아시아의 많은 정치인들이 독재의 족쇄에 묶여 시달리고 있는 마당에 리콴유의 주장은 타당성 없는 자기합리화에 불과함을 지적하면서, 김대중은 아시아의 문화 전통 속에서 얼마든지 서구식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는 가치관을 도출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Foreign Affairs, 1112, 1994, 191). 그렇다면 김대중은 서양의 학자들을 대신해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것 아닌가?

김대중은 서양의 로크보다 2,000년 전에 살았던 맹자가 로크와 비슷하게 왕도가 악정을 하면 국민이 방벌해도 좋다는 사상을 지녔다고 소개한다. 동양 속에 서양이 있었음을 보인 것이다. 아울러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을 제시하면서, 백성이 첫째이고 국가의 사직이 둘째라는 유교의 정치사상도 소개한다. 그리고 1894년에 한국에서 있었던 50만 농민 봉기는 반봉건·반제국주의 사상이라고 하면서, 이는 “서구에 못지않은 심오한 민주주의의 철학적 전통(democratic philosophies as prof ound as those of the West)”이라고 했다(Foreign Affairs, 1112, 1994, 191).

김대중은 정치 이상에서뿐만 아니라, 정치 제도에서도 동양은 서양보다 민주주의가 앞서 있었다고 소개한다. 중국이나 한국에 있었던 군현 제도, 과거(科擧)와 같은 기회 균등 제도(전체 인구의 10퍼센트가량인 양반 계급에 한한 제도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정치권력의 남용을 반대하는 선비들의 저항 정신 등을 들어, 유럽의 봉건 제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민주적 정치 제도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선거에 따른 민주주의를 제도화한 것은 ‘유럽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대중은 민주화와 경제 발전이라는 쌍두마차가 아시아에서 가능함을 바로 한국과 일본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아시아에는 민주주의가 적용될 수 없다는 리콴유의 주장이 제도상으로 보더라도 적합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김대중은 다음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민주주의 현황을 살펴본다. 그는 리콴유 같은 개발독재형의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이 완강하게 저항함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크게 진전되었다고 보고 있다. 김대중은 헌팅턴의 말을 인용하면서, 1974년 이후 아시아는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민주주의가 잘 진척되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김대중은 21세기 1/4분기에는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의 활성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세기(an era not only of economic prosperity, but also of flourishing democracy)”가 될 것이라며 낙관하고 있다.

김대중은 이렇게 낙관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앞으로는 정보산업 사회의 시대이다. 정보산업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어 정보가 강물처럼 흘러야 한다. 그러므로 아시아에서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는 이제 치열한 경쟁의 시대로 접어든 세계 경제 질서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기 때문(It is matter of survival)(Foreign Affairs, 1112, 1994, 193)이라고 했다.

사실 김대중의 글을 지금 생각할 때에 그가 5년간 이끌어 오던 대한 민국이 지금 되어가는 꼴을 보고 같은 소리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명박정부들어 그 동안 공들여 쌓아 놓은 민주주의의 탑은 다 무너져 내리고 있다. 언론은 족쇄에 채이고 시위와 결사의 자유는 제로지대가 되고 말았다. 김대중은 지하에서 지금 쯤 서구식 민주주의 문제 있다고 분명히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난장판이 선거고 역사가 방향타를 놓고 마는 것이 서구식 민주주의라고 개탄할 것이다.

끝으로 김대중은 ‘지구적 민주주의(global democracy)’를 제창하면서 일정 정도 서구식 민주주의를 비판도 한다. 지구적 민주주의란 아시아적 가치를 서구의 민주주의와 접목시킨 민주주의이다. 지금까지의 서구식 민주주의란 인종 혹은 민족국가의 한계 안에서 민주주의였다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과연 흑인·인디언·아시안·멕시칸들을 포함하는 민주주의인지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서구식 민주주의의 또 다른 약점은 소수 부유 계층만을 대변하는 민주주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범국가적 범계층적 민주주의를 창출해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아시아적 가치를 더하면, 자주성을 장려하고 문화적 가치도 존중하는 새로운 민주주의가 탄생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나아가 서구식 민주주의는 반환경적이었음을 지적한다. 지구적 민주주의란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참다운 형제애로 감싸주는 환경 친화적 민주주의이다(Our democracy must become global in the sense that it extends to the skies, the earth, and all things with brotherly affection)(Foreign Affairs, 1112, 1994, 194).

리콴유와 김대중 두 사람 모두 유교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아시아적 가치의 이상으로 손꼽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런데 두 사람이 강조하는 지점은 서로 다르다. 리콴유는 ‘수신’을 강조해 가정에서 그리고 평천하로 연장되는 해석을 하고 있지만, 김대중은 그 반대이다.

김대중은 아시아의 풍부한 민주주의적 철학과 전통이 ‘지구적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동학란은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농민전쟁으로서 중국의 태평천국의 난과도 비교가 안 되며, 그 바탕이 되는 ‘인내천’ 사상은 민주주의의 강한 저력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때문에 구태여 서양의 민주주의 이론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우리 안에서 자생적인 민주주의의 토양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를 바탕으로 김대중은 “문화가 반드시 우리의 운명인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우리의 운명이다(Culture is not necessarily our destiny. Democracy is)(Foreign Affairs, 1112, 1994, 194)라고 결론을 맺고 있다.

리콴유와 김대중 그리고 김일성

리콴유의 “문화가 운명이다’ 와 김대중의 ‘민주주의가 운명이다’ 에 대하여 김일성은 “사람이 운명이다”라고 말 할 것이다. 김일성 1930년 대 항일 투쟁 기간에 이 진리를 터득했다. 김일성은 “공산주의가 운명이 아니다”를 반민생단 투쟁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결코 어떤 주의도 사람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경험했다. 중공당이 조선 공산당원을 민생단 혐의로 2000 여명 이상을 처형하는 것을 보고 그는 공산주의가 우리의 운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는 것이다. 중국도 소련도 마르크스 사상을 숙명처럼 받아드리고 있던 때에 이는 과감한 노선 일탈이다. 이번 당 대회에서 ‘공산주의’ 란 조항을 삭제한 것을 보아서도 지론이 옳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리콴유가 “민주주의가 운명이 아니다” 하는 것과 이념을 운명으로 받아드리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면 김일성은 문화는 운명으로 받아 드렸는가? 문화를 ‘민족주의’ 라고 바꾸어 놓아도 좋다. 그것도 아니다. 김일성은 상해 임정내의 민족주의 투쟁 노선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 나름대로의 민족주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주인이 되어 문화도 주의도 주체적으로 장악할 수 있는 한에서 타당하다고 보았다. 그는 ‘사람’ 만이 운명의 주인이지 다른 아무 것도 사람 위에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김대중은 선거에 의해 대한민국 6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김일성은 항일유격대원 130여명을 직접 인솔해 국내에 진입해 들어 와 그들과 함께 나라를 세웠다. 그는 자기 자신의 권위에 의해 자신이 시작 자체를 시작한 인물이다. 이 점에서 리콴유와 김대중 모두와 다른 점이다.

리콴유는 영국에 유학까지 했고 그의 영어 이름은 죤이다. 김대중도 대학교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김일성은 중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이다. 15년간 장백산 구비 구비 압록강 구비 구비 마다에 피를 뿌리며 영하 40도를 웃도는 지역에서 추위와 굶주림과 싸우다 그 동지들과 입국하여 나라를 세웠다.

그래서 그는 친일파을 청산하고 토지를 개혁하여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을 동시에 성공시켰다. 그는 만주일대에서 독립운동하다 죽은 유자녀들을 국내로 대리고 들어 와 만경대 학원에서 그들을 인재로 길러 내어 나라의 동량으로 삼았다. 그는 그 이전에 1932년 마안산에서 민생단 혐의로 몰려 죽을 날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을 자기 몸을 던져 그해내 그들을 안고 산으로 내려 왔다. 그 후 그 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 위대한 어버이수령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를 두고 마치 해방 후 김일성이 자기를 우상화 시킨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앞뒤가 뒤 바뀐 주장이다.

이런 점들이 김일성은 리콴유와 김대중과는 다르다. 과연 김일성과 그의 화신이 아니고는 과연 누가 북조선의 혁명을 지켜 나가고 유지 할 수 있을지는 실로 의심스럽다. 김일성은 나라를 시작함과 동시에 시작을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의 화신이 아니고는 이 시작 그 자체의 전통을 아무도 이어 나갈 수 없다.

남미를 보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심어 놓고 미제국주의의 안방이 되어 버리고 뒤뜰이 되어 버린 꼴을 보아라. 리콴유도 말한 것처럼 뭣하면 미국이 들어 그 나라의 대통령 까지 잡아 온다. 칠레에선 민선에 의해 선출된 아옌다 정부를 하루아침에 몰락시키고 미국이 군사 독제 정권을 내 세운 역사를 보라. 백주 대낮에 자기 국민을 학살한 전두환이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의회민주주의란 이름으로. 가능하다. 미국이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래서 의회민주주의란 미국의 노리게 감에 불과하다. 이것을 아는 북조선이 의회민주주의를 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말라. 북조선에 있어서 의회민주주의는 뜨거운 감자도 아니고 여우의 신포도도 아니다. 금기 1호이다. 미제국주의 존재하는 북조선은 절대로 의회민주주의 안 할 것이다.

남한이 선거에 의해 역사가 곤두박질치는 꼴을 보고 김대중 대통령도 지하에서 “민주주의는 운명이다” 이라고 한 말에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북조선이 어느 바보라고 이런 노리게 감 같은 것을 받아 드리겠는가? 운명의 순간에도 이명박이 615 선언은 지켜 줄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이명박은 역사를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그래도 어느 바보가 민주주의 넋두리 한단 말인가? 여우와 신포도라고 놀려대겠지만 북조선은 미동도 안 할 것이다.

김일성과 리콴유와 김대중 3인 가운데 누가 가장 똑똑한 지는 독자들이 판단할 문제이다.

[작성 : 김상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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