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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조선반도정세회고 -5-(조일)〉 고립된 일본, 변하지 않은 대조선대결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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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7-12-14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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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몰락》과 그 후유증

 
  2007년 조선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크게 움직이였다. 6자회담이 진전되고 미국을 비롯한 각측이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념두에 둔 외교적행보를 시작하였다. 한편 조선과 일본의 악화된 관계는 해소되지 않았다. 지난 1년간 6자회담 참가국들 가운데 정권이 바뀐것은 유독 일본만이지만 대세의 흐름에 역행하는 대조선대결책에 변화는 없었다.

강경로선의 파탄

울란바따르회의(9월)에서  《태도변화》한 일본이였지만...
  올해 조일사이에 정부간교섭은 두차례 있었다. 6자회담 합의에 따르는 국교정상화실무그루빠회의가 3월과 9월, 윁남과 몽골에서 열렸다.

  윁남 하노이에서 열린 회의는 아무런 결실없이 대결구도만 부각시켰다. 당시의 아베정권은 오로지 6자회담의 진전에 제동을 걸기 위하여 무분별한 행동을 일삼았다.

  회담장에서 일본대표단은 수상관저의 의향을 충실히 대변하였다. 랍치문제라는것은 피해자의 사망이 확증되였다고 해서 해결되는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모두 살아있다는 전제하에서 그들을 다 돌려보내야 해결될수 있다는 억지를 부린것이다. 《사망자를 살려내라.》는 무지막지한 협상론리는 아베정권이 애당초 조일관계의 진전을 바라지 않고있음을 보여주는것이였다.

  그런데 6개월후 몽골 울란바따르에서 열린 회의에서 일본대표단은 태도를 바꾸었다. 랍치문제와 관련한 강변술을 철회하고 과거청산문제를 성실하게 해결해나가겠다는 말까지 하였다. 회의에서 조일쌍방은 평양선언에 기초하여 《조기 국교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나가는데서 일치하였다. 그리고 이에 관한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협의하기 위해 가능한한 실무그루빠회의를 자주 개최하기로 하였다.

  일본의 《태도변화》의 배경에는 6자회담의 진전이 있었다. 조미간의 현안이였던 《방코델타아시아》(BDA)동결자금문제가 미국의 《정치결단》에 의하여 해결되고 6자합의리행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그것은 제재와 압력으로 조일관계를 동결시킨 아베식 대결로선의 파탄을 의미하였다.

  《조기 국교정상화를 위한 노력》에 관한 조일합의가 대결소동에 그토록 환장했던 아베정권하에서 이루어진 사실은 눈여겨볼만하다. 그만큼 대세는 되돌릴수 없는 흐름으로 되였고 일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외교와 내정에서 모두 막히고 몽골 울란바따르회의 직후 비참한 사임극을 벌려놓은 선임자의 모습에서 《교훈》을 찾아야 할 후꾸다총리의 경우도 놓여진 상황은 똑 같다.

행동 위한 《3가지 조건》

  올해 3월 6자회담의 틀거리안에서 처음으로 열린 국교정상화실무그루빠회의에서 조선은 조일사이의 현안문제와 일본의 과거청산에 대한 립장을 밝혔다. 랍치와 관련한 재조사 등 일본측의 요구에 대해서는 3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즉 ◇조선에 대한 일본의 제재해제 ◇총련탄압의 중지 ◇과거청산의 시작이다. 이에 대한 일본측의 태도와 립장을 보면서 대응조치를 고려해볼수 있다는것이 하노이에서 밝혀진 조선의 행동방식이다.

  9월 몽골 울란바따르에서 이루어진 합의도 당연히 이를 전제로 하였다고 볼수 있다. 조선과 마주 앉아 《조기 국교정상화를 위한 노력》에서 일치할 경우 자기 할바를 다해야 한다는것을 일본측도 모르지 않았을것이다.

  6자회담의 진전에 맞추어 악화된 조일관계를 시정하고 새 출발의 계기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일본으로서는 어떻게 하나 울란바따르에서 쌍방의 일치점을 연출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회의를 앞두고 조일 외무성관계자들에 의한 제3국에서의 《물밑접촉》이 보도된바 있다. 궁지에 몰린 일본의 초조감은 현장에서 움직이는 외교관들이 체현한것이다.

  그런데 울란바따르회의 이후도 일본의 대조선정책에 긍정적인 변화는 없었다. 정책적으로 정돈상태에 빠진 아베정권이 돌연히 무너지고 정치적혼란속에 후꾸다정권이 출범하였지만 회의가 열린 다음달 일본은 조선에 대한 제재조치를 6개월 더 연장하였다.

  외교소식통에 의하면 일본측은 임의의 통로를 통해 갑작스러운 정책전환이 어려운 《국내사정》에 대하여 조선측에 설명하였다고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울란바따르회의 이후 드러난 일본의 행보는 외교적관례에 어긋나는것이다. 조금 더 시간을 달라고 하는 하소연은 구차스러운 변명을 되풀이하고있는데 불과하다.

지연술의 한계점

  12월초 조선중앙통신은 일본의 적대시정책에 대하여 후꾸다총리의 이름을 들어 비난하는 론평을 발표하였다.

  《반공화국모략소동은 현일본당국의 집권생리로 되고있다.》

  론평의 이 구절은 일본의 구태의연에 대한 조선의 랭정한 관점을 엿볼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2007년 조선인민의 대일감정은 극도로 악화되였다. 일본당국이 총련과 재일조선인들을 악랄하게 탄압한것이 원인이다.

  조선정부는 《총련탄압의 중지》를 포함한 대일행동의 《3가지 조건》을 끝까지 견지할것이다. 원칙을 양보해야 할 리유가 없다. 6자회담에서 합의된 9.19공동성명리행의 2단계조치가 계획대로 완료되면 일본의 고립상은 더더욱 명백해질것이다.

  한때 《조기 국교정상화》를 목표로 삼고 조선측과 회의를 자주 가질것이라고 했던 일본의 외교관들도 지금은 속수무책인듯 싶다. 정권의 간판은 바뀌였지만 권력을 둘러싼 여야당의 싸움은 격렬해지고 조기총선거의 억측을 불러일으키는 정치의 혼란이 계속되고있다. 내정문제에 발목이 잡힌 정치인들의 리기주의와 관료들의 안일주의가 결합된것으로 하여 한나라의 외교적실천력이 상실되였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일본은 《아베몰락》의 후유증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평양선언에 명시된 《과거청산에 기초한 국교정상화》는 일본이 지난 세기의 구태에서 벗어나 자주외교로 나갈수 있는 기회였다.

  과거 5년간 일본은 다른 길을 끈질기게 추구하였지만 울란바따르에서 스스로 인정한것처럼 6자의 틀거리안에서 이미 판가름은 났다. 동북아시아 국제질서의 재편과정을 외면하고 대세에 역행한 일본은 래년 이후 과거청산을 계속 미루어왔던 후과를 똑똑히 깨닫게 될것이다.(련재 끝)

 

[출처: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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