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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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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0-17 03:3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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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편집국

 

 

 

 

재미동포전국연합회는 북 바로알기 운동을 위해 북 문예소설 작품인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소개합니다. 《새 나라》는 윤경찬 저자이며 2013년 문학예술출판사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1945년 해방된 북 조국 땅에 어떻게 새나라가 건설되었는가를 문학적 감동과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18

 

구진배는 남조선주둔 미군사령관 하지중장을 만나기 위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있었다. 그를 여기까지 데리고온 하지의 정치고문 버취는 잠간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저 혼자 들어갔는데 한시간이 넘도록 나오지 않고있었다.

 

대기실은 호화롭게 꾸려져있었다. 천정의 커다란 무리등이며 바람벽에 걸려있는 유럽풍의 회화작품이며 바닥에 깐 주단이며 그리고 자기가 앉아있는 안락의자까지 모두다 사치하고 값진것들이였다. 대기실이 이 정도이니 이제 들어가보게 될 하지중장의 방은 얼마나 화려할것인가.

 

방음장치가 되여있는 문옆에서는 군복을 입은 금발머리양녀가 타자기를 재깍거리고있었다. 입술이 얄팍한 그 녀자는 코도 뾰족하고 아래턱도 뾰족해서 대번에 석기시대의 돌도끼를 련상시켰다. 《돌도끼》는 구진배의 존재는 아예 이 방에 없는것으로 생각하는지 말 한마디 걸어오지 않았다.

 

꾸어온 보리자루처럼 한쪽구석에 앉아 무료감에 시달리던 구진배는 앞차대에 놓인 재털이를 보자 담배생각이 나서 한대 붙여물었다. 그 순간 타자기소리가 멎고 《돌도끼》가 어느새 구진배앞에 다가왔다. 담배연기를 탐스럽게 들이키던 구진배는 영문을 몰라 올려다보는데 그 녀자는 거만한 자세로 내려다보며 손톱에 물감을 들인 뾰족한 손가락으로 재털이를 가리켰다. 당장 담배를 끄라는 뜻이였다. 구진배는 그만에야 자기의 실수를 깨달았다. 감히 어디서 담배질인가.

 

기가 질린 그는 삼켰던 담배연기를 내뱉지도 못하고 황급히 담배부터 비벼껐다. 그리고 조심스레 연기를 내보낸다는노릇이 그만에야 사래가 들려 요란하게 재채기를 했다. 재채기를 할 때마다 미개한 동양인을 서양녀자앞에서 망신시키려는듯 고약스런 담배연기는 입에서 코구멍에서 자꾸만 쏟아져나왔다.

 

재채기바람에 눈물까지 찔끔 솟아올랐다. 금발머리양녀는 문쪽을 흘끔거리며 《스톺, 스톺!》하고 낮게 소리쳤다.

 

기침을 하지 말라는 조선말을 모르니 영어로 서라는 소리밖에 할수 없었던것이다. 그래도 구진배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여기는 숨조차 마음대로 쉴수 없는 하지중장의 방이라는 공포심이 이겼는지 기침이 뚝 멎은것이다.

 

금발머리양녀는 경멸의 눈초리로 구진배를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다시 제자리로 가앉아 타자기를 재깍거렸다.

 

구진배는 잔등에서 땀이 다 나는것만 같았다. 서기년이 괘씸했다.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할바에야 왜 재털이를 내놓았는가?

 

그럼 나만 여기서 담배를 못 피우는가?

 

그는 자기 차림새를 내려다보았다. 하지중장을 만나게 된다고 해서 격자무늬 회색양복에 나비넥타이까지 맨 신사차림이였다. 마른 명태처럼 빼빼 말라서 양복이 몸에 잘 붙지는 않지만 키는 보통사람들보다 머리 하나쯤 더 커서 미군꺽다리들과도 짝지지 않는다. (아이적부터 그는 키가 필요이상 꺽두룩해서 《돌피》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다.)

 

푸시시하게 일어서군 하는 머리카락은 뽀마도를 듬뿍 발라서 척 보기엔 고상한 생각만 깃들어있으리라 믿어지게끔 고상하게 빗어넘겼다. 비싼 《사꾸라》표향수도 뿌리고 구두도 약칠을 해서 반들반들했다.

 

그러나 구진배는 자기가 이 방에서 마음대로 담배를 피울수 있는 큰 인물이 못된다는것, 어제까지만 해도 신익회의 《정치공작대》에서 하수인노릇을 하다가 미군사령부산하 방첩기관인 《쥐투》(G2)의 비밀지령으로 북조선에 파견되기 위해 여기에 와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나를 데려온 버취는 왜 아직 나오지 않는가?)

 

그 시각 버취는 하지중장에게 북조선에서 계획하고있는 보통강개수공사의 중요성을 납득시키느라 땀을 빼고있었다.

 

《이 공사는 단순한 치산치수가 아니기때문에 응당 주목을 돌려야 합니다. 만약 이 공사가 북조선수뇌부에서 계획한대로 되는 경우 그들은 큰 정치적리득을 보게 됩니다.》

 

《어떤 리득 말이요?》

 

하지는 시종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짧게 깎은 회색머리를 긁적거렸다.

 

다소 작은 중키에 딱 벌어진 체격의 하지는 직업적인 군인으로서 당초에 이런 말공부에는 흥미가 없었던것이다.

 

《각하! 미국은 이미 테헤란과 얄따에서 조선은 제힘으로 살아나갈수 없을만큼 락후하기때문에 장기적인 신탁통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모스크바3국외상회의에서도 조선의 통일정부수립을 도와주기 위한 신탁통치안을 내놓았습니다. 우리가 쏘미공동위원회를 파탄시킨것은 조선의 통일을 막고 남조선에 친미정권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북조선수뇌부에서는 민족자체의 힘으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데 대한 슬로간을 제시했습니다. 그 첫 사업으로 보통강개수공사를 벌려놓은것만 봐도 김일성장군의 정치지략이 얼마나 뛰여난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습니다. 이제 그 공사가 시작되면 백성들은 북조선인민정권에 박수를 보내면서 너도나도 떨쳐나설것입니다. 김일성장군은 바로 이걸 내다본것입니다. 우리가 내세우려는 리승만이같은 3부류정치인들은 상상도 못할 단수높은 전략이지요. 때문에 이 공사를 파탄시키는것은 북조선의 민중이 인민정권의 두리에 벌떼처럼 뭉치는것을 방해하는 동시에 조선이 제힘으로 민주국가건설을 할수 없다는것을 인정하게 하는 좋은 계기로 될것입니다.》

 

하지는 자기의 정치고문인 버취의 정세분석에는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그의 자신만만한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신의 말에도 론리적타당성은 있소. 그런데 문제를 너무 요란하게 보는게 아니요? 지금 우리에게는 북조선의 치산치수에까지 신경을 쓸만 한 여유가 없소. 당장은 김규식과 려운형의 좌우합작을 성사시키는게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이요.

 

요새 서울공기가 좋지 않소. 특히 좌익계 언론들이 쏘미공위가 중지된 책임을 따지려들고 리승만의 단독정부수립설을 비판하는 도수가 높아졌단 말이요. 우리는 우익계용사들을 내세워 좌익계 언론들이 쏘미공위가 결렬된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폭로하지 못하도록 방비대책을 세워야 하오. 그리고 이번기회에 남한땅에서 공산당세력을 뿌리채 뽑아버리자는거요. 그 전주곡이 될만 한 악보를 하나 만들어보라고 했는데 어떻게 됐소?》

 

《노불씨가 위조지페사건을 잘 꾸며놓았습니다. 좌익계신문사인 <정판사>에서 위조지페를 찍어냈다는 단서를 꾸며서 그것으로 범위를 확대하려고 합니다.》

 

《노불이 하는 일이면 실수가 없을거요. 그리고 서울-인천사이 군용도로건설과 38도선에 이르는 군용도로건설은 어떻게 돼가고있소?》

 

《지금 인부들을 모으고있습니다.》

 

하지는 공사가 지연되는게 불만스러워 미간을 찌프렸다. 남조선주둔 군사령관으로 부임되자마자 하지가 제일 관심하는것이 군사기지 건설이였던것이다. 이미 38연선지대들에는 수많은 전호와 철조망, 영구화점들이 전개되여 든든한 방어선이 구축되였고 남조선의 여러곳에서 비행장건설과 군항건설이 시작되거나 계획중에 있었다. 제주도에는 모슬포비행장을 중심으로 여러개의 비행장건설이 다그쳐지고 김포비행장도 B-29폭격기가 뜰수 있게 확장할 계획이였다. 또한 인천, 부산, 진해 등 여러 항만을 개축하여 해군기지로 만들 계획인데 한개의 어장에 불과하던 포항에 3백만딸라를 들여 군항으로 확장하는 계획안은 이미 국방성에 제출되여있었다. 이 땅의 실제적인 주인이 되자면 북조선의 강바닥파기공사에나 신경을 쓰지 말고 군사기지건설에 박차를 가해야 할것이다. 이 단순한 리치를 모르는 버취가 하지의 눈에는 애숭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정치란 이런거요. 말로 안되면 총이 말을 대신하는게 정치의 본질이란 말이요. 나만큼 살고 나만큼 포연내를 맡아보면 내 말을 리해할거요.》

 

하지는 자기 인생을 긍지롭게 돌이켜보며 학생앞에 선 교사의 심정으로 타일렀다. 아직 젊었으니 모를수 있지. 하긴 저 나이에 정치를 론한다는것도 불행한 일이다. 정치라는게 치산치수나 하는게 아니라 그 비단보자기를 벗기면 피가 랑자하다는것을 이 젊은이가 안다면 세상이 얼마나 무서워보일것인가. 나이가 쉰한살이 되도록 피비린 살륙장만 찾아다닌 덕에 미제24군단 군단장의 자리에까지 올라앉은 하지이고보면 정치와 피를 동의어로 리해한다고 해서 크게 탓할것도 없었다.

 

그러나 버취도 하지의 훈시 몇마디에 고개를 숙일만큼 뼈대가 물렁물렁하지는 않았다.

 

버취는 미국 오하이오주출신으로서 얼마전까지 하지의 연설문초안이나 써주던 서른살미만의 하급장교였다. 정치도 인생도 풋내기이지만 야심은 만만치 않아서 운수좋게 벼락출세를 하자마자 남조선정국을 정치실습장으로 여기고있는 철없는 젊은이였다. 요새는 당년 66살의 김규식에게 찰거마리처럼 딱 붙어가지고 남조선의 한다하는 로정객들을 장기쪽처럼 주무르고있는데 자기가 음모하는 《좌우합작》을 중국에서 마샬원수의 중재하에 벌어지고있던 《국공합작》회담과 동급에 놓고있는판이여서 방금 하지의 설교에 코방귀를 뀔만도 했다.

 

그는 상전의 정치적감각이 무딘것을 속으로 한탄하며 짭짤하게 말했다.

 

《저에게도 포연내를 맡아볼 기회가 오면 마다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각하의 정치보좌관으로서 권고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각하는 자신이 조선반도에서 미국을 대표한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는 자기를 력사적인물로 은근히 고여올리면서까지 제 견해를 양보하지 않으려는 버취의 고집스러운 성격이 별로 밉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그 공사가 완공되면 북조선의 인민정권이 강화되는것은 물론이고 남조선의 민심도 북으로 쏠린다는거요?》

 

버취로서는 그나마도 다행스러웠다. 머리가 천천히 돌아도 제 방향으로 돌기만 하면야…

 

버취는 자기 말귀를 조금씩 알아먹는 상전을 사뭇 기특하게 생각하며 얼른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각하. 북조선은 김일성장군의 민중정치에 박수를 보내면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자고 합니다. 이런 형편에서 우리에게는 북조선의 공산정권에로 쏠리는 민심을 파괴하는것이 급선무로 나서고있습니다. 때문에 이 공사를 파탄시키면 북조선정권은 민중을 우롱하는 정권이며 미래도 없다는것을 세상에 보여줄수 있습니다.》

 

《민심파괴라…》

 

하지의 얼굴에는 점차 심각한 기색이 떠올랐다. 만약 북조선의 보통강토목공사가 그처럼 중대한 정치적의의를 안고있다면 이 공사를 대수롭지 않게 대했다가는 그것이 자기의 정치적암둔성을 폭로하는 실례로 력사에 남을것이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하지는 모략가의 자질이 엿보이는 버취를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요구되는게 뭐요?》

 

버취는 그때까지 옆구리에 끼고있던 서류가방에서 얄팍한 문서를 꺼내놓았다. 구진배의 인물자료였다.

 

《평양출신으로서 8. 15전까지는 평남도청에 근무하던자인데 작년 11월에 평양대지주였던 부친과 함께 월남했습니다.

 

<쥐투>에서 주목하는 인물로서 이번작전의 적임자로 평양에 파견하려고 합니다.》

 

하지는 우멍눈에 돋보기를 걸고 인물자료를 들여다보았다.

 

《결국은 제 고향을 파괴하러 간다? 아주 비극적이고 재미있는 드라마가 되겠구만. 좋소, 내가 이자를 직접 만나보겠소. 그다음은?》

 

버취는 또 한장의 서류를 가방에서 뽑아들었다.

 

《평양대표부에 련락하여 일본인들에게서 넘겨받은 X망을 이자에게 배속시키려고 합니다.》

 

《그건 첩보부제씨들과 토론해보오. 이건 뭐요?》

 

문건을 훑어내려가던 하지는 두번째 조항을 소리내여 읽었다.

 

《공작자금으로 일본에서 새로 찍어온 조선은행권 1천만원을 지불한다. 이 돈은 북조선경내에 인플레를 조성하는 작전에도 동시에 리용될것이다.》

 

버취는 하지가 수표한 문건을 서류가방에 끼워넣으며 조심스레 여쭈었다.

 

《방금 문건으로 보신 인물을 혹시나 해서 대기시켜놓긴 했지만 그런 스파이급인물까지 각하께서 직접 만나시겠습니까? 차라리 작전이 성공하고 돌아온 다음에…》

 

하지는 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요? 당신자신이 이 작전의 중요성에 대해서 방금전에도 말한것 같은데…》

 

그 한마디로 하지는 이번작전을 방관시했던 자기의 실책을 메꾸고 상전의 위신도 차린셈이였다. 일이 성공하면 그 공로는 당당히 하지의 몫으로 될것이다.

 

버취는 차렷자세를 취했다가 절도있게 돌아서며 나들문으로 향했다. 구진배는 어깨를 낮추고 문턱을 넘어섰다. 하지의 방은 대낮인데도 창가림을 드리우고있어 응접실보다 더 어둑시근했다. 구진배는 어둡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해서 한참이나 돌미륵처럼 서있다가야 으리으리한 책상너머에 앉아있는 이 방의 주인을 알아보고 허리를 푹 꺾었다.

 

하지는 우멍한 눈으로 구진배를 말없이 지켜보면서 상대의 얼혼을 한절반 뽑아놓고서야 실무적인 표정에 실무적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맡은 임무는 대단히 중요하오. 당신도 짐작하고있겠지만 이 공사는 북조선정부의 선전포스타나 같소. 그네들도 일본사람들이 근 10년동안 해오던 공사를 올해 장마철전에 끝낼수 있다고는 애당초 믿지 않을거요. 어떤 명인이 말하기를 수술칼에 마취제가 따르듯이 집권자에게는 화려한 기만이 따른다고 했는데 이번 경우에 신통히 들어맞는 명언이요. 그러니 당신은 무지한 백성들에게 이것이 공산당의 정치책략이라는것을 폭로해서 그들이 스스로 공사를 태만하도록 해야 하오. 장마철까지 공사를 지연시켜서 공산당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북조선인민정권의 신뢰도를 약화시키는것이 당신의 임무요.》

 

《만약 공사결과가 우리 뜻대로 안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합니까?》

 

구진배는 용기를 내여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는 측은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다가 창문옆에 놓인 원탁으로 다가갔다.

 

전기싸모와르의 스위치를 넣고 물을 끓이면서 구진배를 다시한번 저울질해보았다.

 

(불쌍한 인간이군. 저런자에게 과연 작전을 맡길수 있을가? 현실을 진단하는 눈이 저렇게 어두워서야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

 

하지는 구진배에게 자신심을 안겨주려는듯 브라질산커피를 진하게 타서 그앞에 놓아주었다.

 

《당신은 공연한 걱정을 하고있소. 당신생각엔 그들이 공사를 해낼수 있다는거요?》

 

《그런건 아니지만 혹시…》

 

《단순하게 생각해보오. 뚜껑을 열어놓은 꿀단지에 숱한 파리들이 하루종일 달라붙어있었는데 저녁에 파리를 날리고보니 꿀은 조금도 축나지 않았소. 이것두 같은 리치요. 해방전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하는데 기적이 일어난다 해도 두달동안에는 불가능하오. 지금 이북의 공산주의자들은 일본의 식민지통치에서 해방된 기쁨으로 현훈증에 걸려있소. 건국을 한다고 들썩거리면서 뭐나 다 자신있어 보이겠지. 그래서 자신들을 우상화하면서 인간이 창조자인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물이라는것을 망각하고있단 말이요. 그네들은 인간이 과학과 기술에 의거하여 우주만물의 주인으로 될수 있다고 망상하면서 자연의 섭리에 도전하려 하고있소. 그게 가능할것 같소?》

 

구진배는 자기가 그 단순한 리치도 모르고있었다는 생각으로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는 얼른 커피잔을 들고 간장빛이 도는 씁쓸한 액체를 한모금 들이키다가 하마트면 식도를 델번 하였다. 얼마나 뜨거운지 저도 모르게 비명이 나갔다. 뜨거운 액체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내장을 익히는듯 했다. 이 지붕밑에서 두번째로 당하는 봉변이였다.

 

하지는 신사답게 그것을 못 본척 하고 구진배에게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놓아서는 안되오. 당신네 나라 속담에도 개미떼가 동뚝을 무너뜨린다는 말이 있지? 당신은 백성들이 동뚝을 허무는 단합된 개미떼가 되지 못하게 해야 하오.》

 

하지는 할 말을 다했다는듯 구진배에게 등을 돌려댔다. 그옆에 서있던 버취가 다가왔다.

 

《당신의 별호는 <싸탄>이요. 성서에 나오는 싸탄은 에덴동산에서 최초의 인간인 이브에게 선악과를 따먹도록 하고 인류의 조상들이 에덴을 떠나 고행의 길을 걷도록 했소. 만약 싸탄이 이브에게 지혜를 지니도록 도와주지 않았다면 인류는 오늘처럼 지혜로운 인간으로 진화할수 없었을것이고 아직도 짐승들처럼 부끄러운 곳도 가리우지 못하고 살았을거요.

 

거기에 싸탄의 불멸의 공적이 있는거요. 그러니 당신도 공산정권하에서 맹종맹동하는 불쌍한 백성들을 계몽시켜서 그들이 자유세계를 동경하도록 해야 하오.》

 

그렇게 말하면서 버취는 자기야말로 진짜 싸탄이 아닌가 하는 느낌에 기분이 야릇해졌다.

 

구진배에게는 《싸탄》이란 대호가 마음에 들었다.

 

자기는 정사생으로서 뱀의 직성을 타고났으니까 뱀으로 변신하고 에덴동산에 기여들었던 성서의 싸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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