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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간추린 미주 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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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10-12 17:3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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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진의 간추린 미주 운동사 <연재>

 

편집국

 

필자는 이 글이 통일맞이 나성포럼의 사무국장으로 있던 2002년 10월 재미청년연대 결성을 위한 회의에서 발표한 글로 미서부지역운동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고 하였다. 또 이 글의 1970~80년대 초 부분은 고 홍동근 목사님께서 서거하시기 두어 달 전 만난 자리에서 구술해 주신 것을 정리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주동포의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발자취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 판단되어 전문을 연재로 게재한다.

 


 

간추린 미주 운동사 5

 

 

7

 

88년 타오르기 시작한 통일에의 불길은 89년 들어 더 한층 조직적이고 전국적 경향을 띄며 확산되어 나간다.

 

1월 20일 6월항쟁 이후 대중적 기반을 토대로 전민련이 발족하고 이어 3월 1일 전농, 5월28일 전교조가 결성되면서 전 계층 전 국민적 반독재민주화, 자주, 통일에의 전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에 위협을 느낀 노태우 정권은 외부적으로 소위 북방정책의 기조를 설파하고 내적으로는 보수대연합을 추진해 가고 있었다.

 

마침내 3월 문익환 목사의 방북으로 통일운동이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고 더우기 전대협의 평양축전 참가 결정통보로 7월 대회전을 예고하는 가운데 통일, 반통일의 한판싸움이 하루하루 긴장 속에 다가오고 있었다.

 

반제연대성, 평화와 친선을 구호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평양에서 170여 개국 3만 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7월1~8일 까지 열렸다.

 

미주에서는 청협의 주도하에 시애틀의 통일형제회, 뉴욕의 기독청년학생회(기청), 조국사랑시카코등 미전역의 8개 단체가 제13차세계청년학생축전준비미주통일청년협의회(축준협)을 LA에서 결성한다.

 

축준협은 축전동참을 통해 미주청년학생운동의 단결을 도모하고 통일운동을 대중화, 활성화시킨다는 원칙으로 미주대표단을 구성하고 홍보지 <축준협>발간, 세미나등 각종 이북바로알기 사업 등을 설정하고 각 자의 지역에서 치열한 활동을 전개해 갔다.

 

7월에는 LA, 시애틀, 상항, 뉴욕, 와싱턴 DC, 시카코, 토론토의 전 지역에서 24명의 미주대표단을 확정하고 LA에서 통일한마당과 통일길놀이를 하고 아드모아공원에서 대표단 출정식 및 범동포통일촉진대회를 개최했다.

 

피부색, 종교, 이념의 차이를 극복하고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반제연대, 평화, 친선을 부르짖었던 그곳에서 재일, 재독 등 해외의 동포청년들과의 감격적인 만남을 통해 해외연대가 시작되었고 전대협대표 임수경이 등장하면서 분단 후 처음으로 남. 북. 해외의 청년학생이 어우러지는 역사적 순간을 맞이한다.

 

남. 북. 해외의 통일열기가 하나로 결합되고 전세계에 한반도의 통일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외침으로 보여준 쾌거였다.

 

당시 재미한청은 백두산에서 판문점에 이르는 ‘한반도평화를 위한 국토대행진’을 주도 전 세계의 진보세력들에게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알리는 성과를 이루어 낸다.

 

 

 

8

 

90년 들어 이 세기 안에 반드시 조국통일을 이루어 내야할 사명을 통감하고 통일, 민주화세력은 투쟁의 강도를 높여 간다.

 

이에 위협을 느낀 군부와 보수제도야당들은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보수야합 민자당을 탄생시킨다.

 

이제 싸움은 쓰러져 가는 소수 군부의 무리만이 아니라 역사의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의 무리 전체와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역사의 수레를 끄는 자들과 그것을 막고 선 자들의 싸움이...

 

이에 통일운동권도 하나의 힘으로 뭉치기 시작한다.

 

전민련이 8월 15일 범민족대회를 가질 것을 제안하고 남북해외가 개최에 전격 합의하였다.

 

범민족대회

 

그야말로 분단이후 남, 북, 해외의 전 민중이 만난다는 그 가슴 벅참,

 

하나가 되고 만다는 7천만의 의지로 전 국토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허나 노태우 정권의 양동술에 말려 남과 북은 결코 만날 수 없었다.

 

판문점의 대회장에는 북과 해외대표만이 참가하였지만 백두의 흙과 한라의 흙이 합장되었다. 남과 북이 만나야한다는 정당성을 설파하고 통일에의 의지를 내외에 과시하였다.

 

미주에서는 통협과 한민족연구회, 한겨레연합이 중심이 되어 미주대표를 구성하여 참석하였다.

 

나성에서는 범민족대회를 지지하는 통일한마당이 민문연과 청협의 주최로 개최되었다.

 

비록 자리는 다함께 하지 못했지만 범민족대회의 의의를 공감하면서 남과 북 ,해외의 동포들은 뜨거운 가슴으로 이어져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렇듯 민족대단결의 기운과 범민족대회의 성과를 안고 1990년 11월 19일 베를린에서 남, 북, 해외의 대표가 모여 전민족적 민간통일운동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결성에 합의하고 이에 따라 미주에서는 통협, 청협, 한민족연구회를 비롯한 수 많은 가맹단체와 발기인으로 1990년 12월 3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미주본부(의장:양은식)가 결성된다. (* 범민련 북미주본부는 이후 범민련 카나다 본부가 독립하면서 범민련 재미본부로 명칭이 변경된다. 또한 범민련 미주본부는 나성에서 결성된 것과 별도로 또 하나의 본부가 재미한청, 한겨레연합이 중심이 되어 미 동부에서 11월 21일 결성(의장: 유태영)하였다. 이후 미 동부의 본부가 3여년 뒤 해체되고 하나로 통합될 때까지 미주범민련은 두 개의 본부로 대립되어 활동했었다.)

 

이로서 미주통일운동은 민족대단결의 기치 속에서 남, 북, 해외운동 3자연대의 막을 올리고 통일장정의 거대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분단이후 최초의 남북해외 민간 통일연대체인 범민련의 결성은 조국통일의 정당성을 민족사의 전면에 내세우고 각계각층을 통일운동전선에 집중하게끔 했다. 특히 범민련의 결성과정과 이후 남의 범민련 탄압으로 해외본부의 역할과 활동이 부각되면서 통일운동의 주체로서 해외운동의 위상을 다시금 입증하게 되었다.

 

9

 

 

91년 2월 청협의 주도하에 나성의 민문연, 상항의 청문원 회원 40여명이 나성 인근지역에서 ‘조국통일의 일보전진을 위하여’란 슬로건아래 <애국청년들을 위한 수련회>를 개최하여 범민련운동과 미주운동에 있어서 청년, 학생들의 역할들을 토론하고 보다 굳건한 연대를 결속하였다.

 

범민련의 결성과 통일운동의 확산은 남북해외 청년운동의 연대를 본격화하기도 하였던 바 91년 4월 제5기 전대협총회에서 “통일방안합의와 조국의 평화, 민족대단결을 위한 남, 북, 해외 청년학생 통일대축전”을 조선학생위원회와 해외청년학생대표조직 앞으로 제안하고 그 회담 실무에 재일한국청년동맹(재일한청)과 함께 해외대표로서 초청을 받고 7월 청협은 베를린에 대표(박진아)를 파견하였다.

 

두 차례의 실무회담에서 청년학생통일대축전성사를 결의하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에 관한 남, 북, 해외청년학생 공동성명서를 작성 통일 3대원칙 확인과 한반도비핵지대화, 합리적통일방도, 자주적교류, 연대강화 등을 결의한다.

 

이후 합의에 따라 8월 15일 범민족대회와 1차 통일대축전 해외동포청년학생들의 집결지인 동경에 미주청년들이 참여하여 재일한청, 재일본조선청년동맹(조청)등 재일동포청년들과 연대를 맺는다. 한편 남한 국토종단행진과 통일대축전에도 해외청년학생대표로 청협대표(이은주)를 파견하여 전대협에 해외청년들의 연대의 뜻을 전하고 남측 통일대축전투쟁의 열기를 고조 시켰다. 10월에는 유엔총회기간동안 한반도의 평화와 미국의 대한내정간섭을 항의, 저지하기 위해 전대협대표(이두완)가 방미. 유엔, 필라델피아 등지를 순회하며 단식투쟁을 비롯한 항의투쟁을 미주청년들과 함께 전개하기도 했다.

 

특히 이 시기 민청의 경우 90년대부터 심혈을 기울인 학내사업을 통해 UCLA내 학습조직인 새길을 내오면서 1.5세, 2세 학생들이 동포사회운동에 진입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91년 3월에는 상항에서 버클리대학의 한국학위원회(CKS)와 청문원 등의 진보단체들이 미국에서 분단 후 첫 합법적 행사로서 남(박형규목사, 이영희교수, 정현백교수)과 북(박영수 조평통 부위원장, 김경남 통일문제 연구원)의 학자들을 초청,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심포지움>을 개최하여 남북, 조미교류에 큰 자취를 남기기도 했다.

 

강경대학생 치사정국으로 나성에서는 민청과 민문연이 「노태우정권 퇴진을 위한 시국대책위원회」를 구성, 현 사태의 근본적 원인을 노태우 정권의 공안통치가 빗어낸 결과임을 밝히고 노태우정권 퇴진운동을 전개 근 한달이 넘는 기간동안 긴박하게 돌아가는 국내현황과 더불어 대중투쟁에 총력을 기울여 2차례의 애국동포결의 대회(아드모어 공원)와 성명서 배포 등의 선전, 홍보활동을 펼쳤다.

 

 

10

 

92년. 소비에트해체후 세계사의 질서재편 속에 유일 강국의 전략을 수립한 미제는 걸프전의 여파를 업고 자신의 전략에 방해되는 ‘반미국가 길들이기’를 시도하면서 91년부터 제기하던 북한 핵소동으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로 돌입한다.

 

그러나 92년은 미주 청년운동에게 또 다른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해가 된다.

 

미국사회의 구조적인 인종차별 정책이 낳은 4․29사태는 그간 활동의 주 내용을 통일과 남한의 민주화에 두었던 청년 단체들에게 자기 운동의 정체성을 묻는 계기가 되었다. 민청이나 민중문화 연구소 모두가 「자주적인 동포사회 건설」이라는 슬로건을 중심으로 내 걸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포대중들과의 밀접한 유대를 위한 활동들은 실천적으로 준비되지 못했다는 자기 반성을 가져왔다.

 

(그러나 4.29사태후 범민련을 중심으로 나성운동권이 공동으로 대책위를 꾸려 동포사회 봉사활동에 나서기도 했으며 특히 청협의 경우는 각 시위장이나 학내에서 4.29사태의 본질을 알리는 선전활동을 전개하였고 부시의 나성 방문시 대동포 항의시위를 주도하기도 하였다.)

 

미주 운동은 청년단체들의 잠재적인 정체성 문제제기와 함께 여러 부분에서 폭 넓은 성장을 시작한다.

 

4월 이민노동자의 권익향상과 연대, 노동조건의 개선을 내걸고 홍순형, 성낙영, 박영준, 김종휘 등의 주도로 남가주 한인 노동상담소(이하 노동상담소)가 창립되어 미주 진보운동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가게 된다.

 

이후 노동상담소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노동법상담, 식당 및 마켓 노동자 정의실현운동, 이민노동자조합 결성, 여름활동가훈련, 국내노동운동 및 미국내 노동, 인권단체 등과의 연대활동을 지속시켜오면서 나성지역에서 가장 활발한 사회운동단체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리고 92년 민중문화연구소는 문동호, 정준규, 박진만, 민규성, 전병학, 최경호 등이 ‘건강한 이민문화를 찾는 젊은이들의 모임 우리문화공동체’(이하 공동체)로 단체명칭을 변경하고 대중성을 지향한 문화활동을 적극 추진하게 된다. 이후 우리문화공동체는 민문연 시기에 조직되어진 남가주지역 학내 풍물패들과의 긴밀한 연계를 지속하면서 매년 정기문화제와 ‘지신밟기’행사들을 통해 동포사회에 우리문화를 알리고 2세들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활동들을 활발히 전개하면서 문화운동의 일대 성장을 가져오기도 했다.

 

UCLA의 문화패 한울림, UC 산타바바라의 한얼, (UC 샌디에고의 두레)가 대표적인 학내 문화모임 으로 오늘날까지 맥을 이어 활동하고 있다.

 

92년은 청년통일운동에 있어서 의미 있는 한 해로서 미주 전국적 조직체에 대한 회의들이 있기도 했다.

 

5월 ‘92청년학생통일축전’의 성사와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결성을 위한 회의’가 베를린에서 열렸고 청협(하용진)이 재일 한청, 조청과 함께 해외대표로 참석하게 된다. 이 자리에서 8월15일 범청학련을 결성할 것을 최종합의하고 7월 청협은 나성, 상항, 시카코, 뉴욕, 시애틀, 보스톤 등지의 활동가(총 24명)를 초청하여 <범청학련 결성을 위한 미주준비회의>를 나성에서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 미주범청학련 결성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서 (범청학련에 대한 이해부족, 지역운동 활성화의 과제 앞에 통일운동을 전면에 내세운 전국조직의 부담성) 결국 범청학련 미주본부가 결성되지 못하고 청협의 단체차원에서 미주지역의 범청학련 사업을 담당하게 된다.

 

한편 10월경부터 두 달여에 걸쳐 황석영, 성낙영 등이 주도한 뉴욕, 남가주를 잇는 전국조직체구성에 대한 회의가 노동상담소, 공동체, 민청 차원에서 진행되기도 했으나 이 역시 불발도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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