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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간추린 미주운동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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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10-02 12:2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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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진의 간추린 미주 운동사 <연재>

 

편집국

 

필자는 이 글이 통일맞이 나성포럼의 사무국장으로 있던 2002년 10월 재미청년연대 결성을 위한 회의에서 발표한 글로 미서부지역운동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고 하였다. 또 이 글의 1970~80년대 초 부분은 고 홍동근 목사님께서 서거하시기 두어 달 전 만난 자리에서 구술해 주신 것을 정리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주동포의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발자취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 판단되어 전문을 연재로 게재한다.

 


 

 

<연재> 간추린 미주운동사 4

 

 

하용진(재미동포전국연합회 사무차장)

 

 

5

 

레이건의 등장으로 미소간 무한 군비경쟁의 시대를 열고 냉전의 첨예한 대립은 결국 한반도의 대치상태를 더욱 격화 시켜간다.

 

그러나 이러한 극한 상황 속에서도 해외의 동포들은 남북의 화해와 분단의 벽을 허물기 위한 노력들을 끊이지 않았다.

 

미주의 선우학원과 유럽의 이영빈등 기독교학자들이 주도가 되어 1981년 11월말 비엔나에서 남. 북. 해외 기독자회의가 개최되어 분단 후 처음으로 공식적인 남과 북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는 다음의 헬싱키대회에 까지 이어지면서 미주통일운동의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박종철, 이한열의 죽음과 직선제개헌의 쟁취로 불타기 시작한 6월민주화대투쟁의 열기가 이곳 미주에서도 활화산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전두환 정권을 비판하는 성명과 집회가 연일 있었고 한때 최루탄추방대회에서는 아드모어공원을 발디딜 틈 없이 가득 매운 가운데 코리아타운에 대규모 가두시위를 전개하기도 하였다.

 

6월항쟁으로 분출된 민주화의 열망으로 국내와 마찬가지로 이곳 미주에서도 조직활동의 본격화가 시작된다.

 

그 대표적 단체로 조국통일북미주협회(통협)의 결성을 들 수 있다.

 

비교적 북한방문이 자유로울 수 있었던 미주의 이산가족들은 자신의 혈육을 찾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들 가운데 몇 분의 학자들이 북한 방문기 <분단을 뛰어넘어>를 저술하게 된다. 이는 국내에 이북바로알기운동을 촉발케 하면서 그 동안 금기시 되어왔던 통일문제를 전면화 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된다.

 

앞서 기독자회의가 계기가 되고 <분단을 뛰어넘어>가 고무 추동이 되어 87년 6월 양은식, 선우학원, 홍동근, 전순태, 서정균, 김현환, 김동수등이 중심이 되어 통협이 창단 된다. 통협은 이산가족찾기를 핵심사업으로 전개하여 이를 통해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북을 방문하게 되고 미주통일운동의 역량을 확보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그후 90년대초 미주범민련결성을 주도하는 등 미주통일운동의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87년에는 LA에서 민주화운동의 물적토대구축과 중소상인의 조직을 위해 한민족연구회가 노길남, 유상준, 손세영, 이용식 등이 중심 되어 결성되었다.

한민족연구회는 이후 민족상과 민족장학상을 제정 미주 운동의 활동을 고무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외 홍동근, 김현환, 홍근수, 강문홍, 강위조등 기독교인이 중심이 되어 종교적 입장에서 통일에 접근하고자 했던 통일신학동지회가 있었다.

 

 

6

 

86년 10월 대부분 1.5세들로서 지배문화에 대항해 생산적, 민중문화를 퇴폐, 외래문화에 맞서 1.5세로서 자아를 확립하고 우리민족문화를 찾고 계승하기 위한 취지를 내걸고 박영준, 조준일, 육대성 등이 중심이 되어 민중문화연구소(민문연)가 창립된다.

 

민문연은 매년 봄, 가을로 범대중적 문화제를 개최하여 동포사회에 진보운동의 입지를 확대하였고 각 한인학생회를 통해 우리문화를 보급하고 민문연의 취지를 전파해 나갔다.

 

또한 6월 항쟁 당시 나성지역에서 대규모 민주화투쟁을 선도해 갔으며 이후 상항의 한인청년문화원(청문원), 뉴욕의 우리문화찾기회 등 미주 타 지역의 문화운동조직이 결성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민문연은 이후 민청, 우리문화공동체로 변화, 발전을 거듭함으로써 나성지역 청년조직운동의 기틀을 마련한 의의를 갖는다.

 

87년 민주화대투쟁 이후 고조되어가던 민중의 민주화열기는 마침내 조국통일의 열망으로 타오르기 시작한다.

 

88년 들어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했던 한 후보가 남북학생회담을 제안하면서 4.19이후 암흑의 시대 속에서 신새벽 뒷골목에서나 외쳐야했던 조국통일이 급기야 전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고 전국 각 대학의지지 속에 6월 남북학생회담을 제안하고 수용하면서 88년은 마침내 통일운동의 새 원년으로 기록되게 된다.

 

그러나 6월의 학생회담은 노태우 정권의 필사적 저지로 말미암아 피 튀기는 공방 끝에 결국 무산되고 8월 15일 재차 판문점에서 회담을 가질 것을 결의한다.

 

88년 7월 어느 날 조국통일을 외치며 한 학우가 교내옥상에서 자신의 몸을 내던졌다. -조성만-.

 

조국의 통일. 목숨 받쳐 싸워야할, 민족의 운명이 걸렸고 모든 모순의 근본이 깔렸고 그래서 조국통일 없이는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통일만이 민족이 살길임을 알게 했다.

 

이제 암흑 속에 억눌렀던 조국통일의 함성은 전국 각지 각 단체의 지지를 받게 되고 이곳 미주에서도 지지성원과 더불어 통일운동의 불길이 당겨지기 시작한다.

 

이민자의 삶을 살며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싶어하고 그래서 조국, 민족이란 개념에 빠져 가끔은 허우적대는 그래서 건강하고 항상 주인 된 삶을 추구하던 일단의 청춘들이 ‘조국통일과 나’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88년 8월 10일 8.15남북학생회담을 앞두고 민족대단결, 자주, 평화통일의 원칙천명과 해외동포의 단결로 조국통일을 달성하겠다는 내용의 미주청년학생조국통일투쟁선언문을 발표하고 육대성, 조준일, 박찬일, 하용진, 박진아, 이은주, 남관우 등이 미주청년조국통일협의회(청협) 발족을 선언하며 청년통일운동조직의 깃발을 올리게 된다.

 

그리고 청협의 두 회원 육대성, 박진아가 8.15학생회담에 해외대표로 방북을 하게 된다.

 

분단이후 처음으로 남북의 청년학생들이 만날 그 역사적 현장에 미주의 두 대표가 참석하게 되면서 해외동포도 조국통일의 당당한 일 주체임을 입증하였다.

 

분단으로 인한 고통이 해외동포에게 예외일수 없었고 조국통일이 전 겨레의 삶을 규정하는 속에서 남, 북, 해외의 7천만 모두의 단결과 일치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에서 해외동포는 당연히 통일운동의 한 축을 지탱하는 주체임이 분명한 것이다.

 

청협의 두 대표는 북의 청년학생들로부터 연일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백두산으로부터의 통일대행진을 따라 8월 15일 마침내 남북학생회담의 장소인 판문점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나 햇살무리를 밟고 나타나야할 남녁의 학우들은 그 시각 신촌의 아스팔트를 온몸으로 사슬을 만들며 한 보 한 보 전진을 위한 피나는 싸움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 위대한 싸움의 결과 87년의 민주화대투쟁의 여파와 함께 통일운동의 대중화를 열어제치게 된다.

 

청협의 두 대표가 북부조국을 방문하고 조국의 청년학생들이 반통일세력들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을 즈음 민문연의 마당에서는 민문연, 청협 회원들이 회담성사를 위한 무기한 단식투쟁을 전개하였다. 보름간의 기간동안 상항 지역의 동지들이 합류하는 등 각 지역 여러 단체와 수많은 사람들이 지지하고 격려를 보내주었다.

 

특히 보름간의 단식투쟁동안 동포사회에서 처음으로 이북바로알기운동이 진행되었는데 하루 두 차례 이북영화상영과 통일강연회를 개최하여 연일 백 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다녀가면서 북부조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일대 전기를 마련케 했으며 이로서 미주통일운동의 활성화를 가져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모두는 그렇게 승리한 것이다.

판문점에서, 최루가스 가득한 신촌거리에서, 그리고 쓰린 배를 움켜지고 있던 그 곳에서...

 

청협 결성 직후 그 산하 조직으로 남가주의 민주청년학생회(민청)가 10월1일, 북가주의 애국청년학생회(애청)가 11월 20일 건설되면서 미주에서 유일한 청년통일운동단체가 등장하게 된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0-02 12:31:22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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