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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 60년의 자욱(중)〉실감으로 느낀 병진로선의 정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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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3-07-28 02:1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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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 60년의 자욱(중)〉실감으로 느낀 병진로선의 정당성

1962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로선이 제시되였다. 당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었던 심용근로병(79살, 보통강구역 거주)은 당시를 돌이켜보며 병진로선이 제시된것으로 하여 제국주의침략으로부터 나라를 믿음직하게 수호하면서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쳐올수 있었다고 말한다.

심용근로병(평양지국)

심용근로병(평양지국)

까리브해위기의 교훈

1950년, 16살이던 심용근로병은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였다.

그는 서울, 포항, 경주를 해방하는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후 1211고지방어전투와 함흥방어전투에서 용감히 싸워 공로를 세우고 전승을 맞이하였다.

정전후 군복을 벗은 그는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를 졸업하고 1961년부터 교원으로 사업하였다.

다음해 10월 까리브해위기가 발발하였다.

미국은 윁남에서 전쟁을 계단식으로 확대하여 아시아와 세계정세를 극도로 긴장시키는 한편 남조선당국을 부추겨 공화국북반부를 침공하기 위한 전쟁준비를 다그치면서 군사적도발책동을 끊임없이 감행하고있었다.

당시 28살의 청년이던 심용근로병은 이전 쏘련의 《우산》밑에 있던 나라들의 운명을 놓고 교원들과 매일같이 론쟁을 벌렸다고 한다.

론점은 《자기 힘으로 자기 나라를 지키는것이 옳은가.》 하는것이였다.

큰 나라를 믿고 자체의 방위력을 갖추지 못하였던 꾸바와 같은 작은 나라들의 처지가 바로 그러한 론제를 내놓게 하였다고 그는 말한다.

미국이 꾸바에 대한 이전 쏘련의 무기공급을 구실로 비법적인 《해상봉쇄》를 감행하고 이에 굴복한 쏘련이 그해 12월 초 《ИЛ-28》폭격기를 비롯한 무력을 꾸바에서 철수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자체의 무장력을 튼튼히 갖추지 못하면 우리도 그 나라처럼 된다. 힘이 없고 주먹이 약하면 그 주먹으로 눈물을 씻게 된다는 격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출근을 앞두고 금방 배포된 《로동신문》을 통해 김일성주석님께서 경제와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로선을 제시하신것을 알게 되였다. 그는 흥분에 휩싸이던 그때를 회고하였다.

《전쟁때 무기가 없어 몽둥이만 차고 전투에 나가던 전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총이 없어 겪던 가지가지 일들이 생각나 흥분으로 며칠이나 잠을 이룰수 없었다. 이제는 제힘으로 나라를 지킬수 있다는 신심이 생겼다.》

전쟁의 불바다를 헤쳐오면서 주석님만 믿고 싸워 이겨온 로병은 그이께서 내놓으신 경제와 국방건설병진로선의 소식에 접해 마음이 든든해졌다고 한다.

경제와 국방병진로선관철을 호소하는 60년대의 출판물(평양지국)

경제와 국방병진로선관철을 호소하는 60년대의 출판물(평양지국)

온 나라를 철옹성으로

심용근로병은 강의에서나 휴식시간이면 학생들에게 병진로선의 정당성에 대하여 이야기해주군 하였었다.

《전쟁때 락동강을 건너 부산까지 압박했던 우리가 돌아서지 않을수 없은것은 무기와 탄알, 포탄이 모자랐기때문이였다. 아군의 포소리를 실컷 들어보았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하군 하던 병사들이 남진의 길을 멈추지 않으면 안되였을 때 그 원통하고 분하던 심정을 어떻게 표현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 전략상 일시적후퇴의 명령을 받고 첩첩산발을 넘으면서 모든 지휘관들과 병사들은 피로 물들이며 나아갔던 남진의 길을 되돌아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피눈물을 뿌리며 통탄하였다.》

총이 없었던 그때를 가슴아프게 돌이켜보는 젊은 교원의 이야기에 많은 학생들이 공감을 표시하였다고 한다.

물론 경제건설에도 힘을 넣어 부강한 나라를 일떠세워야 한다, 하지만 자기를 지킬 힘이 없으면 제국주의의 노예가 되고만다는 교원의 이야기는 전쟁의 추억을 간직한 학생들의 가슴을 울렸다.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 1960년대, 이 전투적구호를 들고 전국이 병진로선관철을 위한 투쟁으로 들끓었다.

전국의 모든 지역에 철옹성같은 방위시설들이 축성되였으며 중요한 생산시설들이 요새화되였다.

해방후 령에서 출발한 국방공업은 병진로선이후 여러가지 현대적무기와 전투기술기재를 자체로 만들수 있는 자립적인 공업으로 튼튼히 꾸려지게 되였다.

1968년 미국의 무장간첩선《푸에블로》호사건과 1969년 대형간첩비행기《EC-121》사건이 일어났을 때 미국이 조선인민앞에 무릎을 꿇은것은 병진로선의 선포가 얼마나 정당한 조치였는가를 남김없이 확증하였다고 심용근로병은 이야기한다.

1990년대를 거쳐 새 세기에 들어선 지금 미국과 그 추종세력이 공화국을 압살하기 위해 혈안이 되고있지만 감히 건드리지 못하고있는 현실은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께서 마련하여주신 자위적국방공업의 튼튼한 토대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오늘의 조미대결전에서 련승을 떨치는 조국의 위용을 확인할 때마다 1960년대의 나날 경제와 국방병진로선을 제시하신 김일성주석님의 선견지명을 다시금 절감하군 하는 로병이다.

【조선신보 평양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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