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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리승기 박사의 손녀 리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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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3-06-11 02:4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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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승기 박사의 손녀 리옥 교수<연재> 정창현의 ‘북녘 여성을 만나다’ (11)
정창현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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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06  10: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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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6월 26일 김책공업종합대학 전자도서관 교수열람실에서 리옥 교수가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평양을 방문했을 때 안내로 나온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 관계자는 간혹 당혹스럽게 할 때가 있다. 2008년 6월 리옥 교수를 만났을 때도 그런 사례의 하나로 꼽을 만하다.

애초 방북할 때 북측에 요구한 취재내용 중에 김책공업대학의 리옥 교수(북에서는 교원이라고 한다) 인터뷰가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6월 26일 오후 김책공업종합대학을 방문할 때까지도 북측 안내원은 리옥 교수 인터뷰 건에 대해 가타부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당연히 필자는 인터뷰가 어렵겠구나 판단해 포기하고 있었다.

6월 26일 오후 김책공업종합대학 전자도서관을 방문했다. 이미 몇 차례 만난 경험이 있는 김성일 관장이 반갑게 맞아줬다. 그의 안내로 전자도서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교수열람실에 들어갔다. 다 둘러보고 나오려는데 북측 안내원이“선생님이 만나보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신데 몰라보시겠습니까”라며 발길을 막았다.

“누구 신데요?”
“리옥 교수를 만나고 싶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리옥 교수가 나와 계신다고요? 그런데 왜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습니까?”
“선생님을 놀래주려고 그랬지요.”

아! 이런. 공식 인터뷰를 하려면 복잡한 절차가 필요해 북측 안내원이 자연스럽게 만나게 해주려고 이곳에 리옥 교수를 미리 나오게 한 것이다. 마음의 준비도 없어 그렇게 교수열람실에서 책을 보고 있던 리옥 교수를 만났다. 북에서 비날론 개발자로 유명한 리승기 박사의 손녀인 리옥 교수는 남쪽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당연히 남측 언론과는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 리옥 교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북한의 국립묘지인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자료사진 - 민족21]

리옥 교수의 할아버지인 리승기 박사(1905~1996)는 북에서 ‘비날론 박사’라 불리며 ‘의복혁명’을 주도했던 세계적인 화학자였다. 리 박사는 전라남도 담양 출신으로,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일본 교토대학에서 공업화학을 전공하고 석회석과 무연탄을 원료로 ‘합성섬유 1호’인 비날론을 발명했다. 그는 광복 후 서울대 공대 학장을 지내다 6.25전쟁 때 월북해 과학원의 화학연구소장과 함흥분원장을 지내며 노력영웅, 인민과학자 등의 칭호를 받는 등 최고 과학자의 예우를 받았다. 그가 월북할 때 상황을 강호제 박사의 연구를 통해 재구성해 보자.

1947년 어느 날, ‘국립서울대학교설립안(국대안)’ 파동으로 인해 경성대학 교수직을 던지고 고향인 전남 담양에 내려와 있던 리승기에게 북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리 선생, 이번에 고생 많이 하셨다는 소식 듣고 찾아왔습니다. 선생과 같이 유능한 과학자가 연구에 매진하지 못하고 후학 양성에도 힘쓰지 못하고 계시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어쩌겠습니까, 제 능력과 신망이 이 정도뿐인 것을….”
“리 선생, 그래도 계속 이곳에 남아 계실 겁니까? 북으로 갑시다. 그곳에서 편안하게 연구하면서 제자를 길러냅시다. 그리고 선생이 개발한 비날론을 공업화해서 우리 인민들이 따뜻하고 예쁜 옷을 부족함 없이 맘껏 입을 수 있게 만들어 줍시다.”
“저를 높이 평가하여 이런 큰 제안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저는 여기서 할 일이 많습니다. 제가 가르치던 제자들이 이곳 담양으로 내려와 공부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연락도 받았습니다. 저를 믿고 따르는 제자가 아직 많습니다. 게다가 제 식구들이 모두 이곳에 있습니다.”
“그래도 과학기술을 홀대하면서 지원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 미군정을 어떻게 믿습니까? 우리 북에서는 인민위원회 차원에서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 갑시다.”
“북도 남도 모두 제 조국입니다. 여기서도 과학기술발전을 위한 일들이 많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벌여놓은 일들도 아직 많습니다. 제가 갈 생각이었으면 저번에 려경구(화학자로 몽양 여운형 선생의 5촌 조카) 선생이 올라갈 때 벌써 따라 나섰겠지요. 미안합니다.”
“리 선생, 우리는 선생의 재능과 이상을 높이 삽니다. 그리고 선생의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조선이 잘 사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선생의 식솔은 물론 제자들도 함께 오세요. 과학기술적 재능을 가지고 우리와 이상이 같은 사람이라면 우리는 누구라도 환영입니다. 여건이 안 되는 이곳에서 선생과 제자들의 재능을 썩히지 말고 우리와 함께 합시다.”
“미안합니다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가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생각을 충분히 해보시되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그리고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최대한 들어 드릴테니….”

   
▲ 1950년대 리승기 박사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제자들의 실습을 지도하고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1945년 해방 당시 남북을 통틀어 대학을 졸업한 고급 과학기술자는 400여 명 밖에 되지 않았고, 그 중에서도 이북에 남아 있던 고급 과학기술자는 10여 명에 불과했다. 1946년 10월 김일성대학이 문을 연 후 북한은 남쪽의 과학자를 초청하는데 공을 많이 들였다. 1947년에는 흥남화학공업대학을 새로 설립하기까지 했다. 이 대학의 초기 교수진 중 상당수는 월북 과학기술자로 채워졌다.

당연히 리승기 박사도 주요 초청 대상 중의 한 명이었다. 1946년부터 시작된 북한의 집요한 초청에도 계속 거부하던 리승기 박사는 결국 전쟁 직후인 1950년 7월에 서울에서 남으로 피난 가지 않고 월북 대열에 끼었다. 게다가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까지 함께 데리고 월북했다. 강호제 박사는 “‘리승기 세력’의 월북이라고 불릴 정도로 화학공업 분야의 최고 엘리트 과학기술 집단의 월북은 일제가 건설해두었던 각종 화학공업 설비들을 제대로 가동할 수 있게 만들었다”라고 평가했다. 북한이 리승기 박사를 특별대우한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사실 월북 후 리승기 박사의 행적을 자세히 질문하기 위해 리옥 교수를 인터뷰하자고 했던 것인데, 사전에 통고를 받지 못해 얼떨결에 스치듯이 만나는 상황이 돼 버렸다.

과학자 집안이자 교수 가족으로 유명

   
▲ 리옥 교수는 내내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남쪽 언론과의 첫 인터뷰에 응했다. [자료사진 - 민족21]

▷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교수님 전공은 무엇입니까?
“김책공업종합대학을 나와 모교에서 화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그러면 할아버님하고 전공이 같네요.
“그렇습니다. 세부 전공은 조금 다릅니다.”
▷ 아버님도 공훈 칭호를 받은 과학자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면 3대가 과학자 집안인 셈이네요.
“아버님은 현재 김일성종합대학 촉매연구소 실장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주로 암모니아 합성가스 정제촉매를 연구하고 화력발전소에 촉매법에 의한 발전기냉각용 수소정제체계를 도입했으며, 항일투쟁 구호가 새겨진 구호나무 보존 방법에도 기여하셨죠.”
▷ 어머님은 무슨 일을 하고 계세요?
“김책공대 출판부에서 기자로 일하고 계십니다.”
▷ 그러면 모녀가 같은 대학에서 일하고 계시네요. 
“그렇습니다.”
▷ 할아버지이신 리승기 박사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글쎄요.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굉장히 연구에 몰두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무척 다정다감하신 분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 할머니이신 황의분 님은 2000년 8월 제1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남녘의 올케와 조카들을 만나기도 하셨는데, 아직 생존에 계십니까?
“아쉽게도 지난해(2007년) 1월 돌아가셔서 할아버님과 함께 합장을 했습니다.”

리 교수의 집안은 3대에 걸친 과학자 집안이자 교수 가족으로도 유명하다. 리 교수의 큰오빠인 승일 씨는 김책공업종합대학 연구사, 올케인 김유옥 씨는 의료부문 재교육학교 교원으로 재직하고 있고, 둘째 오빠 명일 씨는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교수, 올케인 김향미 씨는 김책공대 교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형부인 리성호 씨도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리승기 박사의 집안을 북에서 ‘인재센터’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만 했다.

리 교수는 “각기 부문과 분야가 달라도 가정 모두의 사색과 활동은 최종 목적인 창조로 지향돼 있습니다”라며 “화학, 의학, 음악, 교육 등 각자 전공분야가 다르지만 언제나 대화를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어요”라고 다소 수줍게 말했다.

좀더 가족사에 대해 듣고 싶었지만 다음 일정 때문에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훌륭한 화학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열람실을 나왔다. 너무나 황망하고 아쉬운 만남이었다. 북측 안내원을 원망(?)해도 이미 때가 늦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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