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눈을 보기 전에 마음을 먼저 보는 평양안과병원 리승영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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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리민족끼리 작성일13-01-31 22:58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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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안과병원 과장 리승영동무는 백내장에 대한 수술치료방법들을 새롭게 개척하고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한 공로있는 의학자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안과부문에서 백내장과 록내장을 비롯한 안과질환에 대한 예방치료사업을 잘하여야 하겠습니다.》
백내장은 수정체가 혼탁되여 눈동자가 희게 보이는 안과질환이다.
로화로 초래되는 이 병은 40대이후의 사람들속에서 많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약간한 시력장애가 오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병이 심해지는데 나중에는 실명까지 될수 있다.
현재 백내장으로 인한 실명률이 상당히 높은것으로 하여 많은 나라들에서 이에 대한 연구에 힘을 넣고있다.
35년전 어느 한 도병원에서 안과의사로 일하던 승영동무는 조선적십자종합병원으로 소환되게 되였다.
당시 우리 나라에서는 새형의 인공수정체가 개발되는 등 안과학계를 놀래우는 성과들이 련이어 이룩되고있었다.
나라의 안과기술이 빨리 발전하는 현실의 요구에 맞게 그는 안과분야에서 가장 난문제로 되고있던 백내장수술에 대한 연구에 달라붙었다.
백내장수술조작이 어렵고 까다로운데다가 성공률이 높지 못하여 의학자들이 선뜻 달라붙지 못하고있었다.
허나 앞 못보는 사람들의 고충을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인 승영동무는 이 수술방법을 새롭게 완성하기 위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였다.
다른 나라 의학과학기술자료와 선행의학자들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연구한 그는 자기 식의 방법론을 찾기 위해 애써 노력하였다.
선행기술을 받아들이는것만도 대단한것으로 되여있던 그 당시로서 그가 모색한 백내장수술방법은 처음에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허나 그는 주저하거나 맥을 놓지 않았다.
실험단계에서 합병증이 심하게 나타났을 때에도 승영동무는 실망하지 않고 연구를 거듭하였다.
드디여 여러해만에 림상실험에서 성공한 그는 연구집단과 함께 그 수술방법을 적용하여 치유률을 70%이상 즉 이 분야에서 발전되였다고 하는 나라들의 수준에 올려세웠다.
20여년간 그는 혼탁된 수정체를 전부 제거할수 있는 수정체낭내적출술을 개발한데 이어 무봉합수정체낭외적출술과 수정체 초음파유화술, 레이자유화술과 같은 새로운 수술방법들을 완성하는데 크게 한몫하였다.
평양안과병원에서 일하면서부터는 세계선진기술로 되고있던 작은 창구에 의한 무봉합수술을 본격적으로 진행하여 수천명에 달하는 백내장환자들에게 광명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승영동무와 같은 유능한 의료일군들의 노력이 있어 병원이 개원한지는 10년밖에 안되지만 의료봉사의 질적수준은 오랜 병원들과 어깨를 겨룰 정도에 이를수 있었다.
그는 자라나는 새 세대 의료일군들에게 늘 이렇게 말하군 한다.
《환자의 눈을 보기 전에 마음을 먼저 보라. 일생 안고살 마음속그늘을 남먼저 헤아리는 의사만이 환자의 눈에 밝은 빛을 안겨줄수 있다.》
본사기자
주체102(2013)년 1월 30일 《우리 민족끼리》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안과부문에서 백내장과 록내장을 비롯한 안과질환에 대한 예방치료사업을 잘하여야 하겠습니다.》
백내장은 수정체가 혼탁되여 눈동자가 희게 보이는 안과질환이다.
로화로 초래되는 이 병은 40대이후의 사람들속에서 많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약간한 시력장애가 오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병이 심해지는데 나중에는 실명까지 될수 있다.
현재 백내장으로 인한 실명률이 상당히 높은것으로 하여 많은 나라들에서 이에 대한 연구에 힘을 넣고있다.
35년전 어느 한 도병원에서 안과의사로 일하던 승영동무는 조선적십자종합병원으로 소환되게 되였다.
당시 우리 나라에서는 새형의 인공수정체가 개발되는 등 안과학계를 놀래우는 성과들이 련이어 이룩되고있었다.
나라의 안과기술이 빨리 발전하는 현실의 요구에 맞게 그는 안과분야에서 가장 난문제로 되고있던 백내장수술에 대한 연구에 달라붙었다.
백내장수술조작이 어렵고 까다로운데다가 성공률이 높지 못하여 의학자들이 선뜻 달라붙지 못하고있었다.
허나 앞 못보는 사람들의 고충을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인 승영동무는 이 수술방법을 새롭게 완성하기 위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였다.
다른 나라 의학과학기술자료와 선행의학자들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연구한 그는 자기 식의 방법론을 찾기 위해 애써 노력하였다.
선행기술을 받아들이는것만도 대단한것으로 되여있던 그 당시로서 그가 모색한 백내장수술방법은 처음에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허나 그는 주저하거나 맥을 놓지 않았다.
실험단계에서 합병증이 심하게 나타났을 때에도 승영동무는 실망하지 않고 연구를 거듭하였다.
드디여 여러해만에 림상실험에서 성공한 그는 연구집단과 함께 그 수술방법을 적용하여 치유률을 70%이상 즉 이 분야에서 발전되였다고 하는 나라들의 수준에 올려세웠다.
20여년간 그는 혼탁된 수정체를 전부 제거할수 있는 수정체낭내적출술을 개발한데 이어 무봉합수정체낭외적출술과 수정체 초음파유화술, 레이자유화술과 같은 새로운 수술방법들을 완성하는데 크게 한몫하였다.
평양안과병원에서 일하면서부터는 세계선진기술로 되고있던 작은 창구에 의한 무봉합수술을 본격적으로 진행하여 수천명에 달하는 백내장환자들에게 광명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승영동무와 같은 유능한 의료일군들의 노력이 있어 병원이 개원한지는 10년밖에 안되지만 의료봉사의 질적수준은 오랜 병원들과 어깨를 겨룰 정도에 이를수 있었다.
그는 자라나는 새 세대 의료일군들에게 늘 이렇게 말하군 한다.
《환자의 눈을 보기 전에 마음을 먼저 보라. 일생 안고살 마음속그늘을 남먼저 헤아리는 의사만이 환자의 눈에 밝은 빛을 안겨줄수 있다.》
본사기자
주체102(2013)년 1월 30일 《우리 민족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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