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력갱생의 구현 제일선기업의 경영술 -2-〉 은률광산 강길영지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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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8-01-16 00:00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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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의 배짱, 오늘도 계승》 예비 찾는 조직사업, 힘 모으는 군중사업 | ||||||
| 【평양발 김지영기자】 서해바다를 가로막으며 전진하는 광부들이 있다. 은률광산은 황해남도의 북서쪽 바다기슭에 위치한다. 광부들이 광물을 캐낼수록 향토가 더 넓어지는 희한한 곳이다. 광산막장에서 바다를 향해 뻗어있는 대형장거리벨트콘베아가 채굴과정에 나오는 버럭을 나르며 매립지를 만들고있다. 벨트콘베아의 《일거다득》
《우리 선조들은 고조선시기부터 은률광산에서 쇠돌을 캐고 철기를 만들어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제식민지시기에는 이곳에서 나온 철광석이 모두 규슈 야하따제철소로 수송되였답니다. 조국이 해방된 다음에야 우리 광부들은 광산의 주인이 되였습니다…》 은률광산의 력사에 대한 강길영지배인(53살)의 이야기는 1970년대 사변에서 절정에 이른다. 당시 생산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된 로천광산에서 채굴과정에 나오는 박토의 처리가 문제로 나섰다. 광물생산의 부산물인 버럭으로 광산주변의 논밭을 침범할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하여 화물차로 멀리 실어나르는것은 연료와 로력의 랑비로 생각되였다. 그래서 벨트콘베아의 설치계획이 추진되게 되였다. 《처음에는 우리 일군들이 막장에서 바다기슭까지 약 2Km를 설치구간으로 정했습니다. 이를 료해하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시대에 와서 그렇게 협소하게 일해서는 안된다, 통이 크게 바다를 가로막고 섬과 섬을 잇자, 제기되는 문제는 함께 풀자,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우리들에게 힘을 실어주신것입니다.》 1975년에 완성되여 가동을 시작한 대형장거리벨트콘베아는 은률군에 《일거다득》을 가져다주었다. 버럭을 처리하면서 바다우에 도로를 형성하고 간석지를 펼쳤다. 해수욕을 즐길수 있는 백사장이 꾸려지고 새로 생긴 매립지가 해류에 영향을 미친것으로 하여 수산물도 더욱 풍부해졌다. 은률의 벨트콘베아는 1970년대 자력갱생의 산물이다. 국내의 기계공장들이 설비의 생산을 맡았다. 설비가 첫 동음을 울린 때로부터 30여년, 지금은 광산의 로동자들이 벨트콘베아의 가동에 필요한 부분품들을 자체로 생산하고있다. 그를 위한 자력갱생기지들이 광산내에 꾸려져있다. 신심의 근거는 《주체철》
《콘베아수송과 직결된 공정입니다. 여기서 박토를 원만히 처리해야 벨트콘베아가 정상운영되고 쇠돌생산을 늘일수 있는데 파쇄장의 현대화는 사실 과거 10여년간 계속 론의되여온 문제였습니다.》 1990년대 나라가 경제적시련을 겪던 그 시기에는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였다. 2000년대 들어 국가적차원에서 계획이 작성되였다. 전문건설기관들에 분공을 줄것을 예견하였다. 그런데 은률의 광부들은 그때를 기다리지 않고 자체의 힘으로 파쇄장을 건설하는 길을 택하였다. 《당연한 판단입니다. 더 많은 쇠돌을 캐낼수 있는 조건을 하루라도 빨리 갖추어야 한다는것이 우리의 립장입니다.》 광산에서의 자력갱생은 보다 큰 자력갱생을 위해 필요하다는 론리다. 자기들이 박토파쇄장을 일떠세워야 금속공업의 자립이 촉진되고 나라의 전반적경제를 빨리 추켜세울수 있다. 강길영지배인은 《자기 단위의 현대화문제도 경영일군들이 국가적차원에서 그 필요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바다경치가 증거물
박토파쇄장을 자체의 힘으로 건설하는 과정에는 애로가 많았다고 한다. 우선 자재문제를 풀어야 하였다. 그리고 사나운 자연과의 투쟁도 있었다. 은률광산도 2007년 8월의 집중폭우로 피해를 입었다.
[출처: 조선신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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