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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는 동포들의 북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돕고자 북녘 매체들의 글을 "있는 그대로" 소개합니다. 이 글들이 본회의 입장을 대신하는 것은 아님을 공지합니다. 


인물소개

“우리 민족의 통일 이념으로 ‘우리 민족끼리’ 상정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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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계환 기자 작성일09-04-29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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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재일 대동연구소 강민화 소장

   
▲ 재일 대동연구소 강민화 소장. 그는 통일 이념으로 6.15공동선언에서 남북이 합의한 ‘우리 민족끼리’ 정신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사진-대동연구소 제공]

“통일 이념을 상정한다면 민족자주의 정신과 민족대단결의 정신이 함축된 ‘우리 민족끼리’가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재일(在日) 대동연구소 강민화(康民華) 소장은 우리 민족의 통일 이념으로 이같이 6.15공동선언에서 남북이 합의한 ‘우리 민족끼리’ 정신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강민화 소장은 통일뉴스와의 ‘북한의 민족 문제 및 민족주의 문제’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북한 민족론과 민족주의론의 전문가답게 시종일관 풍부한 자료와 논리로 답했다.

북한의 민족 문제와 관련, 그는 민족의 개념이 최초로 제시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960 담화’ 이후 지금까지 북한의 민족론이 계속 심화 발전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특히 북한 민족 개념의 주요 징표인 ‘핏줄’이 왜 생물학적 개념이 아니라 사회역사적 개념인지를 수차례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북의 민족론과 통일론은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다”며 그 연관성을 설명하고자 했다.

북한의 민족주의 문제와 관련해서, 그는 북한 민족주의의 한 형태인 ‘우리 민족제일주의’가 민족배타주의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으며, 오히려 미국의 세계화 책동에 맞서 등장한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우리 민족끼리’ 정신이 관통되어 있는 것으로 하여 두 선언이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북한에서는 해외교포 문제를 민족 문제의 일환으로 다루고 있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이 인터뷰는 지난달 27일 일본 도쿄도 붕교(文京)구역 하쿠산(白山)에 위치해 있는 조선출판회관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강민화 소장이 소장직으로 있는 대동연구소는 재일동포 학자, 전문가들이 통일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연구소다. 재일 평화통일협회 홍보국장이기도 한 그는 매년 남측과 재일동포측이 함께 출연해 공동으로 진행해 온 6.15공동선언 및 10.4선언 기념토론회에 자주 참석해 왔다.

다음은 강민화 소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북의 민족론은 지금도 계속 심화 발전되는 과정에 있어”

   
▲ 강민화 소장과의 ‘북한의 민족 문제 및 민족주의 문제’와 관련한 인터뷰 장면. 강 소장은 북한 민족론과 민족주의론의 전문가답게 시종일관 풍부한 자료와 논리로 답했다. [사진-대동연구소 제공]

□ 통일뉴스 :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적 차원으로 퍼지면서 신자유주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신자유주의 이후 대안으로 민족주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하는 성급한 진단도 있습니다.

특히, 남북의 경우 통일문제와 관련해서는 민족주의가 주요한 역할을 해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견해가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 왔습니다. 오늘은 주로 북한은 민족 문제와 민족주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고 뒤에서는 재외동포들의 민족 문제와 민족주의 문제의 순서로 묻고자 합니다.

그러면, 먼저 북의 민족론에 대해 묻고자 합니다. 민족론은 크게 ‘민족의 개념’과 ‘민족의 형성 과정’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북에서는 민족의 개념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또한 민족의 형성 과정에서 볼 때 유럽에서는 민족이 자본주의와 함께 생겨났다면서 근대주의적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민족의 형성 과정에 대한 북측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 강민화 :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세계적 판도에서 보면 민족에 대한 정의가 참으로 각이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세계에 존재하는 민족들이 모두 그 형성 경위나 존재 환경을 달리 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민족, 민족문제에 대해서 연구하는데 대해서 나침판이 없이 수림 속에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결국 민족의 개념이나 형성 과정에 대한 정의는 그 자체가 철저한 주체적 시각과 자세를 요구한다는 것인데, 북의 민족론은 자기들의 지도 이념인 주체사상에 기초해서, 그야말로 철저한 주체적 시각에 따라 정립된 것입니다.

먼저 민족의 개념 문제입니다만, 북에서는 “민족이란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발전해온 사람들의 공고한 집단이며 생활단위, 또는 사회역사적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공고한 결합체이며 운명의 공동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족의 형성 과정은 개개의 씨족, 종족 집단들이 단일한 전체에로 통합하는 과정이며, 지역과 종족 집단의 통일성이 완전히 실현될 때 민족의 통합결속이 완성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정치적 중앙집권화에 의해서 통일적인 정치생활이 이루어짐으로써 민족의 형성과정이 완성된다고 주장합니다.

이같은 시각에 따라 북에서는 우리 민족이 여러 개의 씨족, 부족들이 고조선시대로부터 정치적 공동체를 거치면서 독자적인 문화와 언어,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는 과정에 형성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에서는 또한 민족 형성의 경위는 민족마다 다르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민족들은 자본주의 발생과 더불어 형성되었으며 또 어떤 민족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형성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근대주의적 주장을 전적으로 부인하지 않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문제는 이를 우리 민족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북에서는 근대주의적 입장에 대해서, 이는 유럽나라들의 실태에 기초해서 전개된 것이며, 예로부터 한 강토에서 한 핏줄을 타고 같은 말을 하면서 살아 왔고 반만년의 역사와 문화를 가진 우리 민족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 북에서 민족론이 정식화된 것은 언제 어떻게 이뤄졌습니까? 그리고 민족론 정식화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민족은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발전해 온 사람들의 공고한 집단이며 사회생활단위라는 규정은 1991년 8월 1일에 진행된 김일성 주석의 담화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족은 사회역사적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공고한 결합체이며 운명공동체라는 규정은 같은 해 5월 5일에 진행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 『인민대중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이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해에 나온 이 두 담화를 통해서 북의 민족론이 정식화되었다고 말하기는 좀 힘듭니다. 왜냐 하면 북의 민족론에는 민족의 개념뿐 아니라 민족의 징표에 관한 문제, 민족의 형성, 발전 문제, 민족과 계급의 호상관계 문제 등 많은 내용들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민족의 생명에 관한 문제와 ‘우리 민족제일주의’와 같이 기존의 민족론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내용도 포함됩니다.

그 가운데 가령 민족의 징표와 관련해서는 벌써 1960년 10월 4일에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진행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 『민족문제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질데 대하여』에서 민족을 이루는 기본 징표는 핏줄과 언어, 지역의 공통성이지만 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징표는 핏줄과 언어라고 정의가 내려졌습니다.

또한 자주성이 민족의 생명이라는 정의는 김일성 주석의 담화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자』와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결성 40돌에 즈음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한 『재일조선인운동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킬데 대하여』(1995.5.24)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2008년 9월 5일부로 〈로동신문〉과 〈민주조선〉지에 보내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불패의 위력을 지닌 주체의 사회주의국가이다』에서 민족의 우수성을 살릴 데 대한 문제와 관련해서 시대와 혁명이 전진하는데 따라 민족의 새로운 우수성을 창조해서 ‘조선민족제일주의 정신’으로 사람들을 교양할 데 대한 문제가 1997년 6월 19일부로 발표된 국방위원장의 논문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할 데 대하여』에 이어 다시 강조되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북의 민족론은 어느 한 시점에서 정식화되었다기보다 오랜 세월을 통해서 이론화, 체제화 되어 왔으며, 지금도 계속 심화 발전되는 과정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지 않겠는가 봅니다.

어쨌든 세계적인 민족론의 난립상황 속에서 철저한 주체적 시각에 따라 민족론이 제시되었으니 북에서는 그 의미가 자못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 방금 중요한 지적을 하셨습니다. 북의 민족론은 한 시점에서 정해진 게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변화 발전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통 이론은 시원-변화.발전-정식화 과정을 겪습니다. 북 민족론의 시원을 어디부터 봐야 할까요?

■ 김 주석의 ‘회고록’을 보면 그때 이미 제가 방금 말씀 드린 그런 민족론이 나옵니다. 북의 민족론도 주체사상과 시원을 같이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960년 담화’

□ 또 하나 중요한 지적을 하셨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학생들과 한 ‘1960년 담화’에 나온 민족론 개념입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이 담화가 그동안 북의 민족론을 다룰 때 거의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 담화가 소홀히 다뤄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 글쎄요, 이 담화 내용이 소홀히 다뤄져 왔다기보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요? 당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언어, 지역, 경제생활, 문화의 공통성에 대표되는 심리상태 등의 공통성, 이들 징표 가운데서 하나라도 결여되면 같은 민족으로 볼 수 없다고 한 스탈린의 주장과 관련해서, 그렇다면 해외동포는 같은 민족으로 볼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사실 스탈린의 주장대로라면 해외교포들은 거주지역도 경제생활도 모국의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에 같은 민족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에 떨어지게 됩니다.

바로 이 논쟁 마당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결국 민족을 이루는 기본 징표는 핏줄과 언어, 지역의 공통성이지만 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징표는 핏줄과 언어이며, 비록 해외동포들이 남의 나라에 살고 경제생활이 조국 동포들과 다르다고 해도 핏줄과 언어가 같으면 같은 민족으로 보아야 한다는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북에서는 여러 자료들을 통해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벌어진 이 논쟁과 관련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왔습니다.

아울러 ‘1960년 담화’의 존재가 알려지기 이전에도 1964년 1월 3일에 진행된 김일성 주석의 담화 『조선어를 발전시키기 위한 몇 가지 문제』에서 민족의 징표로서 핏줄과 언어의 공통성 문제가 강조되었습니다.

문제는 ‘1960년 담화’가 그동안 어째서 알려지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만, 그것은 이 담화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당시 자신은 김일성 주석의 전사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도에 따라 어디까지나 주석의 사상과 업적만을 내세웠던 사정과도 관련이 있지 않겠는가 봅니다. 즉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항상 “나를 내세우지 마라”고 말씀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 담화 외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와 논문들이 수많이 발표되었습니다만, 그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문건이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발표된 것은 1982년 3월 31일자로 된 논문 『주체사상에 대하여』였습니다. 이는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서 공식 마당에 등장하게 된 1980년 10월의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 이후입니다. 아무튼 그 이전에도 많은 논문과 담화가 있었는데 공개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 그럴수록 ‘1960년 담화’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960년 담화’가 출처 없이 1985년에 발간된, 총 10권으로 구성된 『위대한 주체사상 총서 2』에 나옵니다. 즉, 총서에는 ‘1960년 담화’와 같은 내용이 나오는데 그 주체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인데 그게 언제 어디에서나 나왔나 하는 출처가 없습니다.

그런데 2008년에 한 재일동포 학자에 의해 이 ‘1960년 담화’의 출처가 뒤늦게 밝혀집니다. 월간 잡지 『민족 21』주최로 진행된 재일 조선대학교 한동성 교수와 남측의 현대사연구소 정영철 소장과의 인터뷰에서 한 교수가 ‘1960년 담화’를 소개하면서 그 출처를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1960년에 나온 민족의 개념이 지금 정식화된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고 볼 때, 바로 1960년대에 민족론을 정식화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그때 왜 정식화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도 남습니다.

■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그 당시 고전에 대해서 교조적으로 대했지 않나 싶습니다. 북에서는 1960년대에 모든 일에서 주체를 세울 데 대한 문제가 매우 중시되고 강조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에 대해서 교조적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문제가 강조되기도 했지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해서 종합대학에서 ‘고전병’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기울어졌다는 에피소드도 그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이같은 작업에 이어서 1960년대 후반에 국방위원장에 의해서 노동계급의 100년사상사에 대한 전면적인 연구와 재검토 작업이 진행되고 그에 기초해서 훗날 김일성 주석의 혁명사상이 주체의 사상, 이론, 방법의 전일적 체계로 정식화되었습니다. 그 과정에 스탈린의 민족론에 대해서도 당연히 연구와 재검토가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피’와 ‘핏줄’은 달라”

   
▲ “북의 민족론과 통일론은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다.” [사진-대동연구소 제공]
□ 북은 건국 초기에 스탈린의 민족개념을 차용했습니다. 그런데 방금 말씀하신 대로 북의 민족론의 변화 과정을 보면 1960년대에 스탈린의 민족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고전병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자 1970년대 들어 민족개념에서 스탈린의 ‘경제생활의 공통성’이 삭제되는 것에 반비례해서 ‘핏줄’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핏줄이 첨가되는 이유와 계기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북의 민족의 징표에 보면 ‘핏줄=혈연’이 매우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여기서 ‘피’가 아니라 ‘핏줄’ 그리고 ‘혈(血)’이 아니라 ‘혈연(血緣)’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북에서 민족의 징표로서 핏줄 문제를 중시하게 된 이유는 역시 기존의 민족론에 교조적으로 매달릴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반만년 역사를 갖는 단일민족이라는데 발붙인데 있었다고 봅니다. 흔히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이라고 합니다만, 이 단일성이 무엇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유지되어 왔는가 하면 역시 주되게는 핏줄과 언어이지요.

이 핏줄과 관련해서 북에서는 어째서 ‘피’ 혹은 ‘혈’이 아니라 ‘핏줄’ 혹은 ‘혈연’이라고 표현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피’ 또는 ‘혈’이라고 하면 생물학적 의미가 됩니다. 따라서 생물학적 의미로서의 인간의 ‘피’와 인간의 사회적 집단, 그러니까 사회적 개념으로서의 민족의 ‘혈연’ 또는 ‘핏줄’을 구분해서가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피’와 ‘핏줄’은 다르다는 것입니까?

■ 물론입니다.

□ 북이 민족개념에서 핏줄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남측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그 전근대성과 함께 종족주의, 보수주의, 순혈주의라면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북측의 입장은?

■ 민족이란 그 자체가 사회역사적 개념입니다. 따라서 언어와 핏줄, 문화의 공통성과 같은 민족의 징표 역시 사회역사적 개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에서 민족의 징표로서 말하는 핏줄의 공통성도 역시 생물학적 개념이 아니라 사회역사적 개념으로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생물학적인 의미에서의 피의 공통성은 순수 혈연적 관계의 범위 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집니다만 민족의 징표로서의 핏줄의 공통성은 인간이 일정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는 과정에 사회역사적으로 형성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핏줄의 공통성 문제는 인종론이나 과거 나치스 독일에서 제창된 순혈주의와는 엄연히 구별됩니다.

물론 민족 구성원들 속에 다른 인종이나 피가 섞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이는 부분적 또는 일시적 현상이며, 핏줄의 공통성을 이루어낸 사회역사적 요인이 변하지 않은 한 인류는 특정한 유전자를 갖는 민족들로 이루어질 것이고, 민족들은 자기 개성을 유지하면서 공존해 나갈 것입니다.

□ 핏줄이 생물학적인 개념이 아니라 사회역사적인 개념이라고 하는 데 그 이유를 상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 제가 스위스의 교포학자 최기한 선생의 견해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 분의 저서 『민족통일의 정치학』에는 “인간은 자기 선조가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이룩한 물질문명과 정신문명, 사회문화의 영향 하에 사회역사적으로 형성한 민족의 고유한 심리적 기질, 감수 기능에 기초하여 민족사회 특유의 경향적인 사고와 행동방식, 정서적 체험방식 등을 체질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민족의 혈연적 공통성인 것이다”, 이렇게 지적되어 있습니다.

제가 핏줄의 공통성에 대해서 사회역사적 개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이는 결국 역사적으로 형성된 민족 구성원들의 사회적 관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우리는 조상을 같이 하는 한겨레라고 합니다만, 바로 그같은 사회적 관계를 두고 핏줄의 공통성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나 봅니다.

□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래도 일반인들에게는 핏줄이 생물학적인 개념이 아니라 사회역사적인 개념이라는 것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핏줄 하면 생물학적 개념으로 받아들이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에는 종종 이처럼 쉽지 않은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에게는 두 개의 생명이 있다, 하나는 육체적 생명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정치적 생명이다 하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 저도 그랬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지, 사회정치적 생명이란 게 뭐냐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여러 삶과 업적을 이루지 않습니까. 살고 활동하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얻는 신임이나 기억 등은 분명 사회적 관계의 소산이지요. 그런 점에서 사람의 생명은 단순히 육체적 생명에 그치지 않고 사회정치적 생명을 갖는다고 봅니다.

“북의 민족론과 통일론은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어”

□ 북의 민족론의 변화 과정을 보면 ‘김일성 담화’와 ´김정일 담화’ 등 북 지도부의 ‘담화’, ‘조선통사’ 등 역사서, 그리고 ´정치사전’, ´철학사전’ 등 사전류에 민족론이 각각 여러 형태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들 담화, 역사서, 사전류에 실린 민족론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무게가 있습니까? 아울러 담화, 역사서, 사전류 등의 특징과 차별성은 무엇입니까?

■ 가장 무게 있는 것은 당연히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 논문, 연설들입니다. 북에서는 이것들을 통털어서 ‘노작’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북의 체제가 그러니까 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문제를 그렇게만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상이나 이론도 그를 창시한 인물이나 그를 심화 발전시킨 인물의 견해가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해 노작을 중심으로 봐야지 해설서나 연구서를 우선시 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북에서는 수령, 영도자를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집단의 중심, 인민의 대표자로 봅니다. 때문에 그 노작들은 당대의 학계, 이론계, 나아가서 인민들의 연구 성과들이 수령, 영도자에 의해서 집대성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노작들만 가지고 다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를 이론적으로 구체화하거나 종합, 분석하는 작업 또는 해설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역사서나 사전류는 그에 속할 것입니다.

한편, 이런 측면도 있습니다. 가령 어떤 문제를 놓고 학자, 전문가들 속에서 논쟁이 벌어질 때가 있는데, 이런 때에 문제가 제기되어 올라가면 지도부에서 적절한 해명을 주거나 방향을 제시하게 됩니다. 이 부류에 속하는 노작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같은 노작과 역사서, 사전류의 관계는 민족론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 북의 민족론의 변화 과정을 보면 남북관계의 변화와 그에 따른 북측 통일론의 변화 과정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북 민족론과 통일론과의 상관관계를 설명해주십시오.

■ 북의 민족론과 통일론은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습니다. 북의 민족론이 지향하는 것은 민족의 자주성 실현인데, 조국통일은 현 시기 그를 위해서 나서는 가장 절박한 과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김일성 주석에 의해서 제시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과 전 민족대단결 10대강령,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해서 ‘조국통일 3대헌장’으로 정식화되었습니다. 이 3자는 통일의 근본 원칙, 통일의 주체역량 문제, 통일의 방도 문제입니다만, 호상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연관이 무엇에 의해서 이루어지는가 하면 저는 바로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민족’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조선은 하나로 합쳐져야 살고 둘로 갈라지면 살 수 없는 유기체와 같다”는 입장에 기초한 ‘하나의 조선 노선’이고, 또 하나는 조국통일 문제는 외세에 의한 인위적인 분단상황을 끝장내고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적 자주권을 실현하는 문제, 갈라진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단합을 실현하는 문제라고 하는 통일 문제의 본질 규정, 그리고 다른 하나는 조국통일은 외세의 개입이나 간섭이 허용되지 않으며 그 누가 선사해줄 수도 없는 자주적인 위업이자 특정 계급이나 세력만이 다룰 문제가 아닌 전 민족적 위업이라고 하는 통일 문제의 성격 규정입니다.

‘하나의 조선 노선’이 우리 민족은 핏줄도 언어도 같은 단일민족이라는데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통일 문제의 본질 규정은 지금의 분단 상황이 우리 민족이 스스로 바라거나 선택해서가 아니라 외세에 의해서 빚어진 인위적 상황이라는 데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국통일이 자주적 위업이자 전 민족적 위업이라는 성격 규정은 필연적으로 통일의 주체세력을 우리 민족으로 보는 데로 이어집니다.

통일을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무력행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화적으로, 사상과 이념, 체제 차이를 초월해서 전 민족이 대단결하여 이룩하자고 하는 3대원칙도 그래서 나온 것이지요. 그리고 남북의 사상·체제를 서로가 인정하고 용납하는데 기초해서 통일을 실현하자고 하는 연방제 통일안은 분단의 장기화에 의해서 비록 남북이 사상, 체제 면에서는 이질화되었지만 반만년동안에 형성되고 공고화된 우리 민족의 동질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현실인식에 근거한 것입니다.

만약에 북에서 주체적 시각에 서지 못하고 고전이나 서구이론에 교조적으로 매달리고 민족이나 민족문제를 이해하고 대했다면 이같은 통일론은 창출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 1945년 해방과 분단 이후 남북관계에서는 ‘민족문제’와 ‘계급문제’, ‘통일문제’와 ‘변혁문제’ 등 여러 문제들이 교차되며 나타났습니다. 북측은 오늘날 ‘계급과 민족’, ‘변혁과 통일’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 먼저 민족과 계급의 관계 문제입니다만, 북에서는 계급과 계층은 민족의 한 부분이며 민족이 있고서야 계급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민족의 이익은 어디까지나 노동계급의 이익에 복종되어야 한다는 계급중시의 입장입니다만, 북에서는 민족중시의 입장입니다.

민족과 계급은 인간의 사회적 집단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성을 갖지만 민족은 자체 내에 여러 계급, 계층을 다 포괄하는 반면에 계급은 그같은 포괄성을 갖지 못하며 민족 안에서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족의 운명이자 민족을 이루는 전체 구성원들의 운명이고 민족의 운명 속에 개인의 운명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나라 없는 백성은 상가집 개만도 못하다”고 합니다만,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가 된 순간부터 우리 민족 내부에 있던 어느 계급에게도 똑 같이 상가집 개만도 못한 처지가 차례지지 않았습니까.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이 문제와 관련해서 제가 잊혀지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1985년에 분단사상 처음으로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상봉했을 때입니다. 장내가 온통 눈물바다가 된 속에서 남쪽에 사는 오빠와 북쪽에 사는 누이가 만났는데, “내 걱정은 말라, 나는 잘 산다”고 말한 오빠에게 누이가 “잘 사는 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우리 서로 갈라진 채 잘 살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어요, 통일을 해야지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민족이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는데 어느 개인이 잘 산다고 그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하겠는가 하는 것이지요.

변혁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특정 계급에게만 이익이 된다면 그런 변혁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더욱이 우리의 경우 결코 분단이라는 민족의 비극적 상황을 외면해서 변혁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북의 민족주의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02년 담화에서 정식화 돼”

□ 이제 북의 민족 문제에 이어 민족주의 문제로 들어가겠습니다. 북에서는 민족주의를 어떻게 정식화하고 있습니까? 그 시기는 대략 언제이며 아울러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 "북의 ‘우리 민족제일주의’는 미국의 세계화 책동에 맞서 등장한 것이다." [사진-대동연구소 제공]
■ 북에서는 민족주의란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사상이라고 말합니다. 2002년 2월 26일과 28일에 진행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 『민족주의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질데 대하여』에서 이렇게 정식화되었습니다. 담화에 의하면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특징과 이익을 귀중히 여기며 민족의 융성번영을 지향하는 것은 민족 성원들의 공통된 사상감정이며 심리인데 이를 반영한 것이 바로 민족주의라는 것입니다. 또한 민족주의 그 자체는 원래 진보적인 사상으로서 발생했기 때문에 민족주의를 덮어놓고 반동시하거나 배척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민족주의와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옹호하는 부르주아 민족주의를 갈라 봐야 한다고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민족주의에 대한 똑똑한 견해가 없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항일무장투쟁 당시 반‘민생단’투쟁이 극좌적으로 벌어지고 항일혁명투쟁에 막심한 해독을 끼쳤는데, 이를 수습하기 위해서 1935년 2월에 ‘다홍왜회의’가 열립니다.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4권을 보면 여기서 어떤 중국사람이 “ ‘민생단’의 아버지는 종파이고 종파의 아버지는 민족주의이며 민족주의의 아버지는 일본제국주의”라는 황당한 주장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원래 민족주의의 이념적 기초는 애국애족이며 이를 반동시하는 것은 곧 애국주의를 반동시하는 것으로 된다, 민족주의가 부르주아지의 사상적 도구로 이용되지 않는 이상 그것을 무덕대고 배척할 필요는 없다면서 민족주의자를 덮어놓고 이단시하지 말라고 김일성 주석의 반박이 가해졌습니다.

북에서는 이같은 정식화에 의해서 민족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애국애족의 일념에서 당당하게 손을 잡을 수 있는 사상, 이론적 기준이 마련되고 양자가 자기 민족의 운명을 함께 책임져 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 민족주의의 ‘진보성’은 무엇입니까?

■ 말씀드린 것처럼 북에서는 민족주의는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진보적인 사상으로서 발생했다고 그 발생 자체를 진보적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위에서 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에서는 사람들이 민족국가를 단위로 해서 살며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조건에서 진정한 민족주의는 곧 애국주의로 되며,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사상, 애국애족의 사상이라는데 민족주의의 진보성이 있다고 지적되어 있습니다.

□ 북에서는 우리 민족에 있어 민족주의의 발생과 그 성격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 북에서는 민족이 형성되고 발전하는데 따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사상으로서 민족주의가 발생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민족주의의 발생은 민족 발생의 산물이라는 입장입니다. 때문에 민족주의가 먼저 생겨났고 민족 형성은 그 결과물이라는 근대적 해석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 다음에 민족주의의 성격에 대해서는 민족주의가 해당 시대와 나라에 따라서 그 과제와 담당세력을 달리 하며 또한 권력이나 사회적 배경에 따라서 민족주의의 성격이나 기능도 달라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족주의의 성격과 관련해서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진정한 민족주의와 부르주아 민족주의를 갈라 보고 있습니다.

□ 일제시대인 1930년대 항일무장투쟁 시기에 발생한 ‘민생단사건’이 오늘날 북의 민족주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 당시의 반‘민생단’투쟁에 대해서는 김상일 선생께서 쓰신 좋은 글이 〈통일뉴스〉에 연재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에 대해서는 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4권을 보면 당시가 일종의 악몽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씌여져 있습니다.

회고록에는 김일성 주석 자신이 ‘민생단’ 문제와 관련된 과거를 지루할 정도로 길게 추억하는 목적은 후대들에게 조선혁명의 주체확립과 민족의 자주성과 관련된 교훈을 심어주자는데 있다면서 “나는 반‘민생단’투쟁과 그 총화로서의 다홍왜회의 과정을 통하여 자주성은 민족의 첫째가는 생명이라는 것과 이 자주성을 고수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족을 이루는 모든 구성원들, 특히는 그 선각자들의 희생적인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심장깊이 절감하였다”, 이렇게 씌여졌습니다.

이것이 훗날 북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것은 자주성은 민족의 생명이라고 하는, 민족의 생명에 관한 독창적인 사상이 제시되고 이와 함께 자주성을 민족의 생명으로 보고 온 민족이 단결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며 민족 공동의 번영을 이룩해야 한다는 주체적 민족관이 확립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북의 ‘우리 민족제일주의’는 민족배타주의와 아무런 인연 없어”

□ 북에서 민족주의 이론이 정립되기까지 한때 민족주의에 대해 긍정적 또는 부정적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울러 긍정적 입장과 부정적 입장은 각각 무엇이었습니까?

■ 말씀하신 대로 한때 민족주의와 공산주의가 서로 양립될 수 없는 것처럼 인식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은 우선 민족주의 자체에 있었다고 봅니다.

민족의 운명 문제를 해결한다고 할 때는 마땅히 민족 내부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사상, 이념상 차이로 인한 갈등 문제가 모두 민족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관점에서 초월되고 극복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민족주의는 그를 위한 대안을 제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까지 했습니다.

반면에 기존의 공산주의에도 결함이 있었습니다. 민족주의 문제를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혁명의 이익 중심으로 보았을 뿐 아니라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제한적이고 반동적 측면만을 보고 진보성이 있는 민족주의까지도 반사회주의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경향은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는 일제시기 반일민족해방운동의 2대세력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공산주의자들은 사상적 미숙성과 고질적인 분파적 악습 때문에 민족주의를 덮어놓고 부르주아사상의 변종으로 여기고 배척했습니다. 또한 민족주의자들도 공산주의자들은 조국도 모르고 민족도 모르는 위험세력으로 오인했습니다.

우리의 근대사에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자들이 민족적 단합의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한 것은 1920년대 중기 이후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1927년 2월에 서울에서 발족된 ‘신간회’를 들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 사이의 ‘연공합작’은 1930년대에 들어와서 질적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당시 주체사상에 의해서 이끌렸던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자들을 배타적으로 또는 일시적 동맹자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먼 훗날까지 함께 손잡고 나갈 사람들로 보는데 기초한 반일민족통일전선 노선에 따라 그들과의 단합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1936년 5월 5일에 조국광복회가 창건된 이후 그같은 단합과 공동전선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이같은 경험과 전통은 해방 후 나라와 민족이 분단의 위기에 처했을 때도 위력을 발생했습니다. 그 전형적인 사건이 바로 1948년 4월에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제정당, 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입니다.

□ 북에서 1986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우리 민족제일주의’는 민족주의의 한 형태입니까? 남측 일부에서는 북의 ‘우리 민족제일주의’가 민족주의와는 다르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 ‘우리 민족제일주의’에 관한 대표적인 문헌으로서는 1989년 12월 28일에 진행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을 높이 발양시키자』가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우리 민족제일주의’란 조선민족의 위대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조선민족의 위대성을 더욱 빛내어 나가려는 높은 자각과 의지로 발현되는 사상감정을 말합니다.

이것이 민족주의의 한 형태인가 하는 문제입니다만,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드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에는 제국주의자들의 ‘세계화’, ‘일체화’를 단호히 반대배격해야 하며, 우리 민족의 우수한 민족성을 살리고 민족의 자주성을 옹호고수하기 위해서 견결히 투쟁해야 한다고 과업이 제시되어 있으며, 우리가 조선민족제일주의에 대하여 자주 강조하는 것도 민족성을 살리고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강조되어 있습니다.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이익을 귀중히 여기는 사상이 민족주의라고 할 때, 자기 민족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민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서 표현될 것이고, 또 자기 민족의 이익을 귀중히 여긴다는 것은 결국 민족의 자주성을 옹호 고수하는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의미로 ‘우리 민족제일주의’는 민족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북에서 말하는 ‘우리 민족제일주의’는 자칫 인종주의나 민족배타주의로 오해받고 있습니다. 설명해 주십시오.

■ 말씀드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를 보면 우리 민족이 제일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다른 민족을 깔보고 자기 민족의 우월성만 내세우라는 것이 아니며 ‘우리 민족제일주의’는 인종주의나 민족배타주의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고 강조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 민족제일주의’가 자기 민족만이 제일이라고 하면서 타민족을 천하게 보는 것이라면 이는 민족배타주의 또는 인종주의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 제일주의’는 자기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자기 민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모든 민족은 다 같이 자기의 우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대해서 강조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북의 ‘우리 민족제일주의’ 제기는 미국의 세계화 책동에 대한 반대 표시”

□ 북에서 말하는 ‘진정한(참다운) 민족주의’와 ‘부르주아민족주의’와의 차이는?

■ 북에서는 부르주아 민족주의는 부르주아 계급이 자기들의 계급적 이익을 민족적 이익으로 위장해서 민족주의를 계급적 지배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고, 이 때문에 민족주의 자체가 반동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면서 민족주의를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진정한 민족주의와 부르주아 민족주의를 갈라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민족주의라고 할 때는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은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진보적 사상, 애국주의로서의 민족주의를 말하고, 부르주아 민족주의라고 할 때는 말 그대로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민족주의이며 그것은 다른 나라나 민족과의 관계에서 민족이기주의, 민족배타주의, 대국주의(패권주의)로 나타난다고 북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민족주의는 영토 확장과 강대화를 위해서 자기 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우고 타민족을 억압하려는 제국주의적 민족주의, 그리고 그 반대로 피지배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주장하는 민족해방주의 혹은 민족자결주의 등으로 구분되어 왔습니다. 북의 자료를 보면 이같은 유형이 오늘에는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범주에 속하는 강대국 민족주의(패권민족주의), 그리고 그와 대립되는 저항민족주의, 현대의 신민족주의 등으로 나뉘어졌다고 하고 있습니다.

□ 북에서는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와의 관계를 어떻게 봅니까?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 『민족주의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질데 대하여』에는 “공산주의자가 되려면 진정한 민족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김일성 주석의 명제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공산주의자는 진정한 민족주의자가 되어야 하며, 자기 인민, 자기 민족, 자기 조국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 참다운 공산주의자이며 진정한 민족주의자, 열렬한 애국자”라는 것입니다.

이는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연합할 수 있는 사상적 기초에 관한 문제로서 강조된 문제입니다만, 담화에서는 그 사상적 기초가 바로 애국애족이라고 지적되어 있습니다.

제가 두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1980년대 초기에 김일성 주석과 남측의 최덕신 전 외무부장관 사이에서 오간 이야기입니다. 이때 최덕신 선생께서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고 조국통일을 위해서 일하고 싶다고 말씀하신데 대해 사의를 표하신 주석께서는 통일을 위해서는 모두가 민족의 이익을 우선시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나는 일제를 반대하여 무장투쟁을 벌였을 때도 그러했지만 언제나 민족의 문제를 생각해 왔다, 자기 민족이 없이 공산주의를 해서 뭘 하겠는가고 하셨다 합니다. 훗날 최덕신 선생께서는 이 말씀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회고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올해가 꼭 20년이 됩니다만, 문익환 목사께서 1989년 봄에 평양을 방문하셨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때 김일성 주석과 문익환 목사 사이에서는 문 목사가 “주체사상이 뭡니까?” 묻자 김 주석이 “주체사상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겁니다. 소련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걸 강조하는 까닭은 우리가 약소국가이기 때문입니다”하고 대답했고, 다시 문 목사가 “그렇다면 주체사상은 민족주의인가요?” 묻자 김 주석이 “사회주의도 민족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도 민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저는 종교인들에게 말합니다” 하는,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합니다.

□ 또한 북에서는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와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 북에서는 민족주의가 국제주의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일관하게 주장해 왔습니다. 세계가 나라와 민족을 단위로 해서 구성되어 있는 조건에서 국제주의는 민족주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 민족과 민족주의를 떠난 국제주의란 사실상 아무런 의의도 없다는 것입니다. 북에서는 또한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의 운명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이 국제주의에 충실할 수 없으며,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의 부강번영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으로써 국제주의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북에서는 자주성은 자기 민족의 존엄과 권리를 지키려는 성질인 동시에 타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중시하고 존중할 것을 요구하는 성질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북은 오늘날 민족주의(우리 민족제일주의)를 미국의 세계화, 일체화 책동에 맞서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설명해 주십시오.

■ 미국의 ‘세계화’나 ‘일체화’는 본질에 있어서 세계의 ‘미국화’가 아니겠습니까? 냉전 종식 이후에 세계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결코 미국과 같은 특정국가에 의해 세계가 획일화되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자기 식의 방식대로 살며 나라와 민족들이 서로 자주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볼 때, 미국의 ‘세계화’ 전략은 완전히 시대적 지향과 요구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 전략에 의해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민족들의 자주권과 생존권이 냉전시대 이상으로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미국의 ‘세계화’전략으로 상징되는 지배주의를 반대하는 문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민족들에게 있어서 자주냐 예속이냐, 생존이냐 소멸이냐 하는 문제로 됩니다. 그래서 북에서는 ‘세계화’를 단호히 배격하는 것이며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할 데 대한 문제, 또한 그를 위한 과제로서 ‘우리 민족제일주의’를 중요하게 제기했습니다.

“6.15선언의 ‘우리 민족끼리’는 민족주의의 한 형태”

□ 조국통일에 있어 민족주의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십니까?

■ 6.15공동선언은 조국통일의 주인은 특정한 계급이나 세력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공산주의자도 민족주의자도 모두 통일의 주인인 것이지요. 민족주의가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자기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사상이라고 할 때 현 시기 민족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조국통일 이상의 과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주의자들은 일제시기는 물론 해방 후도 공산주의자들과 손잡고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 헌신해 왔고 지금도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전통을 계속 이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과 그 실천강령인 10.4선언이 있습니다. 이 두 선언은 ‘우리 민족끼리’가 관통되어 있는 것으로 하여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데, 민족주의는 여기서 자기의 진로를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면하게는 지금 모처럼 펼쳐진 ‘6.15시대’가 난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만, 민족주의자들이 북의 사회주의역량은 물론 자기들과 정견과 주의주장, 이해관계를 달리 하는 우리 민족 구성원들과 굳게 단결해서 6 .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고수하고 이행하는데서 역할을 놀아야 할 것입니다.

□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남북의 정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에 ‘우리 민족끼리’가 나옵니다. ‘우리 민족끼리’를 민족이 합의한 민족주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 ‘우리 민족끼리’란 자기 민족의 운명을 그 어떤 외세의 개입이나 간섭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또한 민족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서 개척해 나간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조국통일 문제에 적용한다면,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문제를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 나간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방도를 자기 민족을 중심에 놓고 모색하자는 이념이나 정신을 표어화한 것이 ‘우리 민족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로는 ‘우리 민족끼리’를 민족주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코 아닙니다.

□ 세계적 차원에서 탈냉전 이후 북에서는 한반도의 모순구도를 ‘외세(미국) 대 (남북) 우리 민족’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남북 우리 민족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 북에서 그렇게 모순구도를 보는 것은 지금의 분단상황이 우리 민족 스스로가 택한 것이 아니라 외세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초래된 문제이며, 이 분단으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 전체가 재난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에서 조국통일 문제를 남북간의 사상, 체제상 차이로 인한 대립을 해소하는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자주권을 실현하는 문제로 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꼭 확인해둘 것은, 우리가 조국을 통일하는데서 외세의 간섭과 개입을 반대한다는 것이지 남의 나라라고 덮어놓고 배척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국을 비롯한 주변나라들이 조국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협조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통일문제에 간섭하고 방해하는 요인이라는 의미에서의 외세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요즘 미국에서 오바마 정권이 등장한 것을 계기로 다시 거론되게 된 ‘통미봉남’ 문제입니다. 북이 어떤 때에는 우리 민족끼리 했다가 어떤 때에는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것인데, 이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북의 입장은 남북간에는 우리 민족끼리 할 이야기가 있고 풀어야 할 문제가 있으며, 또한 미국과는 그들과 할 이야기가 있고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남북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입니다만, 하나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서 함께 해결할 문제가 있고 또 하나는 남북이 자기 지역에서 각기 놀아야 할 역할과 과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지금의 위기상황에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고수하고 이행하자는 문제는 남북은 물론 해외동포들 앞에도 나서는, 말하자면 민족 공동의 과제입니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주변나라들이 한반도에 긴장상태를 조성시키고 평화를 위협할 경우도 이는 민족이 공동으로 대처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그러면서도 같은 과제를 수행하는데서 남북 또는 해외가 놀아야 할 역할은 서로 다를 것입니다. 가령 남녘동포들이 촛불시위를 벌였습니다만, 북이나 해외에서는 그를 지지하고 성원을 보낼 수 있지만 그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싸울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지역이 나 몰라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남이든 북이든 해외든 각기 지역마다에서 제기되는 과제는 매 지역 동포들이 책임지고 풀어 나가되, 그야말로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기초한 굳은 민족적 연대 속에서 그같은 투쟁이나 운동이 벌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북에서 해외교포 문제는 민족 문제의 일환”

   
▲ 지난해 10월 도쿄 주오(中央)대학 스루가다이(駿河台) 기념관에서 남측과 재일동포가 함께 출연해서 열린 ‘10.4선언 발표 1주년 기념토론회’에 참석한 강민화 소장(맨 오른쪽). [통일뉴스 자료사진]

□ 이제, 재외동포의 민족 및 민족주의 문제로 넘어 가겠습니다. 재일동포의 경우 우리 민족과 ‘핏줄’은 같지만 ‘경제생활의 공통성’에서는 차이가 납니다. 이는 북측의 민족론 입장에서 볼 때 민족개념에서 하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언어’와 ‘지역’의 공통성은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즉, 재일동포 2,3,4,5세대까지는 언어를 고수, 사용할 수 있지만 10세대 이상이 되면 언어 유지가 어려울 수 있으며, 또한 장기적인 타지역 정주가 지역적 공통성을 허물 수도 있습니다. 이를 민족론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 사실 민족성을 어떻게 지켜 나가겠는가 하는 문제는 재일동포 사회에서 중요한 과제입니다. 또한 이는 세대가 바뀔수록 더 힘든 문제가 되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외동포의 민족적 동화가 불가피하고 민족으로서의 존속이 곤란해진다고만 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동포사회에서 민족, 민족의 공통성을 보존하는 사회적 요건과 그를 마련하고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측에서 ‘우리 학교’ 영화가 제작되고 히트가 되었습니다만,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에 대해서 그같은 시각에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가령 저도 일본에서 나서 자란 재일동포 2세입니다. 때문에 1세 동포들에 비하면 민족성 면에서 아무래도 차이가 있습니다. 또 우리의 자식들이나 손자들, 그러니까 3세, 4세가 되면 또 우리와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비록 모국 사람들이 듣기에는 비록 서툴기는 하지만 모국어를 쓸줄도 알고 민족적 자각이나 자존심도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요인은 물론 부모의 영향도 있습니다만, 주되게는 교육입니다.

해외교포들의 민족성을 지켜 나가기 위한 사회적 여건에는 마땅히 모국의 역할이나 노력도 포함됩니다. 저는 동포들의 민족성 문제를 민족론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러한 각도에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북에서는 해외교포 문제는 자기 민족문제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근저에는 해외교포란 비록 남의 나라에서 살고 있어도 다 함께 같은 민족으로서의 형성과정을 거쳐 온 동포들과 그 후손들이라는 입장과 관점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 재일동포를 놓고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가 일본에서 살거나 나서 자라게 된 것은 결코 자발적인 해외이주 때문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자기들의 운명을 모국의 운명과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고, 통일운동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에 따라서 조국과 해외교포의 관계는 모체와 부분의 관계이며 조국의 운명이자 해외동포들의 운명이라는 정의가 또한 내려지게 되었으며, 이것이 북의 해외교포정책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북의 해외교포 정책, 특히 재일동포들을 자기들의 해외공민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미 널리 알려진 재일동포 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 장학금의 송금입니다. 전후 복구건설기에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우리가 공장을 한두 개 못 짓는 한이 있더라도 재일동포 자녀들을 위하여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어야 한다는 당시 김일성 수상의 뜻에 따라서 그 예산이 국가예산 항목에 포함되게 되었는데, 1957년부터 시작된 교육원조비, 장학금의 송금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성이론들을 보면, 해외교포 문제를 그들과 조국의 관계보다도 그들과 그들이 사는 거주국의 관계를 중시하는 시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교포 문제를 다른 나라에 정착되어 사는 동포들의 법적 지위나 처우문제 차원에서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나니 해외교포를 남의 나라에서 사는 소수민족, 심지어는 사실상 외국인으로 보는 경향까지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2007년에 발표된 10.4선언 8항에 “남과 북(북과 남)은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해외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기된 것은 참으로 획기적이었으며 우리에게 얼마나 고무적이었는지 모릅니다. 지난날 거주국에서의 민족적 차별과 학대에다가 조국 분단에 의한 고통까지 겪어 온 재일동포들을 비롯한 모든 해외동포들은 통일조국의 해외동포로서 살 그 날을 현실적으로 내다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 일본에 있는 동포의 경우, 남과 북의 분단과 그 후유증으로 인해 총련과 민단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남북의 분열만큼 총련-민단의 분열도 오랜 세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특히 6.15공동선언에 맞게 일본에서도 동포들의 단결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를 짧게 정리해 주십시오. 아울러 앞으로 재일동포들의 단결 움직임을 예상한다면 그 원칙과 방향은?

■ 일본정부에게는 역사적 경위로 보나 자기들의 도덕적 의무로 보나 재일동포들을 외국인으로서 대우할 뿐 아니라 그들을 성실히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동포들을 일본의 국익에 저촉되는 부담스러운 존재, 심지어 치안의 대상으로 보면서 오직 차별과 통제, 동화의 대상으로만 여기며 처우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정책이나 자세는 남측을 “조선반도의 유일합법정부”라고 규정한 ‘한일조약’의 체결 이후 보다 정치적 색채를 띠고 악랄해졌습니다. 그로 인해서 동포들이 갖는 조선 국적은 국적이 아닌 ‘기호’가 되었으며 북을 지지하는 총련을 시종일관 ‘파괴활동방지법’(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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