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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새 회장 김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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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9-04-25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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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력있는 젊은 단체 만들고 싶다"

 

   
▲24일 오후 양심수후원회 김호현 신임회장을 만나 양심수후원회 지난 평가와 향후 전망을 들어보았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25일 ´양심수의 대부´로 불리며 20여년 간 민가협 양심수후원회를 이끌어 온 권오헌 전 회장(현 명예회장)에게 바통을 이어 받은 김호현 신임 회장은 양심수후원회의 또 다른 역사다.

1989년 창립한 양심수후원회의 초대회장이었던 故 문익환 목사가 방북 직후 투옥돼 권오헌 명예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한 1991년, 김호현 회장과 양심수후원회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이다.

´격동의 79학번´인 김 회장은 통신 전문 신문사 재직 중 사측의 집단 해고에 항의해 60일 간 농성투쟁을 벌이던 중 조정래 소설가의 『태백산맥』 완간 기념 지리산 기행에 참여했다 양심수후원회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우연한 인연으로 일반회원이 된 그는 운영위원과 부회장을 거쳐 창립 20주년을 맞은 올해 회장이라는 중임을 맡게 됐다.

"인간의 양심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인간의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런 것들에 대한 개인적인 확신. 또 권오헌 회장님 여러 운동 선배님들, 장기수 선생님들의 일관된 삶의 자세들을 보면서 우리가 아무리 생활에 찌들리고, 유혹이 많아도 이런 부분은 놓치고 가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굉장히 큰 요소가 되었습니다."

초창기 ´월급쟁이´에서 현재 개인사업체의 대표이사로 있으면서도 김 회장이 한 번도 삶에서 양심수후원회를 빼놓지 않게 한 원동력이다.

20년 동안 양심수들이 기댈 언덕이 되고, 목소리를 대변해 왔던 양심수후원회는 김 회장에게 가장 큰 자부심이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지켜가야 할 보석 같은 존재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 사회단체 중에서 한 20여년 이름이 바뀌지 않고 초창기 의도했던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해 온 단체들이 사실 별로 없다"면서 새로 취임하더라도 권오헌 명예회장을 비롯한 사회원로, 후원회원들이 꾸려온 양심수후원회의 정신은 그대로 이어갈 것을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젊은 단체´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다음은 21차 총회가 있기 전날인 24일 서울 중구 필동 소재 김 회장의 개인 사무실에서 한 인터뷰 전문이다.

"권오헌 회장님은 사회운동사에서 독보적인 존재"

   
▲ 90년 ´태백산맥 지리산 현장 기행´으로 양심수후원회와 첫 인연을 맺은 김호현 신임회장. 그는 일반회원, 운영위원과 부회장을 거쳐 창립 20주년을 맞은 올해 회장이라는 중임을 맡게 됐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통일뉴스 : 권오헌 회장이 20여 년 동안 이끌어 온 민가협 양심수후원회를 새로 맡게 됐습니다. 소개를 부탁합니다.

■ 김호현 신임 회장 : 현재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부회장으로 있습니다. 90년 5월부터 선생님들을 따라다니다가 회원으로서 양심수후원회 일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늘 회원과 운영위원, 부회장을 20여 년 해 왔죠. 이번에 총준위(총회 준비위원회)에서 회장을, 사실 억지로 떠 밀려서(웃음) 하게 됐다.

□ 양심수후원회 일은 어떤 인연으로 시작하게 됐습니까?

■ 1990년 5월에 그 당시 조정래 선생님 『태백산맥』이라는 책이 있죠. 태백산맥이 10권 완간 기념으로 지리산 현장에 가는 기행이 있었어요. 우연히 그 기행에 참석하게 됐었는데 전국에서 300여 명 왔었죠. 지리산 현장에 가서 지리산 영령들, 행방공간에서 돌아가셨던 영령들, 현장도 돌아보고 거기서 제도 지내고 그런 과정에서 같은 차에 같은 조에 앉은 사람들이 거기서 굉장히 재밌게 놀았습니다.

아주 걸판지게 밤새워 놀고, 그 사람들이 주축이 돼서 다녀온 뒤에 모임을 하게 됐고, 그 모임 과정에서 양심수후원회에 합류하게 됐고, 그 소모임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옴시롱 감시롱´이라는 모임이 있어요. 기행단체 모임으로 전라도 진도 여성 회원이 지은 이름인데, ´오며 가며´란 뜻입니다. ´옴시롱 감시롱´이 소모임이기도 하지만 후원회를 상당부분 지탱하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임에서 지금까지 쭉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학생운동 하다가, 저도 신문사에 있었습니다. 60일 농성투쟁을 하다가 워낙 힘들어서, 거기를 간다는 것을 알고 합류하게 된 거죠. 신문사 내부사정 때문에 기자들 투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것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죠.

□ 어떻게 보면 너무 늦게 바뀐다고도 볼 수 있는데, 회장 인선의 이유는 뭡니까?

   
▲김 신임회장은 "사무국 체제의 전환으로 양심수후원회의 활동을 더욱더 강화하려 한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사실 권오헌 회장님은 그 분의 지식적 역량이나 사회적 참여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나라 사회운동사에서 진짜 몇 안 되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워낙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그동안 해오셨기에 사실은 극 과정상에서 후원회가 할 일이 참 많았습니다. 후원회가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 석방운동, 그 다음에 2000년 9월에 1차 송환운동, 이런 과정에서 사실은 너무나 일들이 많았기에 선생님이 워낙 젊으시고 출중하셔서 회장을 새로 선임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전혀 없었고요.

그런데 작년에 회장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시고 그 과정에서 건강도 안 좋아지시고. 저희들도 나이가 50정도 됐으니까 새로운 세대한테 바꿔줘야 한다는 말씀을 진작부터 하셨는데, 저희가 역량이 부족해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죠.

작년에 아프시고 난 뒤 올해 총회준비위에서 어른신들이 거의 반강제적으로(웃음) 저를 추대를 해 주셨습니다. 총준위(총회준비위)가 여러 번 열렸는데 여러 번 고사를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20년간 이름 바뀌지 않은 단체들 별로 없다"

□ 민가협 양심수후원회의 20년 간 활동에 대한 소개와 함께 평가를 한다면.

■ 사실 그것을 저한테 물어보시면 대답하기에는 부족한 측면도 많고 어려운 질문인데. 저희가 80년대 말에 군사독재정권하에서 수없이 많은 학생들이 감옥에 가게 됐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민가협이 탄생했고, 그 뒤에 89년 이후에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 해방공간에서 조국통일을 위해서 싸우시다가 감옥에 가셨던 아무 연고도 없는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는 것을 저희가 알고 석방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91년부터 선생님들이 석방돼 나오기 시작하셨는데, 나오셔도 20년 30년 40년 감옥에만 계셨기에 돌봐줄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돌아갈 장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석방운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선생님들을 모실 장소를 구하게 됐는데, 그게 지금 현재 낙성대에 ´만남의 집´이라고 하는 양심수후원회 사무국이 있는 그 집을 저희가 마련하게 됐습니다. 그 집은 양심수후원회 부회장으로 계시는 김지영 원장께서 기증을 하다시피 해주셨고, 현재는 사단법인에 정식으로 증여를 해 주신 상태입니다.

90년 중반쯤 선생님들이 한창 많이 나오시게 됐거든요, 선생님들 나오셔서 낙성대에 한 10여분 계셨고, 그게 부족해서 갈현동에 독지가 도움으로 몇 분 계셨고, 봉천동에 몇 분이 계셨고. 그 당시에는 장기수 선생님들 모시는 사업이 상당히 중요한 사업이었죠.

그것과 더불어서 계속해 온 것이 양심수들, 자기의 사상과 양심에 반해서 부당하게 감옥에 가신 분들을 우리가 양심수라고 처음으로 규정한 게 양심수후원회였습니다. 그래서 양심수 석방운동, 재판 방청운동, 다달이 영치금 보내는 운동, 책 보내는 운동 등 그 운동을 지금까지 계속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유일하게 해 오고 있습니다.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 석방, 지원, 모시는 운동, 그리고 이 땅에 사회변혁운동, 사회민주화운동을 하시다가 감옥에 가신 여러 양심수들을 다달이 지원하는 운동, 면회, 영치금, 재판 등 그런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성과라는 것은 우리나라 사회단체 중에서 한 20여년 이름이 바뀌지 않고 초창기 의도했던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해 온 단체들이 사실 별로 없습니다. 몇 년 하다가 없어지고, 여러 가지 상황변화도 있지만, 저희들은 권오헌 선생님의 워낙 헌신적인 희생과 순수 회원 위주로 구성이 돼 있기에 지금까지 초심의 목표를 나름대로는 달성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물론 아직도 부족한 게 있는데, 그런 것들을 어찌보면 제가 2기 쪽으로 옮기는 시기라고 보는 건데, 미흡했던 부분들 소통이나 내부적인 회원 간 활동 등 이런 것들을 조금 더 활성화 시키려고 합니다.

외부에 지금까지 참여한 것들은 권오헌 명예회장님이 되시는데, 계속 지원을 해주실 예정이고 이번에 사무국을 강화시켜서 사무국 체제로 전환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이 달라지는 시점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는 상근이 낙성대 ´만남의 집´에 사무국장 한 분이 계셨는데 이번엔 상근부회장과 사무국장, 이렇게 두 분이 상근을 하십니다. 그래서 외부 연대단체 활동 또 양심수 지원.면회 사업, 내부적 회원 연결 고리들이 좀 더 체계적이고 원활하게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김 신임회장은 "새로 취임하더라도 권오헌 명예회장을 비롯한 사회원로, 후원회원들이 꾸려온 양심수후원회의 정신은 그대로 이어갈 것"을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향후 계획은?

■ 말로는 세대 구별이 되기에 ´2기다´ 이렇게 얘기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구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그 당시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양심수후원회가 해야 될 정체성은 확실하고 확고하게 갈 것이니까 그런 부분에서는 큰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단지 업무 분담 이런 측면에서 권오헌 회장님이 명예회장으로 외부적 활동, 연대활동을 많이 도와주실 것이고 저희 사무국에서 연대활동이나 또 지원 활동이나 이런 것들을 체계적으로 펼쳐나갈 생각입니다. 그래서 ´차별화를 둔다´ 저는 그런 측면은 아니라고 봅니다.

단지 저희가 내부적으로 소홀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회원관리 사업들이라든지 그런 측면을 조금 보강하는 점이라 생각이 들고요. 제가 이전하고 차별화를 두겠다든지, 혁신적으로 바꿔보겠다는 측면은 사실은 없습니다. 워낙 전 회장님께서 터전을 잘 닦아 놓으시고 많은 일해 해 오셨기에 그것을 받아서 발전시키는 측면이 중요한데, 사실 그런 측면에서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국보법 적용 굉장히 많이 늘었다는 게 문제"

□ 후원회 현황은 어떻습니까?

■ 후원회는 2000년 1차 송환되시고 난 뒤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원래 1천 2-3백 명 정도였는데, 현재는 1천 명 정도. 그 중에서 늘 회비를 내 주시는 분은 300여 분 정도 됩니다. 2000년 9월을 통해서 약간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 이후 여타 사회단체들은 경제적 상황 등으로 회비도 많이 줄 지 않았습니까? 저희 후원회는 2000년 이후에 거의 큰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그동안 영치금을 넣는 다든지 장기수 선생님들을 일부 도움을 드린다든지 그런 사업에 큰 영향 없이 나름대로는 잘 진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 비전향장기수 분들 외에 양심적 병역거부자 등과의 연대, 관계는 어떻습니까?

   
▲김 신임회장은 " 새정부 들어 사문화 된 국가보안법 적용이 굉장히 많이 늘었다"고 지적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미묘한 측면이 있는데. 우리가 어떻든 자기의 사상과 양심에 반해서 법에 의해서 불법 구금 또는 감옥에 가 있는 분들을 양심수라고 하는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이런 분들도 저희가 양심수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숫자에는 그분들도 포함돼 있고요.

그러나 그 분들은 워낙 숫자가 많아서 그 분들을 현실적으로 지원하기는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한테는 우리가 심정적으로 연대한다는 그런 선에서 그치고 있고, 왜냐면 저희 후원회가 어느 정도 한계가 있고 현실적으로 즉시즉시 대응해야 하는 문제들이 많이 있어서 우선은 힘에 못 미치는 부분들이 있죠.

□ 비전향장기수는 현재 몇 분이 계십니까?

■ 2000년에 예순 세 분이 1차 송환돼서 거의 다 가시고 2차 송환대상자 선생님들이 일부 계시는데 지금은 직접 모시는 분들은 ´만남의 집´에 세 분이 계십니다. 지방에서 올라오신 분들은 낙성대 머물기도 하시고. 2차 송환대상자 분들이 서른세 분이었는데, 그 사이 돌아가신 분들이 있어서 현재 스물일곱 분이 신청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새 정부 들어서서 양심수 현황에 변화가 있습니까?

■ 물론 늘어난 측면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특히 사문화 된 국가보안법 적용이 굉장히 많이 늘었다는 게 상당한 문제죠. 이전 정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못한 대가를 철저히 치르고 있는데 이명박 정권 하에서 사회운동 단체들 또 사회운동진영의 힘을 빼기 위한 주요한 적용을 국가보안법으로 틀어막고 있는 그런 사정입니다.

그때 사회운동진영에서 사실은 전 정권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를 했어야 하는건데, 심지어는 뭐 미네르바 같은 완전히 사문화된 전혀 적용한 적이 없는 전기통신사업법 같은 경우를 적용해서 구속시켰다가 망신당하는 일도 있지 않았습니까?

□ 양심수와 관련해 우리나라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김 신임회장은 "양심수들의 사후적 관리, 체계적인 데이터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며 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저희도 양심수 지원 사업을 해오고 있지만 양심수들의 사후적인 체계적 관리 시스템이 돼 있는 데가 없고요. 저희들도 인력이 부족하다보니까 양심수들의 사후적 관리, 체계적인 데이터가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생각컨대 앞으로 그런 사업도 구상을 하고 있지만, 과거의 양심수들을 추적 작업도 일부 해보고, 그분들이 어떻게 사시고 있는지 어떤 변화를 가지고 있는지도 상당히 중요한 사업 중의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연결고리로 인해서 더 활동을 왕성하게 할 수 있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고민도 하고 있습니다.

□ 전체 양심수 현황에서 국가보안법 사범이 가장 많은가요?

■ 국가보안법하고 폭력행위 등에 관한 처벌법(폭처법)이 거의 비슷비슷할 겁니다.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돼 있는 사람들이 그전에 그렇게 많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명박 정권에서 굉장히 많이 늘어나 것이 사실입니다.

폭처법의 경우, 원래적인 법률에 의해서 정상적으로 진행됐다고 하면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허가 낸 집회에서 예를 들어 우리가 실제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이 임의로 모션을 취했다는 것만을 가지고 처벌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 경우를 포함해서 저희는 양심수라고 규정하고 있죠. 용산참사 문제도 민중의 삶을 최소한의 삶을 요구하다가 잡힌 것이지 않습니까? 국가권력에 의해서 100% 희생된 것으로 보는 거죠.

"장기수 선생님들 제일 어려운 게 건강과 경제적 문제"

□ 따로 개인 사업을 하면서 양심수후원회를 하고 있는데.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해 올 수 있었던 동력이 뭡니까?

■ 초창기에는 저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양심수후원회를 했는데, 그 당시에도 양복입고 중앙정보부 앞에 가서 농성도 하고 들어 눕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20년 변치 않고 한길을 오게 한 것은 내 기본적인 사상, 양심을 남한테 짓밟히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인간의 양심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인간의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런 것들에 대한 개인적인 확신. 또 권오헌 회장님 여러 운동 선배님들, 장기수 선생님들의 일관된 삶의 자세들을 보면서 우리가 아무리 생활에 찌들리고, 유혹이 많아도 이런 부분은 놓치고 가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굉장히 큰 요소가 되었습니다.

□ 20여 년 동안 양심수후원회에 있으면서 양심수나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사회적 시각의 변화를 지켜봤을 텐데.

   
▲김 신임회장은 "양심수후원회를 활력이 넘치는 ´젊은 단체´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시각들의 변화가 참 많았죠. 저희가 시작했던 90년 초만 해도 장기수선생님들이 나오시면 그분들을 이렇게 나오시게 할 때 보증인이 필요했는데 그런데 일반인들은 받아주지도 않고. 그래서 신부님, 목사님, 이런 성직자 분들이 많이 맡으셨죠.

그때는 선생님들을 면회하거나 모시고 올 때는 정말로 참혹한 현실이었죠. 경찰들이 따라붙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선생님들이 나와서 계실 때도 움직이는 것 자체를 못 움직이게 일일이 막거나 꼭 집회에 가야 하면 전날 살짝 가시거나 날마다 전화해서 "어디 갔다 왔느냐, 왜 다니느냐?" 하는 그런 과정들이 90년 초중반, 후반까지도 계속 됐었습니다.

사회적으로 그 당시 비전향장기수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 사회운동진영에서도 사실은 일반화 되지 않은 개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저희가 그분들을 석방운동하고 모시는 일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굉장히 험난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2000년 9월에 1차 송환이 되는 시점으로 인해서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쉽게 얘기하면 "아 저분들도 같은 사람이구나" 또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만 만나보니까 "정말 따뜻하고 인간적이고 외로웠던 사람들이구나" 그런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었고요.

1차 송환 이후에는 비전향장기수라는 개념이 일반화되고 또 일반인들도 그런 인식에 대해서, 아주 보수단체를 제외하고는 상당 부분 공유된 인식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 지금도 물론 공안당국이나 경찰 쪽에서는 장기수선생님들을 밀착은 아니지만 계속 정보를 체크하고 이는 단계이기는 하지만 옛날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편이죠.

그 대신 그 사이에 장기수 선생님들의 나이가 많아지시고, 그러다 보니 제일 어려운 게 건강과 경제적 문제입니다. 건강은 계속 안 좋아지시고 돈벌이가 안 되느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그래서 양심수후원회에서 치과의사협회하고 선생님들 이 치료를 해줬던 적도 있고, 또 병원하고 협의를 해서 간단한 진료, 건강검진도 했고, 뜻있는 후원회원들이 몇 년 동안 안경 무료지원 사업을 해 왔는데, 올해도 저희 나름대로 건강관련 사업도 하나의 사업항목으로 구성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양심수후원회는 다른 단체와 달리 후원회의 변동이 크지 않지만, 그래도 운영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 많이 부족해서 이번에 제가 맡으면서 조직체계가 회장단, 운영위원, 사무국, 일반회원으로 돼 있는데, 운영위원들 전체가 지금 ´회원 배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1차적으로는 4월 말 까지 개인당 일정부분 목표를 가지고 진행을 하고 있고, 제가 보기에는 4, 5월에 회원 배가 운동을 어느 정도 마치면, 넉넉하지는 않지만 계획했던 그런 지원 사업을 어느 정도 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양심수의 대부´ 권오헌 회장에게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앞으로의 포부는?

   
▲ 김호현 신임회장은 "하는 동안에는 열심하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어떻든 회장이라는 직함을 맡게 됐으니까 하는 동안에는 열심히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회민주화운동 단체들이 전반적으로 연로하십니다. 우리나라 사회민주화운동의 활성화가 안 되는 측면도 저는 일정 부분 그런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사회민주화운동단체들의 집행을 하시는 분들이 젊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원로 분들을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고 경륜이라든지 여러 가지 본받을 점들을 받으면서도 좀 젊어질 필요가 있는 생각을 해 온 것도 사실인데 후원회가 어찌 보면 처음은 아니지만 상당부분 선두에서 그런 변화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고, 그래서 조금 더 활력있는 젊은 사회단체를 만들고 싶은 게 하나의 바람이고, 그래서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신규 회원들 발굴, 기존에 있는 회비를 내지만 얼굴을 잘 안 보이는 회원들을 좀 밖으로 끌어내서 동력으로 활용하는 그런 측면을 강구해 보고 싶은 게 하나의 생각입니다.

□ 끝으로 한국 사회의 모든 양심수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 양심수 석방과 후원, 지원 사업을 일관되게 해온 양심수 후원회 회장으로서는 어떻든 이분들이 빨리 가족들 품으로, 자기가 하시던 일터로 복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력하게 정권에도 촉구하는 의미가 있고요. 그리고 지속적으로 재판운동이나 석방운동을 진행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할 것이고 면회사업, 편지사업 등을 통해 감옥에 있는 기간에 나름대로는 당당한 양심수라는 것이 역사에서 얼마나 옳은 평가를 받아야 되는 것인지, 얼마나 당당한 역사적 행위를 했는지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회보도 다달이 보내드리고 월간지도 보내드리고 있지만, 그분들이 더 힘을 내시고 그분들의 행위에 대해서 당당한 역사인식을 더욱더 철저히 가지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출처: 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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