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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기열 교수의 “재일동포상사병”,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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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8-28 15:03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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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상사병”,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조선대학 객원교수 정기열 박사와의 인터뷰

 

 

 

위찬미 기자

 

 

조국해방70돌기념 민족통일행사에 참가한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취재진이 8월 9일 평양에서 정기열 교수와의 대담을 진행하였다.

 

 

▲조국해방70돌기념 민족통일행사를 위하여 백두산출정식에 참가한 정교수

 

 

 

겨레에게 재앙을 들씌운 저주스러운 70년 분단의 벽과 끊임없이 씨름하는 재미동포 학자 정기열 교수(목사, 박사), 그는 분단조국의 모든 경계, 금기를 온몸으로 거부하며 조국통일을 위하여 자신의 젊음을 바쳐왔다. 우리 분단역사의 축소판 같은 삶을 살아온 그는 우리조국 통일운동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그가 최근에는 재일동포들이 70년간 지켜온 민족교육에 동참하면서 그들과의 사랑에 빠졌다. 기자에게 밝힌 정교수의 투쟁사와 재일동포들과의 사랑이야기를 아래에 간추려 소개한다.

 

기자: 정교수님께서 미국에 유학 오신 후로 조국통일운동을 활발히 펼쳐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남녘조국에서 추방당하고 수차례 입국금지되어 수년째 서울에 못 가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배경을 좀 알고 싶습니다.

 

정교수: “1980년대 중반 <재미한국청년연합>(한청련)의 회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메릴랜드주립대학> 교목이었습니다. 1988년 8월 15일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기치 아래 열린 역사적인 연세대학<남북학생회담출정식>에 12개국의 국제평화대표들을 참가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이것이 “죄”가 되어 당시 안기부 덕수궁 지하안가에서 3일간 밤샘조사를 받은 뒤 “강제퇴거”라는 괴상망칙한 명목으로 추방되고  5년간 입국금지를 당하였습니다. 이것이 제가 태어나 자란 땅에서 추방당한 저의 첫번째 경험입니다.

 

그리고2000년 5월 <남북해외전민특위> 결성 뒤 1년 후인 2001년 6월 뉴욕에서 남북해외에서 참가한 100여 명 우리민족 대표들과 26개 국가에서 참가한 세계양심들과 함께 <코리아국제전범재판>을 시행하였습니다. 이것이 또 “죄”가 되어 다시 5년 동안 남녘으로부터 두번째 입국금지를 당하였습니다.

 

또  2010년 3월 이명박시대 최고대형국제사기범죄 <천안함침몰사건>에서 “천안함이 북 잠수함의 어뢰공격에 의해 격침됐다”는 워싱턴, 서울 주장이 조작된 것임을 폭로한 기사들을 <통일뉴스>에 게제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죄가 되어 저는 또 다시 5년 입국금지자가 되었습니다. 1980년대 말부터 2015년까지 이렇게 세 번에 걸쳐 15년 입국금지를 받았고 오늘도 서울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자: 조국을 위한 일을 한 것으로 입국금지를 당하다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면 이북을 언제 어떠한 계기로 처음 방문하셨습니까?

 

정교수: 1988년 남녘에서 추방당한 뒤 저는 바로 다음 해 처음으로 북녘을 방문하게 됩니다. 당시 <전대협> 임수경 대표가 참가했던 (북녘동포들이 ‘분단 이후 최대사변’이라 부른) 1989년 7월의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제평화대행진> 사업에 깊이 관계하면서였습니다.

 

기자: 중국에서 수 년 간 교편을 잡으시고 언론활동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중국으로 가셔서 활동하게 되셨습니까?

 

정교수:  저는 나이가 50이 훌쩍 넘어서야 학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2005년 6.15시대 통일운동을 남녘에서 하겠다는 생각으로 미국을 떠났습니다. 모교에서 교수생활을 하고자 하였던 저의 꿈과 희망은 1년도 못되어 좌절되었습니다. “국가안보에 위해한 인물”이라는 법무부 결론에 의해 다시 남녘땅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후 2006년부터 중국사회과학원 초빙교수로, 2009년부터 중국칭화대학 교수로 일하며 오늘까지 주로 중국에서 활동해왔습니다. 한편으로는 2010년 9월 북경에서 국제인터넷영문언론 <The 4th Media>(제4언론)을 창립한 뒤 오늘까지 편집인 겸 책임주필로 일하고 있습니다.

 

기자: 재일조선대학교와 북의 김일성종합대학에서의 강의와 관련한 경험을 좀 들려주시겠습니까?

 

 

▲평양호텔에서 북을 방문한 재일조선대학교 학생들에 둘려싸여 즐겁게 대화하고 있는 정교수

 

 

정교수: 저는 2000년대 후반부터 도쿄, 교토의 몇몇 일본대학들(교토대학, 릿쿄대학, 게이오대학, 도시샤대학, 리츠메이칸대학 등) 초청으로 일본을 자주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부터 인연이 닿은 동경 소재 조선대학교에서 첫 4년은 초빙교수로 그리고 올해 2015년부터는 고정강좌를 가르치는 객원교수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뜻밖에 저는 2014년 10월 북에서 ‘사회정치학박사’를 수여 받은 뒤 1년 후인 2015년 3월 말 <김일성종합대학 사회정치학부>에서도 가르칠 수 있는 분에 넘치는 큰 영예를 받아 안고 첫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한편 지난 26년 일본을 꾸준히 방문하면서 재일동포들의 감동적인 삶의 모습을 수없이 목격하였습니다. 특히 지난 10년 가까이 일본 각 지역에 있는 많은 “우리학교”(민족학교)들을 방문하였습니다. 2006년부터는 재일동포들의 통일운동조직인 <평화통일협회>(평통협) 초청으로 수십 차례 전국 곳곳의 동포들을 찾아뵙는 귀한 기회도 가졌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재일동포들이 “민족교육의 꽃”이라 부르는 조선대학에서 “후대를 가르치고 싶다”는 꿈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꿈은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2011년 가을부터 현실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꿈만 같던 일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조대 60년 역사상 외부에서 들어간 (특히 남녘출신 해외동포가) 최초의 초빙교수”라는 크나큰 영예도 받아 안게 되었습니다.

 

기자: 정교수님은 재일동포 사랑에 이어 조선대학교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고 늘 말씀하시는데 그 사랑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정교수: 2006년부터 일본 각 지역의 동포들을 자주 방문하게 되면서 일종의 “재일동포상사병” 같은 것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강연을 끝내고 일본을 떠나 중국으로 돌아오면 곧 바로 동포들이 그리워져 시간이 지날수록 견디기 어려워지는 경험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제발로 스스로 다시 찾아가거나 아니면 또 다시 동포들을 찾아갈 방도를 만들어내서라도 일본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아, 내가 일종의 ‘재일동포상사병’ 같은 것에 걸렸구나!”라는 고백을 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상사병이 오늘은 “조선대학상사병”으로까지 확대, 심화된 것 같습니다. 대학강의를 마치고 북경에 돌아가면 곧 바로 대학과 학생들이 그리워져 다음 학기 강의를 하러 다시 일본에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기가 몹시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지난 8-9년 전국의 남녀노소 모든 동포님들에게서 그리고 강의실에서 만나는 제 자식보다 훨씬 더 어린 제자들에게서 이전에 그 어디서도 경험치 못했던 진한 조국사랑, 민족사랑, 사람사랑 같은 것을 진하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조국사랑, 민족사랑, 특히 ‘민족교육’ 사랑이야기가 너무도 진실되고, 아름답고 또 눈물겨워 진한 감동 속에 살았던 저의 지난 8-9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강연장에서 동포님들을 뵐 때마다 혹은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늘 입버릇처럼 “저는 강연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가 재일동포들로부터 크나큰 사랑과 힘, 격려를 받으러 왔습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강의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일동포 3세, 4세, 5세 학생들을 강의실에서 만날 때마다 같은 감동을 끝없이 경험합니다. 재일동포들의 위대한 민족교육운동 견지에서 보면 그들 한사람한사람 모두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의 산 증인들인 셈입니다.

 

기자: 정교수님은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의 위대성에 가슴벅찬 감동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이들의 민족운동과 관련하여 특별한 활동을 하고 계시거나 계획이 있으신지요?

 

: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고 금싸라기보다 귀한 재일동포후대들을 민족교육현장에서 만나면서 스스로에게 끝없이 다짐하는 것이 있습니다. 재일동포들의 아름다운 위대한 조국사랑이야기를 세상에 꼭 알려야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런 생각과 다짐을 지난 5년 조선대학을 오가며 수도 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생각이 지난 1-2년 급기야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에로 모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제일 먼저 유네스코 문을 두드리는 일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총련”으로 불리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역사는 그것 자체가 “인류사에 또 하나의 위대한 전대미문 역사”라 정의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눈물겨운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을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한 국제캠페인을 양심적인 일본인들과 미국, 서방의 국제인사들을 중심으로 기필코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입니다.

 

재일동포 1세, 2세 부모세대들의 우리학교사랑이야기가 3세, 4세, 5세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재일동포 민족교육운동을 저는 언제부터인가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재일동포들의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하여 지금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란 제목으로 조그마한 책을 하나 쓰고 있습니다.

 

기자: 정박사님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게 하지 않는다는데 사실입니까?

 

: 시험 대신 글(Paper)을 쓰게 하는 교육방식은 2009년 중국칭화대학에서부터 시도한 방식입니다. 저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같은 암기중심의 교육방식이 이과교육은 몰라도 사회과학, 철학, 문학 등 문과교육에는 적합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쓰는 비판적 사고훈련이 문과교육에는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과정을 거친 자신의 생각과 뜻을 매주 한장(Weekly Paper)에 담아내는(작문) 훈련이 사회과학교육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사전에 주어진 교재(매주 읽는 과제물)들을 읽고 강의와 강의시간에 토론된 내용들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 감상문”(Critical Reflection Paper) 같은 것을 쓰도록 하는 것입니다. 학기 중간에는 다섯 장 정도의 좀 더 긴 비판적 감상문을, 학기말엔 서론, 본론, 결론식의 일정한 학문적 체계를 갖춘 10장 정도의 긴 감상문을 쓰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몇년 학생들의 숱한 글(감상문)들 속에서 저는 뜻밖에도 재일동포들의 눈물없이 듣기 어려운 감동어린 ‘우리학교사랑이야기’들을 끝없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이야기들이지만 전혀 새로운 눈으로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을 이해하고 바라보게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학생들의 감상문들 속에서 재일동포들의 대를 이어 계속되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조대학생들 감상문을 언젠가부터 “연애편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니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글쓰기를 기계적인 숙제/과제물로 생각지 않기를 바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의 다양한 글 자체가 하나하나 그대로 일종의 ‘사랑의 대서사시’ 같은 것으로 제게 읽혀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연애편지’ 속에는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습니다. 분노도 있고 좌절도 있으며 절망도 있습니다. 표현키 어려운 한(恨)과 아픔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그들 속에는 동시에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도 있습니다. 조국통일에 대한 간절한 소원도 담겨 있습니다.

 

기자: 일본의 타지방 동포들과의 경험도 듣고 싶습니다.

 

정교수: 저는 3년 전부터는 조선대학에서만 아니라 “민족교육 산실 가운데 하나”라는 고베조고를 시작으로 도쿄조고, 가나가와조고,  이바라기조고 등 동포들이 밀집해 사는 지역의 여러 고등학교들을 대상으로도 특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대상 특강(강연)을 끝날 때마다 받아 안게 된 나어린 고등학생들의 감상문들에서도 조대학생들의 감상문에서 경험했던 재일동포들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똑 같은 감동으로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을 재일동포들의 “눈물겨운 사랑과 헌신의 아름다운 대서사시”라고 부르게 된 계기입니다. 온갖 어려움과 탄압, 차별, 감시, 천대, 불이익 속에서도 놀라운 기적을 끝없이 창조하며 오늘 4세, 5세, 6세까지 “이어”지고 있는 재일동포들의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운동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과 다짐을 더욱 깊이 각오하게된 배경입니다.

 

기자: 재동포들이 경험하는 어려움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입니까?

 

 

▲조국해방70돌 기념 판문점통일결의대회에서 재일동포 안병옥 여사와 함께 있어서 무척 행복한 정교수

 

 

정교수: 지난 몇 년 재일동포들과 동거동락하며 그분들 삶의 희로애락 속에 깊이 들어가 사는 경험 속에서 최근 더욱 깊이 깨닫게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최근 자신을 ‘반(半)재일동포'라고 소개할 정도로 재일동포들 속에 깊이 들어가 살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희로애락과 꿈, 희망도, 그분들의 아픔과 좌절, 절망도 어느 정도 가슴 깊이 공유할 정도가 된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 재일동포들에게서 때로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게 경험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그분들에게서 선뜻 쉽게 표현되지 않은 어떤 외로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사람들처럼 재일동포들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쉽게, 흔쾌히 털어놓지 않는/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하는 외로움은 재일동포들 자신이 먼저 스스로 ‘내가 외롭다’ 표현하는 그런 일반적 외로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선뜻 쉽게 표현되지 않는 그 무엇은 재일동포들이 일본땅에서 70년 계속 이중, 삼중, 사중으로 경험하는 민족차별과 정치사회적 고립, 법적제재, 정치탄압, 경제적 불이익, 특히는 일본주류언론에서 밤낮으로 자행되는 조선악마화, 총련악마화 등에서 비롯된 지독한 외로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재일동포들이 경험하는 외로움은 지난 70년 북녘동포들이 경험한 외로움과 일정하게 같으면서도 어쩌면 북녘동포들의 외로움과는 또 다른 더 진하고 더 지독한 외로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일본, 남녘사회와 언론에서의 70년 된 끝없는 “조선악마화”와 대북(총련)고립압살정책은 동포들을 일본사회로부터 끝없이 고립시켰습니다. 또한, 남녘의 역대 친미친일사대매판권력의 반민족적이고 반북적인 반총련적대시정책은 재일동포들을 일본사회에서 또 다른 형태의 사슬에 묶어 감옥에 가두고 소외, 고립시키는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교무상화” 문제가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남녘권력이 사주하는 민단(民團)세력이 일본정부에게 “총련동포 소속 조선학생들을 ‘고교무상화’ 혜택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구걸하고 촉구한 사건을 말합니다. 60년을 넘긴 남녘의 반민족적 분단권력의 천하 못된 망나니짓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들의 반이성적 행위는 일본땅에서조차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입니다. 식민지종주국(제국주의외세) 힘을 빌려 제 민족의 목을 그것도 나어린 동포학생들의 목을 조르는, 부끄러운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서울권력과 그 하수인들(민단)의 망나니짓을 지켜보는 것 또한 한이 맺히도록 아픈 경험입니다. 이중삼중사중의 고립과 그에서 비롯되는 지독한 외로움이 켜켜이 쌓여갈 수 밖에 없는 분단역사의 반복이고 질곡입니다.

 

극우화한 일본 아베정부의 극심한 총련탄압정책은 오늘 주지하듯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60년 총련역사에 처음 있는 일로 총련의장, 부의장 집까지 전격 가택수색하고 의장의 아들조차 구속시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또한, 재일동포들의 정치, 경제적 여건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자식들을 우리학교, 민족학교에 보내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경제적 어려움입니다. 자식을 우리학교에 하나 보내는 일 자체가 보통 힘든 결단이 아니죠. 일본학교에 보내면 돈내는 것 거의 없이 온갖 교육혜택과 장학금도 받으며 대학졸업 후에 취업도 물론 용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난관, 여건, 처지에서도 민족교육을 지켜내고 민족교육의 꽃이라 불리는 조선대학을 지켜가기 위한 재일동포들의 헌신적 노력은 그것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투쟁이고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눈물과 감동없이 결코 듣고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위대한 하나의 사랑이야기입니다. 2012년부터 일본인들이 앞장서 세운 “재일본조선인장학재단”에 음으로 양으로 참가하게 된 계기입니다. 저는 오늘 장학재단의 “고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언제 기회가 주어지면 장학재단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 싶습니다.

 

기자: 이런 악조건들에서도 부모들이 자녀들을 조선대학으로 보내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정교수: 재일동포들의 조상은 대부분 경상도, 전라도를 비롯한 제주도 등 남녘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해방이 된 남녘땅엔 주지하듯 미제가 일제대신 들어와 미군정을 실시하며 친일파 청산은 커녕 오히려 반민족친일세력을 온존시키고 분단권력의 모든 핵심요직을 그들 친미친일반민족세력으로 채워가고 있을 때 북녘에서는 친일파를 청산함은 물론 토지개혁을 비롯 노동자, 농민이 주인되는 참된 민족정부,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이것이 ‘총련운동’이 처음부터 거의 대부분 남녘출신 동포들에 의해 시작되고 후대들에 의해 오늘까지 유지되었던 핵심배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민족교육을 중심으로 한 재일동포운동의 일종의 ‘주력부대’가 북녘출신 동포들이 아니라 남녘출신 동포들이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역사적 의의는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식민지노예로 식민지종주국에 끌려가 살던 대부분의 재일동포 1세들은 자신들을 식민지 노예신분에서 해방시켜준 김일성 주석을 못 잊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을 위해 사력을 다해 당시 수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민족교육지원금을 도와준 김 주석과 북녘동포들의 사랑과 은혜를 결코 잊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해방 뒤 일본에 남은 자국인민들을 위해 서울권력은 “나몰라라!” 하며 제 살기에 급급했던 반면 평양정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 재일동포들을 지원하였습니다. 특히 그들의 민족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쏟아붓다시피한 북녘정부와 북녘인민들에 대해 일본의1세동포들은 다함없는 고마움의 마음을 안고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북녘정부는 70년 장구한 세월 북녘조국이 처한 가장 간고한 “제2 고난의 행군” 시기 때도 즉 그 어떤 시련, 난관 속에서도 재일동포들을 위하여 보내는 교육지원금을 끊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지난 70년 북녘정부는 재일동포 새세대들로하여금 일본땅에서의 민족교육 외에도 그들이 조국을 알고 배우도록 그들을 끝없이 조국의 품에 따뜻이 안았습니다.

 

일본땅에서 온갖 민족차별과 멸시, 천대, 탄압을 받아가며 살아온 재일동포들 특히1세, 2세 동포들에게 김일성 주석이 재일동포들에게 베푼 뜨거운 동포애는 하늘이 무너져도 잊거나 부정할 수 없는 심장 속에 깊이깊이 뿌리 내린 부동의 진실인 것 같습니다. 김 주석의 재일동포사랑은 물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시대”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자: 재일동포들의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을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국제캠페인을 벌이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교수: 일본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은 일찍이 인류사에 있어본 적이 없는 전대미문의 기적같은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은 문화교육 차원에서 인류가 따라 배워야할만한 훌륭한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이 민족교육운동을 인류의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먼저 민족교육운동을 우리민족만의 유산이 아니라 인류의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역사에 길이 남기고자 함입니다.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이 단순히 우리민족의 위대한 유산으로서만이 아니라 전체인류가 함께 기억하고 간직해야할 인류 공동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후대인류가 그가 조선사람이고 아니고를 떠나 교육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따라 배우고 교훈을 얻어야할 인류사적 가치를 갖는 위대한 교육운동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재일동포들이 6-70년 외롭게 지켜온 민족교육운동이 인류의 위대한 무형문화유산으로 역사에 길이 남겨지기를 진심으로  바래서입니다.

 

둘째 일이 구체적으로 시작될 경우 무엇보다도 이 운동은 양심적인 일본인들과 국제인사들에 의해 주도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유네스코등재운동 그 자체는 무엇보다도 먼저 국제여론을 환기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일본정부로 하여금 재일본조선인들의 민족교육운동을 과거와 다른 차원에서 새로운 눈으로/자세로 대하게 한편 일본과 세상의 양심들 그리고 우리민족은 일본정부를 지혜롭게 강제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과거 역대 일본정부의 비합리적이고 천만부당한 차별과 탄압이 결코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 향후 그들로 하여금 재일본조선인들의 민족교육운동에 대한 정책자체를 근본에서부터 수정케 만들 수 있는 적극적 기회로도 삼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기자: 유네스코 등재를 위하여 어떤 작업이 필요하며 지금 어떤 단계에 와 있습니까?

 

정교수: 우선 이를 주변에 널리 알리고 여론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적인 일본교육자들과 학자,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미국과 서방의 양심들을 중심으로 국제추진위원회 같은 것을 만드는 기초작업이 후속작업으로 머지 않아 구체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라기는 올 가을 위의 작업들이 순조롭게 출발하여 내년 언젠가는 국제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유네스코에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신청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이 운동은 아마도 파리 유네스코본부에 등재신청을 마친 뒤 본부건물 앞에서 갖는 기자회견 같을 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가장 기초적인 정지작업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대담 또한그런 정지작업의 일환일 수도 될 수 있습니다. 재미동포연합사이트와의 대담을 통해 이런 구상과 생각을 재미동포들에게 처음으로 알리게 된 것 또한 참으로 고마운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자: 올해 총련결성 60주년을 성대히 축하하는 기념행사들을 보신 소감이 어떠했습니까?

 

정교수: 재일동포들은 작년 언젠가부터 60주년 기념대축제 행사준비에 조직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아베정권의 총련조직에 대한 탄압이 기승을 부릴수록 행사조직책임자들의 의지, 신심 또한 줄어들고 의기소침해지기보다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재일동포들은 성공적인 60주년 기념대축제를 통해 “총련운동이, 민족교육운동이 결코 죽지 않았음”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일본정부의 탄압이 오히려 총련동포들을 위축시키기보다 거꾸로 더욱 단결시키고 정신무장시켰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행사를 준비한 동포들은 모든 걸 다 준비하고도 축제일에 혹시 비가 오지 않을까 꽤 마음을 졸였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대회 당일은 날씨가 맑았고 약 2만 명의 대규모 동포군중들이 대회장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였지만 동포들이 60주년 행사장소였던 도쿄조고운동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된 기념행사는 동포들을 크게 고무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탄압과 시련 속에서도 총련운동이 살아서 펄펄 움직이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케 된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행사조직 전 과정에 조선대학교 교원과 학생들이 참가했습니다. 대단히 감동적인 모습들이 곳곳에서 연출되었습니다. 살인적인 무더위와 땡볕에도 불구하고 대회성공과 안전, 질서를 위해 수백 명 조대교원들과 학생들이 보인 헌신적 노력과 자세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기자: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의 계획이 실현되어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 밑바닥에 흐르는 위대한 인간사랑의 정신이 세계인들의 마음에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조국이 해방된 지 70년이 지난 오늘도 민족교육을 지키고 살려가기 위한 재일동포들의 피어린 투쟁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정교수는 그것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인류사의 기적이며 위대한 사람사랑, 조국사랑, 민족사랑의 숱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위대한 대서사시라고 말하고 있다.

 

숱한 학생들이 1-2시간 걸리는 곳에 위치한 ‘우리학교’들을 다니고,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허리가 휘도록 더 많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에 사는 모든 세상사람에게 다 부여되는 일본정부의 고교무상화 혜택에서도 우리학생들은 그들이 단순히 재일조선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제외된다. 동포들은 온갖 형태의 천만부당한 차별과 탄압을 받으며 끝없이 ‘조선사람’이라 손가락질 당한다. 해외여행 때마다 입출국 과정에서 ‘재입국허가증’ 을 든 채 공항에서부터 일본출입국관리들의 온갖 모멸과 멸시도 견디어야 한다. 일본 땅에 사는 같은 민족으로부터 즉 분단시대 또 하나의 비극인 ‘총련-민단’ 구도 속에서 같은 민족으로부터 끝없는 ‘빨갱이-친북’ 논쟁에 휘말리는 아픔, 서러움, 외로움도 견디어야 한다. 또한 조대 졸업 후에도 계속되는 온갖 형태의 불이익과 차별 속에 남다른 취업걱정도 해야 한다.

 

그러나 재일동포들에게 있어 조국과 민족, 그들의 위대한 민족교육은 그 어떤 시련, 난관 속에서도 조국과 함께 헤쳐나가며 극복해가야 하는 그 어떤 것이다. 언젠가 기필코 승리해야할 그 무엇이다. 하여 혹 목숨을 빼앗기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흥정하고 거래할 수 있는 그 어떤 경제사업 같은 것이 아니다.

 

어째서 이리도 고결하고 가슴 벅찬 위대한 사람사랑정신이 민족교육을 통해 오늘 4세, 5세, 6세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인가? 무엇이 그들로하여금 식민지시대 민족차별이 70년이나 계속되는 척박한 식민지종주국 일본땅에서 간고한 투쟁을 멈추지 않게 하는가?

 

눈물과 감동없이 듣기 어려운 위대한 재일동포들의 사랑이야기를 들으며 와 닿는 하나의 결론이 있다. 온갖 시련, 좌절, 절망, 난관 속에서도 민족의 말과 글, 얼과 사상, 그리고 문화와 전통을 가르치는 민족교육운동을 오늘도 계속하고 있는 재일동포들 뒤에는 오늘의 위대한 그들을 있게한 “위대한 조국”이 있다는 사실이다. 위대한 조국이 있어 위대한 재일동포운동,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이 가능하였다는 어느 재미동포 학자의 말이 가슴에 새롭게 다가온다. 70년 온갖 시련 속에서도 재일동포들이 여전히 자신의 조국을 “위대한 어머니 품”이라 부르는 이유를 정기열 박사와의 대담을 통해 조금은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끝)

 

 

정기열 철학박사, 사회정치학박사

중국칭와대학 초빙교수,

중국사회과학원 선임연구원,

일본조선대학고 객원교수

김일성종합대학 초빙교수

제4언론 편집인/책임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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