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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는 동포들의 북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돕고자 북녘 매체들의 글을 "있는 그대로" 소개합니다. 이 글들이 본회의 입장을 대신하는 것은 아님을 공지합니다. 


인물소개

선율로 조국통일 부르는 우륵교향악단 리준무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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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4-27 12:2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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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시보가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회원이며 우륵교향악단 단장인 리준무 선생과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였다.

 

리준무 선생은 남북이 하나의 조국이라는 신념을 갖고 미주땅에서 남북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하려는 생각으로 우륵교향악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재미동포전국연합회의 회원이 되어 미국땅에 우리의 문화를 심으며 후대들에게 민족음악을 교육하고 있다. 그는 또 오는 6월 15일 6.15를 기념하는 뉴욕 공연을 준비하고 있으며, 언제나 남북 해외 8천만 민족이 하나가 되어 조국통일의 노래를 부를 그날을 꿈꾸며 음악으로 통일의 대통로를 열어갈 열의에 넘쳐 있다. 이에 인터뷰 전문을 소개한다. - 편집국

 


 

선율로 조국통일 부르는 우륵교향악단 리준무 단장
 
남도북도 하나의 조국 민족분단 비극 씻어야
 
 
 
이정섭 기자 
 
 
 
▲ 지난해 4월 평양에서 김원균명칭 관현악단 지휘를 마친 리준무 단장 앞줄 맨 왼쪽     © 자주시보

 

민족분단의 피눈물을 조국통일의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헌신하는 애국. 애족의 음악인이 있다.

자신이 태를 묻은 한국도, 배달민족의 피가 연연히 흐르는 조선도 하나의 어머니 조국으로 여기고 고난과 시련을 이기며 통일의 지휘봉을 쥐고 8천만 겨레 앞에선 우륵교향악단 지휘자 리준무(72세) 선생이 바로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주인공이다.
 
리준무 선생은 전북 정읍시 산외면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에서 음악(바이올린)을 전공한 뒤 미국으로 이주한 재미동포이다.
 
미국 이주 생활에 대한 회의와 조국에 대한 향수가 그리워 1981년 서울대 음대 출신들로 동호인 악단인 ‘뉴욕서울교향악단’을 창단했으나 무엇인가 허전함이 느껴져 남북 해외동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우륵교향악단’을 꾸렸다.
 
음악으로 남과북이 오해와 불신을 가시고 화해와 협력을 이루어 조국통일에 기여하자는 생각에서 였다고 한다. 
 
리준무 단장이 지휘하는 우륵교향악단은 남과북 해외동포들로부터 폭발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게 되었고 6.15 시대에는 남과북을 오가며 8천만 겨레의 가슴을 통일의 파도로 일렁이게 했다.
 
리준무 선생의 노력으로 조선예술단과 우륵관현악단은 미국 순회공연의 첫 무대를 뉴욕 링컨센터에서 가졌는데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관계의 전면 파탄으로 인해 리준무 선생은 조국의 반쪽인 조선과 미국에서만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분단의 역사를 통일의 역사로, 예속의 역사를 자주의 역사로 바꾸어 남북 해외 8천만 민족이 하나가 되어 조국통일의 노래를 부를 그날을 꿈꾸며 시대적 부름과 민족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삶을 바쳐가는 민족음악가 리준무 선생을 뉴욕에서 만나 보았다.
  

▲ 6.15시대 제주도에서 가진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     © 자주시보



우륵교향악단 창단 배경과 목적은
1981년 11월에 서울음대 뉴욕동창회가 주최한 음악회에 채임버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연주하게 되었는데 그 것이 확장 발전되어 오늘의 우륵교향악단이 되었다.처음에는 겨우 14명의 연주자가 참여하였지만 그때 참여했던 연주자들은 우리의 음악을 연주한 것에 대해 무한한 긍지와 보람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우륵 교향악단 단원 구성은
 
우리는 아직까지도 후원회조차도 없는 상태에서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 악단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음악관계는 본인이 하지만 무대 밖의 일은 저의 집사람이 맡아서 하고 있다.
 
우리음악에는 북의 관현악을 자주 연주하기 때문에 복잡한일이 가끔 일어나기도 한다. '왜 북의 음악을 하느냐?'
 
'북에서 자금지원을 하느냐?' 아니라면 돈은 누가 대주느냐? 주로 이런 것으로 시비를 걸어온다. 악단 연주자 구성도 타민족음악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 편이다. 
 
우리 연주자들은 가끔 압력 때문에 그만두기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한다. 나라가 분단된 현실때문에 슬픈 일이 가끔씩 일어난다. 그래서 타민족 연주자가 70%나 된다.
 
우륵교향악단이 창립된 때로부터 현재까지 활동을 요약해 달라
 
6.15 경축공연을 6월 15일에 뉴욕시내에서 진행하게 되는데 이번 공연은 우륵교향악단 창단 34주년을 기념하는 109회연주가 된다. 230여명이 넘는 협연자들이 우리악단을 거쳐 갔다. 사실 미국의 일류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나 일류교향악단에 취직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별 따기나 다름없이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자부하는 것은 미국 땅에 우리의 문화를 심고 자라나는 후대들에게 그들이 설 무대를 제공해 주는 일이어서 참으로 보람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재능도 있고 특출한 음악적 기량이 있어도 마땅히 설수 있는 무대는 극히 제한적이다. 
 

▲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음악가 리준무 선생은 아름다운 선율 처럼 남북이 화해와 단합을 이루기를 바란다    © 자주시보



남과북을 오가며 공연을 하면서 느낀 점은
 
이남에서는 2007년과 2008년에 전주시립교향악단과 제주 챔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적이 있다. 
 
1990년 평양에서 열린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참가하여 지휘한 적이 있다. 윤이상 선생이 발기한 이 음악회에는 재미동포음악인 20여명이 참가하였다. 
 
남쪽은 서양음악을 잘해야 하고 북쪽은 민족음악을 잘해야 존경을 받는다. 
남의 음악을 전문가를 위한 음악이라고 한다면, 북은 인민대중을 위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은 근로자들이 교향곡이나 협주곡을 즐겨듣는 것을 볼 수 있다.
  
조국통일과 민족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나의 출생지는 지리산자락에 있는 전라북도 정읍군의 산골동네였다. 많은 동네 아저씨 형들이 지리산에서 희생되었다. 물론 우리집안도 이시기에 여러명이 희생되었다. 그 뒤 외국군대가 활보하고 정권은 그들의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있는 답답한 현실을 목격하며 자주권이 얼마나 중요하며 목숨과 같은 것인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2001년 조선의 음악인 5명을 초청해 뉴욕, 시카고, LA, 휴스톤, 워싱톤 등을 순회하며 '조선음악 대공연'을 했던 일이다. 가는 곳마다 초만원을 이루웠고 북의 음악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내던 재미동포들의 환호성이 지금도 강렬하게 기억되고 있다. 
  
우륵교향악단을 하면서 어려움은
아무래도 미국에서 북의 음악을 연주곡목에 포함 시킨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연주자를 무대에 세우려면 이해시키기 위해 많은 설명과 설득을 해야 한다. 북의 음악을 무대에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큰 어려움은 공연을 위한 비용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도 지난 30여년간 뜨겁게 후원해 주신 동포들의 정성어린 후원은 잊을 수가 없다. 
 

▲ 리준무 단장은 미국에서 후대들에게 민족음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교육할 뿐 아니라 학교 졸업 후 악단에 들어 갈 수 있도록 후원하는 일도 보람의 하나라고 말했다.     © 자주시보



  
광복 70돐을 맞으며 특별한 공연 계획은 없나
 
올해는 우리민족에겐 뜻 깊은 해이다. 민족이 대단결하여 기어이 조국통일을 위한 대통로를 열어야 한다. 6.15남북공동선언을 실천하여 남북이 전환적 국면을 열어야한다. 
 
그런 취지에서 6.15 15주년 기념음악회를 보다 성대하게 열 것이다. 각자 자기가 서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리준무 선생의 지휘봉에 따라 한반도에 자주의 노래, 평화의 노래, 통일의 노래, 번영의 노래가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자주시보



조국 동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렇게 심한 탄압을 받아가면서도 반민족적, 반민중적, 반민주적 정권타도와 외국군대 철수를 위한 간고한 투쟁을 꿋꿋하게 벌이고 있는 조국의 여러 선생님들과 동지들에게 존경과 격려의 인사를 드린다. '우리는 이긴다'는 신심을 잃지말고 최후의 승리를 위해 투쟁해 주시기를 바란다.
조국통일까지 어르신들 건강하시고 항상 어려움을 낙관으로 이겨 가시길 부탁드린다.   
 
우륵 교향악단 리준무 단장은 굴곡진 우리 현대사의 한복판을 가로질러 살며 민족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겪으며 살아오면서 조국의 자주와 통일의 절실함을 뼈 속까지 느꼈고 비극을 청산하기 위해 민족화해와 평화를 위한 지휘봉을 들었다고 한다.
리준무 선생의 평화의 선율이 남과북 해외의 8천만 겨레의 가슴에 흐르고 조국통일의 송가가 삼천리금수강산 하늘과 땅 바다에서 울려 퍼지기를 기원해 본다.

 

[출처: 자주시보]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04-27 12:25:37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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