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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이산가족 선우학원 박사의 사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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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6-10 13:1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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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선우학원 박사의 사모곡

 

 

편집국 장선인 기자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편집국 기자는 6월 7일 오후 2시에 ‘홀렌벡 팜즈 양로원’에 살고 계시는 선우학원 박사님을 찾았다. 홀랜백 팜즈 양로원은 한인타운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이스트 엘에이에 있고 외국인 노인들이 많이 살고 한국인은 선우 박사님이 유일하다.

 

 

박사님은 올해 96세의 연세에도 약간의 청력 저하와 지팡이를 짚고 걷는 것 외에는 불편하거나 아픈 데가 없다고 한다. 혈압도 좋고 콜레스테롤도 정상이고 당뇨도 없으며 피를 묽게 하는 약만 드시고 그 약의 용량 조절을 위하여 간호사가 열흘에 한 번씩 와서 피검사를 하고 가는 정도다.

 

이곳의 하루는 아침 6시 반 기상, 7시 조반, 9시에서 10시까지 한 시간 운동, 12시 반에 점심, 2시에 30분간 낮잠, 5시 저녁 후 9시 반에 취침한다.

 

건강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박사님은 규칙적인 생활과 과식하지 말 것과 채소나 과일을 많이 먹을 것을 추천하였다. 그리고 머리를 쓰는 활동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였다. 박사님은 간식은 하지 않고 짜인 일정 사이에 책을 읽기를 좋아한다. 그는 글을 써서 지금도 언론사에 기고하고 가끔 양로원 식구와 관계자들에게 강의도 한다. 그리고 아직 시력이 책 읽기에 지장이 없으며 등도 굽지 않았고 규율 잡힌 몸의 움직임과 절제된 말은 자연스러워 보였으며 기자의 눈을 똑바로 보며 의견을 말하는 그에게서 제자를 가르치는 유능한 선생들에게서 볼 수있는 카리스마까지 느껴졌다. 그를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그의 건강과 정신력에 놀라 마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삶 속에 100년 세계 역사의 명암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란 참으로 드문 일이다. 선우 박사는 모태 신앙 기독교인이면서도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학구파로 평생 연구와 가르침을 하면서도 사업을 하였고 모은 재산으로 2006년 ‘선우평화기금’을 만들어 여러 통일운동 단체에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그의 삶의 범위가 참으로 넓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격동하는 조국의 근대사의 중요한 현장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박사님은 일 세기 동안 코리아, 일본, 미국 샌프란시스코, 체코, 다시 미국에 와서 미주리주에 살다가 은퇴 후 로스 엔젤레스에 와서 살고 있다. 그는 이렇게 동서 대륙을 이동하며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여 살며 일제의 만행, 유신독재의 탄압, 2차대전, 매카시 선풍 등 정치적 풍파를 목격하고 그들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그렇게 100년 근대사를 살아오면서 잘못된 역사를 바꾸려는 공동체의 요청이 있을 때 그는 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코리안을 행복하게 할 조선독립, 민주화, 통일과 평화운동을 이끌어 왔다.

 

박사님은 아버지를 잃고 청소년기를 조선에서 보낸 후 일본에 유학하여 조선 독립을 지향하는 학생운동에 가담하였고 미국에서 유학과 교편생활을 하면서 유신반대 운동, 김대중구출운동, 북과 기독교의 만남 주선, 통일운동 등 조국의 발전을 위한 그의 행보에는 이념이나 제도에서 제한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코리안들뿐만 아니라 주류 미국인들에게도 조국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바꾸고 제대로 보고 행동하도록 영향을 주었다.

 

그의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 중의 하나는 1994년 남북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전쟁 임박설로 코리안들이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카터 전 대통령을 설득하여 김일성주석을 만나게 하여 전쟁을 막은 것을 들고 있다.

 

기자는 박사님의 일생을 그린 그의 저서 “아리랑 그 슬픈 가락이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어머니에 관한 질문을 많이 하였다. 박사님의 공적인 사회 활동이야 여러 언론매체에서 보도하여 많이 밝혀져 있지만, 청상과부 어머니와 이별하고 수십 년을 이산가족으로 살아온 박사님은 어떤 심정으로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박사님 어머니는 삼일운동으로 하늘 같은 남편을 잃었다. 어머니에게 남겨진 어린 아들은 남편이  떠나고 없는 힘든 세상에서 삶을 지탱시켜 주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였지만 삶의 짐이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재혼도 하지 않고 하숙업으로 생계를 이으며 이 아들을 키우며 공부시켰다. 어머니는 아들의 공부를 위하여 일본으로 갔으나 아들이 가담한 학생그룹이 일본 경찰의 주목을 받고 아들도 위험에 빠진 것을 알고 80달러를 마련하여 아들을 미국으로 보냈다. 공부하여 조국을 위한 일을 하라고 당부하며 20년 동안 그녀의 세상 전부였던 아들과 그렇게 헤어져야 했다. 코리안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는 혼자 북으로 돌아갔다.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어머니에게 신앙은 남편과 아들을 대신해주는 그리고 의지하며 아들의 안녕과 성공을 비는 대상이었고 그녀에게 아들과 만날 희망을 담보해줄 수 있는 새로운 하늘이었다. 그러나 미루어 짐작하건대 사회주의 조국에서 그녀에게 지금껏 그녀가 의지하던 신앙 형태를 지키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귀국 초기에 많은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남편과 사별 후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도 생이별하고 신앙의 혼란을 겪은 여인의 생은 어땠을까? 그런 어머니를 만나지 못한 채 이역만리에서 학업을 위하여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학비를 벌며 생활한 박사님의 내면의 삶은 어땠을까? 조국의 비극이 곧 자신의 비극이 되어 가시밭 같은 생의 길을 가야 했던 여인을 어머니로 둔 이산가족 선우 박사님도 그 비극에서 제외될 수 없었지만, 그는 숙명적인 비극을 극복하고 승화시켜서 새로운 삶의 경지를 개척한 인간승리의 표본이자 미주 이민자들의 훌륭한 모델이 되었다. 

 

박사님이 어머니의 서거 소식을 듣고 평양에 있는 묘소를 찾아간 것은 1980년이었다. 평생 아들을 위해 헌신하고 아들의 안녕과 성공만을 바라며 살다 가셨을 어머니, 조국의 허리에 쳐진 장벽에 막혀 어머니를 생전에 찾아뵙지 못하였던 죄 많은 96세의 아들의 마음엔 장마당의 혼란 속에서 엄마 손을 놓쳐서 혼자가 되어버린 어린아이의 절박함과 어머니 앞에 성공한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한 미안함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감정들을 속으로 삭이며 새로운 희망으로 녹여내야만 했다. 그는 어머니의 고통이 그리고 자기의 슬픔이 곧 조국의 고통이자 슬픔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라가 잘못되면 국민들이 고통당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 ‘조국을 위해 일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고 살았고 유능하고 존경받는 조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리고 그는 누구에게나 인간의 도리를 지키려고 애쓰며 살았기에 그는 주변 모두에게 존경받는 이웃이 되었다. 

 

또한, 그는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하여 지금껏 달려왔다. 조국을 더 잘 알고 조국을 남에게 제대로 알리는 일이 통일의 길이라 생각하며 많은 사람에게 조국을 방문하게 하고 남, 북 그리고 해외의 학자들, 종교인들과 정치가들의 만남을 주선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통일운동도 돈이 드는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는 통일운동에 그의 재산을 아낌없이 바쳤다. 그는 자기의 전 삶을 통하여 코리안뿐 아니라 미국인들에게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깊이 생각하게 했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인생의 선배이며 통일운동의 선배라는 생각에 머리를 숙였다.

 

박사님과 헤어질 때 아들에게 가슴 찢어지는 이별의 아픔과 눈물을 감추며 “조국을 위해 살라”고 당부하시며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을 어머니의 모습이 상상이 되어 가슴이 찡하였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06-10 14:24:12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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