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중에서도 북의 동포들 걱정하는 홍문재 여성회장 > 인물소개

본문 바로가기

본회는 동포들의 북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돕고자 북녘 매체들의 글을 "있는 그대로" 소개합니다. 이 글들이 본회의 입장을 대신하는 것은 아님을 공지합니다. 


인물소개

병 중에서도 북의 동포들 걱정하는 홍문재 여성회장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6-04 14:40 댓글0건

본문

중에서도 북의 동포들 걱정하는 홍문재 여성회

 

편집국 장선인 기자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편집국 일군이 6월 1일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조국통일북미주협회(통협)와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여성분과위원장으로 그리고 우리여성회 회장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뇌 신경장애로 캘리포니아 테하차피 자택에서 남편의 도움을 받으며 요양 중인 홍문재 전 회장과 대담하였다.

 

 

홍회장이 사는 테하차피는 LA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반 정도 걸리는 모하비 사막의 오아시스로 해발 4000피트 고지대이고 인구 14,000명이 사는 조용한 마을이다. 바람이 많은 곳이라 마을 가까이 다가가자 주변 산 위에는 수백 개의 대형 풍력 발전 풍차가 바람을 맞아 쉴새 없이 돌고 있었다.

 

산을 좋아하는 홍회장은 이곳에 이사 와서 처음엔 자주 등산을 하였지만, 요즘은 거동이 불편하여 보행기에 의존하여 걷고 앉을 때와 설 때는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다. 

 

홍 회장은 1970년 남편, 홍순호 장로와 미국에 이민 와서 봉제 공장을 경영하며 2남 1녀를 키웠고 자녀 모두 전문직에 종사하며 손자 손녀가 모두 8명이다. 그리고 홍 회장은 선한사마리아인 교회(담임목사: 홍동근)에서 부부가 함께 수년 간 장로로서 성심을 다해 봉사하였다. 또한, 홍회장은 집을 찾아온 방문객에게 늘 집에서 키운 닭과 채소로 정성스럽게 밥을 해서 먹였을 뿐만 아니라 돌아갈 때는 꼭 직접 생산한 계란, 채소, 과일, 그리고 김치나 밑반찬을 싸주어서 누구도 빈 손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았다. 통일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누나나 어머니처럼 따뜻한 분이었다.

 

다음은 홍회장과 한 대담 내용이다.

 

정: 1989년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제에 맞춰 북을 처음 방문하셨을 때 느낌이 어땠어요?

 

홍: 그때까지도 많은 사람이 북을 방문하면서 유서를 써놓고 갈 정도로 사람들이 뭘 모르고 북을 위험시할 때였어요. 북이 완전히 폐쇄된 나라라고 들었는데 약 180개국에서 대표단을 파견할 정도로 많은 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것에 놀랐고 외국에서 2만 몇천 명이 참석한 큰 국제 대회를 작은 불상사 하나 없이 거뜬히 치러 내는 것에 감동했어요. 그동안 반북 거짓 선전에 내가 속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손전화도 없었던 때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런 큰 행사를 어떻게 그렇게 순조롭게 치렀나 싶어요.

 

정: 그때 임수경이 방북했을 때였군요.

 

홍: 그랬지요. 이남의 전대협에서 파견한 임수경이 왔다는 소문을 들은 평양시민들이 길에 몰려나와 임수경의 손 한번 잡아보려고 하는 바람에 한참 동안 길에서 차가 움직이지 못했어요. 그때만 해도 남쪽은 더했지만, 미국에서도 통일이란 말만 해도 빨갱이라는 소릴 들으니까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북에서는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통일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남과 북이 통일에 대한 관점과 교육의 차이가 크다는 걸 느꼈어요. 임수경은 통일의 꽃이라 불리웠고 그녀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어요.

 

정: 매스게임도 보셨겠군요. 어땠어요?

 

홍: 5.1 경기장에서 벌이는 카드섹션과 매스게임을 본 감동을 잊을 수가 없지요. 수만 명의 학생이 배경이 되어 카드로 글과 그림을 쉴 새 없이 만들어 내고 아래 바닥에서는 수천 명이 춤을 추는데 그런 공연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잖아요. 순서가 바뀔 때 수천 명이 나가고 또 수천 명이 새로 들어오는데 들고 나는 것이 보이지 않고 바로 새 공연이 펼쳐져요.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두 놀라서 입을 다물 줄 몰랐어요. 

 

정: 자본주의 나라, 미국에서 온 동포들을 북에서 어떻게 대하던가요?

홍: 북의 동포들은 모두 친절했고 적국에서 통일운동하느라 고생한다며 우리에게 잘 해주려고 무척 애썼어요. 통일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장: 북을 지원하는 ‘우리여성회’를 시작하셨다고 들었는데 그것을 만들게 된 이유와 활동을 좀 소개해 주시겠어요?

 

홍: 북은 1995년과 96년 두 해 연거푸 유례없는 큰물 피해로 식량 사정이 어려웠어요. 소련과 사회주의 동유롭이 무너지고 미국의 방해로 무역이 순조롭지 못해서 경제가 무척 어렵고 굶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는 소식에 가만있을 수만 없었어요. ‘우리여성회’는 김영순을 총무로 하고 이예자 진경자와 함께 동포들에게 다가가서 북의 어려운 사정을 설명하고 성금을 받아 북을 돕자는 취지로 시작했어요. 4년 동안 해마다 여성대표를 북에 보내서 구호금을 전달했고 어려움에 부닥친 북의 동포들을 격려하려 했어요.

 

정: 북을 드나드시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

 

홍: 북을 방문하니 북의 동포들이 참 순수하고 근면하고 자존심이 강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남쪽의 선전에만 익숙해서 북을 잘못 보는 동포들에게 북의 이러한 진실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돼서 좋았어요. 그리고 ‘우리여성회’ 이름으로 그들이 어려웠을 때 작은 힘이나마 보탤 기회를 가진 것도 참 다행이었어요.

 

정: 방북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홍: 식량 배급이 잘 안 돼서 김일성대학도 문을 닫았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우리 방문단을 위하여 강의하러 온 마른 체격의 교수 한 분이 강의하고 시를 읊었어요. 조국 사랑과 희망을 얘기하는 내용인데 그의 진지하고 순수한 마음에  끌려서  눈물이 났고 나는그의 그런 모습에 매료되었어요. 생각해 봐요. 시골에서야 풀이라도 있지만 도시 사람이 배급을 못 받으니 모두 배는 얼마나 고팠겠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그렇게도 조국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시를 낭송할 수 있다니! 얼마나 감동이 되던지 난 미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그선생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다음 방문 때 그와 연락을 하고 싶었는데 잘 안되었어요. 북쪽 사람은 모두 노래를 잘 하고 시도 잘 읊는 참으로 멋있는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 모두 잘살아야 해요.

 

정: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은 없었나요?

 

홍: 사람들이 담배를 자주 피우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여성 방문단 회의장에도 어김없이 재떨이들이 있길래 다 모아서 치웠지요. 갈 때마다 몇 번 그렇게 했더니 지도원이 알아차리더군요.

 

정” 요즘 북에서 경제사정이 호전되어서 인민생활이 나아지고 젊은 지도자로 인해 사회 전반에 변화가 일고 있다는데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홍: 경제사정이 나아졌다니 참다행이지요. 우선 식량문제가 해결돼서 인민들이 배고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데, 생활이 여유롭길 바래요. 모두 머리가 좋고 근면하니까 그렇게 될 거예요.

 

정: 통일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홍: 우선 북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바로 알아야 해요. 많은 사람이 북에 대해서 잘못된 정보를 갖고 말을 해요. 또 어려울 땐 무조건 도와야 해요. 서로를 제대로 알고 어려울 때 서로 도우면 통일이 다 된 거지요 뭐.

 

정: 통일운동하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홍: 해야할 일이 있으면 절대로 내일로 미루지 마세요. 내일이 안 올 수도 있어요. 내가 몸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나요.? 나는 뭔가 더 하고 싶어도 몸이 말을 안 들으니 할 수가 없잖아요. 통일되면 우리가 더 떳떳하고 잘 살 수 있잖아요. 서로 힘을 합쳐서 통일도 하고 행복하게 살아야지요.

 

 

가족들과 함께

 

          왼쪽: 우리여성회 회원 이예자                                   오른쪽: 우리여성회 회원 김영순

 

홍회장님은 진정어린 목소리로 힘주어 말씀하시면서 내 손을 꼭 잡아주시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후배를 향한 홍 회장님의 사랑이 잡은 손의 온기를 통해 나의 마음으로 옮겨졌다. 홍 회장님께서 뇌 신경장애로 말씀은 느렸지만 후배인 나에게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뭔지를 많이 생각하게 해주셨다.

 

회장님은 요양 중에도  조국이 잘 되길 기원하시며 북의 어려운 동포들이 이제는 허리가 좀 폈는지 걱정하셨다. 그 모습에서 어떤 어려움도 풀어줄 것 같은 친정어머니를 만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미주 여성들에게 언제나 자랑스러운 회장님이시고 인생과 통일운동의  훌륭한 길잡이이신 홍문재 회장님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은 멀어도 피곤하지 않았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06-04 16:48:01 새 소식에서 복사 됨]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인기게시물
조중통 논평, 일본은 해외팽창을 노리고 있다.
코리아의 평화번영통일을 위한 2019 세계동포대회 개최
조미실무회담의 전망 - 조선의 승리는 확정적이다.
북극성, 조선이 통채로 우주에 올랐다.
핵 폐수의 바다방류를 막아야 한다
주체를 강화시키는 길밖에 없다.
[북 여행기] 재미동포 교사 이금주의 따끈따끈한 북이야기(3)
최근게시물
[데스크 칼럼] 혁명보다 개혁이 어려운 이유
주석님과 성구속담(2)
자강도, 량강도에도 과일향기/우량품종개발로 온 나라에 과일대풍을
김정은위원장, 시대적요구에 맞게 본보기를 창조한 경성군 농장과 양모장 현지지도
[사진으로 보는 노동신문] 10월 18일(금)
[제목으로 보는 노동신문] 10월 18일(금)
유투브로 보는 조선중앙텔레비젼 보도 10월 17일(목)
[연재] 주석님과 성구속담(1)
로동신문,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승리를 향하여
주한미군 주둔비 지원금 인상의 9가지 문제점
조선은 과연 비기독교적인 나라인가?
[사진으로 보는 노동신문] 10월 17일(목)
Copyright ⓒ 2000-2019 KANCC(Korean American National Coordinating Council). All rights reserved.
E-mail:  :  webmaster@kanc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