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에서 ‘쌍룡훈련’이라는 대규모 한미합동 북한상륙훈련이 전개되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근방에서 북의 포사격 훈련과 남의 대응사격이 벌어졌다. 이런 긴장 상태에서 미국은 북에 ‘위험한 도발 중단’을, 중국은 ‘유관 당사국의 냉정과 절제’를 촉구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에서 인도적 문제 해결, 민생인프라 건설, 동질성 회복의 ‘평화통일 기반 구축 3대 제안’을 내놨다. 북은 ‘반민족적 체제통일’을 추구한다며 민간교류협력조차 가로막으면서 ‘지원’, ‘공동번영’, ‘동질성 회복’이냐고 비난하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계절의 봄은 왔으나, 민족의 봄은 멀기만 하다.
<통일뉴스>는 1970~80년대 대학교수로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앞장서고 1993년 김영삼 정부의 통일부총리, 2004년~2007년 노무현 정부의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거쳐 지금도 시대의 은사로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줄기차게 헌신하고 계시는 한완상 선생님(1936년생)을 찾았다.
1990년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북관계와 한반도상황, 그리고 평화와 통일의 길에 대한 고견을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3월 28일 오후 4시 압구정동 선생 댁에서 정성희 <통일뉴스> 기획위원이 진행했다. /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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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는 인터뷰 내내 소박하지만 오랜 경륜에서 나오는 무게감으로 남북문제와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
□ 정성희 소장 : 선생님,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요?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이번에 감기를 2주 앓아보니까 아 이제 내 건강의 한계가 오는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번 독감은 지독했어요.
분단 70년의 고통, 못 느끼는 사람들 많아 더 아프다
□ 정성희 소장 :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내년이 분단 70주년이 되잖아요? 나이가 드니 분단 70년이 빚어낸 민족의 부당한 고통이 더 아프게 느껴집니다. 내가 살아온 기간이 일제시대와 분단시대이잖아요? 식민지가 끝나고 광복을 체험해야 하는데, 내 평생에 한 번도 그러질 못했습니다. 8.15기념식을 할 때마다 광복이요 해방을 맞은 것처럼 다들 기뻐하지만, 나는 한 번도 기쁜 적이 없었어요. 오히려 더 쓰라린 마음, 해방되지 못한 아픔을 느꼈는데,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하네요.
내년이면, 분단 70년입니다. 혼란 5년, 열전 3년, 냉전 62년 엄청난 아픔을 겪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아프게 해요. 왜 이렇게 된 건지, 그 이유를 생각하면 더 화가 납니다. 분단의 유지 강화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냉전 근본주의자들이 남북 다 같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어 그런 것 아닌가 싶어요. 냉전 원리주의자들이 남과 북의 정권을 차지하고 있으면 불가피하게 남북관계는 어려워지니까요.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역설적으로 체제내의 권력기반은 강화됩니다. 이런 것이 나를 슬프게 하지요. 어떻게 이런 적대적 공생관계의 고리를 끊고 부당한 민족의 고통을 인식하고 극복해 나갈 건가 고민입니다. 요즘 주로 강연으로 소일하고 있는데, 이런 주제로 얘기합니다.
젊은이들, 역사건망증을 치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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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의 은사로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줄기차게 헌신하고 계시는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와의 인터뷰는 3월 28일 선생의 자택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
어제도 서울대에서 강연했는데 어느 여학생이 놀라운 질문을 했어요. 선생님, 왜 북한과의 관계가 꼭 좋아야 합니까? 북한도 남한도 그냥 따로 살지 통일이 왜 그렇게 절박합니까? 그래서 내가 여러분들, 역사건망증에 심하게 걸렸구나. 쉬운 말로 한쪽 팔이 묶이고 한쪽 팔로만 권투시합을 해서 늘 져오다가 요즘 이기기 시작한다. 경제가 중진국, 문화 선진국, 정보 최선진국으로 올라가고 있다. 양쪽 팔을 다 사용하면 얼마나 큰 경쟁력을 가지겠는가, 문화민족으로서의 창의력을 전 세계에 떨치겠는가. 이런 거 아쉽지 않냐? 식민지 36년, 분단 70년이 억울하지도 않느냐? 라고 했어요. 그런데 젊은 학생들에게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잘 와 닿지 않는다는 거죠.
□ 정성희 소장 : 제가 6.15 이전인 1999년 8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노동자축구대회에 참여하고 6.15 이후 2000년 10월 북측이 초청한 각계 인사 43인과 함께 방북한 적이 있습니다. 첫날 저녁 만찬장에서 사회를 맡아 "이 분이 통일부장관을 좀 더 오래하셨으면, 지금의 6.15시대가 훨씬 빨리 왔을 것"이라며 방북 단장이었던 선생님을 소개한 기억이 납니다만, 김영삼 정부 들어 1993년 2월부터 12월까지 짧게 부총리 겸 통일부장관을 하신지 21년이 지났습니다. 한반도 위기상황을 헤치고 이인모 비전향장기수 북송 등으로 남북관계의 물꼬를 텄는데, 당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개괄해주시지요.
따뜻한 흐름과 차가운 흐름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최근 출판한 책 <한반도는 아프다>에 자세하게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다 얘기할 수는 없고요.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할 당시, 그 이전과 그 이후에도 두 가지 흐름이 있었습니다. 따뜻한 흐름과 차가운 흐름이 그것인데요.
노태우 정부는 세계적 탈냉전 분위기에 적극 대응해 1988년 7.7선언 이후 교차승인을 추진하고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한반도 비핵화 선언까지 끌어냈습니다. 특히 1992년 지금의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의 전신인 팀스피리트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시켰습니다. 이건 대단한 결정이었어요. 당시 그레그 주한 미 대사가 한반도 상황을 잘 이해하고 대북관계 조정에 힘을 썼습니다. 그레그 대사가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도 관계가 좋았거든요.
이런 따뜻한 흐름 속에도 차가운 흐름이 살아있었어요. 1992년 가을쯤으로 기억되는데, 미국이 1993년부터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한 거예요.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바뀌었는지 궁금했는데, 작년에 그레그 전 미국대사가 방한해 대담하면서 한번 물어봤어요.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면서 당시 아버지 부시 행정부의 국방부장관이었고 나중에 아들 부시 행정부의 부통령으로 막강한 네오콘 실세였던 딕 체니가 바꾸었다는 거예요.
당시 노태우 정부 인사들은 그 이유를 잘 모르고 있었고 그냥 미국 방침에 순응한 것 같아요. 이런 차가운 흐름을 노태우 정부의 냉전세력들이 고약하게 이용하려 했습니다. 92년 9월 평양에서 개최되는 8차 남북고위급회담 과정에 대통령의 훈령을 조작하는 사건까지 발생하게 되니까요.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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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낫지 않다’며 민족 당사자 원칙에서 과감한 대북정책을 천명했습니다. 북쪽의 좋은 반응이 있었지요."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
당시 나는 김영삼 대선캠프 정책팀에 있으면서 이런 차가운 흐름을 걱정하다가 당선 이후 대통령 취임사 초안 작성팀을 맡았지요. 차가운 흐름이 새 정부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못을 박기 위해 취임사에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낫지 않다’며 민족 당사자 원칙에서 모든 남북현안을 해결하자는 과감한 대북정책을 천명했습니다. 북쪽의 좋은 반응이 있었지요.
1993년 3월 2일 부총리 겸 통일부장관에 임명되어 대통령과 독대하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법전 식으로 대응하면 민족이 서로 상대방을 병신으로 만듭니다. 남이 북보다 GDP 14배이고 정치적 인도적 힘이 훨씬 우세합니다. 북이 남을 한대 치더라도 껴안을 수 있는 힘이 있지 않습니까. 자신감을 가지고 포용정책, 햇볕정책을 취해야 합니다. 과거 군사정권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듣기만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보다 구체화해서 대북정책 변화의 강력한 신호로 노태우 정부시절부터 이미 현안이 되었던 이인모 비전향장기수 북송 얘기를 꺼낸 거예요. 인도주의 차원에서 조건 없이 보내자고 진언했지요.
그런데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만, 93년 3월 11일 오후 이인모 씨 북송 허용을 발표한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3월 12일 오전 10시 북이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사에 감동했다고 확인되었는데, 그렇다면 왜 팀스피리트 한미합동훈련 재개에 반발하는 북한 군부 강경세력을 관리하지 못했을까. 나는 그 때 아들 김정일에게 군사력 통제 권한을 넘긴 김 주석이 힘이 없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해가 안 되었어요.
핵 가진 자와는 악수를 하지 않겠다?
일단 핵문제가 국제사회의 초점으로 부각되니 북을 옥죄어야 한다는 냉전수구세력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전통적인 냉전대결정책으로 회귀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겁니다. 김영삼 대통령 주변의 냉전적 사고를 가진 핵심인사들이 저 같은 햇볕정책론자들을 많이 제약했지요. 대통령도 날로 보수화되어 갔어요. 그 연장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핵 가진 자와는 악수를 하지 않겠다’고 한 겁니다. 당시 이경재 청와대 대변인에게 그 문장이 들어가면 남북관계가 공식적으로 어려워진다고 몇 차례 설득했지만 잘 안되었습니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은 클린턴 미 행정부의 북미협상 일괄타결 추진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매우 경계하는 거예요. 93년 10월 말 레이니 미 대사가 부임하여 환영식을 하는데, 친구로서 당연히 가야하는 나를 못 가게 할 정도였어요. 레이니 대사는 한국 민주화를 많이 지원하고 역대 주한 미 대사 가운데 평화 신념이 가장 강한 친한파 인사였거든요. 미국이 일괄타결을 위해 북과 협상하는 데 대통령 주변은 속이 상한 것 같아요. 그럴 일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레이니 대사를 활용해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평화 실현을 위한 좋은 정책을 펼 수 있는데 기회를 놓치더라고요.
레이니 대사는 임기 중 어느 강연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평화 실현을 위해서는 대북 군사억제력을 넘어서야 한다는 파격적인 얘기를 했어요. 역대 미 대사 중에서 가장 좋은 친구인데, 그 인적 자원과 관계를 활용할 줄 모르는 대통령에 가슴이 아팠고 대통령을 그런 방향으로 이끈 청와대 참모들에 실망했습니다.
94년 6월 미국의 영변 정밀폭격 검토로 인한 한반도 전쟁위기가 고조될 때도 게리 럭 주한미군 사령관은 전면전의 경우 며칠 사이에 약100만 이상의 인명손실, 10억 달러 이상의 전쟁비용이 든다며 전쟁은 현명한 길이 아니라고 워싱턴에 보고했습니다. 럭 대장의 이런 입장도 매주 1회 정기적으로 그와 대화를 가진 레이니 대사의 숨은 노력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1994년 전쟁위기 극복과 북미 제네바합의 파기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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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이 시대 역사적 전환을 인식해야 한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
그래서 클린턴 대통령도 너무 비싼 전쟁이란 걸 알게 되고 레이니 대사의 주선으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 극적 타결을 봅니다. 카터 방북에 대해 클린턴도 처음에는 달가워하지 않았고 김영삼 대통령도 반대 입장을 전달했어요. 김일성-카터 담판을 계기로 분위기가 급반전되어 94년 7월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되었는데, 불행하게도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또 다시 냉전의 광풍이 불었습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94년 10월 북미 제네바합의가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도 김영삼 정부가 반대하는 가운데 레이니 대사가 그 성사를 위해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북미 제네바합의가 지켜졌더라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모두 순조롭게 진전되었을 것입니다. 흑연감속로의 경수로 대체, 원자로 가동 중단과 중유 제공, 북미관계 정상화, 대북 위협 및 핵무기 사용 중단 약속 등. 그러나 미국이 핵무기 탑재 한미연합훈련 지속 등 중유 일부 제공 이외 거의 합의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합의서에 로켓 발사 금지와 우라늄 농축 시설 가동 중지 같은 내용은 없었는데도 이후 이를 문제 삼았습니다.
그러자 북한도 비핵화를 더 진행하지 않고 2003년 1월 다시 NPT탈퇴를 선언하고 핵시설을 재가동시킵니다. 미국과 한국의 냉전 근본주의자들이 합작으로 제네바 합의를 뒤엎은 거지요. 심지어 2001년 등장한 조지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을 “this man”(이 자, 이 사람, 이 놈)이라 지칭하는 등 냉전적 태도를 드러내며 햇볕정책을 강하게 부정합니다.
□ 정성희 소장 : 작년보다는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올해도 핵잠수함이 부산항에 입항하고 포항에서 '쌍용훈련'이라는 북한 상륙작전을 포함한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 말로는 방어적 정례적 성격이라지만, 북침을 가상한 대규모 한미연합 전쟁연습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응해 북도 수십 발의 방사포, 로켓에 노동미사일까지 시험 발사하여 긴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또 미국은 유엔인권보고서 발표를 계기로 북을 '악'이라며 북 핵 폐기의 진정성 있는 조치를 6자회담 재개의 전제로 삼는 등 여전히 강경한 대북정책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고 계십니까?
동북아, ‘극동’이 아니라 ‘본동’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한반도 상황은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봐야 합니다. 서구제국주의의 힘이 전 방위로 뻗어갈 때는 우리가 사는 동북아는 그야말로 극동, 동쪽 구석이었지요.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 세계의 중심부가 극동으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군사적으로 미 핵잠수함의 60%, 항공모함 10개 중 6개가 이쪽으로 집결하고 있어요. 경제적으로도 G1 G2 G3가 모두 아시아-태평양에 있습니다. 한국, 싱가포르, 홍콩 등 문화 창의력이 분출되는 나라들도 태평양 연안에 있어요. 그래서 나는 ‘극동’이 아니라 ‘본동’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해가 떠오르는 곳, 역사의 오리엔테이션이지요.
동아시아의 주요 모순은 G1과 G2,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고, 부차 모순이 G2와 G3, 중국과 일본의 갈등, 그리고 남과 북의 갈등입니다. 나는 주요 모순이 해결되지 않으면 부차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 경제적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성숙시키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중국의 시진핑은 이를 원하고 있는데, 미국의 오바마는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전략으로 동아시아의 패권을 강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유럽이 반발하니까 최근 유럽과 아시아의 ‘재균형’으로 조정하고 있습니다만, 세계가 아시아를 축으로 돌아가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전환을 인식하지 못하고 미시적으로 대응하면 큰일 납니다. 미중갈등은 또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해묵은 갈등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냉전체제가 허물어지기 전에는 미소갈등이 있었지요. 소련도 대륙세력이었죠. 그러나 소련, 러시아보다 우리와 역사적으로 더 깊은 관계에 있는 중국이 주요 모순의 당사자로 등장하여 우리에게 심각한 선택의 어려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미갈등 조정해야 평화통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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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해야 민족갈등을 해소하고 민족화해를 이룰 수 있을까. 그의 고민이 닳아 헤진 옷소매마냥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
이런 환경에서 우리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미소냉전 질서에서는 한미일 삼각동맹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무조건 미국은 혈맹이었고 소련은 주적이었으니 선택의 고민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한중수교 23년 동안 다방면의 전략적 협력관계가 강화된 지금, 중미갈등 속에서 우리의 선택은 굉장히 어려워진 것입니다. 대륙세력이고 G2인 중국과의 관계가 엄청나게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서울과 북경의 거리가 서울과 워싱턴의 거리와 같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00년간 경험하지 못한 일이예요.
에피소드 하나 소개할까요. 김영삼 정부 초기에 주중 대사 황병태, 주미 대사 한승주, 주러 대사 김석규 등 주요국 대사 내정자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해 문민정부 하에서 대사로 가시는데, 여러분이 가는 나라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했던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입니다. 군사정부 때처럼 인권탄압으로 현지 정부에 설명해야 하는 곤혹스런 일은 앞으로 없을 것입니다. 이제 시장개척, 문화협력 등 자랑스럽게 외교를 펼쳐주세요 라고 당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황병태 주중대사 내정자가 아주 좋은 말씀입니다. 서울-북경 거리와 서울-워싱턴 거리는 같아야 합니다고 말했지요. 그런데 어떻게 된 연유인지 그 다음날 조간신문에 가십기사로 나와 황 내정자가 되게 두들겨 맞았어요. 어디 감히 혈맹인 미국을 중국에 비교하느냐는 식이었지요. 그 때 정서는 그랬어요.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중국이 더 가깝다고 생각하지요.
이제 서울-북경이 서울-워싱턴보다 가깝다
박근혜 정부가 중미갈등 속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는 자명합니다. 감상적 통일지상주의자나 진보적 이상주의자의 발상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얘기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냉전적 한미일 삼각동맹 부활 움직임에 대해 ‘노’라고 해야 합니다.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위해 삼각동맹에 가담하면 안 됩니다. 미국과 중국이 전략적 동반자관계, 신 대국관계로 발전 승화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정책을 권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당히 주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해주길 바라면서 이번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담을 유심히 살펴봤는데 정말 염려스럽습니다. 광복 70년, 이전 정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만, 지금은 주체적 외교역량을 보여줄 때입니다. 미국 오바마는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전략에 따라 냉전 삼각동맹을 부활하려 하고 있어요. 공화당은 민주당정부가 대신 대중 봉쇄를 취하니까 기분 좋은 거지요. 한국 안에도 냉전수구세력이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한미일 냉전 삼각동맹 부활 움직임에 일본 극우화라는 변수가 등장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전에는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그냥 따라 갔는데, 지금은 미국이 대중 견제를 위해 일본의 지위를 높여 활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승인하고 아베 신조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게 바로 그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 같은 일본 군국주의를 반대하는 강력한 국민 정서라는 자원을 활용해 한미일 삼각동맹 부활을 조절, 관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 문제를 대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에 큰 문제가 없었으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과거 행적으로 볼 때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일본 군국화를 막는 동시에 냉전 삼각동맹을 넘어서는 새로운 외교정책을 선택해야 합니다.
냉전 삼각동맹 넘어서는 새 외교 선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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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뢰를 얘기한 측에서 먼저 상대방이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
□ 정성희 소장 : 크림반도 사태로 미국의 아-태 중심 전략의 조정은 없을까요? 박근혜 정부가 러시아 크리미아 합병을 규탄했는데, 한국의 현명한 대 러시아 입장은 무엇입니까?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러시아의 크리미아 자치공화국 병합으로 미국의 전략에 미묘한 변화가 보입니다. 오바마가 나토 회원국에 국방비 증액을 요청했습니다. 미국은 재정위기로 국방비를 늘릴 수 없으니. 서쪽은 안심하고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으로 동쪽을 걱정했는데, 이거 안 되겠구나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의 또 다른 지역으로 확산을 막기 위해 서쪽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이죠. 중심축이 2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좀 더 여유를 갖게 될지 모르겠고 러시아를 봉쇄하는 미국이 아니라 같이 봉쇄당하는 러시아를 은근히 편들 것입니다.
러시아의 크리미아 합병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규탄은 미국의 주문에 따른 것이지만, 통일대박이나 유라시아 구상의 실현을 바란다면 러시아를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가 없습니다. 때마다 미국의 강권에 순응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위해 신중해야 합니다.
워싱턴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팀이 우리 외교부에 없는 것 같아요. 창의적으로 논리를 세워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외교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북 영변에서 사고 나면 체르노빌 몇 배의 재앙이 온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헤이그 발언은 매우 부적절한 것입니다. 러시아의 아픈 곳을 찌르고 남북관계에도 도움이 안 되는 말이지요.
신뢰 얘기한 측이 먼저 상대가 신뢰할 수 있는 조치 취해야
□ 정성희 소장 : 한미합동훈련 기간인데도 이산가족 상봉을 마쳤지만, 남의 정례화 회담 제안에 북이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는 반응입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유럽 순방 중에 북 핵 폐기 국제공조 입장을 취하고 기독교탈북자연합회 등이 대북 전단을 살포하니 대통령을 실명으로 비판하고 상호 비방 중단 합의 위반이라고 문제제기하고 있습니다. 향후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프로세스’가 북한으로부터 신뢰를 못 받고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뢰를 얘기한 측에서 먼저 상대방이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친구끼리도 그렇고 상거래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물며 민족문제인데. 상대방에게 먼저 신뢰를 보이라고 요구하는 ‘신뢰프로세스’이니 참 이상하다 싶습니다.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오늘 이 시점에서 북이 남의 ‘신뢰프로세스’를 왜 불신하는지를 먼저 성찰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주의해야 합니다. 첫째, 북한이 굉장히 중시하는 그간의 남북합의를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특히 남북정상간 합의, 즉 6.15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합의내용을 각론화, 프로그램화하여 진행하자고 회담을 제안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한 번도 이런 제안이 없었고 오히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통일부가 10.4선언의 절반을 무효화했어요.
둘째, 국제사회에서 핵문제를 갖고 북한을 옥죄는 국제공조에 매달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보인 모습도 북을 옥죄는 것이었죠. 그러면 북한 입장에서는 남북합의도 안 지키면서 국제적 고립에 앞장선다고 보지 않겠어요? 신뢰가 생기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는 햄릿의 고뇌라도 보여야지요, 돈키호테의 확신이 아니라.
‘신뢰프로세스’ ‘통일대박’ 성공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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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중간중간 자료를 펼쳐 정확성을 기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
더구나 기독교 냉전 근본주의자들이 북이 매우 싫어하는 문구나 표현의 대북 비방 전단을 살포하니 신뢰가 생기지 않는 것이지요. 우리 사회, 우리 국가는 대의, 즉 평화 화해 통일을 위해 어느 정도 관리할 능력이 있는데도 구경만 하고 있어요. 대선에 댓글로 개입하면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왜 손 놓고 있는 겁니까? 최근 홍사덕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상임대표의 비료 지원 추진에도 당국이 가로막는 태도를 보였어요. 그래 가지고 북 당국이 신뢰하겠어요?
제가 적십자 총재로 있을 때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5차례, 화상 상봉 4차례 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과 함께 대북 비료 지원을 요청할 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생존권적 기본권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정부에 강력히 제기해 성사시킨 경험이 있습니다. 민화협이 앞장서 비료 지원하면 정부는 얼마나 좋습니까. 부담을 덜면서 신뢰를 높일 수 있고. 그런데 잘한다고 칭찬은 못할망정 방해해서 되겠어요? 남북관계 개선에 조금도 도움이 안 됩니다.
1998년 4월 북경 남북비료회담을 성공시키지 못한 김대중 정부의 실패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햇볕정책을 추진할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갖고 북측 대표가 ‘비료가 그리워 왔다’고까지 말한 비료회담이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시키면서 결렬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김대중 정부 초기의 DJP연합으로 냉전수구세력의 반발을 의식해 성공시키지 못한 것이죠. 이 회담이 결렬되면서 김대중 정부 2년 동안 남북관계를 하나도 진전시키지 못했습니다. 6.15선언은 2년 이후의 일이었고 그 귀한 2년을 헛되이 보낸 것입니다. 이런 사례에서 박근혜 정부는 배워야 합니다.
북 핵 포기하면 대규모 지원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술은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과 다름이 없어요. 물론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는 해야 합니다. 내가 적십자총재 시절 준공했던 12층 건물의 금강산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가 있어요. 박근혜 대통령도 미래연합 대표 자격으로 2002년 5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 등 7개 사항을 합의한 바도 있습니다.
일본 신 군국주의 막아내고 MD 편입 거부해야
□ 정성희 소장 : 재정위기를 겪는 미국은 집단적 자위권을 승인하는 등 일본의 지위를 높여 동북아 패권을 강화하려 하면서 한국을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으로 더욱 옥죄고 있습니다. 4월 23일경 방한하는 오바마 미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약(TPP) 가입과 한일군사정보협정을 강권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한국의 바람직한 대미 대중 대일 외교노선은 무엇일까요?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한일관계를 복원, 삼각동맹을 완성하기 위해 한일군사정보협정을 체결하라는 오바마의 권유를 박근혜 대통령이 받아들이면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는데 앞장서고 군국주의를 추구하는 이배 신조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일제식민지 36년의 고통을 겪은 우리 국민들의 정서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중국이 어떻게 보겠어요?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우리의 외교력을 동원해 미국이 한미정상회담에서 그런 요구를 하지 않도록 집중적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일본 내에서도 집단적 자위권의 합법화가 만만치 않습니다. 만일 아베가 계속 추진한다면 일본의 뜻있는 정치인, 시민사회, 언론계 등과 협력해 막아내야 합니다.
환태평양 동반자협정(TPP) 가입은 우리에게 이익도 있고 손실도 있는데 아마도 이익보다 손실이 더 커겠지요. 그러나 미사일방어(MD)체제 참여는 우리에게 전적으로 손실만 있고 백해무익합니다. 더구나 전시작전통제권을 재연기하는 대가로 MD체제를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재정이 어려운 미국은 한국의 전작권 재 연기 요구를 방위비 절감의 호기로 삼겠지요. 그러나 미국의 군사 전략가들은 한국의 이런 애걸복걸을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의 주한미군은 대북 억지력만이 아니라 전략적 유연성, 즉 미국이 분쟁지역에 신속히 개입하는 기동군의 역할을 갖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주한미군을 빼서 더 급한 곳으로 보내는 것이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이니까요.
미국 짝사랑 이제 그만, 전작권 돌려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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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우리는 자주외교를 펼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힘을 갖고 있습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
역사적으로 미국은 자신의 국가 이익을 위해 한반도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1905년 7월 태프트-가쓰라 밀약 때도 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조선에 대한 권익을 일방적으로 교환했어요. 1945년 8월 일본군 무장해제를 이유로 38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단시켜 전범국가인 일본이 겪어야 할 고통을 우리 민족에게 모두 전가했습니다. 그 때도 미국은 잔인할 정도로 우리를 무시했어요. 1950년 1월 애치슨 선언을 통해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는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남한을 제외시켰습니다. 그래서 한국전쟁을 유발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빌미를 제공했어요. 그 때도 미국은 우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도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이 우리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모르고 있는 거예요. 한마디로 짝사랑하는 거예요. 이제 넘어설 때가 되었어요. 미국의 새로운 세계군사전략을 이해하고 우리의 방위비 분담을 줄이는 방향에서 마땅히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아야 하며 MD체제 편입을 거부해야 합니다. 도대체 군사적 자주권이 없이 어떻게 자주독립국가라고 할 수 있겠어요? 원천적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 정성희 소장 : 노무현 정부는 균형외교를 표방했습니다만.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어떤 외교, 어떤 경로를 바탕으로 해야 합니까?
자주평화통일은 대박, 흡수통일은 쪽박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노무현 정부의 ‘균형외교’는 조금 빨랐어요. 독자적 힘을 갖추지 못해 균형자 역할이 어려웠고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조정자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느냐의 시험대가 2개입니다.
첫째,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막는 것입니다. 일본 군국주의 저지는 일본의 장기적 발전과 일본 국민에게도 이익이 되고 미국에게도 이익이 됩니다. 둘째,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강화하여 중미갈등, 즉 동아시아의 주요 모순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외교노선을 분명히 정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전시작전통제권을 재연기해 달라고 매달리는 사람들이 정부 안에 많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박론’이 자존심 있는 민족으로서의 자주외교를 보여주는 방향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렇게 가면 북한도 우리의 외교를 높이 평가하고 신뢰할 겁니다. 이제 우리는 자주외교를 펼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힘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평화가 있는 통일정책이라야 합니다.
지금 대박론은 평화가 없어요. 평화가 있는 통일로 들어서면 인구 7천만 이상의 엄청난 창의력을 가진 민족국가로서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다음으로 당장 G5로 도약합니다. 이건 분명 대박이죠. 이를 위해서는 대박론이 과정 없는 결과만 강조해서도 안 되고, 또 대박을 나눠야 할 북한을 존중하고 함께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향후 대박론을 구체화한 정책을 수립할 때 이렇게 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슈미트와 메르켈의 충고를 귀담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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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후 노학자는 편한 자세를 잡았다. 흡사 세상을 관조(觀照)하는 모습이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
흡수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쪽박입니다. 지난 3월 26일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통일대박을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주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라”고 충고했어요. 1993년 내가 통일부총리 할 때 한국을 방문한 독일 슈미트 전 총리가 우리를 본받지 마세요. 우리를 본받으면 큰 일 납니다. 지금 남한이 잘 살지만, 우리가 통일할 때 서독만큼 잘 사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통일할 때 동독은 공산국가 중에서 가장 잘 살았는데, 지금 북한은 가장 못 사는 나라 아닙니까, 라며 흡수통일의 엄청난 후유증을 설명했어요.
또 흡수통일은 불가능합니다. 설령 북에 급변사태가 일어나 정치와 행정의 공백이 생겨도 남한 이북5도위원회가 올라가 접수하는 상황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북한 내부는 말 할 것도 없고 중국과 러시아가 허락하지 않습니다. 해방 직후처럼 신탁통치가 이뤄질 가능성이 더 높아요. 또 북 급변사태 시 대규모 난민이 동해로 서해로, 만주 연해주 남한으로 오면 감당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겨우 2만 명 이상의 탈북자 관리도 못하면서 수백만 난민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습니까? 가령 동해를 통해 50만 명이 일본으로 간다고 할 때, 지난 70년간 재일동포들에게 시민권도 주지 않는 일본이 어떤 대접을 할 것 같습니까?
흡수통일은 대재앙입니다. 대박을 나누어야 하는 상대를 존중하면서 평화가 있는 통일로 나아가야 합니다.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도 민주진보인사들까지 포괄하여 국민의견을 광범하게 수렴하고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정책대안을 수립, 추진했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한 자문기관으로 전락시키면 통일대박이 실패할 것입니다.
□ 정성희 소장 : 북한체제의 안정성이나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정책기조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노벨평화상 수상자 오바마가 김정은 손잡고 빅딜해야 북핵 동결 및 이전 금지, 북미수교와 평화협정 체결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장성택사건 이후 북한에 위기가 올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종교사회학적으로 볼 때, 북한체제는 일종의 신정(神政)체제입니다. 외부 또는 내부의 위협이 생기면 더 결속하고 강화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장성택사건은 파벌간의 싸움이 아니라 책벌인 것 같고요. 처벌한 쪽이 더 강해져 김정은 체제는 더 단단해졌다고 봐야 할 겁니다.
김정은의 비전이 뭐냐.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를 벤치마킹하려는 것 같아요. 생김새도 비슷하게 보이려고 노력하고요. 할아버지가 생전에 인민들이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수준으로 경제를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지요. 할아버지는 사상강국, 아버지는 군사강국이니 경제강국은 자기 몫이라 생각하는 것 같아요. 대외관계를 안정시켜 경제발전으로 가야하는데, 핵문제가 불거져 막히는 것이죠. 핵을 가져야 미국의 핵공격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렛대는 중국도 러시아도 아니고 미국만이 갖고 있는 셈이지요. 미국만이 핵을 통한 군사적 억제력을 갖지 않도록 북한을 설득할 수 있어요.
그러므로 미국이 진정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면 김정은을 악마화하지만 말고 대화의 상대로 삼아야 합니다. 오바마가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긍지를 갖고 독수리가 참새의 손을 못 잡아줄 이유가 없습니다. 김정은의 손을 잡고 ‘경제강국을 만들려는 당신의 뜻을 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핵무기를 동결하고 핵물질을 더 이상 만들지 말며, 특히 핵연료든 핵무기든 이전 확산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 세 가지만 이행하면 당신이 요구하는 거 다 들어주겠다. 국교정상화 하겠다, 경제 금융 지원하겠다. 평화협정 체결하겠다.’고 해야 하는 겁니다.
국교정상화 했는데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지 못할 이유가 뭡니까? 이미 2007년 10.4정상선언 4항에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관련 당사국, 남북미 3자 또는 남북중미 4자 간 협의를 계속 하자고 합의했어요. 이렇게 하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왜 못합니까? 우리정부가 미국을 강력히 설득해야 합니다.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전체의 복지와 경제의 지름길
□ 정성희 소장 : 마지막으로 우리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시지요.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20세기 초반부터 오늘까지 100년 동안 우리 민족이 얼마나 강대국에 의해 부당하게 시달리고 고통을 받았습니까? 1945년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지만, 한 번도 광복된 적도 없고 해방된 적도 없습니다. 이 아픔을 극복하고 진짜 해방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통일대박론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국민들이 이 점을 깊이 인식해주시길 바랍니다.
서울은 북경, 모스크바와 화해했습니다. 그런데 왜 서울은 평양하고는 화해하지 못합니까? 내년이 분단70년입니다. 뭔가 이뤄져야 합니다. 진짜 대박이 와서 한반도 평화를 온 민족이 누리고 그 열매를 따먹을 수 있기를 진정으로 기원합니다. 남북관계가 후퇴하면 민주주의도 복지도 인권도 후퇴하게 됩니다. 남북관계 개선은 한반도 전체의 복지와 경제민주화의 지름길입니다. 우리국민들이 희망을 가지고 함께 노력하시리라 믿습니다.(끝)
[출처: 통일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