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6]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 특집/기획/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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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연재 16]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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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21 21:0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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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를 연재하며

 

 

편집국

2015-06-21

 

 

북은 해방 후부터 통일에 역행하는 남쪽의 친일친미 사대매국노 집권무리들과 반대로 지금까지 조국의 자주평화 통일을 위하여 줄기차게 노력해온 사실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 지금 <우리민족끼리>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 기사도 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북의 전쟁없이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분단이후 지금까지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고 줄기차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촉구한 북의 참모습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적 사실들이 때로는 감춰지거나 왜곡되게 남쪽에 전해진 사실도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 연재기사를 통해 독자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노력해온 북의 진실된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같이 일관되게 노력해온 북의 참모습을 알면 조국통일이 더 쉽게 더 빨리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누가 매국노인지 누가 애국자인지 잘 가려보아야 할 것이다.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단결 단합하여 반통일세력을 짓부수고 조국통일 이룩하여 민족번영을 맞이하자.

 

우리민족끼리에 소개된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16) 미제의 북침책동저지와 평화통일투쟁> 기사를 원문그대로 소개한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 (16)

 

 

 

력사의 온갖 도전을 과감히 뚫고 헤쳐온 우리 공화국의 력사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력사적책임감을 다한 성스러운  로정이였으며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확신과 락관을 심어준 숭고한 통일의 년대기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시였으며 그 길에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평생업적을 토대로 하여 존엄높고 부흥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밑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온 겨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미제의 북침책동저지와 평화통일투쟁

 

 

공화국의 기치밑에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전체 조선인민의 거족적투쟁을 그 어떤 수단으로써도 가로막을수 없다는것을 깨달은 미제는 극악한 침략전쟁으로 우리 민족의 의지를 꺾어보려고 획책하였다.

 

 

▲암살된 김구 선생의 장례행열

 

 

미제는 리승만역도를 내세워 《북진》소동을 대대적으로 벌리면서 남조선에 자기 침략무력을 더 많이 끌어들이고 남조선괴뢰군을 대대적으로 늘이면서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는 전쟁준비를 본격적으로 다그쳤다. 이와 함께 38°선일대에서 군사적도발을 더욱 강화해나섰다.

 

특히 미제는 1948년 8월 24일 남조선과의 《군사협정》을 통하여 남조선괴뢰군에 대한 무제한한 통수권을 장악한 즉시 저들의 극동침략정책수행의 돌격대로 써먹을 정규군조직에 달라붙었다.

 

1948년 10월 1일 5개 려단과 15개 련대의 《조선경비대》와 《해안경비대》를 기본으로 하여 이른바 《국방군》편성을 선포한 미제는 《북조선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잘 무장된 10만의 병력》을 빨리 육성하는것이 필요하다고 간주하고 10만의 《정예부대》양성을 남조선《정부》의 중심과업으로 내세웠다. 

 

미제와 리승만역도는 1949년 1월 제7려단을 새로 내오고 5월 12일에는 모든 려단을 사단으로 개편하였으며 6월 20일에는 수도경비사령부와 제8사단사령부를 더 내옴으로써 정규무력을 총 8개 사단, 22개 련대로 증강하였다. 

 

미제의 적극적인 사촉밑에 리승만《정부》는 1949년 7월부터 12월사이에 《병역법》, 《징발법》, 《계엄법》 등을 조작하는 한편 이른바 《군사동원계획》과 《물동계획》까지 작성하여 군병력을 대대적으로 늘이고 그 장비와 군수물자들을 증강보충하여 전쟁도발준비를 본격적으로 다그쳤다.

 

한편 미제는 1949년에 들어서면서 공화국북반부를 침공하기 위한 《북벌》작전계획을 작성하였으며 그를 곧 실천에 옮기기 위해 리승만역도를 내세워 분계연선에서 전쟁도발책동을 벌리게 하였다.

 

당시 미군사고문단장 로버트가 직접 작성하였다는 이 《북벌》군사작전은 1949년 7∼8월경에 전선서부와 동부에서 동시에 벌리되 주타격방향으로는 전선서부를, 전선동부는 보조적타격방향으로서 주력을 엄호하기로 되여있었다. 특히 전선서부의 진격이 성공하게 되면 개성에서 금교를 거쳐 일거에 평양을 점령하려고 계획하였다.

 

미제는 이러한 《북벌》작전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1949년부터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무장도발을 더욱 강화하였다. 1949년 한해동안에만도 무려 2 617회에 걸쳐 6만 7 398명의 괴뢰군경과 무장악당들로 무력침공과 각종 도발행위가 감행되였다. 

 

미제와 리승만역도는 공화국내부와 민심을 혼란시키고 군주력부대들의 침공을 용이케 할 목적으로 괴뢰군특무대원들과 악질무장테로단원들로 무어진 무장간첩단 《호림부대》를 비롯한 《북진》돌격대들을 수차 북반부에 침입시키는 등 38°선이북에 대한 무력침공과 함께 공화국에 대한 간첩파괴암해책동도 강화하였다.

 

이것은 《림전태세》의 검증과 《실전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시험전쟁》이였으며 전면전쟁으로 넘어가기 위한 전쟁도발책동이였다.

 

특히 미제는 1950년 초엽에 이르러 미군이 공개적으로 참전하는 새로운 전쟁도발계획을 작성하였다. 미제는 이 전쟁계획을 수행하는데 《북조선이 먼저 무장공격을 개시했다.》는 허위선전을 퍼뜨려 유엔으로 하여금 북조선을 《침략자》로 《규탄》하며 《북조선의 침략》으로부터 남조선을 《보위》하기 위한 《유엔군》을 조작할 모략을 꾸미였다. 미제는 전쟁도발을 앞두고 《후방안전》을 목적으로 1949년 7월부터 1950년 1월까지 7개월기간에 강점 4년간 학살한 수보다 9 000여명이나 더 많은 남조선의 애국적인민들을 학살하였다. 완전한 《북진》태세를 갖추고 더욱 빈번해지는 무장도발책동으로 하여 분계연선의 높낮은 고지들에서는 련일 치렬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우리 나라에는 임의의 시각에 전쟁이 터질수 있는 극히 엄중한 사태가 조성되였다.

 

공화국정부는 미제의 무력침공책동에 대처하여 최대의 인내성을 발휘하였으며 다만 침입한 적을 경비대무력으로 격퇴하는것으로써 작전규모를 국한시켰다. 이리하여 38°선무장침습사건은 《북벌》의 서곡으로 도발된것이였으나 내전으로까지 확대되지 않았다.

 

이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평화애호적립장에 기인한것이였다.

 

적들의 전쟁도발책동이 절정에 달하자 공화국정부는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한 주동적조치들을 련이어 내놓았다.

 

특히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발기로 조국전선은 주체39(1950)년 6월 7일 확대회의를 열고 또다시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을 제의하였다.

 

회의에서는 우리 조국에 조성된 엄중한 정세를 심중히 토의하고 북과 남의 모든 민주주의적정당, 사회단체들과 조선인민에게 보내는 《평화적조국통일방책추진에 관한 호소문》을 발표하였다.

 

호소문에서는 평화적조국통일방책에 관한 조국전선선언서가 발표된 후 그것이 실현되지 못하고있는것은 전적으로 미제와 리승만역도에게 책임이 있다는것을 폭로규탄하고 조국해방 5돐을 조국통일로써 기념하자고 호소하면서 평화적조국통일방책을 추진시키기 위한 5개조항의 구체적제안을 내놓았다.

 

제안의 기본내용은 1950년 8월 5일부터 8일사이에 북남조선의 전지역을 통하여 총선거를 실시하고 통일적최고립법기관을 창설하며 조국해방 5돐기념일에 최고립법기관 제1차회의를 소집할것, 6월 15일부터 17일사이에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원하는 북남의 전체 민주주의정당, 사회단체대표자협의회를 분계연선의 해주 또는 개성에서 소집하며 여기에서 평화통일을 위한 제 조건과 총선거실시의 절차, 중앙선거지도위원회의 창설문제 등을 토의결정할것, 북남의 전체 민주주의정당, 사회단체대표자협의회에는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계속 반대하는 민족반역자들을 참가시키지 말며 조국통일사업에 《유엔조선위원단》의 간섭을 허용하지 말고 반드시 조선인민자신의 힘으로 조국통일문제를 해결할것 등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지향과 념원을 반영한것으로서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미제와 리승만역도의 전쟁도발책동을 짓부시고 분렬된 조국을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이였다. 

 

한편 조국전선중앙위원회는 평화적조국통일추진제의 호소문을 남조선의 제 정당, 사회단체들과 각계층 인사들 그리고 《유엔조선위원단》에 전달하기 위하여 3명의 조국전선대표를 6월 10일 오전 10시에 이미 약속된 분계연선 려현역에 파견하였다.

 

미제와 리승만역도는 조국전선 호소문이 공화국남반부의 제 정당, 사회단체대표들과 개별적인사들에게 전달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조국전선대표들이 대기하고있는 려현역에 근 3시간에 걸쳐 야수적인 집중사격을 퍼부었으며 다음날 조국전선중앙위원회 지시에 따라 호소문을 대상자들에게 직접 전달하기 위하여 려현역을 떠나 서울로 향한 대표들을 불법체포구금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6월 15일부터 예견하였던 북남전체 민주주의정당, 사회단체대표자협의회의 소집은 파탄되고 정세는 더욱 엄중성을 띠게 되였다. 

 

첨예화된 이러한 정세에 대처하여 주체39(1950)년 6월 16일 조국전선중앙위원회는 평화적조국통일을 일층 촉진시키기 위한 주동적인 대책으로서 《국가주권기관들측으로부터 평화적조국통일에 대한 대책을 취할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토의할것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 요청》하였다.

 

6월 1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조국전선중앙위원회의 요청을 접수하고 평화적조국통일추진에 관한 문제를 토의한 다음 《평화적조국통일추진에 관하여》라는 결정서를 채택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채택된 이 결정서에서는 조국의 통일독립과 민주주의발전에 대한 조선인민의 굳은 의지와 민주주의 제 정당, 사회단체의 지향을 반영하여 남조선《국회》에 다음과 같이 제의하였다.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와 남조선《국회》는 단일한 전조선립법기관으로 련합하는 방법으로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실현할것.

 

2) 련합의 방법으로 성립된 전조선립법기관은 공화국헌법을 채택하고 공화국정부를 구성할것.

3) 공화국헌법에 기초하여 전조선립법기관총선거를 실시할것.

4) 평화적조국통일을 방해하는 민족반역자들을 체포, 언론, 출판, 집회, 시위의 자유와 민주주의정당, 사회단체들과 그 활동에 대한 완전한 자유의 보장, 모든 정치인들의 석방으로 평화적조국통일과 전조선립법기관의 정상적활동에 필요한 조건을 조성할것.

 

5) 북남조선의 군대와 경찰을 단일한 군대와 경찰로 개편할것.

 

6) 미제의 침략도구인 《유엔조선위원단》을 즉시 물러가게 할것.

 

7) 조선해방 5돐기념일까지 평화적조국통일과 관련된 모든 대책들을 완전히 실시할것.

 

8) 남조선《국회》가 교섭진행에 동의하는 경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1950년 6월 21일에 자기의 대표단을 서울로 파견하든가 또는 남조선《국회》대표단을 평양에서 맞이할 준비가 되여있다.

 

공화국이 제안한 이 새로운 방안은 미제와 리승만《정권》의 전쟁도발책동이 극도에 이르러 평화통일실현의 가능성이 사실상 파탄되고있던 당시의 엄중한 시기에 어떻게 하나 조국과 민족앞에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나라의 통일을 끝까지 평화적방법으로 이룩하려는 공화국정부의 꾸준하고 인내성있는 진지한 노력의 뚜렷한 표시였다.

 

세계의 모든 진보적인민들도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과 우리 인민의 절절한 념원과 뜨거운 동포애에 무한히 감동되여 하루속히 평화적조국통일을 실현할것을 기대하여나섰다.

 

하지만 미제와 리승만《정권》은 공화국정부의 공명정대한 제의와 세계인민들의 념원을 외면하고 끝끝내 조선에서 범죄적인 침략전쟁의 불을 지르는 길로 나아갔다. 

 

 

 관련기사

►  [연재 15]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  [연재 14]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  [연재 13]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  [연재12]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  [연재 11]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  [연재 10]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  [연재 9]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  [연재 8]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  [연재 7]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  [연재 6]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  [연재 5]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  [연재 4]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  [연재 3]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  [연재 2]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  [연재 1]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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