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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김일성 주석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독후감 32 - 김상일 교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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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8-06-24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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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밀림 우등불은 세기와 더불어 광화문 촛불로 오늘도 탄다
김상일 교수의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2)

김상일(한신대 전 교수, Korea Project Director, 美 Claremont Process Center)


“찢기는 가슴, 이 땅에 피울음 안고 우린 다시 모였다”

5월 2일 처음 촛불집회가 열리던 날 나는 과연 성사나 될 수 있을까, 그래도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답답하던 마음이나 달래려, 그리고 자리나 채우려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가기 시작하여 벌써 40여일이 지나가고 있다. 집이 청와대 뒤 세검정이라서 비 오던 날은 사방에 길이 막혀 밤 자정까지 탈출구를 못 찾아 생비를 그대로 맞으며 헤맨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 경우 경찰들이 이상한 방법으로 막아 빠져 나가는 사람도 못 나가게 한다. 전두환 노태우 시절은 개구멍을 만들어 한두 사람은 새 나가게는 했는데. 아마 이렇게 불편을 느끼게 하여 데모대에 혐오와 증오를 갖게 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 오산이다. 아마 서울 시내 택시기사들한테 물어 보면 과거 같이 데모대를 원망하는 기사들은 찾아 볼 수 없다. 거리 상인들도 식당가 주인들도 불평하지 않는다. 이것이 지금 촛불 집회를 보는 평균적인 정서이다. ‘이문세’(이명박 대통령이 문제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라는 유행어가 이상할 것 없다. 집회에 나가면 오랜 동안 만나지 못하던 얼굴들도 보게 되고, 무엇보다 나이 어린 학생들, 특히 10대 중고등 학생들의 재롱은 귀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첫날 청계천 하늘 광장에 모임이 시작하던 시간, 난 데 없이 학교에서 갓 하교한듯한 아직 중3, 고1 정도밖에 안돼 보이는 주로 여학생들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나오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광장은 불꽃 바다가 되었다. 하늘의 별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광장은 별빛 바다가 되었다. 한편 안타까운 것은 지금 학교에서는 0교시 수업, 그리고 우열반을 나누어 공부를 하고 있는 마당에 저렇게 밤이 이슥하도록 밖에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한 마음도 앞섰다. 주최 측이 빨리 끝내 돌려보냈으면 하는 생각이 정말 간절했었다. 자식 둔 한국 부모들은 누구나 나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그러나 이 작은 별들이 일을 냈다. 큰일을 해냈다. 며칠 째부터는 이 작은 책가방 부대 숫자가 줄어들다 6월 10일 전후가 되자 다시, 이젠 열 명 스무 명씩 같은 학교 교복 입은 학생들끼리 무리지여 대열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훗날 역사가가 이 날을 역사에 기록한다면 무명의 이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어떻게 기록될지는 아무도 지금 모른다. 6월 10일 같은 날 보수 단체 집회에서는 주로 이 학생들의 배후가 누구다 누구다 하는 것, 그리고 그 배후를 성토하는 것이 주류였다. 김정일이 배후 세력들이고 지금 촛불 집회에 나가는 것들은 김정일의 졸개들이라는 것이 그 날 조갑제 발언의 골자였다.

그러나 우리에겐 배후가 없다. 다 이명박에게 상처 받은 찢기는 가슴 안고 한 자리에 모였다. 어린 중고등 학생들, 저 생기발랄한 것들이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시계에도 없는 0시에서 일어나 0시에 돌아간다. 화이트헤드란 철학자는 저 나이에는 아이들에게 낭만을 심어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단에 올라가 이명박이가 갈갈이 짓이겨 놓은 감정을 서슴없이 토로한다. 내 경우 다 치유돼 가는 분단의 병이 다시 도지어 아픔을 견딜 수 없어 나간다. 이렇게 구석구석 이명박에게 상처 안 받은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배후는 이명박이고 그가 문제인 것은 개와 소들도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 10대들의 낭만은 찢기는 가슴 안고 피울음으로 피어오르고 있다.

“우리 어찌 주저 하리요”

나는 그 동안 몇 차례 여름 감기가 왔다 갔다 하였다. 밤중에 길가에서 걷다 보니 온 몸에 땀이 났다가 식으니 찬 밤공기에 한기를 견디지 못해 몸이 성할 리 없다. 그러나 초저녁만 되면 마치 아편 중독쟁이 같이 촛불 중독증에나 걸린 듯이 광화문으로 나간다. 밤 10시가 넘으면 갑자기 집에 돌아갈 걱정이 나기 시작한다. 으레 길이 또 막힌다. 그러면 온 몸은 땀에 목욕을 한 듯하고 몸은 다시 식고 아침이면 기침이 나고 그러면 동네 보건소에 가 감기약을 벌써 네 차례나 지었다. 의사가 이젠 보건소에 오지 말고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촛불에서 난 병, 촛불만이 약이라고 본다.

6월 10일 길은 다 막혀 서대문을 지나 홍제동을 통해 집으로 가는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독립문을 지나 서대문 형무소 앞길을 지나 무학재 고개를 넘는 순간 나는 만주벌에서 긴긴 행군을 하던 항일 유격대들, 그리고 이 형무소에서 죽은 박달과 이재순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죽은, 수많은 독립운동하다 죽은 영혼들. 고난의 행군 동안 얼마나 고생들을 했을까. 라자구 등판에서 무송 원정에서 고생한 젊은이들. 감기가 걸려 따뜻한 국 한 그릇 제대로 끓여주는 사람 있었을까. 약은 어디서 구해 먹고. 상상의 이런 비교마저 외람되 보이고 부끄럽기만 하다. 인류 역사상 이런 어려운 고난의 행군은 없었을 것이다. 남미나 동남아 정글에서나 유격활동을 하지, 북위 40도가 넘는 한 벌판에서 유격활동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16년이란 성상이 지나는 동안.

그나마 이 나라 역사는 이들을 아직도 공비의 역사, 비적의 역사로 기록하고 가르치고 있다. 아마도 오늘 밤 이 촛불의 역사도 그렇게 기록될지도 모른다. 뉴라이트, 그들은 지금 우리 현대사를 완전히 다시 쓰고 있다. 김구는 테러리스트,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조국 근대화로 다시 쓰고 있다. 이런 역사책이 바로 우리가 모이는 옆 대형 서점가에 진열돼 버젓이 팔리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지지한 사람이 이 나라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아니다. 이것은 아니다. 이것만은 아니다. 우리 역사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생각 속에 화가 나고 가슴 속에 분노가 치밀면서 온 몸은 열기가 다시 나기 시작한다. 거역해야 한다. 이들의 손에서 권력을 다시 찾아 와야 하고, 이들의 손에서 붓을 다시 빼앗아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유격활동의 시작이고 연장이다. 이에 생각이 미치면서 며칠 째 날인가부터 나는 항일 유격대가 밝힌 백두 밀림의 우등불과 광화문의 촛불이 하나로 겹쳐지기 시작한다.

“해 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한 달 이상 외치고 부르짖었건만 우리 앞에는 항만 부두에서나 본 이상한 물체가 솟은 듯이 나타났다. ‘명박산성.’ 그 뒤로 한 장군의 동상이 갑자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저 장군이 누구였더라. 정말 이상한 산성 같이 생긴 철물 뒤 장군의 모습은 다르게 보였다. 그 날 밤 그 장군은 영화 ‘디 워’에서 도시 큰 건물 뒤에 갑자기 나타나는 괴물 같아 보였다. 산성을 지키는 장군 같기도 하고. 산성 저 편에 있으니깐. 우릴 굽어보고 보살피는 듯도 하고. 나는 저 장군이 저 자리에 있은 지 수 십년 동안 그 날 밤 저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아 그랬구나. 그 장군이 그런 모습 한 것도 이유가 있었구나. 여의도 어느 교회 목사가 바로 그 일요일 설교에서. 저 장군이 지옥 갔다고 했다. 왜냐하면 예수를 안 믿었기 때문에. 반대로 그 장군과 싸운 고니시(소서 행장)는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에 천국에 갔다고 했다. 그리고 그 목사 설교를 들은 무리들이 모두 아멘 했다고 한다. 고니시 군대를 죽인 그 장군을 사탄이라고 했다고 한다. 어느 장군은 ‘공비共匪’ 가 되고 어느 장군은 ‘사탄’이 되고. 6.10 시청 앞 광장 한 구석 그 무리들이 다시 모여 촛불을 든 우리를 모두 사탄의 무리들이니 이들로부터 우리 장로 대통령 지켜달라고 손발 다 흔들며 새벽 3시까지 빌었다. 나는 한 날 두 곳을 오가며 볼 것 다 보았고 들을 것 다 들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역사가 옳을 것인가를 판단하였다. 내가 설 땅이 어디이고 내가 지킬 역사가 무엇인가를 똑똑히 판단하였다.

그러면서 두 남북의 두 노래가 뒤범벅이 된 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음들이 내홍內訌이 되어 목구멍 속에 남은 가래와 함께 목을 메운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울음 운다/ 압록강 굽이굽이 핏줄기 흐른다/만주벌 눈바람아 이야기 하라/밀림의 긴긴 밤아 이야기 하라/해 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 벌판/

청진동 해장국집 마지막 불 꺼지고/보신각 종도 울지 않을 때/이 땅에 새벽을 깨우는 자가 누구인가를/만고의 애국자가 누구인가를/전 세계 애국자가 누구인가를/오늘 밤 다시 이 거리 촛불 켜지고 하늘의 별은 다시 뜨리라/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부등 킨 두 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에 핏줄기 있다”

감기에 목이 잠겨 나오지 않는 음들을 대신하여 내 눈 앞에는 항일 유격대의 갈 길을 밝혀 주던 우등불과 광화문의 촛불, 이 두 불빛이 간섭干涉하면서 제 3의 새로운 불빛이 되어 내가 가는 북한산 보현봉 밤하늘을 어지럽힌다. 간섭하는 불빛이 서로 동조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광화문 네거리, 낮이면 자동차 경적 소리만 요란하던 거리가 해가 넘어 가기가 바쁘게 여기저기서 촛불이 뜨기 시작한다. 갑자기 숙연하고 애잔한 거리로 변한다. 언제가 귓전에서 사라졌던 애잔한 노래 ‘아침 이슬’ 그리고 ‘광야에서’ ‘님을 향한 행진곡’.

도저히 낮의 이 거리하고는 어울리지 않을 듯 한, 이런 때늦은 곡들이 진혼곡 같이 들린다. 민주주의가 죽어 가고 있기 때문인가. 통일이 멀어져 가고 있기 때문인가. 6월 11일 밤에는 이병렬 선생 행려 지나가는 상여 소리도 들였다. 왜 이 나라의 저항곡들은 이렇게 슬프고도 애잔할까? 내가 좋아하는 곳은 ‘광야에서’이다. 특히 이 노래 속에 있는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 벌판’이란 가사 때문이다. 만주 땅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이 그리고 독립군들이 고난의 행군을 하고 피를 뿌린 곳. 나는 이 가사와 함께 성내운 선생의 시 ‘민족이 부르는 소리’를 함께 좋아 한다. 동포의 배를 가르고 지나간/ 분계선 날카로운 철조망에 찔린 가슴/그  피 토하는 호남벌의 아픔이 있는 한 민중들의 외치는 소리...

찢기는 가슴안고 사라졌던 이 땅에 피울음 있다/ 부등 킨 두 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에 핏줄기 있다/ 해 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 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이젠 노래방 가사책에나 실린 박물관 가락인가 싶더니 차 경적 소리 사라진 광화문 대로에서 밤이면 다시 울려 퍼진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영혼이 또 이 거리에서 산화했다. 산 자여 따르란 외침도 없이 또 한 영혼을 보낸다.

우등불은 ´세기와 더불어´ 탄다

우리 귀에 익숙하지 않는 ‘우등불’이란 말을 국어사전은 ‘화롯불’ 혹은 ‘모닥불’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우등불’은 주로 야영지에서 추위를 막기 위해 나무토막이나 땔나무를 쌓아놓고 피우는 불을 말하며 우등불 모임은 우등불을 피워놓고 갖는 모임을 뜻한다. 남한에는 강원도 삼척 전기가 안 들어가는 산간지대에 아직 우등불이 남아 있다고 한다. 방안에 굴둑 같이 솔가지를 지펴 만들어 조명용으로도 난방용으도 쓰이는 것이 우등불이다. 겨울이면 우등불 앞에서 아낙네들이 모여 길쌈도 함께 삼고 정담도 나눈다.

그러나 북에서는 ‘우등불’은 이와 같은 사전적 의미보다는 주로 “항일혁명시기 유격대원들이 우등불 가에서 투쟁의 결의를 굳게 다진 것을 본받아 어떤 일을 기념하거나 대중의 정치적 열의를 높이려고 할 때 갖는 모임”의 뜻으로 쓰인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주민들의 결속을 도모하고 당의 정책수행을 위해 수시로 개최하는 각종 결의를 할 때에 이를 일반적으로 「우등불 모임」을 통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곤 한다. 그래서 우등불 노래도 있고 영화도 있다. 다시 말해서 모두 항일 유격대 시절 갖고 있던 각별한 의미가 각색이 되어 말의 기표보다는 기의가 풍부해진 것이다. 남에서는 사라져 간 우등불이 이렇게 북에서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우등불은 사라진 것이 아니고 촛불로 다시 살아나고 있으며 둘은 같은 의미를 찾아 가고 있다고 본다.

‘세기와 더불어’ 전 8권 모두에 이 말이 나온다. 모두 60회나 나오는 말이다. 1권에 1회, 2권에 6회, 3권에 2회, 4권에 2회, 5권에 15회, 6권에 18회, 7권에 8회, 8권에 8회 나온다. 5권과 6권에 33회나 나오니 반 이상이 집중돼 있다. 5-6권은 1936-1937년 유격 활동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이고 보면 ‘우등불’과 유격 활동과는 밀접한 관계를 갖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회고록 5권에는 ‘우등불 피우는 법’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장작을 밑에서부터 5개, 4개, 3개로 피라밋 형으로 쌓고 위에서 불을 지피는 방법이다. 이것은 유격대가 개발한 특이한 방법인데 밀림 속에서 귀틀집과 우등불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하니 우등불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유격대의 우등불 피우는 법은 국제적으로 유명해져 중국인 위증민이 김일성 부대에 가면 우등불 피우는 법부터 배우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5-244)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회고록 속에는 우등불에 얽힌 많을 일화들이 실려 있다. 우등불 피우다 불빛이 적에게 새어 위기를 당하던 일. 김성국이 우등불에 언 발을 쪼이다가 적이 들여 닥쳐 맨발로 기관총을 쏘다 발이 동상에 걸릴 뻔 한 일. 소탕하 전투 때는 적들이 세를 과시하기 위해 들고 있던 우등불이 오히려 적들의 전략을 노출시켜, 지난 회에 소개한 유격대가 일행천리 대로행 하게 만든 일은 특히 이를 두고 ‘우등불 지도’라 불리게 되었다. 그 무엇보다 유격대원들이 모여 앉아 정담을 나누고, 지휘관과 부대원 사이에 격의 없는 형제애를 돈독하게 만들고, 여기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는 문예 활동의 한 마당이 우등불 주변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해방 후 북의 그 수많은 연예와 문예 활동이 모두 우등불 주변에서 유래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피바다’ 그리고 ‘아리랑 공연’도 이 우등불 없이 생각할 수 없고 이것은 우리 민족 고유한 마당에서 피우는 모닥불 문화와 멀지 않다. 그렇다. 지금 대한민국 수도 한 복판에서 이 매일밤 모닥불이 지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백두 밀림의 우등불과 광화문 촛불 사이에는 유사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한국에서 시작된 ‘촛불’ 집회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어 저항과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촛불 문화에 공헌을 한 것은 초가 아니고 종이컵이다. 종이컵이 없었더라면 과연 촛불 집회가 가능했을까. 어지간한 바람에도 그 약한 촛불을 바람에서 보호해 주는 것은 종이컵이다. 우등불 지피는 법과 함께 촛불을 서로 붙이는 법. 이것 역시 기술이 필요하다. 불을 서로 붙이자마자 빠르게 초를 종이컵 속으로 집어넣지 않으면 안 되는 이 기술은 집회참가 회수와 비례한다.

촛불을 서로 붙여 줄 때에 무언에 전달되는 감정, 그것은 연인간의 에로스와 친구간의 필리아를 포개 놓은 것과 같다. 북에서 부르는 합창조곡 ‘백두산아 이야기하라’에 우등불 노래가 있다. 나는 이 노래 속에서 광화문 촛불 집회에서 느꼈던 에로스와 필리아 사랑이 하나 되는 것을 보았다. 달밝은 숙영지에 우등불이 타는 밤/ 사향가 부르네/ 아 우등불, 우등불 불빛에 떠나온 고향산천 어려 왔어라/ 만경대이야기에 이깔숲은 설레고 겨레의 눈빛처럼 별들도 반짝이네/ 아 우등불 우리들의 우등불/ 우등불타는 밀림의 밤은 깊어가고/ 우리들의 대화는 끝이 없어라... 광화문에서 우리도 촛불을 서로 붙여 주면서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하고 노래 불렀다.

우등불과 촛불은 하나 되면서도 하나가 되지 않는다. 두 불빛이 서로 만나 간섭을 하면서 동조를 하다가도 안 된다. 이것이 내 눈 앞에서 반복에 반복을 한다. 빛의 파장은 서로 간섭을 할 때에 골과 골이 만나면 더 낮아지고 봉우리와 봉우리가 만나면 더 높아진다. 골과 봉우리가 만나면 동조가 되어 이를 ‘동조성 빛 coherent light’이라 한다. 우리의 통일도 이렇게 동조가 될 때에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이 땅의 보수 우익들은 골을 더 패이게 했고 봉우리는 더 높아지도록 만들어 버렸다.

이근 교수(서울대)는 이번 촛불 집회는 ‘대한민국 민족주의’라고 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상호 수평적으로 연계된 ‘우리’ 민족주의의 발로라고 한다.(프레시안 6월 14일)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라고 할 때에 ‘우리’는 북을 아우르는 것이 아닐까? 이근 교수는 남도 북도 아닌 제 3의 우리 ‘생활 민족주의’라고 하면서 먹는 음식에 걸린 생활에서 형성된 ‘우리’라고 한다. 그럼 과연 생활 민족주의 속의 ‘우리’는 과연 남과 북이 하나 되는 우리가 아닌가? 과연 촛불이 갖는 의미가 우리 대한민국 민족주의에만 해당되는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생활 건강권을 넘어 선 우리 민족주의는 민족 자주권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라는 나는 본다. 양초에 처음 불을 붙인 10대 들의 가슴 속에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직까지 확인이 되지 않고 있지만 그들은 자기 나이 또래이었던 효순이 미선이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장갑차와 소고기는 그들에게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매일 매일 이렇게 촛불은 색깔을 달리하면서 타고 있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남북 헌법 1조가 만날 수 있을까?

이렇게 우등불과 촛불은 서로 동조가 되었다 안 되었다. 그럴 때 마다 들고 있는 촛불은 바람에 견딜 수 없이 흔들린다. 386년 세대가 안 부르던 새 곡이 이번에 등장하였다. 그것은 헌법 1조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가사는 이것이 전부이다. 헌법 제1조 스카프 티셔츠까지 등장했다. 붉은 악마의 연장인 것 같다. 그런데 북의 헌법 제 1조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 인민의 리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 국가이다”가 아닌가. 남과 북의 이 헌법 제 1조가 서로 어디에서 서로 동조를 할 수 있을까? 보수들이 배후 세력을 찾지만 이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앞에 그만 난감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곡이 통일에는 어떻게 가 닿을까. 이것이 바로 우등불과 촛불이 동조하지 않는 이유같이 보였다.

두 불빛은 하나로 되었다가 안 되었다가 하면서 두 헌법 제 1조는 번갈아 가며 눈앞을 어지럽힌다. 과연 동조할 수 있는 곳이 단 한 곳에라도 있을까? ‘대한민국 대 조선민주주의’, ‘민주공화국 대 인민공화국’, ‘국민 대 인민’,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골은 더 깊어지는 것만 같았다. 골과 골이 쌓여 골이 더 깊어지는 것이 아닌 골과 봉우리가 만나 서로 동조할 수 있는 그래서 레이저 같이 강한 빛이 되어 먼 곳까지 비출 수 있는 그러한 제 3의 빛을 만들 수 없을까?

있다. 나는 14일 밤에 나가 그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자주적’ 바로 이 말이다. 그렇다. 이 번 광우병 파동은 차라리 미국 NYT가 12일 정확하게 지적한 대로 소고기 이상의 것이 있다. 그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이것에 분노하고 있다는 것. 한국이 왜 강대국 미국에 휘둘려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 미국이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 효선이 미선이 때도 두 여학생들 장갑차에 깔아 죽이곤 재판을 하는 척 하고는 살해 미 병사를 미국에 빼 돌려보냈다. 우리의 분노는 그 이후 부시의 사과와 한미 관계 재정립을 통해 그나마 개선되는 듯하였다. 효선이 미선이 때 겨우 회복하는 듯 하던 자존심의 상처를 이명박 정부는 소고기 협상으로 덧나게 한 것이다.

추가협상, 추가의 추가를 백번 해도 소용없다. 우리의 찢겨진 자존심을 대통령이 치유하고 회복시키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 자존심 회복과 대통령이 자주적이지 않는 한 이번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덧난 상처를 더 아프게 하는 존재들이 한국 기독교이고 뉴라이트이다. 이들의 역사 왜곡과 민족 문화에 대한 모독적 발언은 대통령과 한 통속이 되어 우릴 지금 더 괴롭히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 덧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오늘 밤에도 광화문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린 다시 섰다. 이 땅의 뜨거운 흙을 움켜쥐고 다시 섰다.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6월 13일 보수 신문들은 집회 군중도 지쳤고 10일 대형 집회 다음이라서 촛불도 시들해 질 것이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래서 보수 단체들이 떼거지로 몰려 나왔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조금도 줄지 않은 집회 군중들의 주류는 서대문을 통해 KBS로 향하고, 광화문에 남아 있던 모임은 주로 ‘10대 연대’가 주도 했다. 이번 촛불은 10대들이 처음 달군 것이다. 효순이 미선이 죽을 때 초등학교 다니던 학생들이 이제 벌써 고등학생들이 되어 이들이 만든 것이 ‘10대 연대’이고 이들이 이번 집회의 주인공들이다. 7명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미군 없는 세상에서 고운 넋으로 피어나소서”였다. 자기들이 작사 작곡한 곡들이 수 없이 많았으며 이것들을 모두 광장에서 선보일 때에 관광 온 외국인들도 함께 춤추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나는 이 10대들에게서 그 어느 가치보다 ‘자주’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미친 소고기 기성세대나 먹어라 우린 못 먹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구호 가운데는 “차라리 부시의 똥이 더 안전하다”도 있었다.

1930년대 항일 유격대원 가운데는 10대 소년병들이 있었다. 그래서 소년병 중대까지 만들 정도였다. 그런데 남한 보수들은 10대들이 어떻게 유격활동을 하느냐며 이를 조작이라고 한다. 지금도 같은 소리를 한다. 이들 배후에는 분명히 검은 손이 있을 것이라 한다. 그리고 지금 그 배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들 보수들이 자기들 장신 연령을 맞추어 평가 절하하고 있는 일고의 상대할 가치가 없는 발상이다. 기성세대는 차라리 이들의 놀이에 구경꾼들이고 이들로부터 자주를 학습하고 있다. 나는 이들 10대들에게 희망을 발견하였다. 자존심 있는 자주 정신의 지킴이가 이들에게 싹트고 있고, 우등불과 촛불은 그래서 만날 수 있고, 서로 두 불빛이 동조하여 어떤 광풍 앞에서도 꺼지지 않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작고 약한 촛불이 지금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호주 방송국은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이 된 호주 청소년들을 향해 한국의 청소년들을 배우라 하고, 미국 시민들은 자기들이 먹는 소고기에 문제가 있다고 의식하기 시작했고, 중국의 북경에도 촛불이 전염되었다. 지금 우리 촛불 집회를 찾는 것은 외국 관광의 필수 코스가 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지금 ‘세기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있지만 청춘이 그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이것은 남북이 마찬가지이다. 영원한 청춘인 겨레가 바로 우리이다.

철없고 어린 것들이라 하지만 이들에게 모든 세대가 갖지 못하는 감수성이 있다. 이 감수성은 벌레의 촉각과도 같으며 이 촉각은 우주의 변화를 감수할 만큼이나 강하다. 감수성은 신경의 중추에서 생기며 이 중추는 ‘자주성’ 없이 발달하는 법이 없다. 괴로운 것은 이 자주성은 ‘청춘의 비애 tragedy of youth’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 가능성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난의 행군’과 ‘세기와 더불어’는 다른 것이 아니다. 이 땅의 뜨거운 흙을 움켜쥐고 우리는 이렇게 지금 하나가 되었다. 광화문 촛불들이 긴 밤 지새우고 백두밀림 풀잎마다 아침이슬로 맺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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