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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 [특별기획]세월호 구조, 안 했나 못 했나 1. 왜 선원과 선장부터 구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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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5-27 10:0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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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세월호 구조, 안 했나 못 했나

1. 왜 선원과 선장부터 구했는가

① 세월호는 정말 뒤늦게 조난신고를 했는가

 

 

글쓴이 : 우리사회연구소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무능력한 구조 실력에 많은 국민들이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정부가 정말 무능력하기만 했을까? 구조 과정에서 여러 의혹들이 나오면서 단순히 무능력한 문제만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세월호 구조 과정에서 드러난 첫 번째 의혹의 인물은 선장과 선원들이다. 왜 선장은 뒤늦게 구조를 요청했는가, 왜 승객들에게 탈출을 명령하지 않았는가, 왜 해경은 승객을 제쳐놓고 선장과 선원들을 먼저 구조했는가, 왜 이들을 특별 관리했는가, 이 의혹을 풀어야 한다.

 

 

세월호는 정말 뒤늦게 조난신고를 했는가

 

 

먼저 세월호가 사고 발생 한참 뒤에야 조난신고를 했다는 의혹을 살펴보자.

 

 

세월호의 첫 조난신고는 16일 오전 8시 55분에 있었다. 그러나 8시 30분 전후로 배에 이상이 발생했다는 여러 기록이 존재한다.

 

 

시사저널 1280호 기사 <“8시30분경 침몰 중” 세월호 참사 최초 신고 시간 미스터리>는 국립해양조사원과 진도군청 상황실 기록을 통해 이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관련 내용을 정리해 보자.

 

 

먼저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해양조사원이 16일 오전 10시쯤 항행경보 제14-155호를 긴급 발령했는데 그 내용이 “16일 오전 8시 30분경 전남 진도 부근 해상에서 인천에서 제주로 항해 중이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 중이며, 세월호에는 수학여행 학생 등 승객 476여 명이 탑승 중이니, 인근 해역을 항해 중인 선박과 어선은 조난 구조에 협조하여주시기 바랍니다”였다고 한다.

 

 

 

 

 

 

항행경보를 직접 내린 담당자 정 씨는 기자 질문에 “원래 사고가 나면 해경·해수부 등 관련 기관에서 사고가 났다고 (해양조사원에) 먼저 알려준다. 그런데 그날은 담당 기관이 정신이 없어서인지 언론 보도가 나간 후에도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9시40~50분쯤에 직접 해수부 상황실에 전화했다. 그때 그렇게 (8시30분경 침몰 중으로) 듣고 올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사저널 측이 해수부를 취재하자 해수부는 이를 전면 부인했고 정 씨도 말을 바꿨으며 항행경보도 그제야 8시 55분으로 정정됐다.

 

 

진도군청 상황실이 작성해 전라남도 상황실에 보낸 ‘세월호 여객선 침몰 상황보고서’에도 사건 발생 일시가 16일 오전 8시25분이라고 기록돼 있다. 진도군청과 해양조사원은 서로 연관이 없는 기관이다. 진도군청은 “직원의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안전행정부를 거쳐 중앙재난대책본부까지 보고된 보고서에서 핵심 내용인 사고 발생 시각이 실수로 잘못 기재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5월 8일 미디어오늘의 <세월호 사고당일 오전 8시경 침몰했다는 문건 ‘또’ 실수?>는 SBS와 YTN 등이 보도한 영상을 보도하며 안전행정부, 소방방재청 상황실이 작성한 ‘진도해상여객선 침몰사고 상황보고’에도 사고 일시가 “2014.4.16.수) 08:00 경”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사고내용은 “침몰 중”으로 되어 있다고 밝혔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의 고명석 대변인(해양경찰청 장비기술국장) 역시 지난달 22일 공식 브리핑에서 “8시 전후에 사고가 났기때문에 아침을 먹는 시간이어서 식당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 있지 않을까 이렇게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제주 해경이 안산 단원고에 8시 10분 경 전화를 해 배와 연락이 안 된다는 대화를 나눴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4월 21일 뉴스타파 보도 <제주해경 ‘8시10분 미스터리?’ 사실은…>에 따르면 이는 제주자치경찰단이 세월호 연착 사실을 몰라 문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세월호 안내방송도 의심스럽다. 세월호가 맹골수도에 들어온 8시 30분쯤 제주 도착 시간이 예정 시간보다 1시간 30분 지연된 낮 12시쯤이 될 것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세월호 선박자동식별장치(AIS)에 따르면 세월호는 16일 오전 7시28분부터 8시까지 최고 속도인 시속 39㎞로 운항 중이었고 사고 지역 인근 어민들에 따르면 사고 당일은 날씨도 쾌청했다. 따라서 배에 이상이 없는 이상 연착방송을 할 이유는 없었다. 선원들은 8시 30분 전에 배의 이상을 감지한 것일까?

 

 

세월호 생존자들도 비슷한 증언을 하고 있다.

 

 

세월호 승무원 전아무개씨는 “당직 교대를 위해 기관일지를 쓰던 오전 7시45분께 ‘쿵’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4월 20일 한겨레 <생존자 “7시45분에 쿵소리” 증언…8시 전에 사고 발생?>)

 

 

화물차 운전기사인 생존자 허 아무개씨는 “8시30분 전후였던 것으로 분명히 기억한다. 늦어도 8시40분쯤이었을 것이다. 이때 배가 순식간에 45도 각도로 기울었다. 채 5분도 안 될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객실에 있다가 너무 깜짝 놀라 팬티 바람에 갑판으로 뛰어나갔다. 아무도 없기에 구명조끼를 찾으러 다시 (객실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때 휴대전화에 찍힌 시간이 8시52분이었다. (나갔다가 돌아온 시간 등 여러 가지를 감안해볼 때) 배가 기운 것은 8시40분 전이라고 봐야 한다”고 증언했다.

 

 

허씨는 “배가 갑자기 기울면서, 아무튼 그때 8시30~40분쯤인가 해서 112에 구조 요청을 했다. 정신이 없어서 (119가 아닌) 112에 했던 것 같다. 배가 기운 시간이 8시40분쯤이라고 봤을 때, 같이 온 일행들도 동시다발적으로 신고를 했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다. 그 상황에서 누군들 신고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위의 시사저널 1280호 기사)

 

그렇다면 최초 신고가 안산 단원고 학생이 8시 52분 전남소방본부에 신고한 것이라는 점도 다시 검토해야 한다. 8시 30분 즈음 119, 112에 이미 여러 신고가 접수됐을 수 있다.

 

이런 여러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최소 8시 30분 전에 배에 이상이 발생했으며 8시 30분경에는 다수의 승객들도 이를 알아차렸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세월호가 조난 신고를 9시가 다 돼서야 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선장과 선원들이 정말 8시 55분에 첫 조난 신고를 했는지, 사실이라면 왜 그렇게 늦게 신고를 했는지 의혹을 밝혀야 한다.

 

아울러 가까운 진도VTS를 놔두고 제주VTS에 먼저 조난 신고를 한 이유, 진도VTS가 7시부터 세월호와 통신을 했으면서 이를 숨긴 이유도 확인해야 한다.  

 

[출처: 우리사회연구소]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05-27 10:09:17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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