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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김일성 주석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독후감 26 - 김상일 교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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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8-05-07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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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 개방 3000’, 게임이론이 비웃는다

김상일 교수의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6)

김상일 (한신대 전 교수, Korea Project Director, Claremont Center for Process Studies)


‘어부지리’의 어부는 미국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 ‘비핵 개방 3000’을 가장 비웃을 사람들은 아마도 지금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는 게임 이론가들 game theorists 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론으로 보았을 때에 한국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상호주의는 가장 어리석은 정책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명박 정부가 통일을 진정으로 원한다고 전제할 때에 상호주의는 가장 바람직하지 않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증명을 게임 이론을 통해 고찰해 보기로 한다.

게임이론이란 적대하는 두 대상이 서로 공존해 살아남는 소위 win-win을 제시하는 이론이다. 이해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각 참가자들이 최적의 결과를 얻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수학의 한 이론이란 뜻이다. 쉽게 말해서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논리를 제공하는 것이 게임이론의 골자이다. 우리 집 옆에는 식당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 차량 출입구마저 같은 식당이 또 하나 생겼다. 먼저 있던 식당에서는 지금 전에 없던 행사를 하나 하고 있다. “봄철 냉면 50% 할인 행사”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자 옆 식당에서는 이에 맞서서 “갈비 50% 할인 행사”를 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에는 반가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한 편 생각할 때에 이 두 식당이 담합을 하면 서로 살 터인데 왜 저렇게 무한 경쟁을 할까하는 생각이 든다. 국내 주요 주유소들은 서로 담합을 하여 우리 소비자들만 허리를 휘게 하기도 한다. 대기업 간의 담합 즉 카르텔이 쉽게 이루어 질 것 같지만 그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이를 남과 북의 문제, 즉 통일의 문제로 비화하여 생각해 보면 세계가 볼 때에 저 나라는 남북이 서로 담합을 하면 통일을 바로 할 터인데 왜 저렇게 반세기가 넘도록 서로 싸우고 있을까 할 것이다. 이것은 내가 우리 동네 두 식당을 두고 바라보고 있는 것이나 별 다름이 없는 것이다. 과거 10년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 두 정권 기간 동안 좀 담합이 되어 가는 듯하더니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이를 ‘잃어버린 10년’이라 ‘퍼주기’라 하는 말에 국민들이 공감을 했음인지 또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마는 것 같다.

황새와 잉어가 서로 물고 안 놓아 주다 어부에 다 잡히고 만다는 ‘어부지리 漁父之利 ’란 말이 결코 무지한 동물의 세계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지금 남북이 서로 물고 늘어지면서 무한 무기 경쟁을 하는 것을 두고 누가 어부지리의 형국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중국이 동이 東夷들이 살고 있던 지역을 빼앗을 때에 ‘이이제이 以夷制夷’의 논리를 사용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러한 고사와 역사의 교훈이 있지만 도무지 이에 귀 기울이지 않으려 한다. 남북 사이에서 어부지리를 챙기는 자는 누구인가? 바로 주변 강대국들, 그 중 미국이 아닌가? 우리 민족이 이렇게 동물 같이 어리석은가?

‘멸공 滅共’은 ‘공멸 共滅’이고 ‘적화 赤化’는 ‘화적 火賊’이다

어부지리의 논리는 ‘너를 죽이면 내가 사는’ 논리가 아니고 ‘너를 죽이는 것이 곧 나를 죽인다’는 논리이다. 이는 나와 너가 서로 분리 될 수 없는 상호 의존 관계 속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언어 가운데서 우리 말 나(I)와 너(you) 같이 자음은 그대로 두고 양성 모음을 음성 모음으로 바꿈으로 너와 나가 되는 문자도 없을 것이다. 그 만큼 우리말의 어원은 너와 나의 상호 의존관계를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한문의 ‘인 人’ 자 역시 ‘인간 人間’이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이념과 종교 등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부차적인 것에 의해 서로 원수가 되고 복수를 하려 한다. 그래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치고 인간만큼 같은 종을 많이 죽이는 존재도 없다.

아래 그림을 보라. 기요틴 guillotine 밑의 두 인간은 서로가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밧줄을 잡고 있다. 그리고 상대방의 밥그릇이 자기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자기가 살려고 자기가 잡고 있는 밧줄을 놓으면 상대방은 죽게 되고 그러면 그 상대방이 잡고 있던 밧줄이 놓이게 되고 그러면 자기가 죽는다. 그래서 “너를 죽인다가 나를 죽인다”가 된다. 이를 남과 북의 관계라고 생각하고 한 번 자세히 들여다 보자.

   
▲ 기요틴. [사진 제공-김상일]
                                                                          
이 그림은 바로 게임 이론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것이다. 게임이론의 다른 표현은 ‘죄수의 딜레마 prisoner’s dilemma로 나타난다. 단행본으로도 출판될 정도의 ‘죄수의 딜레마’(윌리엄 파드스톤 저 박우석 역, 양문) 혹은 게임이론은 1980년 대 악샐로드가 수정 이론을 내놓으면서 새롭게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이론이 한반도에서 폐기 처분될지도 모른다고 여기서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위 두 당사자가 자주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론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죄수의 딜레마와 게임이론

게임이론은 ‘협력하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줌에도 불구하고 결국 협력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다. 두 식당이 담합해서 독점 이익을 취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협력과 협조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이론은 남북이 분단된 우리들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 만들어진 이론 같다.

어떤 감옥에 함께 죄를 저지른 갑과 을이 잡혀 들어 와 있다. 이들을 심문하는 검사는 다음과 같이 두 죄수에게 자백을 회유한다. 이 회유하는 데서 바로 죄수의 딜레마가 생긴다. 쉽게 두 죄수 간에 담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사가 한 죄수에게 “너의 친구는 범행을 부인하고 너만 자백한 경우 석방시켜 주겠다. 하지만 너는 범행을 부인하고 너의 친구만 자백하는 경우에는 20년 형을 구형한다”고 하자, 이 경우가 바로 우리 자신들의 경우라면 각자는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

이 때 둘 다 범행을 부인하면 두 명 모두 1년 형을 받고, 둘 다 자백을 하면 두 명 모두 8년 형을 받는다고 하자. 이 게임의 주인공 player은 죄수 갑과 을이고, 그들이 내 놓을 수 있는 안 strategy는 ‘부인’ 아니면 ‘자백’이다. 그리고 그 결과 payoff는 구형량이다. 이 세 가지 변수를 가지고 한 번 이 두 죄수가 선택할 수 있는 안과 가능성, 그리고 그 때에 그들이 받을 형량과의 관계를 그림으로 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죄 수


죄 수

 

자 백

부 인

자 백

둘 다 8년

죄수 을은 석방
죄수 갑은 20년

부 인

죄수 갑은 석방
죄수 을은 20년

둘 다 1년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가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이 게임은 어떤 결론이 나게 될까?
둘다 자백: 둘다 8년
갑이 자백, 을은 부인: 갑은 석방, 을은 20년
을이 자백, 갑은 부인: 을은 석방, 갑은 20년
둘다 부인: 둘다 1년

이렇게 해서, 둘 다 부인하면 두 명 모두 1년 형을 받을 수 있음에도, 둘 다 자백을 해서 8년형을 구형받는 쪽으로 균형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둘다 담합을 해 부인할 때보다 7년을 더 산다. 이것을 죄수의 딜레마라 한다. 이 때, ‘상대방의 결정에 상관없이 내 쪽에 유리한 전략’을 우월전략(dominant strategy)이라 한다. 위의 경우, 상대방이 부인을 하던 자백을 하던 내 쪽에서는 자백을 하는 것이 우월전략이라 한다. 우월 전략은 석방이지만 상대방이 자백을 하느냐 부인을 하느냐를 모르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따른다. 이 게임은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둘이서 미리 협의할 수 있다면 함께 부인하자고 결탁할 것이다. 또 게임은 단 한 판으로 끝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같은 게임이 반복되면, ‘눈치껏’ 둘 다 부인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상대방의 진심을 알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수년 간 검사 앞에 불려 나가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서로 담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복이다. 그런데 그 세월이 부지하세월 不知何歲月이다. 우리는 그 많은 세월을 판문점에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상대방의 진의와 진심을 못 찾고 있는가? 아니면 어느 한 쪽이 검사의 사주를 받고 있는가?

게임이론은 과점시장을 이해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과점시장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 행동이 달라지는 전략적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를 남북이 운영하는 식당의 경우에 적용해 시뮬레이션을 해 보자. 

 

식당 갑(북)


식당 을(남)

 

50% 할인

정가

50% 할인

둘 다 4만원 이익

갑은 3만원 이익
을은 6만원 이익

정가

갑은 6만원 이익
을은 3만원 이익

둘다 5만원 이익

 

남북이 만약에 서로 담합을 해 정가를 받기로 하면 서로 할인 경쟁을 할 때 보다 분명히 1만원의 이익이 서로 더 생긴다. 그러나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담합을 이루지 않을 때에 자기에게 돌아올 6만원이란 이익이 탐이 나 그렇게 하지 못한다. ‘꼼수’란 바로 이런 경우에 생기게 된다. 내가 값을 내리면 상대방보다 1만원 더 받을 수 있다는 유혹이 바로 꼼수의 유혹인 것이다.

카르텔이 안 되는 이유는?

둘이 담합을 해 정가를 받기로 하면 5만원인데, 상대방이 정가를 받을 때에 내가 50% 할인하면 6만원을 더 벌어 1만원의 이익이 더 생긴다는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60% 할인을 한다. 이렇게 양자 간에는 끝없는 경쟁을 하게 되며 이래서 무한 경쟁이란 말이 나온다. 무한 경쟁은 결국 너 죽고 나 죽자는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라는 복수의 논리가 나오게 된다. 고속도로에서 내가 가는 차선이 막히면 다른 차선으로 옮겨 본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나와 같은 차선에 있는 다른 사람도 하게 되면 옮긴 차선에서 또 막히게 된다. 그러면 옮기기 전에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없는지를 끝없이 반복 검토해야 한다. 상대방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대학에 동시 지원을 할 때라든지 아파트 청약을 할 때라든지 비일비재하게 죄수의 딜레마에 걸리게 된다.

두 가게가 서로 앙숙 관계에 있어서 심하게 경쟁을 하면 음식 값이 음식 재료비 수준까지 떨어진다. 반면 두 식당 주인이 협력을 하여 서로 말을 맞추면 두 식당은 한 덩어리로 움직이므로 시장 내에 오직 하나의 공급자만 존재하는 독점시장과 같아진다. 두 식당이 말을 맞춰서 가격을 올리면 시장 내 수요는 줄면서 독점적 이익은 늘어난다. 이렇게 과점 시장 내의 공급자들이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 또는 얼마를 받을 것인가를 합의하는 행위를 담합Collusion이라 한다. 담합 행위를 하며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공급자들을 묶어서 카르텔Cartel이라 한다.

그렇다면 시장 내에 소수의 공급자가 존재하는 경우 항상 담합을 해서 독점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늘 그렇게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한 식당이 음식 값을 내리면 즉시 자기 식당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에(파는 제품은 대동소이함으로) 과점시장의 공급자는 항상 가격을 낮추자는 유혹을 받게 된다. 즉 카르텔은 매우 깨지기 쉽다. 자기 이익 추구와 합의에 의한 독점적 이익 추구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남북 사이에 카르텔이 성립되지 않는 이유도 이와 같으며, 여기에 미국이라는 외세가 개입을 하게 되면 일부 기득권자들은 자기 이익이 국가 이익보다 앞서게 되고 이때에 이들은 쉽게 카르텔을 허물고 만다. 바로 이러한 기득권 세력이 ‘고소영’ ‘강부자’ 같은 존재들이다. 산유국들 사이의 카르텔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미국 같은 수입국들이 뒤에서 조작을 하고 분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의 진정한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동 국가들 간의 불신의 원인이 친미냐 반미냐에 있고 보면 카르텔은 꿈같은 소리 같이 들린다.

김대중과 악셀로드의 협력이론: 이활웅의 통일은 ‘밑져야 본전’ 이론

게임이론이 처음 나온 이후 이와 같은 반복의 문제가 생기면서 1980년대에 와서 재검토를 하기 시작하였다. 다시 나온 이론을 ‘반복게임 이론’이라고 한다. 그 때 갓 등장한 PC가 반복 이론에 큰 공헌을 한다. 악셀로드 Robert Axelrod라는 교수가 이 게임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해 보았다.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여러 가지 전략을 실험을 했다. 실험 결과, 반복게임 후에 가장 낮은 구형량을 얻어낸 전략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눈눈 이이 전략’)이었다. 반복게임에서는 상대방이 부인을 하면 다음번에는 나도 부인을 하고, 상대방이 자백을 하면 다음번에는 나도 자백을 하는 전략이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이것이 ‘상호주의’이며 반복이론에서 상호주의는 나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눈눈 이이 전략’은 협력이론으로 가기 위한 전 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악셀로드의 이론의 골자이다. 악셀로드가 이명박의 상호주의를 볼 때에 통탄해 한다면 그 이유는 바로 상호주의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의 전략 그 자체이다. 끝까지 남북이 ‘눈눈 이이 전략’을 펴도록 하는 것. 그래서 어부지리를 얻자는 것.

악셀로드가 이렇게 죄수의 딜레마를 컴퓨터 실험을 반복한 결과 내 놓은 것이 ‘협력이론’이다. 협력이론은 이활웅 선생의 통일이론인 ‘밑져야 본전’이란 이론과 유사하다. 남북이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반복(이이 눈눈)하다보면 결국 협력하면 밑져야 본전이란 결론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협력 이론표. [사진 제공-김상일]

위 표에서 보듯이 남북이 협력하면 각각 3점을 얻지만, 반대로 비협력을 하면 각각 2점밖에는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남이 협력을 하고 북이 비협력을 하면, 남은 1점은 북은 4점을 얻는다. 입장을 바꾸면 남이 4점 북이 1점을 얻는다. 그런데 남북이 모두 다 비협력이면 양쪽이 모두 2점이다. 여기서 유혹을 받는다. 즉, 내가 비협력을 하고 남이 협력을 했을 때에 얻을 수 있는 4점에 대한 유혹 말이다. 그래서 비협력은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 밧줄을 놓아 버릴까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상대방을 죽이면 내가 죽는다는 생각으로 돌아오게 되고 이것이 바로 반복이론인 것이다. 그런데 협력을 하면 본전 3점은 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남북 관계에 딱 적합한 이론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반세기 동안 이런 반복의 반복을 거듭하였다. 1950-60년 대 이승만의 멸공통일에서, 1972 남북공동성명, 1992년의 기본합의서, 1994년의 김영삼 정부의 ‘민족이 동맹보다 우선한다’는 취임사, 드디어 2000년 6.15공동선언, 2007년 10.4선언 등등 서로 신뢰와 불신이 교차 반복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도 이 반복의 한 고리에 불과하다고 보고 싶다. 결코 오래 가지 못하고 반복의 수레에 올라타고 말 것은 명약관화하다. 악셀로드의 협력이론 상에서 볼 때에 ‘이이 눈눈’도 반복을 할 때에 협력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한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관심보다는 서로 싸우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 협력이론의 긍정적 사고방식이다. 부부간에도 적 敵은 무관심이지 싸움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부부싸움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서로 협력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게 생각할 때에 김대중 대통령은 과감하게 6.15시대를 열어 죄수의 딜레마에서 민족이 풀려 나오게 한 획기적인 사건에 공헌하였다. 그의 햇볕정책은 남의 보수주의자들을 무마하기 위한 용어이고 사실은 악셀로드의 협력이론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협력이론을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초기에 대북 송금 특검법을 만들어 폐기시켜 보려는 유혹을 받았다. 마치 이명박과 같이. 그 만큼 죄수의 딜레마는 빠져 나오기 힘든 유혹에 걸리게 하는 마력을 지닌 것이다. 협력하면 3점인데 상대방을 죽일 경우 4점이 되는 그 1점에 대한 유혹 말이다. 이 1점 때문에 인간은 딜레마에 빠진다. 황새와 잉어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미련하기 짝이 없는 어리석은 것이다.

2008년 이명박 시대와 함께 우리는 50년 전으로 회귀하는 듯한 대결 구도로 가고 있다. 다시 말해서 북을 끝까지 밀어 붙여라, 그러면 결국 백기 들고 나올 것이다. 나오면 그 때 또 다른 조건 붙여라, 그래서 그로기 상태로 밀어 붙이면 흡수통일은 된다는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퍼주기 안 했으면 북은 벌써 백기 들고 말았을 것이다. 이것이 한국 보수주의자들을 만나면 한결 같이 펴는 수사학이다. 결국 이승만 때부터의 멸공통일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분명하다. 북을 죽이는 것이 곧 남이 죽는 길이라는 사실, 이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중에 이 사실을 알고 끝날지는 아무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면 도대체 한반도에서 악셀로드의 반복 이론이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이유, 그래서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을 수밖에 없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게임이론이 한반도에서 안 통하는 이유는?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판문점을 걸어서 넘고 새로운 6.15시대의 새 장을 열고 물러갔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다시 딜레마에 빠져드는 이유는 위 기요틴 그림에서 볼 때에 밧줄을 잡고 있는 남 南의 손은 사실은 남 南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밧줄을 잡고 있는 것은 미국이고 목은 우리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러니 북 北을 죽이려는 것도 미국이고 남 南을 죽이려는 것도 미국이라는 이 엄연한 사실이다. 미국이 남북의 목을 기요틴 위에 걸어 놓고 밧줄은 자기들이 잡고 우리 민족 생존의 놀이를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게임이론이 한반도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작전권 회수 반대 그리고 미사일 방어망 구축 참가 등등으로 인해 미국이 우리 민족을 공멸의 길로 내몰고 있음에도 이명박 정부는 지금 쌍수로 환영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전개한 게임 이론이 우리에겐 폐기 처분될 수밖에 없는 이론이라는 것과, 조금이라도 이 이론이 타당성을 갖자면 우리 민족이 서로 공조를 먼저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통미봉남’이란 말을 누가, 언제 만들어냈는지 모르겠다. 게임이론으로 볼 때에 과연 북이 남을 봉쇄하고 미국과 통할 때에 그것이 북이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북이 생각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적어도 죄수의 딜레마로 보았을 때에 그렇다.

1948년 4월 30일 평양에서 있었던 남북 연석회의에서의 3대 결의 사항은 실로 우리 민족이 서로 협력해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3대 원칙이란 1. 미군철수, 2. 평화통일, 3. 단선단정 반대이다. 세 번째가 문제이다. 바로 상대방을 죽이고 나만 살겠다는 그 꼼수, 1점을 더 갖겠다는 꼼수가 바로 단선단정의 논리인 것이다. 이승만이 기어코 이를 해 내고 말았다. 그 이후 6.25 등이 이어지지만 그 첫 단추는 단선단정 강행에 있었다. 단선단정 강행의 주동자는 유엔을 앞세운 미국이다. 그래서 남의 밧줄을 잡고 있는 자는 남이 아니고 미국이다. 이때 북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남의 밧줄을 대신 잡고 있는 미국을 몰아내어야 우리끼리 되던 안 되던 협력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그래서 북이 금년 4월 1일에 내놓은 논평문에서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에 대하여 심한 어조로 반대하고 있는 이유도 1948년 그때에 있었던 3대 결의 사항과 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게임이론의 대가는 과연 누구?

다시 말해서 1948년 남북 연석회의는 실로 우리 민족이 서로 협력의 길로 갈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 전후 과정으로 볼 때에 이 연석회의를 알선 주선한 쪽은 북로당 쪽인 것이 제반 자료들을 통해 분명해지고 있다. 그리고 단선단정으로 몰고 간 측도 어디였다는 것도 분명해졌다. 북이 단선을 반대하고 3대 원칙에 의하여 통일 정부를 세우려 했던 진심은 지도자의 진면목에서 분명해진다고 본다.

이승만의 단선단정은 꼼수 가운데 꼼수라고 본다. 담합을 하지 않았을 때에 얻을 수 있는 1점 때문에 쉽게 담합 행위를 깨는 이것을 꼼수라고 했다. 북로당이 남북 연석회의에 집착한 이유는 회고록에 나타난 지도자의 지도력을 떠나 생각할 수 없다. 김일성 항일 유격대가 16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당시 국제 정세에서 중국과도 쏘련과도 협력관계가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고, 내부적으로는 김 주석이 보수 우익과도 갑부 지주들과도 협력을 잘 하였기 때문이다.

친일 지주 김정부와의 협력 때문에 그는 민생단 혐의까지 받기도 했다. 그것은 실로 생명을 거는 모험이었다. 중국인 갑부의 아들 장울화와의 협력은 실로 다윗과 조나단의 관계와 같다고 홍동근 목사는 평하고 있다. 해방 후 평양 갑부 백선행과도 협력했으며 서거 직전에는 정주영과도 서슴없이 만나고 거래를 하였다. 생전의 금강산 개방은 그의 남북 연석회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는 실로 꼼수의 정치가가 아니었다. 북이 말하는 ‘통 큰 정치’란 바로 그 1점을 포기하는 크기를 의미한다.

지난 대선 때 남의 김만복 국가정보원장과 북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사이에 나눈 밀담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아무리 밀담이라 하더라도 그 대화 내용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나는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는 아름답기까지 했다. 김양건 비서의 말 속에는 어떻게든 협력을 해 나가려는 실로 간절함과 바람이 있기에 차라리 밀실에서 나누어졌기 때문에 진실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이 한 토막의 대화에서 우리는 북의 한 지도자가 남기고 간 ‘통 큰 정치’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김구도 통 큰 인물이었다. 이승만의 사시적인 시각을 아랑 곳 하지 않고 38선을 넘던 그런 용기에 인물됨의 크기를 보게 된다. 김대중도 통 큰 인물이다. 그 대소의 차이는 있어도 그 1점을 포기하면 서로 살 수 있다는 협력의 진가가 무엇인가를 안 지도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통 큰 정치의 결산물로 나온 것이 바로 1980년 10월 10일의 ‘고려민주 연방공화국 창립’ 통일 방안이다. 북과 남이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 위에 남과 북이 동등하게 참가하는 민족통일 수립이 이 통일 방안의 골자이다. 민족통일정부 밑에서 남과 북이 같은 권한과 의무를 가지고 각각 지역자치제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실로 ‘너가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라는 것이 이 통일 방안 속에 담겨져 있는 내용이다. 이는 ‘연방제’로 알려져 있으며, 김대중 정부에 의해서도 연방제는 수정되어 받아들여졌다. 드디어 2000년 6월 15일 6.15공동선언에서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남북이 같이 수용하였다. 김일성 주석의 연방제 통일 방안은 그의 회고록 속에서 볼 때에 이미 항일 유격대 시절부터 그가 견지해온 협력 이론의 한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이 말의 진정성은 믿어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이 상대방을 죽이고 얻을지도 모르는 1점을 노리는 꼼수정치의 결과가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북이 안타까워하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그 동안 남북이 쌓아 온 신뢰의 과정 그리고 반복을 통해 얻은 교훈을 알기나 하라는 것이다. 아마추어 정부 운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준비 안 된 상대를 처음 만난 것이 북이 난감해 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지금 꼼수나 펴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민족이 과감하게 공조를 하지 않으면 우리 민족이 공멸하고 만다는 것, 남의 안정과 경제 성장에 북이 일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과연 북을 목 졸려 죽여 버린다면 남인들 성할 수 없다는 논리 자체를 같이 공부하자는 것이다. 북의 의도에 상관없이 밧줄을 놓으면 우리 민족은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주변 강대국은 모두 우리 민족이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도록 유도하고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알자는 것이다. 이 땅의 보수주의 우익들은 이런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출처: 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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