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⑤] 아직도 진행중인 동족상쟁의 비극 > 특집/기획/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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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는 동포들의 북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돕고자 북녘 매체들의 글을 "있는 그대로" 소개합니다. 이 글들이 본회의 입장을 대신하는 것은 아님을 공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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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⑤] 아직도 진행중인 동족상쟁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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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3-11-16 19:4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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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 차례 북한 여행을 다녀온 뒤 내게는 북한에 두고 온 수양딸과 수양조카가 생겼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정을 나눈 그들이 다시 보고 싶어서, 더 많은 북한 동포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올해도 다시 북한에 다녀왔다. 지난 8월 15일부터 8월 26일까지 한 차례 그리고 9월 4일부터 13일까지 또 한 차례 북한을 여행했다. 새 연재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를 통해 북한 동포들의 지금과 북한의 여러 명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기자말

땅거미가 드리우기 시작한 평양의 거리에 불빛이 밝혀진다. 흐르는 불빛을 타고 오늘의 짧은 여정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성불사 풍경소리를 뒤로하고 사랑스러운 북한 아이들과 어울렸다. 그리고 무르익어가는 재령평야를 바라보며 풍년을 기원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로 조선로동당에서 나를 보자고 하는지…. 오늘 일정이 끝날 때쯤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내 마음은 궁금증으로 요동친다. 왜 보자고 하는 걸까. 북한에 관해 글을 잘못 쓸 경우 화를 입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는데, 정말 내가 쓴 북한 기행문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던 걸까. 

그런데 다시 돌이켜 보니 그런 문제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만약 내 글에 문제가 있었다면, 평양 수양딸 설경이네 방문을 위해 유엔 북한대표부 외교관을 만났을 때 뭔가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아예 내 북한 입국을 불허했을 것이다. 

설향이의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 혹시 자기가 안내하는 손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걱정이라도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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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을 찿은 외국인 관광객들. 북한법에 익숙치 못해 실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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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일인지 무척 궁금했지만, 솔직히 겁은 나지 않는다. 그동안 북한 여행을 통해 이곳 북한이 어려서 배우고 들었던 것처럼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나라는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당연히 법이 있고, 이 나라 실정에 맞는 도덕이 있다. 단지 관광객들이 그 법이나 도덕에 익숙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사소한 실수로 법적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조금 심각하다고 생각되는 실수를 하더라도 대부분 정상 참작되는 일을 본 적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북한이 미국보다 훨씬 더 관용이 있지 않나 싶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은 외국인이든 자국민이든 법을 위반하면 가차 없이 벌금을 물거나 재판에 회부된다. 미국의 법이라고 모두 합리적이지는 않다. 또 타 문화권 사람들의 이해와는 거리가 먼 법도 있다. 그러나 '관광객이라 몰라서 그랬다'는 변명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되레 외국인 또는 유색 인종에게 더 까다롭기까지 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호텔에 닿았다. 영길 동생이 우리를 호텔 2층 회의실로 안내한다. 자기들은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겠단다. 문을 열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서니 인민복 차림의 두 사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중 상관으로 보이는 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왜 북한 가정집을 방문하려는지 묻는 조선로동당 관리

"안녕하십니까. 해외동포위원회 부국장입니다. 우리 때문에 서둘러 오신 건 아닌지요?"
"아니에요. 남편이 맥주를 한 잔 하고 호텔로 오고 싶어 했는데 일정을 바꿨을 뿐이에요."
"아, 그러셨습니까?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저… 신 선생님의 기행문을 읽었습니다."

'아, 드디어 내 기행문 이야기를 꺼내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화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나는 내가 보고 느낀대로 썼을 뿐이다. 민족애와 통일을 향한 염원을 담아서. 만약 내가 쓴 기행문이 내 또 다른 반쪽 나라 북녘땅에서 문제가 된다면,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자 가슴이 쓰리다. 부국장이라는 이가 말을 잇는다. 

"뉴욕의 대표부로부터 보고를 받았습니다. 왜 설경이네 집을 방문하시려는 건지요?"
"제 수양딸 설경이가 결혼을 하고 지금 산달이라고 들었어요. 어찌 안 보고 싶겠어요. 미국에서 가져 온, 가족들과 애기 선물이랑 그리고 상점에 가서 고기하고 미역이나 좀 사다 주고 떠나려고 해요."
"그러시군요. 잘 알갔습니다. 관광비자로는 수양딸을 만날 수 없어서 일반비자를 받아 9월에 다시 오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얼마나 애가 탈까 생각돼서 방조해드리기 위해 만나자고 한 것입니다."

순간 '방조'라는 말을 못 알아들어 설명을 부탁했다. '도와준다'는 말이란다. 

"감사합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다른 일은 또 없으십니까?"
"수양조카 방현수네 집도 갔으면 합니다."
"그 얘기도 들었는데 그 동무는 지금 세포 등판에 로력동원 나가 있어 한 달이나 있어야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러니 못 만날 것 같습니다. 어쩌디요?"
"그러면 부인하고 딸이라도 만나 가져온 선물이라도 전하지요.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외 또 다른 일은?"

남편이 말을 꺼냈다.

"저는 유도선수 계순희의 열렬한 팬입니다. 혹시 계순희 선수를 만났으면 하는데 가능할는지요?"
"아, 계순희 선수 말입니까? 잘 알갔습니다."

부국장이라는 사람이 또 책 이야기를 한다. 

"신 선생님 책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일부 내용이 좀 잘못돼 있긴 하지만 조국에 대해 잘 모르고 또 외부의 시선으로 보아 그런게니 리해합니다. 남녘의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난 분이 조국과 민족 그리고 통일에 관심을 가져주어 한편으론 놀랍고 또 의아해지기까지도 했습니다. 그러나 책속에서 신선생님의 진정한 동포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민족이나 통일은 사상이나 이념을 초월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사상이나 이념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맞습니다. 민족은 모든 것을 초월합니다. 계시는 동안 즐거운 관광하시고 9월에 오시면 또 만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 그럼 이만. 오늘이 마침 제 딸아이의 생일이라서 저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관용차를 사용할 수가 없어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며 두 사람은 서둘러 자리를 뜬다. 일요일에 쉬지도 못하고 시간을 내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가정집 방문, 정말 가능할까

두 사람의 위치가 어느 정도의 사람들인지 전혀 알 수는 없으나, 첫인상은 좋았다. 청빈한 관리라는 생각이 든다. 상당히 예의가 바르고 교양도 있는 사람들이다. 뉴욕서 만난 북한대표부의 외교관도 그런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로비로 내려가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영길 동생과 설향이가 자리서 벌떡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온다. 영길 동생이 다급한 목소리로 묻는다. 

"누나, 무슨 일이야요?"
"설경이와 현수네 집 방문 일 때문이었어."
"아, 나도 그런 줄 알았디. 그렇디 않으면 저분들이 관광객을 만나자 할 리유가 없디. 그래 만나라고 하요?"
"알겠다고 했어. 그런데 저 분들은 높으신 분들인가? 저분들이 알겠다고 하면 되는 거야?"
"고럼. 근데 정말 허락해 줄른지가 문제디. 관광객한테 그렇게 해 준적이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또 그런 일을 부탁한 관광객도 없었고." 
"내가 동포지, 관광객이야?"
"기건 기런데, 누나는 지금 관광비자를 갖고 있지 않갔어. 조국에도 다 법이라는 것이 있는데. 아마 허락해도 9월에 일반비자를 갖고 들어올 때나 만나게 될끼야요."

유교적 전통 강한 북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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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스맥줏집에서 맥주를 즐기는 젊은 남녀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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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녁식사를 뒤로 미룬 채 가스맥줏집으로 향한다. 시간이 늦어 가까운 곳으로 행선지를 정한다. 맥줏집 분위기는 지난 밤 갔던 곳과 비슷하다. 맥주를 발효시키는 통들을 손님들이 다 볼 수 있도록 개방해 놓은 게 특징이다. 

여기서도 젊은 남녀들이 낭만적인 만남 그리고 맥주를 즐기고 있다. 이제 평양에서는 이런 장면이 점점 일반화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여성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는 이러한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간 여행을 통해 느낀 게 하나 있다면 북한이 유교적 전통에 너무 집착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런 변화를 젊은 지도자의 등장과 연관 지어 생각해본다. 

지난 2012년 4월, 처음으로 북한지도자의 육성을 들어봤다. 이후 그는 전례 없이 부인과 팔짱을 끼고 나타나곤 했는데, 부인 또한 세련된 의상으로 서방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를 보며 직감적으로 북한에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나 마찬가지로 북한에도 소위 '꼴통'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집권을 해 거리에서 남성들의 헤어스타일이나 여성들의 복장을 단속하는 것보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모란봉악단 공연자들이 조선의 음악과 함께 외국의 음악도 연주하고, 그 공연을 지도자 부부가 앉아 인민들과 함께 감상하는 지금의 북한이 훨씬 더 보기 좋다. 그게 북한 인민들을 위해서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일은 자본주의의 퇴폐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의 도덕에 어긋나는 일도 아닐 것이다. '여자들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야말로 봉건시대의 낡은 유습 아닐까. 단지 의문이 가는 것은 여성해방운동에 일찍 눈을 떴다는 북한에서 오늘날까지 남존여비의 유교적 전통이 뿌리 깊게 박혀있는가 하는 점이다. 

평양 고급 맥줏집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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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스맥줏집, 손님들로 꽉 차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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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북한 맥줏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여성을 보는 건 내게 '뉴스'도 아니고 놀랄 일도 아니다. 단지, '대관절 저 여성들은 과연 누구일까'라는 의문만 남았다. 사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 또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일까 궁금하다. 왜냐면 술값 때문이다. 

두 명의 안내원과 운전기사 그리고 우리 부부 다섯이 안주와 함께 한두 잔씩 맥주를 마시고 20달러(한화 약 2만3000원)을 냈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이나 남한의 물가에 비하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나 이곳의 경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20불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영길 동생에게 물었다.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야?"
"아니, 어떤 사람들이라니요? 인민들이지."

더 이상 묻지 않는게 옳다 싶어 그만두기로 했다. 앞으로 계속 다니다 보면 알게 되겠지. 그런데 사람들이 계산할 때 외화를 쓰는 것 같았다. 

"여기서 원화(북한 돈)는 안 받아?"
"여기는 외화만 받습니다."
"그러면 외화가 없는 사람들은 어떡해?"
"조선돈 아니면 전표를 받는 곳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표? 전표라니?"
"아, 전표라는 것은 일종의 맥주 배급표입니다. 한창 더울 때는 하루에 1리터씩 마실 수 있는 표를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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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스맥줏집에서 맥주를 즐기는 젊은 여성.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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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향이는 "아버지는 술을 마시지 않아 맥주 배급표를 술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나눠준다"고도 한다. 영길 동생의 맥주 예찬은 계속된다. 

"사실은 기곳 맥주가 더 맜있디요. 돗수도 쎄고. 대동강맥주회사에서 생맥주를 공급하는데 돗수가 더 높아요. 맥주를 드셔보신 장군님(김정일 위원장)께서 '로동자들에게는 기존의 맥주가 좀 약하니 돗수를 높히라' 하셔서 보통맥주보다 돗수가 더 높게 만들어졌는데 한 잔 주욱 들이키면 쫘악 오르는 게 정말 좋습니다."

술 좋아하는 남편이 귀가 솔깃해져 한마디 한다.

"야아, 그 맥주 정말 마셔볼만 하겠구만. 꼭 폭탄주 맛이겠다. 폭탄주보다 더 맛있겠네, 이미 함께 발효가 되었을 테니."

영길 동생이 의아해한다. 

"폭탄주가 뭐야요? 폭탄으로 술을 만들아요, 아니면 술로 폭탄을 만들아요?"
"내가 나중에 만들어 줄 테니까 그때 돗수 높다는 그 대동강 생맥주와 비교해 봐."

대체 폭탄주가 뭘까 궁금해 하며 영길 동생은 연상 고개를 갸우뚱 한다.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것, 민족의 동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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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스맥줏집에서 운전기사 철남 동생과 함께.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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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여행은 모두 패키지 여행이다. 조선국제려행사에 지불하는 여행비는 베이징-평양 왕복 비행기표·호텔비·식사비·국내선 비행기를 포함한 교통비와 관광지 입장료 등이 포함돼 있다. 열흘을 기준으로 대략 2500달러에서 3000달러 정도 한다. 여행비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아리랑 공연 티켓(100~250달러), 고구려 고분석실 관람료(120달러 정도) 그리고 안내원과 운전기사를 위한 팁 정도다(영국인이 운영하는 북한 관광 전문 누리집, 이곳에 가면 일정과 가격이 자세히 나와 있다... 바로 가기)

식사 때마다 맥주나 소주가 제공되지만, 오늘처럼 공식 일정에 없는 술집에 간다든가 혹은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식사 대신 여행자가 원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할 경우에는 본인이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하루 일정을 끝내고 안내원들과 운전기사에게 맥주를 대접하는 일은 우리들의 즐거운 여정 중 하나다.

이런 자리에서 나는 우리가 한 민족이요, 동포요, 형제자매라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자녀교육·부부관계·부모님 모시는 일·직장·친구관계 등 사람 살아가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자면 '어쩜 이렇게 똑같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이내 이런 사람들이 수십 년을 떨어져 살며 서로가 총을 겨누고 있다는 현실을 체감한다. 이 현실이 너무 허무해 가슴이 뻥 뚫어져 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희망도 품는다. 누군가 아무리 우리를 갈라놓으려고 해도 우리는 서로 만나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금세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연히 만났던 재미동포 할머니가 생각난다. 그분은 "이제 남과 북은 말도 점점 달라지고 이질감이 너무 커 함께 살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내가 물었다.

"할머니, 미국에 사시면서 언어가 불편하시지는 않으세요? 영어 잘 하세요?"
"내가 무슨 영어를 해. 여기서 수십 년을 살았지만 영어는 잘 안 되네."
"답답하시지 않으세요?"
"답답하지. 난 그래서 한국 텔레비전만 봐. 한국 비디오 빌려다 보고."

"저도 여기서 박사공부까지 했지만 여전히 영어는 불편해요. 우리말이 너무 편하고 정겨워요. 미국은 정말 우리하고 다르지요?"
"다르고 말고. 이 사람들은 말도 안 통하고 생각하는게 우리하고는 아주 달라, 다르고 말구."
"한국으로 가셔서 사실 생각은 없으세요?"
"아냐, 난 여기서 살다 죽을거야."
"이렇게 말도 안 통하고 이질감이 큰 나라에서 계속 사실 수 있으시겠어요?"
"…."

이 재미동포 할머니께서는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전혀 다른, 그야말로 이질감이 극에 달하는 미국에서 잘 살고 계신다. 과연 '남과 북은 이질감이 커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이 설득력 있을까.

아픈 몸을 숨긴 설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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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스맥줏집에서 아이스크림을 주문한 설향이. 알고보니 몸이 아팠단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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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줏집에서 나오니 벌써 오후 9시가 넘었다. 저녁식사가 너무 늦어졌다. 설향이는 식당들이 문을 닫을 시간이라며 걱정을 한다. 북한에는 밤새 영업을 하는 식당이 없다. 영업시간이 끝나면 문을 닫고 봉사원들은 퇴근한다. 그런데 설향이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인다. 

"설향아, 어디 아프니?"
"일 없습니다. 어제 밤 호텔의 냉방기가 너무 추웠나 봅니다. 온도를 높히고 잔다는 것이 그만 잠이 들어 버렸어요. 몸이 으실으실 춥고 떨리는데 인차(곧) 괜찮아 질겁니다."

남편이 가방에서 감기약을 꺼내며 말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지…. 어떻게 감쪽같이 있다가 이제야 쓰러지니, 설향아. 어서 이것부터 먹어."
"일 없습니다."
"일 없기는 인마, 어서 약 먹어."

옆에서 영길 동생이 자기는 설향이의 몸이 안 좋은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들의 임무는 우리가 즐겁도록 안내하는 일이라, 설향이가 숨기고 있다가 호텔로 돌아가게 되니 긴장이 풀어져 더 아픈 것 같단다. 남편이 영길 동생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자네도 집에 가면 설향이 만한 딸이 있다드니 어찌 사람이 그런가, 어른이 돼가지고."

그리고 설향이에게 걱정 어린 야단을 쳤다.

"아프면 얘기를 해서 빨리 평양으로 돌아오든가 했어야지, 그걸 숨기고 있다 큰일이라도 나면 어쩔라고 그러니, 이놈아."
"일 없습니다. 걱정을 끼쳐드려 안 됐습니다."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3층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가 식사를 하기로 한 곳이다. 하지만 이미 문이 닫힌 뒤였다. 이 호텔 지하에는 다른 식당이 또 있었는데, 설향이는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가보니 세 손님이 스시바에 앉아 늦은 시각까지 술을 마시고 있다. 설향이가 봉사원에게 묻는다. 

"지금 식사 일 없겠습니까? 두 분인데…."
"이미 끝났는데…."
"아, 이를 어쩌나…. 해외동포 손님인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봉사원이 잠깐만 기다려 보라며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나오며 미소를 짓는다. "어서 앉으십시오"라는 말과 함께. 설향이는 우리에게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 주무신 뒤 내일 오전 9시에 로비서 만나자고 한다. 그러자 남편이 설향이 저녁 식사를 걱정한다. 

"너는 밥 어떻게 하구?"
"저는 그냥 올라가 자겠습니다. 영길 동지도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래, 밥맛도 없을 게다. 어서 올라가 쉬고 내일 아침에 만나자."

평양냉면, 이렇게 먹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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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고려호텔 지하식당 냉면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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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트리스가 나와 무엇을 주문하겠느냐고 묻는다. 남편과 나는 냉면을 먹기로 이미 마음을 굳힌 터였다. 

"저, 혹시 냉면 지금 되겠습니까?"
"랭면이요? 잠시 기다려 보시겠습니까?"

또다시 주방에 갔다 오더니 "몇 그람 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우리는 냉면 200그램을 주문한다. 

북한에서는 냉면의 양이 세가지로 나뉘어 있다. 100, 200 그리고 300그램이다. 양을 비교하자면, 200그램 냉면은 서울 냉면집에서 제공하는 그 양보다 조금 많은 정도다. 

평양의 냉면은 정말 원조답다. 설탕을 넣지 않아 전혀 달지도 않는 게 묘하게도 감칠맛이 난다. 육수는 대체 무엇으로 우려냈는지 그윽하고 깊은 맛을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닭고기·소고기·돼지고기가 얹혀 있으니 그것으로 국물을 내어 조선간장(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한 것 같다. 그런데 그 외에 무엇을 넣었는지 알 길이 없다. 요리하는 걸 좋아해 한 입만 먹어보면 재료를 알아맞추는 남편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겠다고 한다. 

여러 차례 북한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평양냉면을 즐기는 방법 하나는 제대로 터득했다. 냉면이 나오면 우선 그릇을 높이 들고 쌓아올린 고명이 무너지지 않게 조심스레 기울여 국물을 마신다. 그다음 젓가락으로 고명을 한쪽으로 살짝 쓰러트린 후 그릇을 들고 다시 한 번 국물을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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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수를 입에 매달고 평양냉면을 먹는 나. 평양냉면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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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젓가락으로 면을 길게 들어 올려 국숫가락 위에 식초를 골고루 두른 후 국물에 겨자를 풀고 또다시 그릇채 국물을 마셔본다. 그런 다음 국수를 입에 넣고 으적으적 씹는다. 하지만, 국수는 끊어지지 않는다. 국수를 입에 매단 채 그릇을 들고 국수와 국물을 함께 들이킨다. 지루하다 싶으면 고기 한 점 입에 넣으면 된다. 그래도 성이 안 차면 곁들여 넣어준 꿩고기 경단을 먹으면 된다. 달큰한 게 당기면? 냉면국물 머금은 배를 베어물어 입안 분위기를 전환하면 된다. 

그릇을 다 비우고 나면 어떤 때는 냉면국물을 더 가져다 줄 때가 있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채로 국물을 쭈욱 들이키면, 처음 냉면국물을 들이키던 그 입맛으로 다시 돌아간다. 자연스레 냉면에 대한 미련을 갖게 한다. 마지막으로 웨이트리스가 가져다주는 메밀차를 마시며 미련을 다독인다. 

이날 지하식당에서 나는 냉면 한 그릇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아 아름다운 '평양냉면의 밤', 아! 옆에서 이런 날 지켜보던 남편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그만 먹고 올라가잔다. 나는 못내 아쉬워 한마디 던진다. 

"여보, 평양냉면을 주제로 노래 한 곡 작곡해 이 행복감에 보답하고 싶네요. 그런데 내 노래의 멜로디나 가사가 사회주의 이념과 배치되면 어쩌지요?"
"아니, 냉면에 무슨 이념이 있고 사상이 있어?"

"너희가 혹시 마주치더라도 총은 절대 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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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로 누나의 약을 가져 온 설향이의 남동생 국철이(가운데).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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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나와 호텔방으로 가려고 로비를 향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아파서 일찍 쉬고 싶다던 설향이가 멋진 젊은 남성과 의자에 앉아 다정히 뭔가를 주고받고 있다. 그 광경을 목격한 남편이 흥분해 큰소리친다. 

"어?! 쟤 좀 봐, 아프다는 아이가 이 늦은 시간에 남자친구하고 뭐하는 거야."
"여보, 좀 조용히 하세요. 그나저나 남자아이가 듬직한 게 진짜 잘생겼다. 설향이 눈이 보통 높은 게 아니네요."

우리와 눈이 마주친 설향이와 남자아이가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온다. 설향이가 "제 동생입니다, 제가 아파 집에서 약을 갖고 왔습니다"라며 동생을 소개한다. "리국천입니다." 동생이 인사를 한다. 정말 남자답게 잘 생겼다. 너무나 늠름해서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국천'이라 그랬나요?"
"네, 조국을 하늘처럼 받들라고 아버님께서 '국천'이라 지으셨답니다."
"아, 참 좋은 이름이네요. 그래 지금 뭘 하고 있어요?"
"평양외국어대 러시아어과 4학년입니다."
"곧 졸업이네요. 졸업을 하면 무얼 할 예정이에요?"
"군사복무를 할 예정입니다. 제가 원하면 직장을 가져도 되지만 저는 꼭 군사복무를 하고 싶습니다."

설향이가 자랑스러운 눈으로 동생을 바라보며, 자기 역시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남성과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한다. 남동생을 유심히 바라보던 남편이 말을 잇는다.

"자네 꼭 역도산같이 생겼어. 역도산이 누구인 줄 아나?"

국천이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네, 그런 말씀 많이 듣습니다."
"아니, 자네가 역도산을 어떻게 알아?"
"조국에서 력도산은 꽤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제자 '안토니오 이노끼'라는 일본의 레슬링선수가 가끔 평양에 오기도 합니다."

나는 역도산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듬직하니 잘 생긴 청년이다.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에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우리나라에 '역'씨 성도 있어요?"
"아, 참, 이 사람…. '역도산'은 말하자면 예명같은 거야. 본명은 나도 모르겠어. 일제 때 태어난 사람인데 고향이 아마 함경도일 거야. 조선의 씨름꾼이었는데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씨름인 스모선수를 하다가 프로레슬링 선수가 된 유명한 사람이지. 김일이라는 남한의 프로레슬러도 역도산의 제자일걸?"
"박치기로 유명했던 김일 선수는 어려서 많이 봐 저도 잘 알지요. 그런데 역도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네요."
"모르겠지. 일본에서 활동하다 죽었으니까. 야쿠자의 칼을 맞고 죽었어."

아무리 잘 생겨도 그렇지 남편은 왜 하필이면 야쿠자의 칼에 맞아 죽은 사람에 국천이를 비유하는지…. 엘리베이터가 내려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는데 국천이가 "선생님" 하고 부르며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와 인사를 한다.

"저도 이제 집으로 돌아갑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래 잘 가. 집에 가면 부모님께 우리 인사 전해드려요. 그리고 군대에 가면 몸조심 잘 하고."
"네, 명심하겠습니다. 부모님께선 벌써 두 분을 잘 아시고 계십니다. 누나가 하루에도 몇 번씩 집에 전화를 한답니다. 말씀 전하겠습니다."

방으로 돌아오는데 아들 생각이 난다. 내 아들은 이중국적자다. 내년에 대학을 졸업하면 서울에 가서 군에 입대하겠단다. 어쩌면 내 둘째 수양딸 설향이의 동생 국천이와 나의 아들은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눌지도 모른다. 아, 우리는 이런 비극의 역사를 언제까지 안고 살아야 하는가.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얘들아, 혹시 너희들이 마주치게 될지라도 서로 총은 절대 쏘지마라."

무슨 이유인지 두 아이들이 비무장지대에서 꼭 마주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 밤은 나의 국군 아들과 인민군 국천이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마음이 답답해 잠을 이루기가 힘들다. 먼 옛날 끝난 줄만 알았던 동족상쟁은 아직도 진행형이구나.

[이 게시물은 편집실님에 의해 2013-11-16 19:42:01 종합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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