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③] 정방산 성불사 > 특집/기획/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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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는 동포들의 북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돕고자 북녘 매체들의 글을 "있는 그대로" 소개합니다. 이 글들이 본회의 입장을 대신하는 것은 아님을 공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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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③] 정방산 성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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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3-11-08 22:1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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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 차례 북한 여행을 다녀온 뒤 내게는 북한에 두고 온 수양딸과 수양조카가 생겼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정을 나눈 그들이 다시 보고 싶어서, 더 많은 북한 동포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올해도 다시 북한에 다녀왔다. 지난 8월 15일부터 8월 26일까지 한 차례 그리고 9월 4일부터 13일까지 또 한 차례 북한을 여행했다. 새 연재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를 통해 북한 동포들의 지금과 북한의 여러 명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기자말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오전 5시가 조금 넘었다. 창가 옆 의자에 앉아 커튼을 살짝 젖혀놓고 길가를 응시했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뭔가 보일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서서히 동이 터온다. 하나둘씩 사람들이 보일 시간이 됐는데 무슨 일인지 오늘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상하다. 평양의 아침은 늘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 소리에 맞춰 출근하는 사람들의 역동적인 발걸음이 보이는데, 오늘 창밖 풍경은 상당히 지루하다. 

어제 있었던 일을 메모하려고 수첩을 꺼내보니 오늘은 일요일. 아, 휴일이구나. 남편은 지난밤 마신 술이 아직 덜 깼는지 아직도 코를 곤다. 

아뿔싸. 이번에는 왜 일요일에 평양 봉수교회 가는 것을 미리 부탁해놓지 않았는지…(관련기사 보기). 남편에게 여행 일정을 다 떠맡긴 내 불찰이다. 홀로 조용히 예배를 드린다. 예전에 읽었던 데이빗 로스(David E. Ross) 목사의 저서 <북한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설교삼아서 말이다.

"남한도 사랑하시고, 북한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분열돼 서로를 향한 증오와 원망으로 상처받은 우리의 역사를 회개하고, 이제는 사랑으로 우리 민족이 화해하며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나 되게 하옵소서. 그렇게 될 때, 분명 우리 민족이 어두운 곳에 빛을 발하는 등대와 같은 사명을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축복해주시옵소서."

따뜻한 평양의 아침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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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에서의 아침식사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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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에 떠나자고 했는데 시계를 보니 어느덧 8시다. 잠에 곯아떨어진 남편을 흔들어 깨워 늦기 전에 아침식사를 하러 호텔 레스토랑에 간다.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뷔페식 식사를 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특별히 조선식 아침식사를 가져다줬다. 식욕이 별로 없어 커피만 찔끔찔끔 마시고 있는데, 나를 유심히 바라보던 웨이트리스가 주방에 가서 작은 그릇에 담긴 반찬 하나를 얼른 가져다준다. 그녀는 "드셔 보십시오, 밥도둑이랍니다"라며 식탁 위에 찬을 올려놓는다. 

멸치보다 가늘고 입도 더 뾰족한 생선에 풋고추를 가득 넣고 간장으로 간을 해 걸쭉하게 졸인 반찬이다. 젓가락으로 조금만 살짝 집어 조심스레 입에 넣으니 매콤한 풋고추의 향과 짭짤한 양념이 침샘을 자극하며 입맛을 돋운다. 한 숟가락도 못 먹을 것 같았던 밥을 한 그릇이나 비운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웨이트리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고마워요. 실은 아침에 식욕이 없어 커피만 마시려고 했는데 덕분에 밥 한 그릇을 다 비웠어요."
"그러신 것 같아 졸임 반찬을 가져다드렸습니다. 고저 우리 조선 사람은 밥맛없을 때 그런 반찬이 최고입니다. 그래도 밥이 안 넘어간다 싶으면 물에 밥 말아 젓갈이나 김치와 함께 드시면 그런대로 넘어가지요. 오늘은 오델 가시나요?"
"황해도로 간다고 했는데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어요."
"잘 다녀오십시요. 그리고 특별히 드시고 싶으신 걸 미리 말씀해주시면 준비해놓겠습니다."

세심한 정성과 마음 씀씀이가 사람을 감동시킨다. 기분 좋은 아침이다.

정방산 가는 길

로비에 가니 설향이와 영길 동생이 우리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온다. 설향이는 짐을 잔뜩 들고 있다. 

"어머, 설향아, 너는 무슨 짐을 그렇게 많이 들고 있니?"
"오늘 정방산에서 드실 벤또와 아버지 좋아하시는 대동강 맥주입니다."
"벤또하고 맥주?"
"네."

'벤또'라는 일본말을 아직도 그대로 쓰고 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설향이를 보는 남편이 영길 동생에게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남편이 투박한 말투로 영길 동생에게 소리친다. 

"영길이, 자네가 좀 들어. 어린애가 안쓰럽지도 않아?"
"아니, 어린애라니요. 형님, 저도 집에 가면 설향이 만한 딸이 있시요. 걔가 다 하지 아버지한테 이걸 들게 하갔시요?"
"그럼 관둬, 내가 들 테니까."

설향이가 들고 있는 짐을 남편이 대신 들려고 하자 영길 동생이 얼른 낚아채며 "양딸 삼으니까니 짐마저 내게 지라시는구만요"란다. 영길 동생이 껄껄 웃는다. 

오늘은 황해도에 있는 정방산과 장수산에 간다고 한다. 정방산에는 성불사라는 절이 있는데 절 구경을 마치면 그 근처 경치 좋은 곳에서 소풍 삼아 도시락을 먹은 뒤 장수산에 갔다가 평양에 돌아온단다. 

"지금 설향이가 성불사에 간다고 했어요?  홍난파의 노래 <성불사의 밤>에 나오는 그 성불사?"

나는 의아한 마음으로 남편에게 물었다.

"몰라, 그 성불사인지…. 아니, 노래 부르는 당신이 더 잘 알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럼 당신은 그 노래에 나오는 성불사가 어디 있는 절인 줄도 모르고 노래를 불렀단 말이야?"
"몰랐어요. 남한 어디에 있는 절인가 했지요. 그냥 가사따라 불렀지 그 절이 어디 있고, 어떻게 생긴 절인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전에는 나의 투철한 '묻지마 반공' 정신 때문에, 지금은 노래 제목 때문에 남편으로부터 '꼴통'이라는 막말을 듣는다. 다시는 남편에게 묻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며 조용히 설향이에게 물었다. 

"설향아, 너 혹시 <성불사의 밤>이라는 노래를 아니?"
"<성불사의 밤>이요? 모르겠는데요. 조국에 절을 주제로 한 노래는 없습니다."

'조국에 절을 주제로 한 노래는 없다'는 설향이의 말에 남편은 옆에서 배를 움켜쥐고 웃는다. 이 아이가 그 노래를 알 턱이 없는데…. 남편은 이런 질문을 한 내가 한심한지 '참 안됐다'는 표정으로 비웃는 듯 쳐다본다. 그래도 궁금한 걸 어쩌랴. 나는 계속 묻는다. 

"설향아, 성불사에서 해외동포 관광객들이 그 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어본 적 없니?"
"저는 해외동포 관광객을 안내해 본 적이 없습니다. 두 분이 처음입니다. 제가 모시는 손님들은 모두 영어를 모국어로 말하는 외국인들입니다. 그리고 정방산도 오늘 처음이야요. KITC(조선국제려행사)에서 이곳을 관광코스에 포함시켜 보려고 시험 중인데 제 생각에는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정방산이 어떤 산인지 안 가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조국에는 금강산, 묘향산, 백두산, 칠보산, 구월산 등 명산이 수도 없이 많은데 구태여…. 그런데 <성불사의 밤>이라는 노래는 어떤 노래입니까?"
"음…. 나중에 불러줄게."

전쟁 준비한다는 나라가 건설 공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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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 중인 김일성대학 교원아파트의 모습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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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탄 자동차는 평양 시내를 지나고 있다. 설향이는 건설 중인 고층 건물 두 동을 가리키며 말을 잇는다. 

"저 건물이 종합대학 교원 아파트입니다. 건물 꼭대기의 모양은 펼쳐놓은 책을 본딴 겁니다."
"종합대학이라니?"
"김일성종합대학 말입니다.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저렇게 섰습니다. 저 공사가 끝나면 곧바로 김책대학 교원 아파트도 짓기 시작할 겁니다."
"뭐? 4개월 만에? 그런데 공항은 왜 2년이 다 되도록 제자리걸음이니?"
"조국에서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인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학문이 발달해야 나라가 발전한다'고 원수님께서 말씀하시며 '교원들을 위해 좋은 살림집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공항은 인민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공항을 이용하는 북한 주민들이 그리 많지 않으니 맞는 말이긴 하겠지만, 어쨌든 공항 공사도 좀 더 빨리 끝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본다. 

올해 봄,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 상태가 벌어졌을 때 미국 언론들은 북한의 군사훈련 장면을 연일 내보내며 북한이 전쟁 도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지금 평양에 와 보니 곳곳에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전쟁을 하려는 나라가 전쟁 준비와 동시에 건설 공사를 사방에 벌려놓고 있다니…. 내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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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방산 가는 길 설향이와 함께. 영길 동생의 짖궃은 농담에 박장대소하고 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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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태운 차가 사리원시를 지나간다. 개성과 판문점을 갈 때면 지나치는 황해북도 도청 소재지다. 개성공단 회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 설향이에게 물었다. 

"개성공단 회담이 어떻게 돼 가는지 너 아니?"
"네, 잘 됐다고 <로동신문>에서 읽었습니다."
"<로동신문>에서?  그 신문 어디 있어?"
"손전화로 읽었습니다. 지금 보여드릴까요?"
"아니, 됐어. 잘 됐다는 소식으로 충분해."

설향이가 "개성공단은 북남의 지도자들께서 민족의 화합을 위해 만드신 곳이니 꼭 열려야 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개성공단을 바라보는 남과 북 사람들의 시각은 꽤나 다른 것 같다. 남에서는 개성공단을 두고 '북한에 돈을 퍼다 주는 곳'으로 생각하는 반면, 북에서는 설향이의 생각이 일반적이다. 통일의 시금석이라는 말이다. 설령 북한 정부가 대중들을 그렇게 교육시켰다고 할지라도 나는 이들의 생각에 백 번 동의한다. 

정방산에서 만난 북한 주민들의 나들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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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방산 개울에서 캠핑을 하는 중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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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들이 나온 북한 주민들 정방산 입구와 근처 개울에서 만난 북한 주민들. 캠핑을 하는 중학생들과 공터에서 배구를 하는 남성들이 보인다.
ⓒ 신은미

우리 일행이 탄 차가 정방산에 닿는다. 산 입구 개울에는 방학을 즐기러 나온 아이들로 가득하다. 한쪽에서는 한 엄마가 플라스틱 용기에 정성스레 담아놓은 음식을 아이들과 함께 정겹게 먹고 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야외용 풍로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놓고 뭔가를 볶고 있다. 고소한 냄새가 온 개울에 퍼진다. 저만치에서는 돌을 괴어 냄비를 얹어놓고 나뭇잎과 나뭇가지로 불을 지펴 뭔가를 끓이고 있다. 밥인지 찌개인지 보글보글 맛있는 소리가 난다.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우리가 절 구경을 마치고 내려올 때까지 저들이 식사를 마치지 않으면 좋겠다. 호텔서 가지고 온 우리의 '벤또'와 바꿔 먹자고 할 심산으로. 

산 입구 공터에서는 웃통을 벗어 던진 남성들이 배구를 하고 있다. 네트도 갖추고 심판도 있다. 제법 형식을 갖춘 모양새다. 높은 의자에 앉아 있던 심판이 호각을 힘있게 분다. 그러자 한쪽 남성들이 심판에게 달려가 따져댄다. 뭔가 억울한 상황이 발생한 듯. 사람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낭만이 있다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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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방산 성불사 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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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정방산 내 성불사 성불사 입구 남문루를 통해 절에 닿는다. 놀라웠던 것은 이 절을 찾은 북한 관광객의 숫자가 비교적 많다는 사실.
ⓒ 신은미

정방산은 기봉산·모자산·노적산·대각산의 산마루가 서로 잇닿아 정방형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 산의 이름이 정방산이란다. 산 입구는 살구꽃과 배꽃이 피어 꽃내음이 가득하다. 해설원으로부터 정방산 곳곳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다 고려 시대에 세워졌다는 정방산성 남문루에 다다랐다. 성 안도 유원지로 잘 가꿔놨다. 군데군데 연못가에는 나들이 나온 동네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한 여름 휴가를 즐기고 있는 듯하다. 

성내에 있는 성불사 입구에 다다르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북한 주민 관광객들이다. 전에도 북한 관광지에서 북한 관광객들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인파를 본 적은 없었다. 휴가를 나온 사람들이 눈에 많이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 동포들의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는 뜻 아닐까. 정말 흐뭇한 모습이다. 

성불사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절의 보존 상태가 다소 허술해 보인다. 하지만, 보수를 한답시고 울긋불긋 현란하게 색칠만 해놓은 것보다는 훨씬 낫다. 허물어지지만 않는다면 이대로가 더 좋다. 페인트 냄새보다 곰팡이의 흔적이 느껴지는 오래된 목재 냄새가 되레 사찰의 역사성과 고풍스러움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친일 작곡가의 노래를 듣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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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과 함께 <성불사의 밤>을 부르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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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사의 스님이 나와 우리를 맞는다. 이 스님은 30년 전에 출가했단다. 법명은 '법성'. 자못 근엄한 목소리의 소유자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스님 앞에서 웃음을 참느라 진땀을 뺀다. 스님이 신은 노란 구두 때문이다. 남한에서 만난 스님들은 대개 고무신을 신던데, 북한 스님은 나름 '패션'을 추구하는 듯하다. '스님'이라는 이미지와는 잘 맞지 않아 어색해 보인다. 이것 또한 내 선입견인가? 스님이 구두를 신으면 이상하다는 그런 선입견 말이다. 생각해 보니 북한에서 고무신을 신은 이를 거의 본 적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법성 스님께서 절의 역사를 설명한다. 스님은 "신라시대에 도선국사가 창건했으며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영조 때 중건했다"며 "이후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955년에 극락전을 복원했다"고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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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의 노란 구두. 승복 끝자락에 '왕'자가 한문으로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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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를 돌아보고 5층 석탑 앞에 다다르자 스님께서 쉴 새 없이 절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왜정 때 홍난파라는 작곡가가 있었는데 그가 만든 노래 중에 <성불사의 밤>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해외동포들은 다들 아시고 계시던데 혹시 아시면 함께 불러 보실랍니까?"

나는 이 절이 바로 내가 알고 있는 노래 속의 그 성불사라는 사실에 감격하기에 앞서, 홍난파가 일제 강점기 당시 친일행각을 한 음악가라는 것을 떠올리며 깜짝 놀랐다. <성불사의 밤>의 노랫말을 지은 노산 이은상도 친일 의혹을 받는 시인이다.

스님의 선창으로 나는 <성불사의 밤>을 함께 부르기 시작한다. 성악을 전공했다는 나도 겨우 1절 가사만 기억하는데 스님은 2절까지 가사를 외우고 있다. 문득 의아해지기 시작한다. 혹시 이 스님은 홍난파가 친일 행각을 한 음악가라는 걸 모르고 있는 걸까. 

그러던 중 지난해 5월, 남편과 내 수양딸 설경이가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남편이 "설경아, 그 시절(일제 강점기)로 돌아가 다시 태어난다면 너도 이 추운 산속에서 총을 메고 일본군에 맞서 유격대원을 할 수 있겠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설경이는 "물론입니다, 우리는 항일의 역사를 배우며 자라납니다"고 대답했다(관련기사 보기). 당시 나는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왜냐하면 솔직히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북한동포들에게 애정을 갖는 이유는 이들이 우리와 피를 나눈 한 동포요, 형제자매이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이들의 항일정신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지금 이 스님은 친일 전력이 있는 작곡가가 만든 노래 <성불사의 밤>을 2절까지 부르고 있다. 소위 뉴라이트 학자들의 역사교과서를 통해 어쩌면 아이들이 친일의 역사를 배우며 자라나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남한에서조차 홍난파는 논란의 대상인데도 말이다. 

북한 주민들이 홍난파의 또 다른 작품인 <고향의 봄>과 <봉선화>를 자주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솔직히 의구심이 생긴다. 어찌 독립군들과 그들의 후손이 세웠다는 북한에서 친일 작곡가의 노래가 버젓이 불리는지 말이다. '친일파를 완전히 청산했다'는 북한동포들의 여유에서 오는 현상일까, 아니면 민족 정서를 담은 예술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스님이 열창한 <성불사의 밤>은 이 노래를 잘 알고 있을 나 같은 해외동포 손님들을 위한 배려일까. 절을 등지고 내려오며 스님의 노래를 더듬어 다시 그 노래를 되짚어본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노래를 떠올리고 있는데 영길 동생이 다음 행선지인 장수산으로 가기 전에 어서 이 근처에서 '벤또'를 먹어야 한다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 게시물은 편집실님에 의해 2013-11-09 00:39:37 종합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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