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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는 동포들의 북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돕고자 북녘 매체들의 글을 "있는 그대로" 소개합니다. 이 글들이 본회의 입장을 대신하는 것은 아님을 공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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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 "평양 간다"니까, 북한 여인이 내 손을 덥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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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3-09-29 18:2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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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간다"니까, 북한 여인이 내 손을 덥석...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①] 수양딸·조카 만나러 평양 가는 길
13.09.25 13:48l최종 업데이트 13.09.25 14:43l

지난 세 차례 북한 여행을 다녀온 뒤 내게는 북한에 두고 온 수양딸과 수양조카가 생겼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정을 나눈 그들이 다시 보고 싶어서, 더 많은 북한 동포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올해도 다시 북한에 다녀왔다. 지난 8월 15일부터 8월 26일까지 한 차례 그리고 9월 4일부터 13일까지 또 한 차례 북한을 여행했다. 새 연재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를 통해 북한 동포들의 지금과 북한의 여러 명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기자말

2011년 10월,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에 이끌려 내 삶 속에서 전혀 일어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던 북한 여행을 하게 됐다. 북한 여행 이전에 나는 북한이라는 나라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 종교적 신념을 다해 노력해봐도 결코 사랑할 수 없는 그런 나라였다. 

그런 내가 2012년 5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40일 동안 북한을 여행했다. 정말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북한 여행을 통해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민족의 비극적 운명을 체험하고 민족애를 느꼈다. 그리고 통일을 염원하게 됐다.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여행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동시에 조국이 분단돼 있다는 현실에 가슴 아파해야 했던 '내 생에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이었다. 

남편의 제의로 떠난 첫 여행. 솔직히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북한으로 출발하기 전에 '북한사람들은 과연 우리와 얼마나 다를까' '그 이질감의 골은 얼마나 깊을까' 등의 호기심만 있었다. 그러나 첫 여행을 통해 이질감은커녕 '그들은 우리와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라는 동질감만 느끼고 돌아왔다.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조국이 분단돼 있다는 생각에 고통은 배가됐다. 

북한 여행 중 내 관심은 '북한이 얼마나 못 사느냐'가 아니라 '이들이 우리와 함께 한 공동체를 이루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민족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을까'에 쏠려 있었다. 우리가 지난 시절 경험해서 잘 알고 있듯이,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남북한 동포들이 이질감 때문에 함께할 수 없다면 통일은 한낱 꿈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북한에서 '우리는 오랜 역사와 문화를 통해 이뤄진, 변하려야 변할 수 없는 민족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발견했다. 어려서 받은 반공 교육 때문에 북한 사람들에게 선입견을 갖고 있던 나는 그런 사실을 깨닫고 한동안 당황하기까지 했다. 

평양에 두고 온 수양딸 그리고 수양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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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에 두고 온 나의 수양딸 김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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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에 두고 온 난의 수양조카 방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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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 차례 여행 동안 우리 부부에게 수양딸(김설경)과 수양조카(방현수)가 생겼다. 이제 나 자신이 이산가족이 돼 이곳 미국에서 그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던 중 수양딸 설경이가 지난해 10월에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설경이는 회사의 회식 때 처음 남편을 만났는데 첫눈에 반했다고 했다. 결혼하면 집에서 살림만 하고 싶다며 빨리 아기를 갖고 싶다고 했으니 아마도 지금쯤 임신 중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남편은 설경이에게 "쿠쿠 밥솥을 들고 결혼식에 가겠다"고 말했지만 우리 부부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대신 아쉬운 마음을 담아 곧 태어날 아기에게 필요한 물건들과 설경이의 가족들에게 전할 선물을 준비해 평양가는 길에 올랐다. 설경이의 신혼집에도 들르고, 조카 현수네 집에도 들러 그간 누리지 못한 가족의 정을 듬뿍 나누려 한다.

지난 여행 중 나를 "오마니"라고 부르며 친딸같이 나를 챙겨주던 설경이. 그리고 "이모, 이모, 통일이 되면 내가 개 한 마리 목에 터억 걸치고 이모 찾아 서울로 갈게"라고 하던 현수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지며 그리움에 목이 메어왔다. 

사라져 가는 이산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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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 설경이와 현수에게 전달할 선물이 방안에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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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딸·수양조카를 둔 나도 이럴진대 친형제·친부모와 헤어져 수십 년을 살아온 남북의 이산가족들의 마음은 어떨지…. 가족이 헤어져 서로의 생사도 모른 채 산다는 것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피붙이도 만날 수 없다니, 이보다도 더 잔인한 인권 말살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안될 일이다. 

2012년 4월 평양의 해방산호텔에서 목격했던 재미동포들의 이산가족 상봉 장면이 떠오른다. 헤어졌던 가족이 두 손을 꼭 잡은 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아보려 고개를 젖혔지만, 마르지 않는 눈물은 주름살 가득한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제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이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런데 고작 100명씩 만나는 이벤트성 만남으로 그 많은 이산가족들이 언제 다 재회할 수 있단 말인가. 해외동포 이산가족들은 누구나 원하면 언제든지 북한에 가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는데 왜 남과 북의 이산가족에게는 그게 허용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통일의 날이 진정한 광복의 날"

평양으로 향하고 있는 오늘은 2013년 8월 14일. 한국시각으로는 8월 15일 광복절날이다. 비행기 안에서 "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라고 말씀하시던 재미동포 의학자 오인동 박사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에 희생된 조선이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지금까지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현실이 오늘따라 더 가슴을 깊게 후벼판다. 이런 날에 평양에 두고 온 수양딸과 수양조카를 만나러 간다. 우울함과 기쁨이 교차한다. 

생각해 보니 내가 북한에 갈 때마다 남북관계·북미관계는 최악이었다. 2011년 10월 첫 여행 때는 천안함·연평도 사건 후유증으로, 2012년 두 차례의 여행 때는 김정일 위원장의 서거에 이은 로켓 발사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공위성 발사와 3차 핵실험·한미합동 군사훈련과 개성공단 문제 등으로 남북관계·북미관계가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이런 정황 속에서 또다시 북한에 간다고 하니 주위에서는 난리도 아니었다. "이제는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구나!"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친지분들을 뒤로한 채 우리 부부는 북한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 핸드백 안에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읽으려고 넣어둔 북한 방문기가 들어 있다. 아쿠다가와상 수상자며 우리에게 <풀하우스> <온에어> 등으로 잘 알려진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의 <평양의 여름 휴가 : 내가 본 북조선> 한국어판이었다. 스스로를 '뿌리없는 풀'이라 불렀던 유미리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마음이 조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유미리는 북한에 가기 전 열 차례 정도 조부모의 고향인 한국에 다녀갔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왜 한국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북한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써내려간 걸까. 

로스앤젤레스를 떠난 우리는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인천공항에 내렸다. 이곳에서부터 평양까지는 비행기로 불과 몇십 분밖에 걸리지 않는데, 우리는 지금 그곳을 가기 위해 중국에 가야만 한다. 남한에서 평양에 가는 길은 베이징을 통한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북한에 갈 때마다 들른 인천공항에서 안타까움과 슬픈 감정을 삼켜야만 했다. 

인천. 한국전쟁 때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상륙작전을 했다고 학교에서 배운 곳이다. 공항이 있는 곳마저 현대사의 비극이 서려 있는 역사의 현장이라니. 수양딸과 수양조카를 만날 수 있다는 흥분은 이내 사라지고 마음속에는 우울함만이 가득하다.

베이징의 북한 레스토랑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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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의 북한 레스토랑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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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울함과 함께 도착한 베이징. 거리는 차와 매연으로 숨쉬기조차 불편하다. 시장경제에 익숙해진 중국인들은 바쁘게 그리고 빠르게 움직인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무질서와 다툼이 보인다. 솔직히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북한도 경제가 발달하면 이렇게 변해갈까. 아니면 아름답기 위해서는 가난해야만 하는걸까. 언젠가 북한도 분명 경제가 발달할 것이다. 매번 북한에 갈 때마다 경제가 나아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동포들의 생활이 조금씩 향상되는 것을 볼 수 있어 흐뭇했다. 그러나 사람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의 그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베이징의 한 호텔에 여장을 풀어놓은 우리는 저녁식사를 위해, 떠나기 전에 미리 알아 둔 북한식당 '천지'를 찾았다. 최근에 생겼다는 고급 레스토랑인데 내부는 조선식과 중국식을 혼합해 놓은 듯하다. 손님 대부분은 중국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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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중인 북한 레스토랑 '천지'의 여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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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여러 가지 북한 요리를 주문하니 여느 북한식당들과 마찬가지로 예술단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선사한다. 내 전공이 음악인지라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공연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저런 솜씨는 적어도 대학에서 전공하지 않으면 갖출 수 없는 실력이라고 느꼈다. 

외국 노래들도 많이 불러 깜짝 놀랐다. 그룹 아바(Abba)의 <댄싱 퀸>(Dancing Queen)을 원곡보다 더 아름답게 불러 나도 모르게 공연자들과 어울려 춤을 추기까지 했다. 평양 모란봉 악단을 떠올리며 변화하는 북한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공연자들은 연주가 끝나고 얼른 옷을 갈아입은 뒤 웨이트리스 일까지 겸하는데, 외국어 실력이 상당하다. 각자가 맡은 외국어가 있는지 영어·중국어·일어로 유창하게 손님을 접대한다. 이들의 재능이 아깝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연주를 마친 한 공연자가 우리 일행에 다가오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저, 혹시 작년에 재미동포 예술단으로 평양에 오시지 않았습네까?"
"네, 그랬어요."
"맞았네요. 공연 장면을 록화 중계로 보았습네다. 해외동포가 우리 노래를 부르니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는지 모릅네다."
"참, 잘도 기억하시네요. 북경엔 언제 오셨어요?"
"한 6개월 됐으니 2년 반 정도 있으면 조국으로 돌아갑니다. 저, 녀사님, 언제 또 만나게 될지 모르니 우리 노래 한 곡 불러 주십시요."

나를 알아보는 북한 사람이 있다니! 나는 이미 통일 조국에서 살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해 4월, 재미예술단 자격으로 평양에 가 공연했을 당시 서양의 노래를 부르지 않고 북한 노래를 부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북한 노래, 그야말로 나 자신의 생애를 뒤돌아보게 한 노래 <생이란 무엇인가>를 불렀다. 

설경이와 현수를 찾아 평양으로

베이징의 한 호텔에서 하루를 보낸 우리는 평양행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북한 고려항공 카운터로 간다. '고려항공'이라는 글자 아래 주욱 늘어선 줄에 달라붙어 차례를 기다린다. 수양딸과 수양조카를 만날 수 있다는 흥분이 다시 고개를 든다. 어제의 우울함이 한 순간에 사라진다. 

체크인을 마치고 탑승구에 다다르자 귀국하는 북한 사람들과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벌써 도착해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첫 북한 여행 때가 생각났다. 막상 김일성 주석의 배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을 처음 보고 얼마나 놀라고 긴장했었는지….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그들과 함께 어울려 앉아 있으며 느끼는 감정이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옆자리에 앉아 있는 한 북한인 부부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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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한 북한동포 부부와 베이징 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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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가시나요?"
"네."
"저희도 평양에 가는 길이에요."
"아, 그렇습네까? 무슨 일로…?"
"관광 가는 중이에요. 그런데 사실은 평양에 수양딸과 수양조카가 살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도 만날 겸 가는 거예요."
"지금 오데 살고 있습네까?"
"미국이요."
"아, 재미동포시군요. 그런데 오떻게 해서 평양에 양딸과 양조카가 있습네까?"
"저희는 이미 평양에 세 차례나 관광을 다녀왔는데 그 사이 저희를 안내했던 사람들과 친척 관계를 맺었어요."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인이 내 손을 덜컥 잡는다. 부인은 눈시울을 적시며 말을 이어간다. 

"그랬군요. 우리 어서 통일을 해 오손도손 함께 살아야 합네다. 이렇게 만나면 다 한 식구가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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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 이야기가 나오자 눈시울을 적시며 내 손을 잡으려는 북한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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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인 역시 여느 북한동포들과 마찬가지로 통일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왜 북한동포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통일 이야기를 할까. 이들이 말하는 통일이 우리가 반공 교육을 통해 배웠던 '적화 통일'을 의미할까. 그렇지 않음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남한은 어떤가. 남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별 관심조차 없는 듯하고, 통일을 이야기하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까지 한다. 

어찌 됐든 참 해괴한 일이다. 진보는 이념에 따라 움직이고 민족 문제는 보수가 챙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남한의 경우에는 그 반대인 듯하다. 소위 보수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민족 문제에 관심이 없는 듯하고, 진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민족 문제를 이슈로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김일성 주석 배지를 단 사람들을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주고받다니…. 내게 이념적 변화가 생기기라도 한 걸까. 내가 내 자신을 '보수적인 아줌마'라고 불렀던 것은 내가 이념적으로 보수라서가 아니라, 기독교(장로교) 가정에서 태어나 신앙 생활을 한답시고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어려서 받은 반공 교육에 따라 '묻지마 반공'을 하는 것을 보며 주위 사람들이 나를 '꼴통 보수'라고 불러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방면에 무지해 이념이 파고들 자리가 존재하지 않는 내게 이념적 변화가 생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지 내가 변한 것이 있다면 북한 동포들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 달라졌다는 사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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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행 고려항공 탑승구의 전광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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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지고 골치만 아프다. 때로는 '생각하는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게 속 편하고 좋다. 평양에 살고 있는 수양딸 설경이와 수양조카 현수를 만날 생각만 한다. 기분이 좋아진다. 

나 같은 보통 사람에게 민족이나 통일이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저 가고 싶을 때 가고, 보고 싶은 사람을 언제든지 가서 만날 수 있는 것. 이런 평범한 일인 것이다. 

드디어 탑승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귀국하는 그 북한 부부와 함께 우리는 그리던 수양딸과 수양조카를 만나러 가기 위해 고려항공 비행기로 향했다.
[이 게시물은 편집실님에 의해 2013-09-29 18:27:26 종합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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