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김정은시대는 김정일시대와 다르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3-05-07 06:47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 김정은시대는 김정일시대와 다르다 | ||||||||||||||||||||||||||||
| <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1) | ||||||||||||||||||||||||||||
| ||||||||||||||||||||||||||||
| ||||||||||||||||||||||||||||
1. 연재를 시작하며 - 김정은시대는 김정일시대와 다르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 2009년 12월 17일 김정일 위원장이 준공식을 앞둔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에 보낸 친필명제의 한 구절이다. 북한은 이 말에 대해 “제 정신을 가지고 제 힘으로 일떠서면서도 배울 것은 배우고 받아들일 것은 실정에 맞게 받아들이며 모든 것을 세계최첨단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구호는 김정일 위원장의 이름으로 제시됐지만 사실상 김정은시대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는 김일성.김정일시대의 계승을, ‘눈은 세계를 보라’는 김정은시대의 지향성을 드러낸다. 계승과 변화 천명 지난해 4월 15일 첫 공개대중연설에서도 김정은 제1위원장은 김일성시대의 ‘자주’와 김정일시대의 ‘선군’을 계승하겠다고 하면서 새롭게 ‘새 세기 산업혁명’을 언급했다. “일심단결과 불패의 군력에 새 세기 산업혁명”을 더하면 그것이 곧 ‘사회주의 강성국가’라는 것이다. 세계와의 교류 확대를 통해 첨단과학기술을 자체 개발 또는 도입하고, 지식경제시대에 맞는 경제구조를 완비하겠다는 구상이다.
김정은시대 북한 변화의 출발점 변화의 출발점은 2009년이었다. 새로운 후계자의 등장과 2차 핵실험의 성공은 북한의 정세인식과 노선, 대내외 정책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우선 김정은 제1위원장이 후계자로 결정돼 후계체제를 수립하고, 이어 최고지도자로 등장하는 과정은 내부적으로 ‘격렬한 토론’을 거쳐 새로운 국가목표(아젠다)를 확정해 가는 과정이었고, 김일성 주석 사망이후 지속돼 온 ‘비상운영체제’를 마감하고 당과 군의 운영을 정상화 해 가는 과정이었다. 또한 새로운 지도자의 리더십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1970년대에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자로 등장한 후에도 북한사회는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미 한 차례 후계체제로의 이행을 경험했고, 최고지도자의 사망을 예상한 ‘유고(有故) 대응계획’이 수립돼 있었기 때문에 외부의 ‘기대’와는 달리 북한 내부에 큰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권력분산을 통해 ‘특정인’이 섭정을 하거나 후견인으로 부상할 것’, ‘지도력이 약해 집단지도체제로 갈 것’이라는 외부의 예상을 불식시키고 유일영도체제를 확립해 강력한 리더십을 형성했다.
당대표자회에서 열병식까지 일련의 정치행사는 북한 2세대의 지원 아래 3~4세대가 권력의 핵심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것은 단순히 세대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대내외노선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는 점을 시사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파격 행보 김일성 주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의 권력승계과정을 통해 볼 때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리더십은 ‘제도적 리더십’과 ‘인격적 리더십’의 결합으로 완성된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해 4월 당.정.군의 최고직책을 모두 승계함으로써 .제도적 리더십.을 확립했고, 이후 .인격적 리더십‘ 형성단계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
3년 반만에 200만대가 보급된 휴대폰을 기반으로 하는 ‘통신혁명’, 기존의 국영상점망, 종합시장과 별도로 대형 슈퍼마켓 및 전문상점 건설을 통한 ‘유통혁명’ 등은 김정일시대와 전혀 다른 김정은시대에 가능한 정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핵으로 위협받던 시대는 끝났다” 둘째로 북한은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을 통해 사실상 ‘핵보유국’의 지위를 획득함으로써 외부의 핵위협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미국, 일본, 한국의 군사비가 북한에 비해서 수백, 수십배에 달하지만 핵무기를 가졌기 때문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는 게 북한의 인식이다. 특히 북한은 1990년대에 들어와 모든 인적, 물적, 지적 자원을 사회주의를 고수하는데 투자했는데, 핵을 보유함으로써 모든 역량을 경제발전, 인민생활 발전에 돌릴 수 있게 됐다 고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북한은 지난 3월 31일 열린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미국이 조선(북)을 핵으로 위협하던 시대는 영원히 끝났다’고 공식 선언했다. “이제는 우리에게 강력한 핵억제력이 있고 그 어떤 강적도 타승할 수 있는 군사적 힘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투쟁도 마음먹은 대로 다그쳐 나갈 수 있게 됐다. 미제가 우리를 핵으로 위협하며 경제건설에 제동을 걸던 시대는 지나갔다.”(〈노동신문〉4월 1일자 사설)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은 2003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선군시대의 경제건설노선’을 제시한 지 10년 만에 북한이 공식적으로 내놓은 김정은시대의 새로운 전략적 노선이다.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화하기 위해 핵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를 계속 추진하면서 국방비 부담을 줄여 경제건설에 주력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과 한국의 ‘급변사태론’ 국내외의 대다수 북한전문가들은 북한의 여전한 경제적 어려움을 근거로 김정은체제의 안정성에 유보적 태도를 취하거나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서는 북한의 당면과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12월 위성 발사이후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대외강경정책도 김정은리더십의 불안정성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북한붕괴론’, ‘북한체제 급변사태론’, ‘북한변화 불가피론’에 빠져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국과 미국의 정책담당자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북한정권이 3년 안에 붕괴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대북정책을 폈다. 당연히 대화보다는 대북압박에 우선순위를 뒀다. 평화협정 논의를 시작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발목을 잡고 북한에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올 것을 요구했다. 한국과 미국은 2011년부터 ‘키 리졸브 한미 군사연습’을 통해 북한의 ‘급변사태’를 상정한 미군 주도 훈련을 강화했다. 그러나 ‘북한 붕괴론’, ‘급변사태론’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이후 거의 20년 동안 반복적으로 제기돼 온 허상에 불과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시절에도 심심찮게 ‘북한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정보보고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허황된 것으로 판단됐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급변사태론’의 근거로 시도 때도 없이 북한의 경제위기를 언급했다. ‘급변 사태’라는 색안경을 끼고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상적 모습, 과거부터 존재했던 현상들을 견강부회했다. 그러나 남북경협이 중단된 이명박 정부 동안에 북한의 경제가 침체됐다는 명확한 근거는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북한의 식량가격이 시장의 수급상황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데 이명박 정부는 식량가격이 오른 상황만 주목했다. 지난해에는 황해도에서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근거 없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담당자, 국내외의 보수인사들이 신념처럼 이야기한 ‘급변사태’는 한마디로 ‘이단종교의 시한부 종말론’과도 같은 것이었다. 잘못된 대북인식과 판단, 정확히 말하면 ‘급변 사태’라는 색안경을 낀 ‘주관적 기대감’에 기초한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제재와 압박, 무시정책이 초래한 부정적 결과는 엄청났다. 북한은 이 기간에 두 차례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실험을 통해 사실상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었고, 미국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게 됐다. 제대로 된 남북대화는 한 번도 열리지 못했다. 김대중.노무현정부 때 활발하게 이뤄졌던 남북경협은 북중경협으로 대체됐다. 남북 화해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사업조차도 그 명맥이 경각에 달려 있다. 최근 북한은 “조선반도에서 평화도 전쟁도 아닌 상태는 끝장났다”며 “북남 사이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는 전시에 준하여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면전쟁, 핵전쟁’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60년간 유지돼 온 ‘정전체제’가 사실상 무너진 것이다. 지난 5년간 ‘시한부 종말론’에 모든 것을 걸고 현실을 내팽개쳐 북한의 핵개발을 방치한 업보다. 변화는 북한의 선택에 맡겨야 ‘북한 변화불가피론’도 기본 인식에 문제가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동안 우리 정부는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 ‘햇볕정책’(대북 포용정책)을 폈다. 남북의 상호 존중과 화해 협력을 표방했지만 기본적으로 교류와 경협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관계와 대외관계를 개선하는데 적극 나섰지만 시장경제 도입이 아닌 ‘실리 사회주의’를 추구했다. 보수진영에서는 햇볕정책이 북한을 시장경제로의 변화를 유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정책이라고 비판했고, 이명박 정부는 대북압박으로 북한을 변화시키려 했다. 우리의 생각대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 최종적으로 흡수통일한다는 점에서 지난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은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내세우며 ‘햇볕’도 아니고 ‘압박’도 아닌, 이분법적 접근에서 벗어난 대북정책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겠다고 표방했다. 북한의 변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전 정부와 차이가 없다. 그러나 북한은 젊은 최고지도자의 등장과 함께 ‘눈은 세계를 보라’며 스스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고, ‘핵 보유’를 전제로 대외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지난해 북한을 방문한 국내외인사들은 하나같이 “북한이 2000년 이후 10년 동안의 변화보다 더 큰 폭의 변화가 있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북한의 ‘동북아 흔들기’도 이같은 변화에 기초해 있다. 이제는 우리가 근본적으로 사고를 바꿔야 할 상황에 직면해 있다. 중국 북경대 김경일 교수는 이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북한을 변화시키겠다고 나서면, 남북관계는 사실 대등한 관계가 아니게 된다. 자의든 타의든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구도가 아니면 압력으로 변화를 촉구하는 구도가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타율이 아닌 자율에 의해 변화가 이루어졌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변화는 북한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한국의 몫은 변화의 환경과 조건을 조성해주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북한은 밖에서 변화시키겠다고 하면 할수록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북한은 변화할 수 없는 나라일까. 그것도 아니다. 북한은 변화하고 있고, 또 변화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떠한 변화를 원하는가’다.” 북한식으로 표현하자면 이제 북한의 선(先)핵폐기, 선개혁개방을 전제로 하는 대화는 영원히 끝났다. 지난 4개월 동안의 ‘한반도 전쟁위기’는 이것을 잘 보여준다. 북한은 대북압박이 계속될 경우 4, 5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실험으로 맞설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핵공격에 재반격할 수 있는 핵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은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한 가운데 북한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북정책을 짜야 한다. 우리는 기본목표는 무엇인가? 한반도를 비핵화지역으로 만들고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야 한다. 전쟁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을 통해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은 ‘비핵화 회담은 영원히 끝났다’라고 선언했다. 상호 존중과 신뢰가 없는 대화는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전쟁수단을 배제한다면 남은 해법은 ‘과정으로서의 한반도비핵화’와 ‘과정으로서의 통일’(사실상의 통일)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북한 스스로 추구하고 있는 변화의 폭이 넓어지도록 국제환경과 내부 조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북한이 한반도비핵화 회담에 다시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평화협정 체결에 적극 나서는 길 외에 다른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김정은시대는 김정일시대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선 무엇이 다른지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출발점이다. 2009년이후 무엇이 변화됐고, 향후 어떻게 변화하려고 하는지를 알아야 적절한 대응책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home



tongil@tongil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