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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김일성 주석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독후감 23 - 김상일 교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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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8-03-28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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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가가 세운 나라 낙관한다

김상일 교수의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3)

김상일(한신대 전 교수, Korea Project Director, Claremont Center for Process Studies)

필자의 건강상의 이유로 앞으로 한달가량 연재를 쉬게 됩니다. 널리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1940년 봄’과 ‘2007년 여름’

지난해 북이 40여 년 만에 맞은 큰물 피해 속에서도 ‘아리랑’ 공연은 그대로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건 좀 객기가 아닌가 하고 남한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지난 번 수해 때에 노무현 대통령이 외유를 했다가 호된 여론의 화살을 받은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런 논리로 북을 보면 서로 남북은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열차와 같아 보인다. 수해는 비극 그리고 공연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남한의 논리식대로라면 북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 항일 유격대원들은 가장 어려울 때에 아니 그럴 때일수록 항상 연예 공연을 했다. 이렇게 역발상을 해야 북의 ‘아리랑’ 공연 강행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북의 이러한 남과는 다른 발상법을 우리는 ‘세기와 더불어’ 8권(계승본) 2절 ‘미래에 대한 락관’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1940년 봄’, “말이 났으니 말이지 그 해 봄에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시련을 겪었습니다”(8권-20쪽)라고 술회하고 있다. 회고록에서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여간 어려워도 어렵다 소리 안 하는 것이 그의 생활 태도이고 보면 그해 봄은 여간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그해 봄, 그와 그의 유격대원들은 백두산 동북부 일대, 안도와 화룡 부근에서 유격활동을 벌리고 있을 때이다. 제일 어려운 것은 일제의 ‘파도식 토벌’이다.

수백명 혹은 수천명이 무리를 지어 마치 바다의 파도 같이 사방에서 덤벼드는 토벌 방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토벌대장은 노조에였으며 그는 여러 차례 전투에서 김일성 유격대에 타격을 입고 부하들을 거의 다 잃고는 겨우 혼자만 살아남아 약이 오를대로 올라 있었다. 그는 봉천과 통화에서 증원군을 긁어모아 관동군마저 합세시켜 김일성 항일유격대에 대한 복수의 칼을 빼들고 덤벼들 때여서 말 그대로 파도에 휘말려 있는 것 같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2007년 큰 물 피해 속에서도 ‘아리랑’ 공연을 강행하는 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초구란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하도 배가 고파서 산과 들판에 나가 산나물을 뜯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강위룡 소대장에게 부하들을 시켜 나물을 뜯어오게 하였다. 그런데 강 소대장 왈 보초 설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없다고 한다. 보초병이 안 되면 전령병들이라도 데리고 나가 나물을 뜯어 오라고 하였다. 강위룡은 전령병 전문섭, 이을설, 한참봉을 데리고 산나물을 뜯으러 나갔다가 저녁 늦게야 돌아 왔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이들 네 명은 하루 종일 나물을 한 바구니도 채 못 뜯어 왔다. 전 부대원들의 실망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사연이 이러하다. 전문섭과 이을설은 당시 나이 어린 소년병들이었다. 책임을 추궁 당하자 이 어린 전령병들은 천진난만하게도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꽃향기가 진동하는데다가 푹신푹신한 잔디밭을 보니 고향 생각이 절로 나고 봄 동산에서 즐겁게 뛰놀던 어릴 적 생각이 나서 저도 모르게 씨름으로 한 나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8-23)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전문섭과 한참봉은 나이도 비슷하고 힘도 비슷하여 씨름을 하다 보니 승부가 나지 않아 하루해를 다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대의 식량이 어려울 때에 산나물 해 오라고 보낸 대원들이 씨름으로 시간을 다 보냈다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였습니다”. 물론 임무를 소홀히 한 이들 네 부하들에게 면피는 줄 수 없었다. 평소에 남달리 임무 수행을 철저히 해 온 이들이 오늘 따라 상상 밖의 행동을 한 데 대하여 김 사령은 엄히 꾸중을 하였다. 그러나 그날 밤 김 사령은 잠자리에 누워 네 사람들의 얼굴들과 나물바구니를 생각하며 “이 험한 판국에서도 우리 대원들이 비관을 모르고 배포 유하게 씨름까지 해가며 낙천적으로 살아가는구나 하는 깊은 생각을 하게 되고 흐뭇한 웃음이 저절로 나게 되었습니다”(8-24)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 한없는 희망과 기대를 걸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해방 후 김일성 사령과 함께 귀국한 133인 유격대원들 가운데 하나들이다. 이들은 해방정국 북에서 고위직을 갖고 일을 하였다. 지금은 80 고령이 되었을 그들의 당시 나이는 10대 초반이었다,

“비관주의 만큼 무서운 적은 없습니다”: 혁명가의 3대 특질은?

1937년 중일 전쟁이후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제는 동양 천지는 모두 일제의 마수에 다 삼킨다고 애국지사들, 심지어는 열혈 동지들마저 자포자기하고 비관주의에 빠진다. 국내의 최남선과 이광수, 윤치호 같은 지사 문인들이 변절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김일성 주변의 ㅌ.ㄷ 동맹의 동지들 심지어는 캬륜회의에서 피로 맺은 동지들마저 배신을 하고 변절자가 속출할 정도였다. 특히 림수산 같은 인물들마저 투항하여 토벌대의 앞잡이로 돌아다니면서 유격대의 위치를 찾아내주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것은 식량난보다 유격대를 더 어렵게 하는 것이었다. 간도에서는 조선인들로 된 토벌대를 만들었으며 남한 창군 핵심인물들인 백선엽 그리고 김석원 등이 토벌대의 선봉장에 서서 설치고 있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전쟁이 남양군도까지 확산되고 일본은 후방으로부터 군수물자 조달 등, 전선 확대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을 때가 1940년이다. 일제가 단말마적으로 동북아의 항일유격대에 달려들 때이다. 이를 보고 비관주의자들은 이젠 일본 천지가 다 되었다고 생각하고 유격대를 이탈하기 시작한다. 김 사령은 “우리 대오에서 도주하는 자들을 보면 례외없이 미래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린 비관주의자들이었습니다”(8-30)라면서 “1940년대는 우리 대오에서 혁명적 낭만과 락관주의가 무엇보다 소중한 때 였습니다”라며 항일 유격대원의 3대 특질은 신념, 의지, 낙천이라고 정의한다.(8-29)

기자들이 어느 날 “주석께서 80에 50대의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내 장수의 비결은 낙천적으로 사는 데 있다”(8-29)고 대답했다. 우리는 북이 생존하는 비결을 바로 이 말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알았으면 용공하는 자들도 북의 이 특질을 알고 용공을 할 것이며 반공하는 자들도 이 특질을 알고 반공을 해야 할 것이다. 북의 아킬레스건을 알게 되었으며 그것을 알고나 찬성도 반대도 하라는 것이다. 북을 지상의 가장 빈곤국가로 외부에서 볼 때에는 가장 불행한 나라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말 그런지는 안으로 들어가서야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평소에 이렇게 자신을 타고난 낙천가라고 했지만 이 말을 두고 그의 개인 성품으로 만 이해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의 낙천주의는 그의 이성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란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는 일본은 반드시 망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그에게 이런 신념이 없었더라면 초기 유격대 활동 기간의 라자구 등판 위에서 꿈을 접고 말았을 것이다. 이제 남은 대원들은 수십명에 불과, 맨발로 눈 덮은 설령을 넘을 때 그들의 창자 속에 남은 것을 풀뿌리 나무껍질 하나 없었다. 그 때에도 그와 그의 동지들은 일본은 반드시 망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1937년 중일전쟁을 두고도 김일성 주석은 일본이 망하는 전주곡을 보았지 최남선 등과 같이 일본 천지가 되는 것으로 판단하지 않았었다. 일본이 왜 망하는가? 일본이 이렇게 전선을 확대할 때에 후방으로부터 보급 물자가 조달이 안 될 것이고, 이러한 수순은 독일이 소련을 침공할 때에도 세계 전쟁사 어디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과연 그의 낙관론은 그대로 적중, 중일전쟁 후 10년이 채 못 되어 일본은 망하고 말았다. 이광수와 최남선의 비관론이 틀린 것이었다. 적보다 우리 안에 비관주의자들을 경계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비관주의는 지독한 이기주의 혹은 편의주의와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나 대열에서 이탈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물론 비관주의라도 수단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가정을 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김일성 낙관주의의 특징이다.

김 주석은 일본의 승승장구하는 순간이 바로 일본이 스스로 족쇄를 차는 순간으로 사리판단을 한다. 이런 사리판단을 하는 주인공이 낙관주의가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의 낙관주의는 타고나기도 타고났지만 그의 현명한 상황 판단에 근거한 과학적인 것이었다. 이는 김일성 주석 자신이 그렇게 자신의 낙관주의를 설명한 것이다, 회고록에서 그렇게 증언하고 있다. 얼간이 같은 배웠다는 당시 지식인 분자들의 배신과 배반은 모두 사리 판단을 제대로 못 한 데 근거한 것이다. 이런 지식은 무지보다 더 해악적인 것이다.

사회주의 건설 반세기가 지나가는 지금 사회주의는 실패했다고 비관하는 자들로 탈북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반세기 전과 똑 같이 지금 북은 자본주의가 갈 때까지 다 갔다고 그리고 지금이야 말로 사회주의가 성공할 날이 다가왔다고 낙관한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승승장구 바그다드를 점령할 때에 이제 세계가 미국의 단극 체제로 가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었다. 그러나 이카루스같이 고공비행을 하던 미국의 다크 호스 미사일은 지금 사방에서 날개가 꺾이고 있다. 미국은 망한다, 반드시 망한다고 보는 것이 지금 낙관주의자들이 보는 견해이다.

낙천주의는 문예활동이 지탱시켜 준다

이런 낙천주의를 지탱시켜 주는 것은 문과 예 즉 ‘문예 文藝’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2007년 대 수해에도 불구하고 ‘아리랑’ 공연을 진행하는 진정한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재난의 시기에 공연 같은 것을 하다니가 아니고, 그러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것이 북과 남의 다른 논리인 것이다. 그것은 객관을 바라보는 낙관주의와 인간의 주관적 낙천주의야 말로 인간이 역경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북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대원들에 대한 신념 교양, 락관주의 교양에서 중요한 수단으로 된 것은 문예활동이었습니다. 혁명적인 문화오락을 떠나서는 항일유격대 생활을 논할 수 없습니다.”(8-33)

북을 방문하면 군데 군데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 유격대식으로!”란 구호를 볼 수 있다. 여기서 유격대 식이란 그것이 결코 전투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를 보고 온 남측 사람들이 북의 호전성을 흉보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나는 유격대 식이란 어느 절박하고 험난한 순간에도 낙천성을 잃지 않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유격대 식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악은 반드시 망하고 선은 반드시 승리하고 말 것이라는 신념과 확신에 근거한 낙천주의 말이다.

비관주의는 결국 인간 역사의 선이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의 부족에 나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치 치하의 안나의 일기 마지막 구절 “나는 인간의 선함을 믿는다”야 말로 낙천의 정의이다. ‘낙천 樂天’이란 말 그대로 하늘의 선함을 믿는 확신에서 나온 즐거움이다. 이런 낙천은 오랜 고난의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피바다’는 김일성주석이 행군 도중 쉬는 시간을 이용해 직접 쓴 것이다. 주석은 길림 육문 중학교에 다닐 때에 상월 선생으로부터 문학을 배웠으며 그의 서가에 있던 문학 서적들을 거의 빌려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만 잘 만났으면 그는 문학을 공부했을 것이라고 술회하고 있다. 그러나 ‘아리랑’에까지 이어지는 그의 문학에 대한 조예와 관심은 생의 마지막 날까지 이어진다. ‘피바다’를 쓴 동기 가운데 하나가 그가 이광수의 ‘혁명가의 아내’를 읽고 이는 혁명에 대한 모독이요 인간의 본성을 비관주의로 바라보는 잘못된 소설이라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남한 문인들은 순수문학 운운하면서 김 주석의 말을 비판할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문예에 대한 조예는 그의 끊임없는 독서에서 나온 것이다.

1940년 5.1절을 개구리 고기로 끼니를 이어도 “독립이 되면 평양에 가서 숭어국도 먹고 랭면도 한그릇 씩 먹고 모란봉에 올라가 대동강 구경을 하자!”고 부하 동지들의 아픈 마음을 달랜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대부분의 부하들은 영원히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그 중 박길송은 최후의 순간 “조국이여! 나는 그대를 자랑한다. 조국은 나의 청춘이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이처럼 웃으면서 죽는다”고 하였다. 그들은 영원한 청춘을 살다 갔으며 그들은 죽음마저 낙천적으로 받아들였다.

일제는 최희숙 여 유격대원의 두 눈을 뽑아 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승리가 보인다”고 했다. 리재순은 단두대에 올라 서면서 “조국의 광복은 멀지 않았다”고 낙관적인 미래를 바라보았다.(8-38) 특히 리재순은 서대문 형무소에서 면회 온 아내에게 세계 지도를 가져다 달라도 하였다. 사형수가 세계지도 공부를 하다니. 아니다, 그는 해방된 조국의 세계적 판도를 그려보기 위해서였다. 스피노자는 “내일 세계의 종말이 와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경구를 남겼고 해월 최시형은 수배자 신세로 피해 다니면서도 가는 곳 마다 과일나무를 심었다.

“아침은 빛나라” 영원까지

“유격대원들 만큼 혁명적 랑만과 열정으로 약동하는 생기발랄하고 전도가 양양한 군대도 없었습니다. 역경을 웃음으로 다스리고 화를 복으로 전환시키는 사람들. 이 세상이 통째로 꺼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믿는 낙천가들의 집단이 바로 조선 항일 유격대원들 이었습니다”(8-24). 김 사령은 사람 됨됨을 그리고 끝까지 싸움을 해나갈 인물인지 아닌지를 그 성격이 낙천적인지 아닌지로 판가름했다는 것이다. 전문섭도 외형은 얌전해 보이지만 그래서 군인 기질은 없어 보이지만 그의 낙천적 성격 때문에 끝까지 그를 신임했다고 한다. 안길이를 특별히 총애한 이유도 그의 타고난 낙천성 때문이라고 한다.

요즘 환경론자들은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너무 비관적으로 그려내며 유토피아에 대하여 ‘디스토피아 DISTOPIA´라고 한다. 결코 이들이 진정한 환경주의자들이 될 것이라 믿지 않는다. 환경 단체들이 재벌이 집어주는 황금에 쉬 넘어 가는 것도 그들의 비관주의 때문이다. 도주자들 변절자들을 보면 한결같이 “상승할 때는 기류를 타고 우연히 대오에 뛰어들었다가 고난이 중첩되고 정세가 불리해지자 옛다 모르겠다 하고 나만이라도 살고 보자 하고 달아나 버렸습니다”.(8-20)

김일성과 그가 세운 나라의 사람들은 이념을 논하기 전에 낙천가들이였다는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김 사령으로 부터 배운 낙천성, 이것은 북의 힘의 원천이다. 이는 마치 삼손의 머리털과 같다. 북의 힘은 미사일도 핵도 아니요 강고한 낙천주의라는 사실을 알라. 큰물 피해 속에서도 아리랑을 공연하는 낙천성 말이다. “독립운동이 사상의지나 규율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상의지, 도덕의리와 함께 랑만적인 감정정서를 가지고 하는 것이 일제와 싸우는 항일 유격 활동이었습니다.”(8-37)

학습도 생활도 항일 유격대 식으로 사는 한 그들은 절망하지 않을 것이며, 이런 나라의 미래는 낙관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회고록을 통하여 한 가지 역설을 공부하게 되었다. 인간이 역경일 때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낙관적이 될 수 있다고. 내가 2004년 개천절 행사 차 동명왕릉을 방문하고 3대 헌장탑 앞에 도착했을 때에 시간은 저녁 5시 경,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브라스 밴드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고난의 행군을 이 한 구절처럼 잘 그려 낼 수도 있을까? 젊은 그들은 역경 속에서도 미래를 낙관,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 삼천리 아름다운 내조국”을 노래 부를 그 날을 그리며 웃으면서 영원으로 사라졌다. 이 순간 역설은 차라리 숭고하기까지 하였다.

 

[출처: 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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