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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김일성 주석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독후감 19 - 김상일 교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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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8-03-13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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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유격대의 <색, 계>와 북한 헌법 63조

김상일 교수의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9)

김상일(한신대 전 교수, Korea Project Director, Claremont Center for Process Studies)
 


중국 젊은 혁명가들의 <색, 계>

이완 감독의 영화 <색, 계>를 본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동시에 김일성 회고록을 함께 읽은 사람들이라면 양자 사이에 비교와 대조를 아니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영화의 주된 배경은 일본 치하의 중국에서 갓 대학생인 왕 치아즈(탕웨이)가 스파이가 되어 일본군 앞잡이인 이(양조위)를 죽이기 위해 미인계를 써서 그에게 접근 한다는 것이다. 1930년 대 상해를 배경으로 하여 전개 되는 장면들은 동만의 항일 유격대의 역사적 배경과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생길 수 있는 적장을 살해하기 위한 미인계 등도 모두 평범해 보이는 배경이다. 그러나 이안 감독이 이런 평범함 속에서 예술성을 살려내려 한 것은 바로 색과 계 사이에 쉼표(,)를 찍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영화의 제목 ‘색, 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색(色 lust)과 계(戒 caution) 사이는 쉼표 (, ) 하나로 연결돼 있다. 마침표 (.)가 아니고 콤마이다. 즉 색과 계 사이가 단절도 아니고 연결도 아닌 애매한 관계, 이것이 이 영화의 생명력을 살려내고 있다. 신인 여배우 탕웨이와 노련한 왕조위 두 사람이 열연하는 이 영화는 한국에서 지방 공연에서 성공하여 서울의 대형 극장에는 늦게 재등장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내가 이 영화를 본 것은 1월 초 대한극장에서였다.

혁명이라는 계와 인간의 본능이라는 색 사이가 그렇게 단절도 연속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이 영화는 현대와 탈현대 사이에서 중국의 젊은 남녀들이 고민하는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색과 계가 마침표면 현대이고 쉼표면 탈현대라는, 그러나 그렇게 쉽게 단정할 수 없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탕웨이가 끝까지 혁명에 충실하고 조직 내의 남자 친구를 끝까지 사랑하려 했지만 양조위의 성적 매력과 자기를 마음 깊이 사랑하여 다이아몬드 6캐럿을 선물하는 남자의 진정어린 그 마음 앞에 그만 계를 어기고 만다는 이 영화는 탕웨이의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 잘못이었는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탕웨이는 자기 남자 친구에게 이(양조위)의 성적 에너지가 자기의 심장 속을 파고 들 때에는 자기 자신도 조직이 내린 명령을 감당할 수 없을지 모른다고 고백한다. 색과 계의 경계선이 어딘지 자신도 몽롱해 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자 친구를 미인계의 재물로 바친 이 젊은 혁명아도 탕웨이의 말 앞에 침묵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영화화 한 것이다. 탕웨이는 결국 양조위의 명령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양조위의 슬픈 눈빛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서로의 정체를 알았을 때 양조위는 탕웨이를 끝까지 지키지 않았으며 탕웨이가 형장에서 뒤를 돌아보는 장면은 색과 계가 콤마로 연결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이 영화의 이런 내용을 두고 지금 네티즌들 가운데는 두 사람에게 다 색과 계를 적용하여 누가 누구의 색과 계를 이기고 졌나를 논쟁하고 있다.

<색, 계>와 <생의 흔적>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줄 곳 회고록에 나오는 조선의 항일유격대 안에서 활동한 여성 대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북의 예술 영화 <생의 흔적>을 <색, 계>와 대조해 보기도 했다.

회고록 1권은 김일성 주석의 길림 시절에 관한 기록들이다. 여기에 김 주석이 리광수의 소설 ‘혁명가의 안해’를 읽은 독후감 얘기가 나온다. 김 주석의 길림 시절은 마치 영화 <색, 계>의 배경과 아주 같아 보인다. 중국과 조선이 일본에게 주권이 강탈당하고 이를 다시 찾으려는 젊은이들이 모여 소설도 읽고 토론회도 갖고 연극도 한다. 김일성 주석은 항일유격대를 창건한 다음 부대를 인솔하여 남만으로 가는 도중 무송에 잠간 들렸을 때에 이 소설을 읽었다 회고하고 있다.

김 주석은 독후감에 대하여 “소설 <혁명가의 아내>는 한 공산주의자가 병 치료를 하고 있을 때에 그의 아내가 남편의 병 치료를 해 주며 다니는 의학전문학교 학생과 치정관계를 맺는 추잡한 생활을 그린 작품으로서 공산주의를 모독하고 공산주의 운동을 헐뜯는 사상으로 일관되어 있었다”(1권-214쪽)고 적고 있다. 김 주석의 이 말은 계로서 색을 억제하지 못한 혁명가의 아내에 대한 질책인 것으로 이해된다. 김 주석의 이러한 소설평에 대하여 탈현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평가할지는 자기 나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김 주석의 말은 색과 계 사이를 강한 마침표로 연결시키려는 듯이 들리기 때문이다.

김 주석이 분명히 지금 이완 감독의 영화를 지금 본다면 여전히 공산주의에 대한 모독 그리고 추잡한 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볼 것인지도 궁금하다. 이광수가 색과 계 사이를 쉼표-콤마로 처리하고 있는 것이 이완 감독의 처리와 같다. 할리우드 풍의 전형적인 예술성이다. 아마도 이런 콤마 처리하는 따위의 영화를 아무리 개방이 되었다 하더라도 현재 중국 본토에서 만들기에는 시기상조 같다.

평양에서도 물론 그럴 것이다. 1980년 대 신상옥 감독 최은희 주연의 <탈출기>에서 여주인공의 젓 가슴을 처음 노출 시킨 것도 그 당시엔 큰 사건인 것을 보면 혁명이란 계 앞에 색은 아직 개방을 보류해야 할 대상인 것 같다. 이러한 계에 대한 강조는 2000년 대에 들어 와서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2003년 3월 <로동 신문>의 다음 사설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으로 심장을 뜨겁게 불태우는 숭고한 인생관을 지닌 혁명가들에게서 그 대답을 찾게 된다. 혁명가에게 있어서 보람 없이 보낸 백 날, 천 날 보다 혁명을 위하여 심장을 불태우며 산 하루가 더 값있고 귀중하다. 예로부터 약을 100첩 써야 할데 99첩을 쓰고 한 첩을 쓰지 못한다면 약효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사람도 당에 충실하다가 하루나 반나절, 그보다 어느 한순간이라도 반역하면 결국 그 사람은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반역자로 되고 만다.”

회고록 속에는 탕웨이 같이 여성으로서 조국 해방과 혁명 전선의 조직에 뛰어든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7권에는 ‘녀투사들의 혁명절개’란 장을 따로 마련하였다. 김정숙, 리관린, 한영애, 안순화, 조옥화, 한주애, 리계순, 장길부 등 그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여성은 최희숙이다. 항일혁명 여투사 최희숙에 대하여 김일성 주석은 회고록에서 일본군에게 두 눈을 빼앗기고도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외치자 이에 질겁한 일본 토벌군들은 혁명가의 심장이 어떻게 생겼기에 그처럼 지독한가를 보자고 하면서 그의 심장을 도려냈다고 적고 있다. 회고록에 등장하는 유격대원 가운데 가장 처참한 죽음의 장면이 바로 최희숙의 죽음일 것이다.(7권-253쪽)

탕웨이가 변절 아닌 변절을 하는 장면과 대조가 되면서 나는 극장을 나오면서 조선 여성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지 하고 혼자 말을 해 보았다. 그러나 현대 평론가들은 작품성은 역시 색과 계는 쉼표로 연결되어야 할 것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북의 예술적 작품성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예술을 예술이 아닌 사실주의 문학 예술로 취급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그 이상인가?

예술 영화 <생의 흔적>은 김 주석이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영화 가운데 하나이다. 1968년 푸에불로호 사건 때에 어뢰를 안고 산화한 남편의 뒤를 이어 두 자녀를 데리고 남편의 고향 성남의 집단 농장에서 영웅의 아내라는 신분을 숨기고 평생 살아가는 서진주의 삶을 다룬 것이 <생의 흔적>이다. 영웅의 아내로서 한 남자를 끝까지 사랑하고 동시에 남편이 사랑한 조국을 위해서 한 생을 사는 것이 진정한 ‘생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는 것이 이 영화의 내용이다.

서진주의 대중 연설 가운데 “나는 두 개의 사랑하는 님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는 죽은 나의 남편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남편이 사랑한 조국입니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사람이 진정으로 생의 흔적을 남기자면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와 집단을 위해 한 생을 바치는 것입니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죽은 남편의 무덤에 찾아 가지 않는 데 대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변심했다는 오해를 감내하면서 집단 농장에서의 노동을 통해 남편의 영혼이 사랑한 것을 사랑하는 것, 그래서 개인과 집단이 같아지는 것이 생의 흔적이 된다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이 <생의 흔적>을 보면서 “자신께서는 아직까지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보기는 처음이라고, 이 영화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정확한 대답을 주었다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저런 영화는 나오지 못한다고, 조선에 저런 훌륭한 녀성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고, 인간의 한생을 아주 잘 그렸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고 전한다.

무장소조 투쟁 방식의 한계

회고록에는 어디에도 미인계를 써 적장을 살해하려는 장면을 읽을 수 없다. 일제와 싸움의 방식에 있어서 세 가지로 다를 수 있다. 첫 번째는 ‘무장 소조’의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대규모 전면전’을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상 양자의 장점을 보합한 것으로 중대 대대 규모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적을 공격하고 후퇴하는 등 ‘유격전’의 방식이다. 첫 번째 방식은 김구 등 민족주의 독립 운동가들이 하던 방식이다. 이는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같이 개인 혹은 소규모의 테러 조직을 만들어 일제의 지도자를 저격하고 건물 등을 파괴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은 그 당시 여건상 거의 불가능한 방법이다. 대규모 군대를 인솔해 다니자면 그들을 먹이고 입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라를 잃은 마당에 당장 소대 규모의 병력을 재우고 입히기도 어려운 사정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세 번째 방법을 택한 부대가 바로 ‘김일성 항일 유격대’라 하는 것이다. 후에는 항일련군 등으로도 불린다.

영화 <색, 계>에서 사용한 미인계를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로 구태여 분류하면 소조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개인이 적의 우두머리를 처치하는 방식 말이다. 김일성 항일유격대는 이런 방식에 가치를 별로 부여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장 투쟁 방식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집단을 떠난 개인에게 그렇게 신빙성을 둘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즉, 만약에 개인이 탕웨이 같이 색과 계 사이의 경계가 분명해지지 않는 순간에 도달했을 때에는 적 보다는 아군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탕웨이의 순간적인 변절이 그만 조직의 성원들을 모두 죽음으로 내 몰고 말았다. 그래서 김일성 사령이 유격대 방식을 취한 이유는 개인이 전체라는 즉 개 個와 전 全 사이의 소통 없이는 개인의 도덕성이나 의지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는 것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금세기에 이러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로는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인간의 본성과 그 운명’을 따를 수가 없을 것이다. 그가 개인 인간은 원죄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본성을 아무리 깊이 들여다 보아도 거기서는 건질 것이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러나 그가 자본주의 인간관을 극복하지 못한 것은 개인을 전체 사회 집단과의 역동적 관계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서삼경 가운데 하나인 <시경>에서도 인간의 본성은 희미하고 위태롭다고 했다. 그래서 이완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탕웨이의 변절을 탓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개인으로 있을 때 얼마나 겉잡을 수 없는 가를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성선도 아니고 성악도 아니다. 정다산은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한마음 안에서 서로 소송을 한다고 하여 인성 자송론 自訟論 을 주장하였다. 개인으로서 인간의 본성이 이렇게 불안정한 이유는 인간이란 개인이면 동시에 전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 개인의 본성을 논하기 전에 인간의 개 個와 전 全의 관계를 먼저 논하여야 한다. 북한 헌법 63조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는 바로 이 점을 반영한 것이라 본다.

개인이 철저하게 자기 개인을 사회나 당과 일체화 시키는 기제 장치가 안 되어 있는 한 개인 인간 본성은 그것이 색과 계의 사이이든, 권력과 계의 사이이든, 재물과 계의 사이이든 확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체사상은 개인과 전체의 관계 설정을 제일 목적에 두고 이를 헌법에 까지 반영하고 있다. 개와 전이 조화가 된 인간을 우리는 메타 인간 meta-man이라 부른다. 벌꿀 사회에서 개개의 존재는 독자적이지만 집체적 존재이다. 이를 생명 유기체라고 한다. 어떤 생명체이든지 이런 유기체 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길 만이 개인으로서 존재를 확인하는 길이다. 이런 이론적 배경과 함께 북의 영화 예술 뿐 만 아니라 사회 전반을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개와 전의 관계는 사 私와 공 公의 관계이기도 하다. 멸사봉공 滅私奉公, 이것은 유교의 가장 큰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유교에서는 여자와 아이를 소인이라 한 것은 여성과 아이들은 쉽게 색과 돈의 유혹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이 두 존재에겐 공공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개와 전의 조화의 담지자, 즉 대인 혹은 군자는 남성의 몫이다. 대인이나 군자는 계로서 색을 억제할 줄 아는 자이다. 사생취의 捨生取義 살신성인 殺身成仁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남성 군자상으로나 가능하다. 여자는 처음부터 색을 억제 할 수 없는 색의 노예로 보는 것이 전통 유교 윤리였다. 어떤 면에서 이완 감독의 이 영화는 포스트모던니즘을 반영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런 유교 윤리의 경계선 상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여성에게 혁명의 계를 맡긴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듯이 말이다. 이 얼마나 구시대적인 발상 자체인가? 이런 결론과 함께 나는 북의 예술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김일성 회고록 속에는 남성들 변절자는 많이 등장해도 여성 유격대원의 변절 이야기는 없다. 더 나아가 김일성 사령은 1936년 4월 박록금을 중대장으로 하는 항일유격대 내에 여성 중대를 편성한다. 고려사의 여사령, 설죽화, 조선조의 행주산성 여인들, 진주의 논개, 평양의 계월향의 예를 들면서 조선 여성들의 강인한 힘의 예를 든다. 특히 ‘간도조선여성 투쟁사건’의 경우는 강가의 두 처녀가 학살당한 부모의 복수를 위해 일본 순사를 빨래 망치로 쳐죽인 18세 처녀 김수복과 백수환의 투쟁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김확실, 박록금, 김정숙은 탁월한 사격수들로서 김 사령을 죽음의 위기에서 여러 번 직접 구출하기도 한다. 특히 김정숙의 사격 솜씨는 유명하다. 김 사령이 적에게 포위당했을 때에 김정숙은 한 몸으로 이를 막아 내었다.

김 사령은 개인 영웅담으로 이어지는 무장소조 운동의 한계를 일찍이 알고 있었다. ‘도덕적인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 Moral Man Immoral Society’라는 신학자 R. 니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개인의 도덕성이 사회의 도덕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 본다. 그래서 김 사령은 개인의 도덕적 힘이든 능력이든 그것에 그렇게 큰 비중을 두지는 않는다. 상해를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의 무장소조 운동이 결국 그 지구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인간의 본성 때문이라고 보는 것을 옳을 것이다.

그래서 미인계를 포함한 요인 암살 같은 것이 강한 폭발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개와 전의 변증법적 통일을 이루지 못할 때에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여기에 색과 계의 관계 설정은 개와 전의 관계 설정을 먼저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이 회고록 전면에 흐르고 있는 일관된 주장이다. 개적 자아에서 여성들을 집단적 자아로 무어낸 여성 중대 편성은 이런 의미에서 각별하다 아니 할 수 없다. 회고록 제 5권 제 4장은 특히 여성 중대 편성 이야기와 여성 유격대원들의 피눈물 어린 일화들로 가득 차 있다.

“항일혁명은 그 모든 액운과 부조리의 근원을 송두리째 쓸어버리는 폭풍이었으며 이 나라 여성들을 혁명의 길로 인도해 준 세기적인 사변이다. 조선 여성들은 펜이 아니라 선혈로서 대지위에 자기의 새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하였다.”(제 5권) 이러한 여성을 개인이나 가정의 존재의 한계 영역을 뛰어 넘어 그들이 군복을 입고, 군화를 신고, 군모를 썼을 때에, 그리고 허리에는 수류탄을 차고 어깨에는 개인 소총을 메고 나섰을 때에 이 땅의 여성은 새로운 존재로 의식이 다시 태어나는 것을 경험하였던 것이다. 차광수는 우리 민족의 강인한 모계 사회 전통을 거론하면서 여전사의 탄생이 결코 새롭지도 어렵지도 않다고까지 역설하였다.

이러한 조선 여성들은 개가 전으로, 전이 개로 재귀적 작용 recursive operation 을 하면서 항일유격 활동 16년 동안의 경험과 새로운 자아를 안고 조국으로 입성했던 것이다. 그래서 해방 후 곧 북은 바로 남녀평등권법령을 발포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정치적 무권리와 사회적 질곡으로 온갖 불행을 겪어온 녀성들의 지위와 역할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안아온 력사적사변이였다. 주체적인 녀성운동사상과 업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끝없이 빛내여 나갔다. 녀성 동맹안에 당의 령도 체계를 철저히 세울 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녀성 운동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혔으며 녀성들 속에서 혁명화, 로동계급화를 다그쳐 모든 녀성들이 혁명과 건설의 믿음직한 역군으로 자라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었다.”

정치 생명 유기체 사상과 여성

실로 여성을 개인적 자아에서 사회적 그리고 집단적 자아로 무어내어 여성 중대를 독자적으로 편성한 것은 중국 모택동 부대에도 호지명 부대에도 없었던 김일성 항일유격대의 독자적인 모습이었다. 현대 군부대에서도 간호병, 위생병, 행정병 등 특수 병과에서 만 여군 부대가 허용될 정도이다. 미국도 이라크 전에서 최초로 중동에 여성 전투부대를 파견했을 정도이다.(홍동근, 176-7) 우리는 부시가 어느 여 전사의 무용담을 조작해 선전하다 망신당한 기억을 할 것이다.

그러나 회고록에는 이런 여전사들의 무용담이 장 마다 절 마다 나온다. 이는 최근에 발견한 발생한 문명사적 근원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에 차광수가 지금 살아 있다면 최근 중국 요하 유역에 발굴된 소위 홍산문화는 황하강 유역의 앙소문화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대규모 여신전이 나온 사실에 놀랐을 것이다. 바로 고조선이 존재했던 지역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환인, 환웅, 단군까지도 모두 여성들이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차광수는 살아 있었더라면 해방후 고고학자가 되었을 지도 모를 것이다.

이렇게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에 이광수의 <혁명가의 아내>나 이완 감독의 <색, 계>는 이미 개인주의화한 자본주의 시대의 여성상, 그리고 성을 인간의 본질로 파악한 프로이트의 세계관이 그대로 반영된 전형적인 할리우드 판 작품임에 분명하다. 우리는 바로 프로이트가 가져다 준 세계관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작품을 두고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한다. 그래서 북의 예술 영화를 이에 대비하여 색과 계를 마침표(.)를 찍고 있는 것으로 단정하고 싶어 한다. <생의 흔적>을 전형적인 사회주의 문학의 전형, 즉 사실주의 예술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북의 예술을 볼 때 마다 우리 미래 세계가 지향하고 있는바, 개와 전이 조화된 전체가 하나를 위하여 하나가 전체를 위해 사는 기제 장치가 그 어느 사회보다 잘 되어 있고 잘되어 있는 문화 예술이라고 본다. 메타 인간을 예견하고 있는 작품들로 평가하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해서 색과 계 그리고 개와 전이 쉼표와 마침표가 함께 이어지는 세미콜론(;)으로 구태여 명명하고 싶은 문학이라 평가하고 싶다. 색과 계의 관계는 결코 개와 전의 관계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이러한 인간은 생명 유기체적 관계로만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 헌법 63조의 정신이고 주체사상의 인간관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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