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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나와 주체사상과의 대화 1 - 김현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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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8-03-12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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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현환 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이 집필한 [나와 주체사상과의 대화] 책을 입수하였습니다. 이에 책 전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나와 주체사상과의 대화]책은 지금부터 10년전인 1998년 2월에 발행한 책입니다. -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웹사이트 



머 리 말

조국광복-분단과 더불어 나의 50평생의 삶은 사작되었고 분단과 더불어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다. 나는 50평생을 오로지 한길을 달려왔다. 지고의 가치, 최고의 진리를 찾아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무엇엔가 홀린 사람처럼 지고의 진리를 찾아 앞으로만 달려왔다. 인생은 한번 실험적으로 이 길 저 길 살아보고 다시 돌아와 그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삶을 선택하여 다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길은 한번 지나가면 그만이다. 나는 주어진 운명을 개척하기 위하여 열심히 살다보니 지금의 나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나는 5살때 6.25전쟁을 만나 황해도 연백에서 이남으로 내려가 김포에 살게 되었는데 우연히 내가 살던 시골교회에서 구호물자를 나누어 준다고 하여 교회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것이 인연이 되어 나의 생애는 기독교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결고리를 갖게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기독교가 나의 운명을 개척해 주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기독교에 몰두하여 기독교를 미친 사람처럼 열심히 믿었다. 어린 초등학교 학생때부터 새벽기도를 다니기 시작하여 중고시절에도 새벽기도를 다녔다. 심지어 중학교 2학년 때는 학교공부가 재미없어 수업이 끝나면 야간 성경고등학교에 나가 신구약성경을 1년간 배웠다. 나는 그때부터 나의 전생애를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바치겠다고 결심하였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여 여러 철학사조에 접하면서 합리적인 사고를 하게 되었고 여러 성경의 주석책들을 읽으면서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성경의 내용도 해석자에 따라서 서로 다르게 이해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그렇게 열심히 신봉하던 교조주의적이고 문자주의적이고 절대적인 기독교 교회에서 차츰 멀어지게 되었다. 그대신 나는 실존주의에 미쳐 전공과목인 영문학은 적당히 학점이나 받고 매일 니체, 키엘켸골, 사르트르 등의 책들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그러나 기독교를 포기하더라도 끝까지 학문적 연구를 해본 후에 그렇게 하자고 결심하고 미국 시카고로 유학을 와서 장로교신학교인 매코믹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신학을 공부하였다. 현대의 자유주의 신학은 나를 문자주의적이고 교조주의적인 신학으로부터 해방할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은 무엇으로부터의 해방(Liberation from)은 지적하고 있으나 무엇에로의 해방(Liberation for)은 지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더 방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우루과이의 신학자 서군도 신부가 하이드팍(시카코대학이 있는 지역이름)을 방문하여 ´신앙과 이념들과의 관계´라는 강좌를 두 학기 강의하게되어 그 강좌를 나도 듣게 되었다. 나는 겨우 알아 들을 수 있는 떠듬떠듬 대는 서투른 영어로 하는 그의 강의를 두 학기 들으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의 강의를 들으면서 비로소 신학과 정치, 경제, 문화와의 관계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믿어온 기존의 제도적 기독교의 비역사적인 기복신앙, 영적주의도 지배층에 의하여 하나의 ´지배적인 이념´으로 이용되어 왔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서군도 신부를 통하여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가장 긴급한 역사적인 문제들인 계급의 문제, 민족의 문제 그리고 제국주의의 문제도 신학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긴밀히 연관된 문제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비로소 신학이 해야 할 과업, 목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민족해방, 계급해방 그리고 인간해방을 위하여 사고하고 행동하는 신학인 [해방신학]만이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신학이라고 생각하고 해방신학에 몰두하였다.

그후 나는 잘못된 기독교회를 산생시키는 잘못된 사회구조를 개혁함이 없이는 교회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민족해방, 계급해방, 조국통일 등의 사회개혁문제에 모든 관심을 쏟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과정에 나 자신이 사회과학적 안목이 전혀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다시 시카고대학(University Of Chicago)의 박사과정(사회과학부)에 입학하여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나는 비로소 처음으로 맑스주의에 접하게 되었고 맑스주의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사회과학적인 세계관과 합리적인 사회변혁사상을 정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구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망하자 동시에 내가 갖고 있던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환상도 깨져버렸다. 나는 다시한번 배신감을 맛보았다. 나는 너무나 충격이 커서 아연할 따름이었다.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대부분의 부르조아학자들은 사회주의가 이미 멸망했으며 사회주의라는 이념은 이미 그 위력을 상실한 죽은 이념이라고 주장하였다. 나는 기독교에 실망했을 때보다 더 절망하여 방황하였다.

그러다가 1989년 평양청년축제 때부터 이북을 드나들면서 현시대의 요구에 맞는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사회주의 사상인 주체사상에 심취하게 되었고 주체의 사상, 주체의 혁명이론, 주체의 영도방법을 연구하고 다시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주체사상은 좌절된 구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학설의 역사적 제한성과 사회주의에 대한 온갖 기회주의적, 수정주의적 왜곡을 극복하고 민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등장한 역사의 새시대, 자주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사회주의 사상과 이론을 독창적으로 명시한 사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주체사회주의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찾는 자에게 길이 열리는 법이다. 나는 때때로 뒤를 돌아보며 나를 지금까지 이렇게 미친 사람처럼 열심히 최고의 진리를 찾아 달려오게 한 힘이 무엇이었을까 하고 스스로 질문해보곤 한다. 누가 억지로 시킨다고 이러한 어려운 길을 달려오겠는가. 자본주의의 눈으로 보면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고 출세의 길도 아니었다. 그러나 찾으면 길이 열린다고 최고의 진리를 찾아 열심히 달려오다 보니 자주적인 사상의식의 최고봉인 주체사상을 이해하고 신봉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주체사상을 이해하기까지의 나의 진리의 순례과정은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면서부터 주체사상에 물든 것이 아니었다. 위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나는 기독교, 실존주의, 맑스주의를 거치면서 수많은 고뇌와 의심, 회의 그리고 좌절을 맛본 후에야 비로소 최고의 가치로서 내 스스로 주체사상을 선택한 것이었다. 나를 지도해 줄 어떤 지도자가 있거나 어떤 전위조직이 있어서 나를 의도적으로 교육시켜 주체사상에 물들게 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내 스스로 진리를 찾아 헤매다가 많은 시간과 정력을 소모하고서야 에돌아와 주체사상에 접하게 되었다. 그것도 많은 시행착오를 통하여 이제 겨우 주체사상의 기초, 입문에 도달하게 되었다.

자기 자신의 전생애를 걸고 신봉하던 최고의 가치를 버리고 새로운 가치,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말은 쉬워도 실제로는 죽음을 맛보는 것과 같은 고뇌를 겪어야 하는 법이다. 이것이 지고의 진리를 찾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첫번째 장애물이다. 인간은 흔히 힘들고 어려운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쉽게 자기가 현재 익숙한 이념에 매달려 그곳에 안주해 버린다. 그러나 진리의 순례길은 도약과 도전과 고뇌와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나는 어려서 대학생이 되기까지 근 20년간 기독교를 최고의 가치로서 절대적으로 믿고 그 신앙을 실천하며 살려고 열심히 노력하였다. 대학에 입학하여 기독교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매순간 자살하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더 성숙된 나의 사상적 견지로 보면 그것이 교조주의적이고 문자주의적이고 절대적인 기독교의 가치로부터 해방하는 순간이었지만 그 당시 나는 자살하고픈 충동을 매 순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갈 궁극적 목표를 상실하였기 때문에 살고 싶은 의욕마저 사라져버렸다. 그 동안 내가 쏟은 정력과 시간이 너무 아까웠고 모든 것이 너무 허무하였다.

나는 마치 20년간 내가 목숨처럼 사랑했던 애인이 나를 배신한 것과 똑같은 배신감을 느꼈다. 그때에야 비로소 나는 왜 실연한 사람들이 종종 자살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일생을 걸고 모든 다른 나의 생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기독교를 최고의 가치로 믿고 그것을 전하는 성직자가 되겠다고 혼신을 다해 살아왔는데 그 절대적인 가치체계가 허물어졌을 때의 나의 절망은 죽음의 선포 그 자체였다. 나는 3년간 죽음의 골짜기를 헤매면서 나의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찾으려고 발버둥쳤다. 사람들은 이러한 고뇌과정이 두려워서 감히 새로운 가치를 찾아 나서려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 20년간 내가 혼신을 다해 쌓아놓은 탑이 일시에 허물어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나의 20년 인생을 누가 보상한단 말인가.

나의 경우와 같이 사람들이 아무리 진실하게 진리를 찾아도 진리를 찾는 방법을 모르면 별 수 없이 헤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를 추구하는 데 방해되는 두번째 장애물이다. 나의 경험으로 보면 한 사상에서 다른 사상으로 옮겨가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원한다고 쉽게 다른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진리를 추구하는 주체자가 사회과학적인 안목이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떠한 사회과학적인 세계관도 이해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좋은 사상도 그것을 받아들일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 못하면 다 흘러가버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익숙한 사상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개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 즉 방법론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진리가 옆을 지나가도 그것을 붙잡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김정일위원장은 [사람은 아는 것만큼 보고 듣고 느끼고 받아들인다, 사람이 어떤 사상의식을 가지며 그것이 어떻게 변화발전되는가 하는 것은 사람 자체의 준비정도와 그가 어떤 활동을 하며 어떤 사상적 영향을 받는가 하는 데 달려있다]고 지적하였다.

아주 지당한 말이다. 아무리 좋은 사상이 주어져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인 인간이 준비되지 못하면 다 지나쳐버리는 것이다.

나는 신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다행히도 해방신학에 접하게 되었고 그것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과학적인 안목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대학원에 입학하여 그것을 준비할 수가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해방신학이 주된 주제로 다루고 있는 여러 사회과학적인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준비과정은 말로는 간단히 쓸 수 있어도 피나는 노력의 과정이었다. 나의 나이 또래의 사람들은 이미 상당한 지위를 차지하고 경제적 안정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계속 책이나 들고 있으니 나의 아내와 아이들을 비롯하여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나의 부모와 형제들은 내가 출세하여 귀국할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아내와 자식들도 내가 빨리 직장을 가지고 안정된 삶을 살기를 기대했다.

이와 같이 최고의 진리를 추구하는데 세번째로 장애가 되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자기가 맡은 분야만 열심이 하면 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를 고려하면서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가치추구 자체도 할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이다. 예술가들이 호구지책으로 적성에도 맞지 않는 직장생활을 하거나 사업을 경영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미국신학교에서 많은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3년간 신학을 연구하면서 어떤 친구들은 자기가 가졌던 종래의 절대적이고 교조주의적인 가치체계가 무너지자 성직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전공을 바꾸어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경제적인 현실적 문제에 직면하여 하나의 좋은 직업으로서 성직자의 길을 택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나에게도 이제는 적당히 타협하고 좋은 직장의 하나로 생각하고 기독교 목사가 되라는 내면의 충동과 외부적 압력이 많았다.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인 미국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생존한다는 그 자체만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성직자들 중 대개는 내면적으로 많은 회의와 좌절을 맛보면서도 현실적 생활에 매어 그냥 적당히 타협하고 기독교의 진리가 최고의 가치라고 설교하다가 일생을 끝내는 경우도 많다. 자기가 신학교에서 배운 자유신학이니, 정치신학이니, 해방신학이니, 사회주의 사상이니 하는 것들을 깊이 마음 속에 묻어두고 교인들의 비위에 맞는 영적 설교나 하다보면 이미 늙어버리는 것이다. 교회경영에는 역사적 문제를 다루는 것보다 영적주의가 말썽이 없고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는 십상이니까 대개는 그 길을 택하게 된다. 공연히 역사적인 현실적 문제를 설교하다가는 쉽게 교회가 둘로 갈라져 깨져버릴 수가 있으니 대개의 성직자들은 사회적 이슈들에 눈을 감아버린다. 교회성장의 첫째가는 요인은 절대로 사회정치적인 문제를 다루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일이 결코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사회의 기득권자들은 결코 진리가 밝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김정일위원장은 최근의 노작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기득권자들인 독점자본가들과 반변혁적 지배자들은 ´출판물, 통신, 방송을 비롯한 선전수단과 교육수단´을 포함한 국가이념기구들을 장악하고 진리를 밝히려는 진보적 사상을 누르고 부르조아사상을 퍼뜨리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남의 장기수들의 예가 보여주듯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고문, 투옥, 심지어 생명마저 잃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참교육을 시도했다고 교직에서 쫓겨나는 전교조의 선생들처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직장마저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넷째로 지적하고 싶은 진리탐구의 장애물이다.

나는 이남보다는 그래도 비교적 자유스럽게 미국에서 진리를 추구해 올 수 있었다. 그러나 학문연구에서나 사회변혁운동에서 많은 제약을 받아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쨌든 나는 미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해야 하였고 내게 맞는 적당한 직업도 찾을 수 없게 되자 그래도 비교적 자유스럽게 진리를 외칠 수 있는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스트 교단의 목사가 되었다. 나는 그 교단에서 자유주의 신학과 진보적인 신학을 통한 ´신학의 해방´을 시도하였으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러한 목회생활을 성공시킬 수가 없었다.  

그후 나는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하면서 기독교가 갖고 있는 여러가지 특성들 즉 헌신성, 모이기를 힘쓰는 일, 후한 헌금, 열성적 전도, 메시아와의 개인적 인간관계 등등과 맑스주의의 과학성, 합리성, 유물변증법적 원리 그리고 사회주의적 물적 토대를 융합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것은 사회변혁운동의 주체를 강화하기 위한 필요에서 였다.  

나는 피상적이나마 맑스주의에 한동안 심취했었기 때문에 주체사상을 처음 접했을 때 주체사상이 관념론으로 생각되어 그것을 별로 신통하게 여기지 않았다. 주체사상은 단지 맑스주의의 한 변두리사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쉽게 생각해 버렸다. 사회의 객관적인 물질경제적 분석을 하지는 않고 주체사상은 인간의 본질을 논하고 인간의 속성이나 다루고 있으니 그것은 실존주의 철학과 같은 관념론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나는 부르조아 자유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주체사상에서 주장하는 수령론, 계승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주체사상을 접한 이래 여러해 동안 스스로 나와 주체사상과의 많은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혼자 여러 서적을 읽기도 하고 때로는 북의 학자나 간부들을 만나 직접 대화도 하고 도시와 농촌의 민중들의 삶의 현장을 관찰도 하면서 나와 주체사상과의 대화는 계속되어 왔다. 최근에 이남의 ML파에서 제기하고 있는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이 재미동포사회에도 나돌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도 그것을 읽었다. 그리고 의문이 가는 문제들에 관하여 이북의 학자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나는 진리란 모든 의문을 다 과학적으로 제기하고 거기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대답을 얻어내어 누구나 객관적으로 그것을 믿을 수 있어야 확실한 진리로 될 수 있다고 평소에 생각해 왔다. 따지지 않고 무조건 믿는 진리는 내가 기독교에서 경험했듯이 언젠가는 쉽게 허물어진다고 생각해 왔다.

위에서 지적한 심각한 의문과 탐구와 토론을 통하여 그리고 여러 차례의 직접적인 이북방문을 통하여 주체사상을 구현한 주체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나의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주체사상이 지금까지 인류가 창출한 사상들 중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가장 위력한 사상이라고 믿게 되었다. 또한 수령으로부터 간부들, 군인들, 그리고 평범한 대중에게 이르기까지 이북의 모든 민중이 일치단결하여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장 진보적이고 자주적인 사회주의 사상을 생명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지지하고 발전풍부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주체사상은 오늘날 가장 과학적이고 위력한 최고의 사회주의 사상으로 그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와 같은 사실들을 늦게야 깨닫고 주체사회주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물론 교조가 아닌 행동의 지침으로서 주체사상도 변하는 사회적 현실과 더불어 계속 심화발전될 것으로 믿는다.

여기에 기록하고자 하는 나와 주체사상과의 대화는 위에서 언급한 나의 진실된 구도자로서의 솔직한 의문과 탐구의 과정을 자세히 있는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

나는 그동안 주체사상을 전공한 많은 학자들을 직접 개인적으로 만나 대화를 하였고 책이나 출판물을 통하여 주체사상에 관한 많은 글들을 접하였다. 그래서 여기서는 질문자는 ´나´이고 대답자는 ´주´(주체사상가들의 약자)라고 표시하려 한다. 왜냐하면 나의 질문에 대답하는 답변의 내용은 어느 한 주체사상학자의 답일 수도 있고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신문이나 잡지, 방송의 글이나 대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주체사상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대화에 많은 미숙한 점들이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맑스-레닌주의를 비교연구하면서 주체사상을 해설하려고 시도한 것은 결코 주체사상이 자기의 고유한 원리들로 전개되고 체계화된 독창적인 변혁사상이라는 것을 부인해서가 아니다. 다만 이 책에서 그렇게 쓴 것은 이남과 해외의 상당수의 맑스 -레닌주의자들이 주체사상의 독창성을 오해하고 그것을 맑스-레닌주의의 척도로만 잘못 해설하고 있으며 기회주의자들과 어용학자들이 맑스-레닌주의를 인용하면서 주체사상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을 중심으로 주체사상의 독창성을 해설하려는 의도이다.

이 글이 진리를 탐구하는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1998년 2월

미국 로스에인젤스에서 김 현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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