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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김일성 주석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독후감 8 - 김상일 교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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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7-12-07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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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거기 있었는가 그 때에” 보도연맹 사건을 회억하며
김상일 교수의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⑧

김상일(한신대 전 교수, Korea Project Director, Claremont Center for Process Studies)


1932년 7월 14일 민생단은 해체되었지만 향후 3년간 반민생단 마녀 사냥은 계속되었다. ‘마녀 사냥 witch hunting’은 중세기 가부장적 기독교가 여성들을 상대로 한 홀로코스트이다. 그 이후 이 말은 남녀를 불문한 억울하게 집단 괴롭힘을 하는 모든 행위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 공산당이 저지른 반민생당 사건도 마녀 사냥임에 분명하다.

나는 회고록 4권에 실린 ‘반민생단’사건을 읽으면서 이와 연관하여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이 이 땅에 살아온 여성들의 운명이었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민생단으로 몰려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운명이 여성들의 그것과 어쩌면 같기 때문이다.

우리 말 속담에 “여자는 잘 나도 욕먹고 못나도 욕먹는다”가 있다. 이 속담은 남성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들이 남성들한테 당하면서 살았던 구속적 상황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여성끼리도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두고 “밥을 안 주면 굶어 죽이려 한다하고 밥을 주면 독약을 넣었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경우, 여성이 관능적이면 요괴라 하고 똑똑하면 여우라고 하는 경우, 이를 두고 ‘이중 구속적’이라 한다. 일본어의 ‘이지메’같은 것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잔 다르크가 나라를 구하고도 마녀로 몰려 죽게 되었다. 이유인즉 여자 같은 존재가 애국심이 있다는 것은 마녀라는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중세기 동안 똑똑한 여성 수학자들이 수 없이 이렇게 수난을 당하였다. ‘피타고라스의 바지’란 책이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다. 여성이 당했던 이런 상황도 ‘이중 구속적’이다.

당시 민생단으로 몰린 사람들의 이중 구속적 상황을 김일성 사령의 말을 통해 직접 들어 보기로 하자.

“유격대의 식사를 보장해주는 작식대원이 밥을 설군것도 민생단으로 몰릴수 있는 리유가 되였다. 밥에 돌이 섞이거나 물에 밥을 말아먹어도 그것은 곧 유격구의 인민들을 병들게 한 증거로 되고 ‘민생단의 작용’이라는 어마어마한 감투를 쓰는 조건으로 되였다. 설사를 하면 전투력을 약화시킨다고 민생단, 한숨을 쉬면 혁명의식을 마비시킨다고 민생단, 오발을 하면 적들에게 유격대의 위치를 알려주는 신호라고 민생단, 고향이 그립다는 말을 하면 민족주의를 고취한다고 민생단, 일을 잘하면 정체를 숨기려는 수작이라고 민생단… 그야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이였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민생단으로 걸려들지 않을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4권 18쪽).

민생단 사건이 있은 지 40년이 지난 1969년 미국의 그레고리 베이츤은 정신병리학과 의사 소통 이론에 이중 구속론을 적용하여 노벨상을 받는다. 그리고 그는 촘스키와 함께 미국 대학에서 가장 존경받는 학자가 되었다.

나는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많은 감사의 념을 갖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공부해 온 이론들을 적용해 볼 수 있는 무궁무진한 소재들을 거기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학자들, 예술인들에게 보안법이란 족쇄를 풀어 마음대로 회고록을 읽게 해 주었더라면 수많은 문화 콘텐츠를 거기서 발굴해 국익에 보탬을 주었을 텐데.

베이츤은 ‘이중 구속’이 성립하기 위한 요인들을 6가지로 손꼽고 있다. 이중 구속은 (1) 둘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상호 연관되어 만들어지며 그 중에 ‘희생자’가 있어야 한다. (2) 반복적 경험에 의하여 희생자는 그것이 정상적인 관습처럼 느껴지고 만다. (3) 일차적 부정형 금지 명령형 “어떠 어떠한 것을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벌을 주겠다”. (4) 이차적 부정형 금지 명령형 “내가 벌을 주더라도 그것을 벌로 생각하면 안 돼”가 따른다. (5) 희생자가 현장에서 도저히 피할 수 없도록 삼차적 부정형 금지 명령 “어떤 벌이라도 그것은 너를 위한 것이니 감사해야 해”. (6) 희생자가 드디어 자기가 구속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게 됨. 반 민생단 사건으로 희생된 희생자들의 예를 들면서 이상 6 가지 요소들이 어떻게 해당하는 지를, 그리고 다음 회에서는 김일성 사령이 이 구속적 과제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알아보기로 한다.

안도, 훈춘, 연길, 화룡 4 곳 가운데 반민생단 처형이 가장 극심한 곳은 화룡이었다. 고도라는 별명을 가진 화룡현의 반제동맹위원회 책임자는 재인강에 나가서 정치공작을 하다가 자위단원들에게 체포되어 30여명의 애국자들과 함께 사형장으로 끌려 나갔다. 자위단원들은 그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한 사람 한 사람씩 목을 쳐서 죽였다. 고도도 물론 그런 형벌을 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도의 목은 땅에 굴러 떨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목의 살과 가죽이 훌렁 벗겨져서 등에 가 붙고 온몸이 피범벅이 되였다. 이것은 죽음 그 자체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치명상이었다. 고도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이에 적들은 사형장을 떠나가 버리었다. 밤중에 정신을 차리고 형장에서 가까스로 일어난 그는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으면서 등에 가붙은 살가죽을 목에 끌어다 붙이고 옷을 찢어 동여맨 다음 60여리의 험산준령을 배밀이로 기고 굴러서 마침내 어랑촌 유격구로 무사히 돌아왔다.

그러나 고도의 상처가 완치되기도 전에 좌경분자들은 그를 군중심판장으로 끌어내었다. 그가 적의 주구로서 혁명대렬 내에 깊숙이 잠복하려고 일부러 목에 상처를 내 가지고 유격구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좌경분자들은 고도의 죄행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으나 심판장에 끌려나온 군중들은 그들의 판결을 한 사람도 찬성하지 않았다. 결국 심판의 조직자들은 고도를 살려두고 일정한 기간 검열을 통해 그의 정체를 밝힌다는 판결을 내리였으나 뒤에 돌아가서 그를 암살해버렸다.

중공당과 극좌 좌경들은 난다는 싸움꾼들만 골라서 처형해 나간다. ‘호미 긁개’ 별명을 가진 안태옥, ‘새별눈’ 박현숙 모두 민생단 희생자들이다. 유격대원들에게 붙는 별명은 적들과 싸우다가 생긴 무용담에서 유래한다. 호미긁개란 총이 격발이 안 되자 호미로 긁어 격발시켰다고 붙여진 별명이다. 새별눈이란 춤과 노래를 잘 부르고 눈이 새별 같이 빛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호미등으로 격발기를 쳤으니 격발기가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것이 원인이 되어 민생단으로 몰렸다. 귀중한 무기를 손상시키려 들어온 일본의 밀정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무지한 살육으로 하여 왕청의 강물과 고등하의 물이 선혈로 검어지고 간도의 어느 골짜기에서나 통곡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

“무의식 군중들은 자연히 혁명을 버리고 적구나 무인지경으로 도주하게 되였다. 혁명을 하려고 왔다가 혁명한테서 구박을 당하고 허공중에 뜬 신세가 되였으니 그들이 깃을 붙이고 살아갈 곳은 과연 어데란 말인가. 혁명이란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죽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도 사람답게 잘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혁명이며 죽어도 정의를 위해 한 몸을 아낌없이 바치다가 싸움터에서 값있게 죽어 영생을 얻는 것이 혁명이다.”(4권 25쪽)

독백 같이 들리는 한 인간 혁명가의 자조어린 이 말은 그의 가슴에서 피고름이 터져 나오는 울음이다. 이처럼 처절할 수 있을까? 어느 혁명사에 이런 기록이 다 있단 말인가? 호지명의 체 게바라의 평전 어디에서도 읽을 수 없는 차라리 한갓 소설의 한 구절이었으면...

중국 공산당 극좌 좌경들이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학살 처형하는 처절한 현장을 목격하면서 김일성 사령은 이렇게 말한다. “만사를 민생단의 작간으로 보는 불신의 감시경 밑에서 자기를 건져낼 수 있는 최대의 보신책은 사실 아무 일에도 참견하지 않으며 보고서도 못 본 척 하는 것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른 것을 보고서도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그것은 살아도 죽은 목숨과 같고 구태여 살 필요조차 없는 생명 없는 생명이라는 제 나름의 배짱을 가지고 우리가 불의라고 보는 모든 것을 향하여 반기를 들었다. 일신의 안위만을 걱정한다면 그것이 무슨 혁명가이겠는가. 나는 숙반의 회오리가 아무리 기승을 부린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우리가 한 몸을 내대고 투쟁한다면 반드시 그것을 밀어제낄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4권 39쪽)

흑인 영가 가운데 우리의 깊은 영감을 주는 곡 가운데 ‘너 거기 있었는가 그 때에’가 있다. 예수의 수난절 기간에 가장 많이 불리는 곡 가운데 하나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에 너 거기 있었는가? 그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갈 때에 너는 너 일신상의 안전 때문에 외면하지 않았는가? 하고 양심의 고동을 치게 하는 곡이다. 김일성 사령이 만약에 그 현장을 외면하고 고개를 딴 방향으로 돌렸더라면 그는 결코 나라를 세울 수도 없었고 세웠다 하더라도 60여 성상을 버티어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우리에게 새삼 알려진 ‘보도연맹’은 좌익인사 교화 및 전향을 목적으로 1949년 조직된 단체이다. 1949년 좌익 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로 조직한 반공단체로, 정식명칭은 ‘국민보도연맹’이다.

대한민국정부 절대 지지, 북한정권 절대 반대, 인류의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사상 배격.분쇄, 남.북로당의 파괴정책 폭로.분쇄, 민족진영 각 정당.사회단체와 협력해 총력을 결집한다는 내용을 주요 강령으로 삼았다. 1949년 말에는 가입자 수가 30만 명에 달했고, 서울에만도 거의 2만 명에 이르렀다.

주로 사상적 낙인이 찍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고, 거의 강제적이었으며, 지역별 할당제가 있어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등록되는 경우가 많았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정부와 경찰은 초기 후퇴 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무차별 검속과 즉결처분을 단행함으로써 6.25전쟁 중 최초의 집단 민간인 학살을 일으켰고, 이는 곧 북한 인민군 점령지역에서 일어난 좌익세력에 의한 보복학살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바로 반공 우익 단체인 국민보도연맹이 이승만 우익에 의하여 약 30만 명이 학살당했다. 6.25 발발 3일 후부터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모조리 잡아 학살을 하기 시작한다. 이는 최근 1950년 전쟁발발 당시 헌병대 6사단 상사로 보도연맹원 처형과정에 참여했던 김만식(84)씨의 증언으로 이승만의 직접 명령에 의하여 자행되었다는 것이 확인됐다. 당시 보도연맹원 처형과정에 직접 참여한 헌병대 초급간부의 첫 증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보도연맹 사건은 반민생단 사건과 일란성 쌍둥이와 같다. 하나는 극좌 좌경들이 좌경을 학살한 사건이라면 보도연맹 사건은 그 반대로 우익이 우익을 죽인 사건이다. 그 혐의마저 비슷하다. 김씨의 증언에 의하면 "보도연맹원으로 끌려가 죽은 사람들 중에는 아주 순박하고 어진 평범한 시민과 농민들이 많았다"며 "하지만 국가명령에 따라 처형 집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승만과 김창룡 등 수하들이 이 수법을 일제 강점기 사상탄압에 앞장섰던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체제를 그대로 모방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반민생단 사건과 한 가지 다른 점도 있다. 한 사건은 한 지도자가 있어 억울하게 죽어 가는 인민들을 가슴으로 끌어안아 주었지만, 다른 한 사건은 반세기가 지나가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앞장서 진실 자체도 구명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글을 마감하는 날 아침 아버지가 보도연맹 사건으로 죽었다고 간첩 누명을 쓰고 5년간 옥살이를 한 아들 김양기씨의 무죄가 군 과거사위에서 밝혀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같은 날 1991년 있었던 강기훈씨의 유서대필 누명도 벗겨졌다.

금년 12월 19일에도 이중 구속의 올가미에서 우리를 풀어줄 지도자가 나타날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반공 反共’은 한갓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 민족종교 지도자 강증산은 “모기 한 마리라도 억울하게 죽으면 한이 맺힌다”고 했다. 해방 정국의 최대 과제는 바로 이 한을 푸는 과정이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우리 역사는 한을 겹겹이 쌓이게 하는 역사였다. 맺힌 한은 고스란히 우리 후손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출처: 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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