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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 통일애국의 길에 영생하는 애국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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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2-07-19 13:2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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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애국의 길에 영생하는 애국지사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생을 바친 유명무명의 애국지사들가운데는 몽양 려운형선생(1886. 4. 22-1947. 7. 19)도 있다.

려운형선생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을민족의 태양으로따랐던 통일애국인사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선생이 자기의 호를 몽양(夢陽)이라고 단것은 꿈속에서라도 투쟁의 길을 환히 밝혀주는 태양을 그리는 그의 간절하고 애타는 마음으로부터 출발한것이였다.

그의 한생은 도탄에 빠진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할 옳바른 길을 찾기 위한 암중모색속에 동분서주하며 흘러왔다.

그는 일찌기 청년시절에 국채보상운동도 해보았고 독립의 뜻을 품고 3.1인민봉기에 참가하여 만세도 불렀다.

상해에서 신한청년당을 조직하여 김규식선생을 빠리강화회의에 대표로 파견하여 독립청원운동을 해보기도 하고 상해림시정부를 세우는데도 참여하였으며 고려공산당에서도 활동하였다.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원동피압박민족대표자대회에도 참가하여 레닌도 만나고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지해줄것을 호소하는 연설도 하였다.

그 과정에 일제경찰과 헌병대에 체포되여 옥중생활도 여러해동안 하였다.

려운형선생이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 강렬한 우국지심으로 조선이 나아갈 길을 찾아 몸부림치며 긴긴 세월 벌려온 독립운동과정은 결국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자면 위대한 령도자를모셔야 한다는 진리를 사무치게 절감한 나날이였다.

그러던 그는 주석님께서몸소 조직지휘하신 보천보전투장소를 직접 돌아보고 조선의 운명을 구원해주실분은 오직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뿐이시라는것을깨닫게 되였으며 그때부터 주석님에대한 남다른 흠모심을 간직하게 되였다.

해방후 그는 남조선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그 위원장으로되였으며 조선인민당 당수, 남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 의장, 좌우합작위원회 주석으로활동하였다.

그러던 그가 해방후 남조선에 조성된 난국을 타개할 방도를 알고저 위대한주석님을 찾아뵈운것은주체35(1946)2월이였다.

그때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몸소 려운형선생을 만나시여 그가 제기하는 문제들에 하나하나 명쾌한 해답을 주시면서 우리는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조선식민주주의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려운형선생은 그후에도 여러차례 평양에 들어와 위대한주석님을만나뵙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았다.

이렇게 그는 위대한주석님을만나뵙고서야 해방된 조국이 나아갈 길을 찾은것은 물론 인생의 항로를 새롭게 정하게 되였으며 자신의운명은 물론 자식들의 운명까지 그이께의탁하였다.

어느날 서울대학교 학생들앞에서 연설을 하게 된 려운형선생은 자기가 평양에 가서 만나뵈온 김일성장군님은당년 34살의 젊으신 청년장군이시다, 김장군님은 백두산이낳은 조선의 명장이시고일본놈들의 무기를 빼앗아 무장투쟁을 벌려 조국을 해방하신 민족의 영웅이시다, 오직 김일성장군님을따르는 길만이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이고 조국이 나아갈 진로이라고 소리높이 웨치여 폭풍같은 환호성이 온 남조선땅을 뒤흔들게 하였다.

이에 바빠난 미군정장관 하지가 려운형선생이 평양에 갔다온데 대하여 박해를 가하며 왜 평양에 갔다왔는가고 간섭해나섰다. 그러자 그는 내 집에서 내 마음대로 다니는데 내가 웃방으로 가건 아래방으로 가건 왜 간섭이요. 당신이야 우리 집에 온 손님이 아니요. 나는 내 집안일로 김일성장군님을만나뵙고 왔소.》라고 당당히 말하였다.

놈들은 그를 돌려세워보려고 협박도 해보고 회유도 하면서 갖은 발악을 다하였지만 위대한주석님을굳게 믿고 따르는 려운형선생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에 커다란 불안을 느낀 미국은 1947719일 백주에 서울거리 한복판에서 그를 잔인하게 암살하였다.

이 비보를 받으신 위대한주석님께서는려운형선생이 그렇게도 바라던 통일의 날도 보지 못하고 갔다고 애석함을 금치 못해하시며 애국적인 민주인사로 영생하는 삶을 누리게 해주시고 그 후대들의 운명을 자신께서맡아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고귀한 의리를 지니신 위대한주석님께서는조국해방 45돐에 즈음하여 그에게조국통일상을 수여하도록 하여주시였을뿐만 아니라 그가 살해된 때로부터 40여년동안 내내 그의 자식들을 잊지 않으시고 자주 만나주시고 사업과 생활에 불편이 있을세라 친어버이의심정으로 극진히 돌봐주시였다.

주체80(1991)4월도 다 가던 어느날 우리가 조국을 해방하자마자 남조선에서 나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써보낸 사람은 려운형이였다고그를 또다시 추억해주신 위대한주석님께서는그해 1116일에는 그의 자식 네 남매를 또다시 몸가까이 부르시여대를 두고 길이 전할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주체80(1991)1125일 선생의 맏딸 려연구가 서울에서 진행된 아시아의 평화와 녀성의 역할에 관한 제2차토론회에 참가할 때 친히 고 몽양 려운형선생을 추모하여 김일성이라고 씌워진 화환을 마련해주시여 아버지의 묘소를 찾도록 하시였다.

민족의 위대한태양이 이렇듯 변함없는 사랑의 빛발을 안겨주기에 몽양 려운형선생은 오늘도 통일애국투쟁사에 그 이름 빛내며 영생하고있는것이다.

[출처:류경]

 

 

[이 게시물은 편집국님에 의해 2022-07-19 13:29:52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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