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 동방에서 첫 인민민주주의국가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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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1-09-04 09:46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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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에서 첫 인민민주주의국가의 출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차회의에서 김일성장군을 내각수상으로 추대[1948년 9월 8일]
지금으로부터 70여년전의 일이다. 일제의 군사적강점하에 있던 조선이 해방(1945년 8월 15일)되였다.
해방은 조선인민이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지만 그것은 결코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패망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구실로
미국이 남조선을 타고앉음으로써 조선민족은 분렬의 위기를 겪게 되였다.
미국은 남조선에서 1946년 2월 미군정자문기구로서 《남조선민주의원》이라는것을 조작하고 12월에는
《남조선과도립법의원》을 만들어냈다. 1947년 6월에는 과도정부를
내오기 위해 《보통선거법》을 조작하여 괴뢰정부수립을 위한 《단독선거》준비를 서둘렀다. 조선의 통일적민주주의림시정부수립을
위한 1947년 제2차쏘미공동위원회사업을 파탄시켰으며 조선문제를
유엔에 제기하였다. 이것은 유엔을 리용하여 남조선에서 《단독선거》를 실시하여 괴뢰정부를 조작하고 남조선에
대한 지배를 《합법화》하려는 목적을 드러낸것이였다. 1947년 9월에
진행된 쏘미공동위원회에서 미국무장관 마샬은 공동위원회사업이 침체상태에 빠진 책임을 쏘련측에 전가시키면서 조선문제를 유엔에서 토의할것을 들고나왔다. 결국 조선문제는 미국에 의하여 유엔총회 제1(정치)위원회의에서 토의되게 되였다. 1947년 11월 유엔총회 제2차회의에서는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을 만들어 그
감시밑에 조선에서 《선거》를 실시하고 《정부》를 세울데 대하여 결정하였다. 이렇게 되여 1948년 2월 《유엔소총회》에서는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의 《감시》밑에
《우선 가능한 지역에서 선거를 실시》할데 대한, 다시말하여 남조선에서만 《단독선거》를 실시할데 대한
결의를 채택하였다.
이것은 완전히 비법적인것이였다.
조선문제는 침략전쟁에 참가하였다가 패한 결과 분렬된 나라의 문제와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랐기때문이다. 조선은 침략전쟁에 참가한 나라도 아니며 패전국도 아니였다. 조선민족은
식민지예속밑에서 압박받던 민족이였으며 제국주의침략자들과 싸워 해방을 쟁취한 민족이였다. 조선문제가 그
어떤 외세의 간섭밑에서 해결되여야 할 아무런 근거도 없었으며 조선문제는 철두철미 조선인민자신에 의하여 해결되여야 할 문제였다.
이러한 정세하에서 김일성장군께서는 미국의 조선민족분렬책동을 짓부시고 북과 남의 모든 애국력량을 민주주의기치아래
하나로 묶어세우기 위한 사업에 선차적인 힘을 넣으시였다. 북조선에 인민정권을 세울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인민들이 자기 손으로 지방주권기관들을 세우도록 조치를 취하신데 기초하여 1946년 2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수립하시였다. 건국위업이 추진됨에 따라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는 1947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로 강화발전되였다.
김일성장군께서는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전민족의 리익을 대표하는 전조선적인 통일정부로 발전시키는 사업에
큰 힘을 넣으시였다. 북과 남의 애국적민주력량의 단결을 강화할 목적으로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련석회의를 1948년
4월 평양에서 소집할것을 제의하시였다.
이 제의는 광범한 조선민족의 지지와 찬동을 받았다. 남조선의
민주주의적 정당, 사회단체들은 물론 중간정당들, 지어 일부
우익정당과 완고한 민족주의자들까지도 남북련석회의소집을 지지하여나섰다.
미국의 한 문필가는 이에 대하여 《이 회의의 남조선대표가운데는 리승만(초대 남조선《정부》의 괴뢰대통령)을 제외하고 남조선에 있는 우수한
인물이 거의 한사람도 빠짐없이 포함되여있었다. …이만큼 다수의 남조선사람이 출석을 수락하였다는 사실은
비록 사정이 어떻든지간에 조국통일에 대한 그들의 본능이 얼마나 뿌리깊은것인가를 보여주는것》이라고 서술하였다.
력사적인 남북련석회의는 조선의 북과 남의 민주주의적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이 해방후 처음으로 모여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위한 구국대책을 토의한 전민족적인 첫 회합이였다.
조선인민의 완강한 투쟁에 의하여 1948년 5월 10일 남조선에서의 《단독선거》는 파탄되였다. 하지만 미국은 《선거》결과를 날조하여 남조선에서의 《단독정부》를 세웠다.
김일성장군께서는 1948년 6월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들의 지도자협의회를 소집하시고 전조선적인
중앙정부를 수립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이에 따라 1948년 8월 북남총선거가 진행되였다.
1948년 9월 9일 마침내 평양에서는 김일성장군을 내각수상으로, 국가수반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은 동방에서의 첫 인민민주주의국가의 출현을 알리는 력사적사변이였다.
김상범(재미조선련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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