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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김일성 주석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독후감 5 - 김상일 교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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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7-11-05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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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만주사변으로 본 ‘핵폐기 먼저’라는 오류
김상일 교수의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⑤

김상일(한신대 전 교수, Korea Project Director, Claremont Center for Process Studies)

촘스키 교수와 슬레에보 철학자 지젝 등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바는 만약에 이라크에 대량살상 무기와 핵무기가 있었더라면 부시가 절대로 이라크를 침공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라크 침공 전에 이라크에 그런 것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 보다 먼저 안 것은, 아니 정확하게 안 것은 부시와 체니와 펜타곤, 즉 국방성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부시 정부는 대량 살상무기와 핵 때문에 이라크를 침공한다고 대국민 아니, 전 세계를 상대로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조사 결과, 이 두 가지 무기는 이라크에는 없었다. 전혀 없었다. 이라크는 점령당했고 후세인은 죽었고 무고한 민간인이 수십만 죽었고 미군 병사들도 전사자가 수 천명에 이르고 있다.

인간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앞 뒤 안 맞는 말을 하는 것은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풍자가 일품이 아닌가 한다. 즉, ‘빌려온 항아리’라는 풍자 말이다. 지젝은 부시와 그의 푸들 블레어가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늘어놓은 앞 뒤 안 맞는 언행을『이라크, 빌려온 항아리 The Iraqi Borrowed 』에서 잘 고발하고 있다. 우리나라 말로도 번역된 이 책은 이미 읽은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내용은 이러하다. (1) 나는 당신에게 항아리를 빌린 적이 없다. (2) 나는 항아리를 깨지지 않은 상태로 돌려주었다. (3) 당신에게 항아리를 빌렸을 때에 그건 이미 깨져 있었다. 이는 비일관된 주장으로 나열된 것 같지만 “나는 깨진 항아리를 돌려주었다”를 부정을 통해 승인하고 있는 것이다(지젝, 2004, 8). 한 마디로 말해서 프로이트가 부시를 두고 해 둔 말 같다.

지젝이 책을 쓴 다음, 2007년 미 중간 선거에서 부시 공화당 정부는 상하원에서 과반수 의석을 잃었다. 그리고 전쟁 주범인 럼스펠드는 사임했다. 이렇게 전 세계 소수의 비정치적인 철학자와 언어학자들의 예언의 소리가 적중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에겐 이런 지식인들이 있어서 희망이 있는 것이다.

만주사변 이후 국내외 지식인들이 이젠 동북아 천지가 일본 세상이 다 되었다고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에 사로 잡혀 비관주의에 흐르고 있을 때에 이런 시류에 역행하여 차라리 일본 패망이 반드시 오고 말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항일 유격대를 꾸린 인물이 있었다. 그 인물이 김일성이다. 그는 이념과 사상을 떠나서 오늘을 사는 소수의 의식 있는 지식인들과 같이 앞 날을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클레어몬트대 과정사상 연구소의 데이비드 그리핀 교수는 9.11이 완전히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것을 폭로하는 두 권의 책으로 유명하다. 그리핀 교수는 부시의 이러한 행동을 두고 미국의 ‘위장 깃발 false flag’ 흔들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대사에서 3가지 대표적인 위장 깃발 흔들기가 김일성 주석이 회고록 2권에서 절절이 언급하고 있는 1931년 일본의 9.18 만주사변과, 일본의 진주만 공격 그리고 1968년 월남 통킹만 사건으로 손꼽고 있다.

그러면서 9.11은 미국이 하와이 진주만에서 흔든 위장 깃발의 제 2탄으로서 ‘신판 진주만 공격 사건 New Pearl Harbor’라고 했다. 그리핀 교수는 이어 미국이 건국 초부터 멕시코 전쟁에 이르기까지 건건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빌미로 앞뒤가 일관하지 않는 행동을 저질러 왔다는 것이다.

회고록에서 김 사령이 알리는 사건의 진면목은 대강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내용과 일치한다. 역사의 복습을 위해 이 사변을 회고록을 통해 다시 요약하면 “1931년 9월 18일 밤 심양 북대영 서쪽 류조구에서 일본만철 회사소유의 철도가 폭파되었다. 일제는 장학량군이 철도를 폭파하고 일본수비대를 공격했다는 터무니없는 구실을 내걸고 불의의 침공을 개시하여 일거에 북대영을 점령하였으며 19일 아침에는 봉천 비행장까지 차지하였다”(2권-214쪽)와 같다. 이어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진상을 오도하여 중국 측에 책임을 전가 시켰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 누구도 일제의 본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2-214). 물론 사건을 꾸민 장본인은 관동군 특무기관의 심양 특무기관장 도히하라 겐지 대좌이다.

이 자의 9월 18일 이후 행각을 보면 그것이 위장 깃발임이 금방 드러난다. 그는 만주에서 일을 저질러 놓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같은 날 서울에 나타나 자기와 이 사건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능청을 떤다. 그는 큰일을 낸 자 치고는 너무나도 여유작작하게도 조선 주둔군 사령부 고급 참모 간다 마사다네를 만나 서울에 온 이유를 신문 기자들이 하도 찾아와 성가셔서 조선방문 이유를 에둘러 설명하였다. 그 날 서울 백운장이란 술집에서는 일본 항공부장 와다나베 죠따로 대장이 찾아 와 조선 주둔군 사령관 하야시 센쥬로 대장과 기생 파티를 하고 있었다. 모두가 만주 사변과는 일본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김 사령은 이런 일본의 행각을 조선전쟁 당시 미국의 트루맨의 그것과 너무나 대차대조가 된다고 했다. “이 력사 기록을 읽게 되면 어째서인지 조선전쟁이 발발하던 때에 트루맨이 별장에 가서 지내던 일을 상기하게 된다. 우리가 9.18 사변과 조선전쟁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전쟁에서 일맥상통한 점을 찾아보게 되는 것은 두 전쟁 다 선전포고 없이 도발적으로 개시되었다는 거기에만 있지 않다. 그 두 사변을 도발한 인간들의 면모에서 제국주의자들에게 고유한 교활성과 파렴치성, 다른 나라들에 대한 침략성과 지배주의적 본성을 다 같이 찾아보게 되기 때문이다”(2-215).

나는 2006년 여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38선도 6.25도 미국의 작품이다』의 저자 하리마오 박 선생을 윌셔 호텔 식당에서 친구 5-6인들과 함께 만난 적이 있다. 이 분은 고급 미국 첩보 장교(대령)이었다. 당시 미 8군 브라운 사령관이 6월 24일 아침 4시까지 8군 장교 구락부 건물 낙성식 축하 파티를 하곤 일본으로 떠난 사실에 대해 하늘나라에 가서라도 그냥 두지 않겠다고 하면서 38선도 6.25도 모두 미국의 사전 시나리오에 지나지 않는다고 박 선생은 증언하였다. 브라운의 행각이 만주사변을 저지른 일본 장교들이 벌린 그것과 같아도 너무 같다. 부시도 9.11 테러 날 어디 가 있었는가? 그가 백악관에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핀 교수 주장에 의하면 이미 다 아는 사실, 그러나 자기는 몰랐다는 것을 국민들한테 보여주기 위한 위장 행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김 사령의 역사관이 나타난다. 보통 자연은 반복 그리고 역사는 반복하지 않는 비반복적(非反復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김 사령은 “력사를 비반복적인 사건들의 루적(累積)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개개의 사건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과 공통적인 경향성을 우리는 또한 전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2-215)(한자는 필자의 것임). 자연 과학은 같은 실험을 반복해 할 수 있지만, 역사 과학에서는 임진왜란 같은 역사적 사건을 반복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김 사령은 역사에도 반복적인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 반문한다. 다시 말해서 만주사변과 조선 전쟁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제국주의자들의 위장 깃발 흔들기의 반복성이 있는 것이다.

김사령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터무니 없는 구실’이라는 말이 바로 그리핀 교수의 ‘위장 깃발’에 해당한다. 가해자이면서 오히려 피해자로 둔갑하기 위해 흔드는 깃발 말이다. ‘일본의 본성’이란 그 역사가 오래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를 치겠으니 길을 내라고 구실을 붙인 것도 이에 다르지 않다. 사실 동북아에서 일본의 이러한 피해자 둔갑 변신술은 만주 사변이 처음이 아니다. 만주 철도 부설을 위한 작작림 열차 폭파 사건, 만보산 사건, 관동군 참모본부 소속 나까무라 대위의 ‘실종’사건, 그리고 그 무엇 보다 1937년 중일 전쟁의 도화선이 된 노하구 다리 밑의 일본 장교 피살 사건 등등 그 수를 손으로 다 헤일 수 없을 정도 이다.

특히 만보산 사건은 장춘에서 서북으로 70-80여리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두 민족 농민들 사이에 봇물 때문에 생긴 작은 일이었는데 일본은 이를 민족 문제로 비화시켜 두 민족 사이에 이간질을 시키고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의 피해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에 대하여 김사령은 “농촌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지방적 분쟁을 민족리간 책략에 솜씨 있게 리용한 것이다”(2-216)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중 농민들은 일본의 간계에 완전히 빠져 서로 두들겨 패고 죽이기까지 했다. 김사령은 농민들 가운데 선각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더라면 일본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을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2-216)

이렇게 미일 두 제국이 전혀 달라짐이 없이 같은 수법을 사용하고 있는 데 대하여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납치 문제를 계속 꺼내고 미국은 북핵 문제 위조지폐 문제 그리고 인권 문제 나아가 종교의 자유문제 등등 모두가 결국 9.18 만주 사변의 재판과 9.11 테러의, 이상도 이하도 아닌 역사는 반복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정신 차리고 알아야 할 사실은 미국이나 일본이 꺼내는 것은 핵이나 인권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위장 깃발은 그것이 깃발이 아니고 사실은 ‘카드’라는 점이다. 노름판에서 카드란 자기의 이해득실에 따라서 꺼내 드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야 정치인들은 이러한 일본과 미국의 카드 놀음에 놀아나지 말아야 할 것이 당연지사가 아닌가? 그러나 사정은 정 반대이다. 지금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이명박은 ‘핵 먼저 폐기’ 없이 경제 지원 없다는 논리를 대선 정책으로 결정해 놓고 있다. 문제는 핵이 해결되면 다음 인권 카드가 나올 것이고 그러면 이명박은 분명히 ‘인권 먼저 해결’을 구호로 내걸 것이 분명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호랑이가 떡장수 어머니에게 그러하듯 카드는 어머니가 죽을 때 까지 나올 것이다. 이 일을 어찌 하면 좋은가? 이명박의 이러한 행각은 한국 수구 보수의 전가의 보도와 같다. 지금 유력 대권 후보자 하나가 미일의 위장 깃발을 다시 흔들고 있으니 역사는 반복하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김사령이 말 한대로 역사는 비반복적이 아니고 ‘비비반복적(非非反復的)’이다. 다시 말해서 ‘반복적’이다. 지금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잘 먹고 잘 사는 시대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과거 춥고 배고픈 시절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 착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비비반복적이다. 같은 말이지만 반복적이라 하지 않는 이유는 생각의 생각을 깊이 한 번 해 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김 사령도 회고록에서 역사는 과연 비반복적인가 묻고 있지만 나는 여기서 비비반복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보산 사건이 있던 날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무엇 때문에 서로 주먹질을 하고 피투성이 싸움을 하는가, 항일이란 대전제 밑에 두 나라 인민이 손을 굳게 잡고 공동 투쟁을 해도 안 될 마당에 이런 골육상쟁을 벌리니 이것이 도대체 이 무슨 꼴인가”(2-216)고 김 사령은 한없는 비탄에 잠기었다고 한다. 번민과 고민으로 밤을 새운 날 새벽 “이 사건이 꾸며진 연극으로 박두해 오고 있는 어마 어마한 사변의 전주곡으로 느꼈다.” 만보산 농촌 마을에서 생긴 사소한 봇물 사건에 장춘영사관이 끼어들면서 조선 사람들의 이권을 옹호하고 나온 것이 미심쩍었다. 언제 일본이 조선 인민과 농민들을 위했다고. ‘토지 조사령’ 같은 법령으로 조선 농민들을 약탈해 오던 일본이 갑자기 옹호자로 둔갑한 것이다. 장춘의 경성일보가 본사에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도록 한 것이며 심지어는 호외로 배포까지 하였다.

무기는 다음이다. 우리 민족이 살아남는 길은 미일의 속셈 위장 깃발에 속지 않는 것이다. 그러자면 인민이 영명해야 하고 지도자가 현명해야 한다. 아무도 아직 판단하고 있지 않을 때에 김일성 사령은 “나는 그 때에 일제의 만주 침략은 시간상 문제라고 판단했다. 조선을 먹은 다음에는 만몽을 먹고 만몽을 먹은 다음에는 중국을 먹고 중국을 먹은 다음에는 아세아를 제패하려는 ‘다나까상주서’에도 규정되어 있는바 일본의 기본국책이었다.”(2-218)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우리 지도자들 대부분이 이 사실을 모르고 아니 자기 기득권 때문에 알고도 일본의 장단에 춤을 추었다.

다시 강조한다. 역사는 비비반복적이다.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적어도 동북아의 역사는 자연 과학자들이 같은 실험을 되풀이 할 수 있는 것 같이 역사를 되풀이 시험할 수 있는 장소이다. 이젠 중국마저 동북공정 운운하며 옛 옛 역사까지 들추며 임진강 이북 땅을 자기들 땅에 귀속 시키려 하지 않는가. 눈을 들어 산을 보아도 도움 올 것은 없다. 오직 한 가닥 희망이 있다면 ‘우리끼리’이다. 남북민 우리 민족끼리 대동단결하는 길 만이 역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는 오직 단 하나의 해답이다. 나는 남북민이 합심한 ‘선군정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고구려의 상무 정신이 지금 만큼 필요한 때는 없을 것이다. 부디 남북 어느 한 쪽이라도 미일 그리고 중국 그리고 소련까지 포함한 주변의 늑대들의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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