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는 김대중 대통령②]“피로써 쟁취한 민주주의가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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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9-09-18 00:00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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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큰 기둥이 무너진 지도 벌써 2주가 되어간다. 85년 평생을 민주화 투쟁과 조국통일에 바친 김대중 전 대통령, 그를 떠나보낸 영결식도 이제는 어느덧 과거사가 되어버렸다.
7, 80년대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중심에 섰고, 2000년 6.15 공동선언으로 자주통일의 이정표를 세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우리는 이대로 떠나보낼 수가 없다. 세월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었지만 이 땅의 청년들은 모범적인 선대의 삶을 절대로 잊지 않고 따라 배워야 한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6.15 공동선언의 주역이자 이 땅 민주화투쟁의 대명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기리며 그 생전의 업적과 뜻을 다시금 되새겨보고자 한다.
글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6.15 선언을 이행하십시오.
2. 피로써 쟁취한 민주주의가 무너진다.
3. 정치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
4.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 ------------------------------------------------- [돌아보는 김대중 대통령] “피로써 쟁취한 민주주의가 무너진다.”
“과거 50년 동안 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위태로워 매우 걱정이다.”
6.15 선언 9돌 기념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언급이었다. 민주주의. 물론 이 땅의 민주주의가 온전히 뿌리내려 정착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정부 시절에 정착되었다고 평가되는 절차상의 민주주의마저도 송두리째 뿌리 뽑히고 있는 지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우려와 걱정은 국민들의 정서를 정확히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김남주 시인이 격정적으로 외쳤듯이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이다. 그 이유는 백성(民)이 주인(主)이라는 민주주의(民主主義)의 기본 뜻에서 짐작할 수 있다. 힘있는 자들, 가진 자들이 중심이 되고 그들의 입장만을 대변했던 것이 지난 중세 봉건 사회부터의 사회제도의 실상이었다. 지난 봉건시대에서는 양반, 지주계급의 이익 앞에 대다수 민중의 이익은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민중의 이익은 일제 식민지 시절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이익 앞에, 해방 이후에는 친미사대적 독재정권과 그 부식세력의 이익 앞에 철저히 외면당하고 짓밟혀왔던 것이다. 지금껏 인류사회는 민중이 아니라 집권세력과 그 계급이 주인이었다.
그러한바 민주화 운동은 백성이 주인이 되는 운동으로써 지금까지 사회의 실질적 주인으로 군림해 온 지배층과 사회의 주인자리를 놓고 다투는 일대 혈전으로 될 수밖에 없다. 지난 수천 년간 주인의 지위를 누려 온 저들이 국민들 몇 명이 요구한다고 해서, 단지 만세를 부르고 청원을 한다고 자기의 지위를 내줄 수 있겠는가. 너무나도 순진한 발상이다.
결국 민주주의, 민주화 운동은 그 무슨 청원이나 청탁의 방법으로는 해결될 수 없으며 본질적으로 힘과 힘의 대결, 반민주 세력과의 투쟁을 통해 쟁취하고 지켜나가는 것으로 된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민주화 투사라고 부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 정치인으로 제도권 내의 인물이었지만 민주주의의 역사적 본질을 너무나도 정확히 꿰뚫고 이를 몸소 실천한 민주화 투사였다.
“목숨을 바쳐 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억울하고 분하다.”
이 땅의 민주화 운동이 수많은 민주화 투사들의 헌신과 투쟁으로 일궈졌듯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생도 그야말로 반독재 민주화를 위해 사선을 헤치며 목숨을 바쳐 온 삶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1970년 9월,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로 공식지명되어 향토예비군 폐지, 노동자 자본가 공동위원회 구성, 비정치적 남북교류 등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주장을 들고 나와 파란을 일으키며 획기적인 지지를 얻었다. 1971년 대선에서 박정희 정권과 박빙의 승부를 벌여 95만표 차이로 아깝게 패하였다. 선거에 대한 기본적 감시조차 없던 시절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사실상의 승패가 오리무중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때부터 김 전 대통령은 독재정권의 눈엣가시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이에 전혀 굴하지 않고 반독재 민주화의 한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1972년,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내용으로 하는 “10월 유신”이 선포되자 당시 일본에서 체류하던 김 전 대통령은 유신반대운동을 몸소 이끌었다. 그러던 와중이던 1973년 8월 8일, 김 전 대통령은 일본 도쿄 팔레스 호텔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되어 129시간 만에 서울로 압송되고 말았다. 이것이 유명한 ‘김대중 납치사건’인데 당시 박정희 정권이 김 전 대통령을 얼마나 눈엣가시로 여겼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서울 압송 이후, 가택에 연금되었지만 김 전 대통령은 다시금 1976년, 3.1절 기념미사에서 민주주의, 민족통일을 내용으로 하는 3.1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하면서 독재에 항거하였으며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끝내 구속되고 말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 사망 직후인 1980년에 정치활동의 전면에 나섰으나 전두환 신군부의 쿠데타 이후 9월 계엄사령부 군법회의에서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주동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1981년 1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받고 말았다.
그야말로 김 전 대통령의 삶은 사형선고, 납치와 구속, 가택연금 등 당할 수 있는 탄압과 고초는 죄다 겪어 온 파란만장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수많은 정치인 가운데 김 전 대통령에게만은 “목숨을 바쳐 온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그런 표현을 할 자격이 있는 삶을 살았다.
“독재정권, 보수정권 50여년 끝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10년 동안 이제 좀 민주주의를 해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되돌아가고 있다.”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김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놓고 아직도 여러 토론이 일어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남북관계의 발전과 더불어 절차상의 민주주의가 확립되기 시작하였다는 데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되었으며 이 땅에는 비로소 국민들이 할 말은 하고 사는 세상이 열리는 듯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명박 정권이 집권하면서 위협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이 땅에 독재가 다시 살아나고 있고 빈부격차가 사상최악으로 심해졌다.”
2008년, 수백만 국민들의 촛불의 함성을 짓밟은 이명박 정권은 “종합부동산세 폐지” 등으로 가진 자들의 세금을 줄여주고 각종 부동산 활성화 대책으로 투기우려를 조장시키며 이 나라를 “국민의 것”이 아니라 “높으신 분들의 것”으로 되돌리고 있다. 삶의 벼랑에 내몰린 용산철거민들을 끝내 죽음으로 몰아넣지 않나, 해고만은 말아달라며 정부의 책임 있는 개입을 요구하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경찰특공대를 풀어 넣으며 짓밟는 이명박 정권의 모습은 그야말로 독재의 부활이자 80년대로의 회귀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 폭압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지난 90년대 이후, 변방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던 보수냉전논객들 뿐이다. 지난 정권 시기 사회의 주요세력으로 부상한 진보적 언론, 시민사회세력은 그야말로 독재의 철퇴 앞에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 광장이 경찰에 의해 봉쇄되고 도심에서의 집회는 금지되기 일쑤, 기자회견마저 침탈하는 이 판국이 독재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 독재사회이겠는가. 김 전 대통령의 “독재규정”은 매우 정확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국민은 독재자가 나왔을 때 반드시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성공시켰다.”
김 전 대통령의 인생의 교훈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등등 역대 독재정권을 몸소 겪으며 그들과의 투쟁에 한 생을 살아온 노투사의 체험에서 울려나오는 진정어린 한 마디이다. 그러한즉 김 전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믿음, 민주화에 대한 굳은 신념은 호소력있게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살펴보면 우리 국민들은 독재의 폭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들을 투쟁으로 몰아낸 경험을 가지고 있는 강인한 국민들이다. 최근들어 이명박 정권이 온갖 독재회귀 정책으로 내외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는데 박정희, 전두환 정권까지도 결단내었던 숭고한 민주화운동의 경험을 간직한 우리 국민이 이명박 독재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리 국민은 독재자가 나왔을 때 반드시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성공시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바로 이 믿음이 그 누구보다도 확고하기에, 생의 마지막 순간을 강연의 길에서, 민주화의 길에서 마감할 수 있었던 것이라 보인다.
우리 국민들은 독재에 맞서 근 40여년을 싸워 온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간곡한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 시기, 피로써 쟁취한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국민은 그렇다고 맥없이 나앉을 무맥한 존재가 아니라 독재자를 반드시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성공시키는 강의한 국민들이다.
반독재 투쟁의 한 생에 끝까지 성실하였던 김 전 대통령의 삶은 현 시대의 귀감이다. 독재는 내가 눈을 돌린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국민들이 투쟁을 안하면 탄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독재는 우리 국민들이 사회의 주인이 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기에 우리 국민들의 삶과 사사건건 부닥칠 수밖에 없으며 삶의 벼랑에 내몰린 자들의 절박한 호소가 그칠 수 없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으로써 팔순의 고령에 다시금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김 전 대통령을 본받아야 한다. 민주화 운동에 40년 동안이나 몸바쳐왔고, 팔순 고령에 건강까지 좋지 않은 김 전 대통령은 이제 좀 쉰다고 해도 그것이 오히려 당연지사일 것이다. 투쟁은 젊은 사람들의 몫이지 노구에 병중인 분의 몫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통령은 그 어떤 불평불만도 없이 오로지 국민을 믿으며 사실상 반독재 투쟁의 최선두에 어김없이 다시 섰다. 그리고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이명박 독재정권과 맞서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귀감은 아닐는지. 김 전 대통령의 철저한 반독재 민주화의 신념을 따라 배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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