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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는 동포들의 북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돕고자 북녘 매체들의 글을 "있는 그대로" 소개합니다. 이 글들이 본회의 입장을 대신하는 것은 아님을 공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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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기]《남북의 골, 남남의 골, 어느 골이 더 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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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9-08-25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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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조국을 방문하고 떠나오면서-



[평양/서울=민족통신 백승배 특파원]보람찬 일주일이었다. 제2의 천리마 열기 속에 활기차게 전진하고 있는 북부조국의 모습을 확인하고 보고싶은 가족들도 보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일주일간의 북녘인민들과의 만남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확인했고 ‘우리는 만나야 한다’는 것을확인했으며 통일된 조국을 찾기 위하여 더 꾸준히 인내하며 실망하지 않고 조국통일을 위하여 일하리라다짐하며 순안비행장으로 향했다.



필자는 방북 중 보고싶은 가족들도 만났다. 고려호텔 1층에서 만난 가족들과 함께 기념촬영

[방북기]《남북의 골, 남남의 골, 어느 골이 더 깊을까?》

-혁명적대고조 열기를 뒤로하고 북부조국을 떠나오면서-


[평양/서울=민족통신 백승배 특파원]보람찬 일주일이었다. 제2의 천리마 열기 속에 활기차게 전진하고 있는 북부조국의 모습을 확인하고 보고싶은 가족들도 보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김책공업대학의 전자도서관에서 열심히 학구열에 불타던 대학생들, 대동강 기슭의 삼일포 특산물공장에서 우리 조국의 것으로 최선을 다해 상품을 만들어 내던 공원들, 사리원의 푸른 들판과 깔끔하게 마련된 살림집들, 원산수력발전소에서 우렁차게 돌아가던 기계소리, 천리마의 본고장 강선천리마제강연합제업소에서 강철을 생산해 내기 위해 우렁차고 투박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초고전력전기로, 또한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에서 자신만만하게 미소지으며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던 지배인의 모습, 그리고 150일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멀리 희천까지 갔다가 우리를 보러 온 김관기 국장의 모습 등등 모두 인상적이었다. 한가지 가슴 아팠던 것은 판문점에 가서 분단의 현실을 내 눈으로 확인한 것이었다.

강선제강연합기업소를 참관하고 나서 방문록에 나의 소감을 기록했다.-민족통신 자료
일주일간의 북녘 인민들과의 만남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확인했고 ‘우리는 만나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통일된 조국을 찾기 위하여 더 꾸준히 인내하며 실망하지 않고 조국통일을 위하여 일하리라 다짐하며 순안비행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트랩에 오를때까지 끝까지 손을 흔들며 헤어짐을 아쉬워 하던 형제자매들을 두고 통일을 위한 작은 밑거름이 되리라 다짐하며 심양으로 향하는 고려항공에 몸을 실었다. 문제는 심양비행장에서 보낼 다섯시간의 공백이었다. 칠보산 호텔에가 3시간쯤 노길남 박사와 손세영 선생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지만 차편이 마땅치 않았다. 대합실을 어슬렁거리다 찻집에 들어가 차 한 잔을 시켜놓고 콤퓨터를 켜고 몇자 글을 쓰고 다시 대합실로 나와 빈자리를 찾아 않아 콤퓨터를 켰다.

행운이었다. 10살쯤 되어보이는 두 중국소년과 고등학생인듯한 누나로 보이는 아이가 바로 공항 대합실의 내 옆에 자리를 잡는 것이 아닌가. 두 가정이 아이들을 데리고 청도로 휴양을 떠나는 일행이었다. 아버지들은 일하는 모양이고 엄마 둘과 세 아이가 함께 청도로 관광을 간다는 것이었다.

깔깔거리며 웃는 소년들, 역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이고 호기심이 많다. 체면같은 것은 없다. 고등학생인듯한 소녀가 내옆에 와 내가 무엇을 하나 들여보며 말을 걸어와 나의 무료한 시간을 메꾸어 주었다. 한 분은 몽고에서 영어선생이란다. 중국인인데 그곳에서 영어선생을 한단다. 아빠는 중국에 있느냐고 했더니 아니란다. 남편도 몽고에서 경찰관으로 일한단다. “아! 그렇구나. 중국인이 몽고에서 사는 구나.” 새삼 중국 대륙의 크기가 땅만은 아니구나 생각하게 했다. 재잘거리며 공항대합실을 누비며 어딘가 사라졌다. 그들이 다시 오면 아이스크림이나 함께 사먹을까 생각하는데 저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다시 내 곁으로 와 둘중 발랄한 소년이 손을 내밀었다. 큼직한 복숭아였다. 반만 달라고 했더니 그는 머리를 흔들며 내 손에 쥐어주고 가버렸다. 깨물어보니 그렇게 달수가 없었다. 아이의 친절이 더해서일 것이다. 언제나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아버지다. 천진한 그들, 천국의 주인공들인 그들, 이들이 어른들에 의해 교육되고 그들은 점점 자람에따라 거리가 생긴다. 서로 각기 다른 문화를 만들어가더라도 함께, 더불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가며 살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말인가? , ‘인류는 모두 ´하나´인데! 우리는 하나’인데!

인천에 내리니 비가 오고 있었다. 누님집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 날은 주일,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고교 후배인 홍은파 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는 부평제일감리교회로 향했다. 조카가 교회까지 안내해 주었다. 전자지도가 거뜬히 교회까지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엄청 큰 교회에 빈자리가 없을만큼 교회는 초만원이었다. 홍목사는 그 아버지 뒤를 이어 그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다. 아버지 때엔 그렇게 큰 교회는 아니었는데 그가 그 뒤를 이어 대형교회를 이루었다. 그 아버지는 홍창준 목사님, 내가 포리교회 담임으로 있을 때 같은 인천 동지방의 고참 목사님이셨다. 신비주의 목사님으로 알려진 분이었다. 홍은파 목사는 제고 5년 후배, 아버지의 신비주의 영성에 지성을 더한 목사, 그러나 한국정치와 사회를 보는 눈은 나와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아쉬웠다. 그의 아버지도 황해도에서 남하한 목사, 아마도 북을 보는 눈은 대부분의 남녘 사람들, 특히 피난민들의 적개심을 벗어나지 못하셨을 것이다. 촛불시위를 언급하는 후배목사를 볼 때, 더구나 대형교회 목사를 볼 때, 다름을 인정하지만, 아쉬웠다. 통일지향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촛불의 의미를 이해하는 후배목사라면 얼마나 좋을까? 끝날무렵 그는 선배목사님이 오셨다고 인사를 시키고 축도를 부탁했다. 함께 점심식사를 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 성가대원들과 함께 하고 여비까지 주어 어렵게 사는 숙모님들에게 조카노릇을 할 수 있었다.

대안중기연합기업소 지배인은 김정일 위원장의 현지지도 노정을 그대로 반복하며 해설해 준다.-민족통신 자료
남녘 조국에서 6일간 있으며 보통사람들과의 만남이나 신문을 통해 내가 파악한 남녘 조국은 북녘 조국보다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여러모로 발전한 모습, 풍요로운 모습이었으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래 남과 북, 북과 남의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풀기 어려울만큼…

북녘 조국의 이곳 저곳을 방문하면서 그 깊은 골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거기에 더 나의 가슴을 더 아리게 만든 것은 남남 갈등이었다. 10여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통해 저들의 통일지향적인 노력은 그런대로 통일의 지평을 넓혀 놓았었다. 그 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통일지향적인 사람들은 물론 불신과 회의 속에 살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민족의 의미와 통일의 필연성과 그 의미와 가치를 알게 해 주었다. 아니 그 맛을 알게 해 주었다. 그런데 그 맛을 앗아갔으니 남남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수밖에…

도대체 어느 골이 더 깊을까? 남북 갈등일까? 남남 갈등일까? 물론 남북 갈등이겠지. 그러나 나에게는 남남 갈등이 더 위험하게 비쳐오는 것은 왜일까?

북부조국은 수령과 당과 인민군과 인민이 하나로 뭉쳐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라는 기치밑에 온 나라가 주체사상으로 완전 무장되어 있다. 아주 견고하게! 그러나 남부조국은 가진자와 적게 가진자, 수구와 진보, 통일지향적인간과 반통일적 인간, 친미와 반미로 갈려져 있다. 갈등하고 있다. 그러나 갈라져 있다고 말하지 말자,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지 말자. 개성이 있다고 말하자. 무지개처럼 우리는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하자. 갈등은 극복될 것을 믿어보자. 그러기 위해선 이명박 대통령은 회개할 것이 너무 많다. 우선 외세보다 민족이 먼저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남북관계의 원만한 해결없이 오늘의 풍요는 거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 서지 못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눈치나 보는 나라는 결코 자주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오늘의 남녘의 남남갈등의 원만한 해결이 없으면 이명박정권은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가 진정 기독도라면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바울 사도의 말을 경청하여야 할 것이다.

<민족통신> 공동취재진(왼쪽부터)손세영, 필자, 노길남 특파원들
남녘에서 내가 생각해도 아주 잘한 것이 있다. 그의 고향 강화에서 살고있는 고교동창인 한장연 군을 친구 홍순욱 목사와 찾아본 일이다. 그는 30대 중반에 조선소의 갑판에서 떨어져 평생불구로 살고 있다. 인하대 조선과를 일등으로 입학했던 시골의 천재였다. 친구는 목발을 집고도 걷는 것이 버겁다. 그를 간호하던 부인 역사 풍을 맞아 불편한 몸을 갖고 살고 있었다. 친구는 그 아내와 함께 진심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또 다른 반가운 만남이 있었다. 43년전에 신학교 시절 여름방학 때 실습을 나가 여름학교를 지도할 때 중학생이던 안홍임 권사 집을 찾은 일이다. 안권사는 그 남편과 함께 극진히 우리를 대접해 주었다. 신학교 2년 실습시 단 10일간의 만남이었지만 나를 기억해주고 반겨주는 안권사와 그 남편을 보며 씨뿌림의 의미를 되새겼다. 안권사는 키보드를 치며 나와 함께 그 때 노래를 부르자고 했다.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참 빛이 없었더니…” 우리는 함께 노랠 불렀고 그 남편은 우리의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또 다른 만남은 <참말로>의 박해전 선생과 <자주민보>의 이창기 형제와의 만남이었다. 우리는 함께 점심식사를 나누었다. 3년전에는 그들의 도움으로 망월동 열사들의 묘을 참배할 수 있었다. 내가 적극 만류하는데도 그들은 나를 인천까지 데려다 주었다. 뜨거운 동지애였다. 고맙고 기뻤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박해전 선생이 준 노무현 대통령 추모시집을 펴들었다.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262인의 모은 시,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를 읽으며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이정권에 대한 분노보다 시인들의 한마디 한마디 그의 죽음을 애석해 하는 마음과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바로 우리라는 자각이 눈물을 자아내게 했다.

가장 서민적이었던 대통령, 권위보다 눈높이를 같이하려 민중들의 아픔을 이해한 대통령, 바보처럼 솔직, 진실하였던 대통령, 고향에서 밀집모자를 쓰고 농사를 짓고 손녀를 태우고 자전거를 몰던 대통령, 분계선을 걸어서 넘으면서 그 선을 지우기를 희망했던 대통령, 마침내 10.4 선언을 이끌어낸 대통령,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 어찌 이정권과 신문쟁이들 뿐이리요. 이정권의 파렴치에 침묵한 이들 모두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공범자들이다.

그렇다. 남북갈등,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남갈등, 아직도 깊다. 그러나 우리 모두 이렇게 함께 외쳐야 하리.


“아무도 당신을 미워하지 않잖아요

아무도 당신을 때리지 않잖아요

당신이 이겼어요. 당신이 마지막 승리자가 되었어요.

살아 남은 우리는 당신한테 졌어요. 애초부터 이길 수 없었어요



그러나 이제 일어나요, 당신

부서진 뼈를 붙이고 맞추어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흩으러진 대열을 가다듬고 일어나요

귾어진 핏줄을 한 가닥씩 이어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꾹꾹 눌러둔 분노를 붙잡고 이러나요

피멍든 살을 쓰다듬으며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슬픔을 내던지고 두둥실 일어나요

당신이 일어나야 산하가 꿈틀거려요

당신이 일어나야 동해가 출렁거려요

당신이 일어나야 한반도가 일어나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아아, 노무현 당신!” (안도현)



노무현 대통령, 그는 죽었지만

죽어서 더 크게 소리치고 있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고.

통일은 다가오고 있다고.

골은 메워지기 위해 있고

분단은 이어지기 위해 있노라고.

통일은 반드시 온다고…



우리 모두 이 날을 위해 이렇게 노래하자.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목숨 바쳐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을 이루자.”

“우리는 하나”라고 외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통일이여 어서 오라’만 가지고 안된다. “통일을 이루자”고 다짐하고 힘써야 한다. 땀흘려야 한다.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외치며 북녘조국 방문기를 마감한다.

<삼일포특산물 공장>에서 지배인과 함께 <민족통신>공동취재진 기념촬영

북녘 일간언론 <민주조선>편집국 성원들과 <민족통신>공동취재진이 언론관계 문제를 토론하고 기념촬영

<민족통신>공동취재진을 처음부터 끝까지 안내해 준 해외동포사업국의 최길호 처장(맨 오른쪽)과 신성 지도원(맨왼쪽)이 <민족통신>공동취재진과 함께 공항에서 기념촬영





[출처 : 민족통신 백승배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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