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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기]분단의 아픔을 위로한 사리원 미곡농장의 푸른 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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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9-07-29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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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공동취재진은 방북기간 동안 개성, 사리원, 미곡협동농장, 판문점 등을 방문했다. 필자로서는 북녘에서의 판문점 방문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개성이 가까워올수록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세멘트 기둥이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처음에는 볼품없는 저 세멘트 기둥이 무엇인가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점점 분계선이 가까워 올수록 그 목적은 분명히 드러났다.




판문점 북녘쪽에는 김일성 주석이 서거 하루 전인 1994년 7월7일 통일관계 문서를 작성하고 서명한 기록을 비석으로 기념해 놓았다.<민족통신>취재진은 인민군 안내원과 기념촬영

[방북기]

분단의 아픔을 위로한 사리원 미곡농장의 푸른 벌판


[개성/판문점/사리원=민족통신 백승배 특파원] 북녘에서의 셋째날 7일 아침 우리는 개성으로 향했다. 남녘에서는 친구 홍순욱 목사가 군목으로 일할 때 폭격으로 멈춰버린 철마와 분단경계선을 목격한 일이 있었다. 36년전의 일이다. 북녘에서의 판문점 방문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개성이 가까워 올수록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세멘트 기둥이 눈에 확 들어왔다. 처음에는 볼품없는 저 세멘트 기둥이 무엇인가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점점 분계선이 가까워 올수록 그 목적은 분명히 드러났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준비물이었다. 지렛대처럼 놓인것을 치우기만 하면 금방 도로를 덮어버릴 세멘트 덩어리들, 그것은 남과 북의 분단 현실을, 휴전상태이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준전시체제임을 소리소리 외치는 돌들의 외침이었다. 그 돌들을 볼때마다, 그리고 분계선이 가까워질수록 인민군 초소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려왔다.

필자가 정전협정을 기념하여 만든 비 옆에서 기념촬영
북에는 돌기둥과 돌덩이들
남에는 콘크리트 장벽과 아파트 장벽들
이게 도대체 무슨짓인가!
정전회담 후 3개월내에
다시 평화협정을 위한 회담이 있었어야 하거늘
56년이 되도록 미루어진 평화협정
남에는 아직도 남아 있는 미국군인들
때만되면 미치광이들의 전쟁연습
그럴 때면 북의 형제들은 허리띠를 조여매야하지!
언제 남과 북이 손에 손을 잡나.
언제 외국군대가 이남에서 떠나갈까
언제 민중들은 깨어나
언제 우리민족끼리의 소망이 성취될까?
돌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지.
“이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고.
돌들은 소리치고 있었다.
전쟁연습 집어쳐라.
평화를 위하는자 복이 있으리.

분계선에 이르니 잘 생긴 인민군 장교가 우리를 안내해 정전회담장으로 인도했다. 유엔측에서는 배에서 회담을 열자 했다고 한다. 북에서는 육지를 고집했고 임시로 회담할 막사를 지었단다. 손세영 편집위원과 나는 각기 남과 북으로 나뉘어 손을 잡았다. 어서 전쟁을 끝내자는듯이…

미곡농장의 농부들의 주택과 휴식처 공간
영어를 전공했다는 미남장교를 통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회담장에서 각기 정전조약에 수표(서명)를 하고는 유엔군측 대표는 유엔기를 내버리고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는 것이다. 56년이 된 허름한 유엔기가 나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 주었다. 내빼듯이 사라진 유엔이란 허수아비 이름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미국인 대표의 행동은 과연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것은 패배의 시인이 아닐까?

가끔 북의 안내원으로부터 나는 미제국주의침략에 대한 북의 승리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다. “휴전은 누구의 승리도 아닌 비긴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 휴전은 비긴 전쟁이 아니라 모두 실패한 전쟁이 아닙니까?”

그런데 북녘 땅에 남겨진 유엔기는 나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했다. “그렇다. 북침이니 남침이니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6.25 전쟁은 의도되고 유인된 전쟁이다. 전쟁을 유인하며 미국은 생각했을 것이다. 불과 몇개월 안에 우리는 전쟁을 끝낼 것이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3년 일개월을 끌었다. 많은 사상자를 냈다. 언론이 들끓었다. 미국은 서둘러 전쟁을 종식시킬 수밖에 없었다. 정전회담문서에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미국에게 실패한 전쟁이요, 우리가 이겼다고 북이 주장하는 것에는 타당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기풍 교수의 말 우리는 동족상잔이란 말 쓰는 것을 싫어합니다. 6.25는 동족상잔의 전쟁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미제국주의 자들의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 속에서 나는 저들의 민족관, 민족애를 본다. 오전 내내 판문점 곳곳을 둘러보는 동안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안내장교는 우리를 한 비문으로 인도했다. 거기에는 “김 일 성” 이란 세 글자 아래 “1994. 7.7” 이라 쓰여 있었다. 남북정상을 준비하시던 중 문건에 남기신 서명(수표)하신 글자들이었다. 그 밑에 이런 설명이 곁들여 있었다.

“민족분렬의 비극을 가지고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력사적 문건에 생애의 마지막 친필을 남가신 경애하는 김일성 주석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 후손만대에 길이 길이 전해가리.”

조국통일이 어찌 김일성 주석만의 소원이리. 우리 민족 모두의 소원이어야 하리. 그러나 남녘 조국의 오늘은 어떠한가?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 폄하하며 애써 이룩한 통일로 가까이 가는 날을 한꺼번에 뒤집어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록 가슴 아프다. 이런 아픔에도 북녘 인민들은 그곳에 농사를 짓고 있었다. 한치의 땅도 아끼려는 마음이 갸륵하지 않은가!

아픔의 상처 자욱 가득한 그곳을 뒤로하고 1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왕건릉으로 향해 그 근처 휴계처에서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식사한후 왕건릉을 둘러보았다. 본래는 지금 있는 것의 절반 정도 크기였으나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새로 보완된 것이라 했다. 그리고 묘안에 있던 유물들을 일제가 도굴해 갔다 했다. 다시 우리는 선죽교와 표충비를 보고 력사박물관을 둘어보았다. 여러 전시품 중에 고려 무신정권시절 최고의 문인으로 추앙받던 이규보의 글도 눈에 띄었다. 자기 삶의 경험에 입각해서 현실을 인식하고 시대적 민족적인 문제의식과 만나야 바람직한 문학이라 생각한 그의 글이 전시된 것도 민족의식 역사의식이 투철한 북녘조국의 정신을 말해준 것이리라.

드디어 우리는 서둘러 갈 길을 재촉하여 사리원으로 향했다. 사리원미곡농장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사리원 시내를 벗어나자 드넓은 푸른 들이 내 가슴을 후련하게 했다. 끝간데를 모르는 푸른 들, 그것은 바로 내마음의 고향이었다. 오전 내내 찌푸렸던 내 마음이 활짝 피는 푸르디 푸른 들판을 바라보며 농장에 도착하니 농장 관계 여러 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곡농장의 일꾼들과 함께 기념촬영
우리는 먼저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이 방문 지도하신 기록들이 잘 전시되어 있었다. 한 눈에 이 농장을 얼마나 귀히 여기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곳이었다.

사리원미곡농장은 김일성주석께서 1962년 8월 27일을 시작으로 1979년 9월 16일까지 16회에 걸쳐 현지지도를 하실만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농장이다. 가난하게 자라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소년시절 고향을 떠나 살다 해방된 조국에 돌아오신 김일성 주석, 백성 모두에게 흰쌀밥과 고기국을 먹이시는 것이 소원이셨던, 김일성 주석께서 이 농장에 대한 각별한 생각과 사랑을 보이셨던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 기록들을 설명하는 해설자를 통해 이 농장에서 일하는 남다른 긍지와 자부심을 나는 보았다.

김정일 위원장도 1958년 5월 15일을 첫 방문을 시작으로 지난해 2008년 12월 8일까지 6회에 걸쳐 방문 현지지도를 하신 각별한 농장이었다.

서해지구에는 4개의 대표적인 농장이 있는데 이 모두가 여성들이 앞장서 지도하고 있다 했다. 남녘의 고두심처럼 미인인 위원장 최용선 동지는 김정일 위원장을 모신 기쁨과 정보당 10톤의 쌀을 마침내 거두어 지지난 해에는 특등없는 일등을, 지난해에는 특등을 했노라고 하면서 그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 다음 해에는 다른 농장에서도 일등을 하도록 하시라” 했더니 “아니죠 이 다음에도 일등해야지요” 했다. 그의 대답에서 나는 남과 비교한 일등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조국을 위하여 한 몸 다 바쳐 일하는 그녀의 의지와 자부심을 보았다. 그들에게 농장은 단순한 농장이 아니었다. 농업전선이었다. 조국을 위한 피와 땀이었다. 우리 힘으로, 우리의 의지로! 알곡 생산을 높여도 우리 힘으로! 그들의 정신력은 놀라움이었다. 그들에게 밥은 하늘이었다.

미곡농장 가운데 청년들의 합숙소에 방문하여 기념촬영
전시관 방문을 마치고 우리는 지난 12월 김정일 위원장께서 친히 방문하신 살림집을 방문하였다. 집 앞 좁은 땅에는 갖가지 밭경작물들이 어깨와 어깨, 몸과 몸을 대고 있어 쉴 수 없을 정도로 빽빽이 경작되고 있었다. 한치의 땅도 아끼려는 아낙네의 마음을 나는 읽을 수 있었다. 그 집 뿐아니라 두칸, 세칸, 네칸 각 가정의 필요에 따라 주어지는 살림집들은 모두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살림집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벌판 한가운데 지어진 청년들의 합숙소를 방문하였다. 이곳 역시 지난 해 12월 18일 김정일 위원장이 몸소 방문하신 곳이었다. 잘 꾸려진 선전실에서 진행하는 청년들의 회상기발표모임을 참관하신 후 합숙의 침실, 식당, 부식물창고, 취사장 등 후방시설을 보시고 알뜰하게 꾸리고 생활을 혁명적으로, 낙천적으로 조직해 가고 있는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농업전선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그들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시었다 한다.

취사를 위하여 남아있는 젊은 처녀에게 물었다.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료들과 연애도 하느냐고 물으니 그렇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데 모여 공동체를 이룬 사회주의 체제의 장점을 나는 볼 수 있었다.

잘 꾸며진 집, 드넓은 푸른 들판, 그리고 자신감에 차 있는 저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큰 기쁨이었다. 떠나오며 나는 마음으로 빌었다. “반도의 모든 곳이 이곳만 같아라” 하고. (다음에 계속)



[출처 : 백승배 민족통신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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