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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김일성 주석 알면 통일의 대문 열린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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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9-04-14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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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주석은 우리민족의 자주,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지도자이다.

②김일성 주석이 들려준 <백두산>영토를 회복한 문제


*글:선우학원 박사(재미동포 원로학자)


이조 말엽의 조선왕국과 청국 사이에 국경을 바로잡기 위해서 두 나라의 관리들이 회담하고 국경을 결정했었다. 그 때 조선왕국 관리의 잘못으로 인해서 백두산이 중국 영토에 포함되었다.

1712년 9월 15일에 이조 정부를 대표한 관리들(감계사 박권, 함경감사 리가, 통역 리응모와 리의복 등)이 혜산에서 떠나 백두산 밑에 도착했다. 그들이 세운 국경 표식은 지금의 위치가 아니라 백두산 밑이었다.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이라고. 토문강을 사용하면 백두산이 중국의 영토가 되는 지점이었다.

이들이 백두산 산정까지 올라가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등산하는 것을 고달프게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백두산이 중국 영토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 지역 빈 땅에는 전체 주민 중 조선인이 80%나 차지했다. 그곳에서 1808년에는 일본 외상과 중국 외상이 만났었?

김일성 주석에 의하면 1962년에 김 주석과 중국 총리 주은래가 만나서 토론했었다. 그 때 김 주석은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성지이므로 반드시 우리 영토가 되어야 한다고 주은래 총리를 설득했다. 주 총리가 김 주석의 말에 동의하여 두 나라의 국경을 백두산 밑에서 산정으로 올라가서 확정함으로써 오늘의 백두산이 우리 영토로 회복된 것이다. 남한에서는 백두산 정계비에 의하면 백두산 전체가 우리 영토였는데 김일성-주은래 회담에서 반쪽을 중국에 넘겨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것은 사실과 정반대이다.

백두산을 왜 우리 민족의 성지라고 하는가?

1936년에 김일성 주석의 유격대 본부가 백두산 밀영 속에서 시작되고 모든 운동의 연락지휘 본부가 여기서 시작되었다. 지금 우리가 백두산 밀영을 방문하면 그 당시 사용하던 집터, 아궁이, 부엌에서부터 굴뚝까지 볼 수 있다. 조선 식 온돌도 남아있다. 김 주석의 사령부는 말할 것도 없고 김정숙 여사가 사용하던 가구들도 남아있다. 김 주석은 여기서 1939년 유명한 보천보 전투를 작전했고, 1945년에 들어 와 일제를 향해 전면공격작전을 계획하였다. 결국 우리 나라는 일제를 타승하고 민족해방을 쟁취하게 된 것이다.

또 김정일 위원장이 탄생한 고향집도 여기서 보게 된다. 여기서 발굴된 유물 중에는 신발, 양념병, 칼, 송곳, 등잔, 주전자, 낫, 봇나무 껍질, 통조림 등등이 있다. 이 중 특별한 것은 유격대원들이 벗긴 나무껍질에 투쟁구호를 새긴 구호 목으로 그 수가 10만개나 되고 그 중에서 반수 이상은 지금도 읽을 수 있게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겨울에 우등 불을 피운 곳이 500여 처에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김 주석께서 1936년 11월 여기서 10여 리를 걸어 나가서 함경남도 천도교의 박인진 선생을 만나 그를 조국광복운동에 동참하도록 설득했었다. 여기를 성지라고 하는 이유는 이곳이 항일투쟁의 중심지대로 유격대 대원 3천여 명이 이 밀림 속에서 활동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 유격대 대원은 4만여 명 정도로 추산되었다. 그들이 항일투쟁에서 주도적인 민족해방군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요즘은 백두산 가는 길이 편해져서 평양에서 비행기로 삼지연까지 약 한 시간 걸린다. 삼지연 비행장에서 호텔까지 약 25분, 삼지연에는 김일성 주석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여기는 김 주석께서 무산지대로 가는 도중에 잠깐 머문 곳이다. 호텔에서 고향집(김정일 위원장 태어 난 곳)까지는 약 40분 정도 걸린다. 이 고향집은 1987년 2월 16일에 개막되었다. 이 지대는 량강도에 속해 있는데 이곳의 인구는 약 60만명이고 12개 군으로 나누어져 있다. 주산물은 동, 목재, 농산물 등이다. 매년 해외동포 방문객이 약 4천여 명이고 일반방문객은 약 30만여 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지연에서 백두산까지는 약 50km로 자동차로 70분 정도 걸린다. 백두산의 고산지대는 나무 한 그루 없고 잔디도 자라지 못한다. 백두 역에 차를 세우고 케이블카를 타고 백두산 산정에 오르면 여기저기 “조선은 하나다”, “조국통일” 등의 구호가 보인다. 백두산은 해발 2750m이고 장군 봉이 2712m가 된다.

이처럼 백두산은 우리 민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 주석께서 주은래 총리를 설득하여 이 성산을 다시 우리의 영토로 회복하는데 성공한 것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김일성 주석은 그 이듬해인 1963년 8월 10일에 장군봉에 올라 그 감회를 밝혔다.

휘 뿌리던 먹구름 걷히고 고요한 아침의 나라
주체의 봉우리에 오르다
천지의 무지개 장군 봉에 드리울 제
성스러운 옛 자취 감회 깊이 더듬나니
백두산정기 끌어안고 주체의 기치 높이 섰도다

이 이야기는 1990년도 김일성 주석과 만나 내가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출처: 민족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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