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논단:2 ] 이명박 정권은 <군사주권>도 포기했나?- 김성호 > 특집/기획/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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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논단:2 ] 이명박 정권은 <군사주권>도 포기했나?-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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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8-10-20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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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편집위원들은 이명박 정권의 대내외 정책이 남녘 사회뿐만 아니라 남북문제, 국제관계 문제에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을 우려하여 기획논단을 계획해 연재하기로 결정하고(1)이명박 정권은 ´자유민주주의´도 포기했나?, (2)이명박 정권은 <군사주권>도 포기했나?, (3)이명박 정권은 <경제주권>도 포기했나?, (4)이명박 정권은 <문화주권>도 포기했나?, (5)이명박 정권은 <자주외교>도 포기했나?, (6)이명박 정권은 <평화통일>도 포기했나?, 그리고 (7)이명박 정권은 이제 어디로 갈것인가?에 대한 연재물을 하나씩 소개한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바라면서 둘째 연재물 <이명박 정권은 ´군사주권´도 포기했나?>를 통해 남녘사회의 대미종속적 구조를 조명해 본다고 민족통신 편집실은 밝혔다. 이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웹사이트
 

 



이명박 정권은 미국의 핵항공모함<죠지 워싱턴)까지 끌어들여 부산 앞바다에서 해군합동군사 시위까지 벌이며 조국반도를 긴장의 도가니로 몰고 가고 있다. <군사주권>도 없이 외세 각본에 의해 언제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기감도 못느끼는 전쟁불감증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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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논단:2 ] 이명박 정권은 <군사주권>도 포기했나?


*글: 김성호 민족통신 편집위원


참으로 천박하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경박하다. 이명박 대통령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저급한 인물을 대통령이라고 선출한 국민들이 불행을 자초한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명박 집권 8개월 동안 그의 많은 연설과 대화에서 <우리민족끼리>, <민족>, <자주>, <통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거의 없다. 이는 의도적이며 반통일적 사고에 젖어 있는 그의 모습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10월1일 <국군의 날> 기념식 경축사라고 한 내용 한 구절을 인용해 보자 (...오늘은 국군의 날입니다. 해방 이후 “국방경비대”가 창설된 것이 1946년의 일이지만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국방경비대가 대한민국 육군으로 정식 출범한 1948년 9월1일이니 국군의 날도 국군의 역사도 건국의 연륜과 마찬가지로 60돌이 되는 셈입니다. 국군의 날이 왜 10월1일인지 그 이유를 아는 젊은이들이 거의 없을 듯 합니다. ...국군의 날은 9월 28일 서울 수복 직후인 1950년 10월1일 3사단 23연대가 강원도 전선에서 38선을 돌파해 북진을 개시한 날 입니다. 따라서 우리 국군은 10월1일이 창군 기념일이 아니라 이날이 “북진기념일”인 셈입니다....) 국군의 날이 “북진통일 기념일”이라는 게 이날 기념사의 주요 요지이다.

자 그럼 이명박이 밝힌 “북진기념일”이라는 한국군의 출생의 역사를 한번 들여다보자. 결론적으로 말해서 한국군은 미군의 간통질로 태어난 사생아였다. 1945년 미군정 하지 장관은 점령군 사령관의 재량 하에 소위 “대나무 계획”(Bamboo Plan)이라는 비밀공작을 세우고 경비대 창설을 은밀히 추진 한다. 그 후 더 대담하게 군정법령 제28호를 공포하고 본격적인 한국군 창설에 돌입한다. 명칭은 “조선국방경비대”였다. 초기 조선국방경비대 장교 출신들의 성향을 보면 항일운동을 하던 애국자들을 잡아들이는데 앞장선 일본군 출신, 일제에 복무한 순사들, 고등계 형사 등 반민족적인 인물들이 87명이었고, 만주군 출신, (말이 만주군 출신이지 만주국은 소멸한 이후이기 때문에 관동군에 소속된 일제특무자) 21명, 장개석 밑에서 앞잡이 노릇하던 중국군 출신 2명 등이 지휘관이 된다.

이때 일제 관동군 중위 출신 박정희가 조선국방경비대 장교로 들어가게 된다. 미 고문관들은 “너 장교 경험 있어, 그럼 너는 대위하면 되고 너는 3년 일제 형사 근무했어? 너는 정보장교 해, 너는 미군 군속 했으니 참모장 해” 계급장은 이렇게 해서 주어지는 때였다.

미 군정청은 1945년 12월5일에 친미군사 간부 양성을 목적으로 “군사영어학교”를 개설하고 친미 군 간부 양성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1946년 5월1일에는 영어군사학교를 “경비사관학교”로 명칭을 바꾸면서 110명의 친미군사 간부를 양성 하여 내놓게 되는데 이게 바로 육군사관학교의 모태가 되고 이들이 육군사관학교 1회 졸업생들로 불리어지게 된다. 한국 군 역사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1946년 1월15일 정식으로 “조선국방경비대”(Korea Constabuay)가 출현하게 된다. 미군은 1948년부터 1950년 6.25전쟁 직전까지 중견간부 양성을 위해 10.000명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 미국식 군사교육을 받게 했다. 조선경비대 창설은 철두철미 미국이 만들고 미군의 감독하에 미국의 무기로 무장된 친미군대로 출발하게 된다. 한국전쟁을 위한 준비는 이렇게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미군정은 전국적인 모병을 시작하는데 1950년 6.25전쟁 직전 육군 총 병력은 8개 사단 9만5천명으로 미제 총알받이 군대로 미군의 용병으로 출범한 것이다. 1948년 이승만 정권은 국군조직법을 만들고 조선경비대를 국방군으로 개편한다. 이때 초대 국방부 장관에는 이범석, 육군참모 총장에는 이응준 준장, 참모부장에는 정일권 대령이 임명된다. 청년 정일권은 운 좋게 영어통역 장교로 출발해서 참모총장까지 해 먹게 된다. 한국군에 정통성이 부여될 수 없는 것은 이렇게 미국의 계획하에 조작된 친미군대로 출발한 데도 있지만 군대자체가 민족 군대가 아니라 미국의 동북아 군사전략에 복무하는 미국의 용병부대라는데 근거한다.

한국군이 정통성이 없고 미국의 용병, 미군의 총알받이로 불리어지는 것은 철저히 미국에 예속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군의 군사 지휘하 에서만 군대로써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시하다시피, 한국군에는 전시작전 지휘권이 없다. 이것은 군사주권이 없다는 것을 말 한다. 1952년 이승만은 한국군의 전시 작전권을 미국에 이양한다. (두루마기는 입어도 마음만은 미국어른을 따라야 한다)는 친미사대 매국노 이승만은 “미국에 감사해야 한다. 미국 이외에 우리 전쟁을 감당할 나라가 어디 있겠느냐”면서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을 미군에 갖다 받혔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의 매국적 태도와 사대주의가 끼친 해독을 한국은 톡톡히 당하고 있다. 우리는 한 친미사대주의 집권자에 의해 군수 통수권과 국가의 자주권을 그렇게 해서 상실하게 된 뼈 아픈 역사를 갖게 된 것이다.

한국군의 이동, 한국군의 훈련, 한국군의 평시와 전시작전은 철저히 미국의 사전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독자적으로 행사 할 수 없다. 21세기를 맞고 있는 지금도 한국군은 (평시작전권은 2000년도에 일부 갖게 되지만) 전시 작전권은 없다. 철저히 미국에 예속된 군대는 이 지구상에 한국군 밖에 없을 것이다. 군의 훈련과 지휘, 작전은 미국의 동의 없이는 꼼짝 달삭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게 한국군의 현주소로 되어 왔다.

6.25전쟁 3년 동안에 미군은 5백76만4천1백43명이 동원되었다. 미군 전사자는 3만3천 6백67명이다. 로스엔젤레스 웨스트 방향 405 후리웨이 윌셔 근처에는 전몰장병 묘지가 있다. 3만개의 묘지 중에 한국전에 참전했다 사망한 미군 묘지수가 8천 개가 넘는다. 미 전역에는 얼마나 더 많은 한국전 참전 전몰장병들의 묘지가 있겠는가.

전쟁 3년 동안 매년 1만2천여 명의 미군이 인민군의 공격과 돌격에 사살되거나 죽어나갔다는 것을 말 한다. (북의 자료에는 미군 사망자가 5만 명을 넘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미군 부상자만 15만 명이다. 한국군은 1965년에 미군의 용병, 미군의 총알받이로 월남전에 미국의 강요에 따라 5만여 명 파병되었는데 월남 파평 기간 동안에 4천5백여 명이 사망하고 5만 여명이 부상자가 나왔다. 남의 나라 전쟁에 침략군 용병으로 참가한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 예속된 한국이 미국에 당해 온 기막힌 사실들을 어디에다 다 기록 할 수 있겠는가. 주한미군 주둔비로 한국정부는 매년 미군 1인당 연 5천5백 만원을 지불하고 있다. 이것은 전기, 수도 사용료 주둔지역 임대료 세금 등이 포함되지 않은 순수한 생돈을 지불하는 액수이다. 부대비용을 합치면 미군 1명당 한국이 지불하는 비용은 연1억 원이 된다. 1억 원이면 1달러에 1천원으로 계산하면 1인당 10만 달러를 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환율이 1300대이니까 1억3천만 원이 되는 셈이다. 날강도도 이런 날강도가 어디 있겠는가. 세계 어느 국가가 외국군 주둔비용을 대 주면서 주둔해 달라고 애걸하고 있는가. 게임에서 승자 독식 이라는 말이 있다. 독일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독일은 2차 대전 패전국이고 일본에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일본 역시 패전국이니 승자가 마음 대로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패전국이 아니다. 그런데도 패전국 보다 더 지독한 착취를 당하고 있다.

좀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보자. 2008년에서 2012년까지 평택미군기지 이전 사업비로 7조238억 원을 지불해야 한다. 이 돈은 매년 미군 주둔비용으로 지불하는 돈을 제외한 비용이다. 미국은 해외 미군주둔기지가 약 700개가 있다. 미 군사예산에서 미국이 해외미군기지에 쓰는 1년 비용보다 한국정부가 부담하는 비용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군 사병들 월 평균 88000원을 받는 전체 병사에게 지불하는 1년 경비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양육강식이라는 말이 생겨난 이래 미국이 한국정부에게 미군 주둔 비용 명목으로 착취 약탈해 가는 비용이 1년에 3조원에 달하고 있다. 군사 작전권도 없고 국가 자주권도 없는 국가, 미국의 식민지 국가가 당하는 서러움이 아닐 수 없다.

한미동맹은 한국이 미군주둔 비용을 부담하는 동맹이지 순수한 동맹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따져봐도 태평양 건너에 있는 미국이 한반도가 동북아 군사전략상으로 중요하다면 그래서 한국에 미군주둔의 필요성이 제기된다면 두만강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는 군사전략적 차원에서 중요하지 않겠는가. 중국과 러시아에게는 한반도가 더 중요한 전략적 지대가 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미일동맹이 강화돼 한,미,일 3각군사동맹이 구체화되고 강화 된다면 북-중-러 3각관계도 강화되는 것이다. 신 냉전체제가 복구되면 한반도의 통일은 더욱 어렵게 전개될 것이다. 외세에 의해 강요된 38선은 남북한 분단 선이지만 동북아의 신 세력균형의 고착될 가능성이 많다. 극도로 냉각된 남북관계의 종착점은 전쟁 발발 가능성을 더 증대시킬 수 밖에 없다. 전쟁을 택하겠는가. 아니면 평화를 택하겠는가.

이명박은 기로에 선 남북관계 전망에 대해 고민해야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고 지키겠다고 하면 냉각된 남북관계가 풀리겠지만 미국에 의존하고 반북 대결노선으로 나간다면 끝내 전쟁은 피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시대에 뒤진 <북진의 날>을 기념한다는 쓸게 빠진 소리를 거두고 하루 속히 남북관계를 풀어야 한다. 이것은 곧 10.4선언과 6.15선언을 고수하며 이행한다는 뜻과 같은 의미로 풀이된다. 나는 한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 이 것을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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