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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김일성 주석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독후감 2 - 김상일 교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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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7-10-03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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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삼봉에 울려 퍼진 아리랑, 그리고 ‘아리랑’ 공연”
김상일 교수의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②

김상일(한신대 전 교수, Korea Project Director, Claremont Center for Process Studies)

전 한신대 철학과 교수였고 단군학회 회장을 역임한 김상일 교수는 지금 미국 클레어몬트 사상연구소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읽고 반공을 하든 용공을 하든 북을 바로 알고 김주석 자신이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다며 독후감 연재를 제안하였습니다. 김  교수는 평소에 전공해 온 철학과 문명사 이해 등 다방면의 지식을 토대로 회고록을 격조 높게 평가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하였다고 밝혔습니다. 이 연재를 통하여 6.15 시대에 사는 남북한 모두가 남북의 역사와 이념을 고루 고루 습득하고 배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매주 금요일에 연재되며, 2차 남북정상회담 시점에는 추가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영화 ‘디-워’(용의 전쟁)의 마지막 장면은 아리랑으로 끝난다. 미국에서 관람객에 따라서는 상영이 끝나자 일제히 서 박수를 쳐 주기도 한다. 이 장면을 본 나는 영화도 영화지만 아리랑이란 노래 때문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도 라운규의 ‘아리랑’이다. 혁명가 김 산의 생애를 그린 책의 이름도 ‘아리랑’(Song of Arirang)이다. 그리고 지금 북에서 공연하고 있는 집단 체조 ‘아리랑’...

세상의 많은 노래 가운데 슬플 때도 기쁠 때도, 남자도 여자도 그리고 노인도 어린 아이도 함께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리랑이 유일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나라를 잃고 망국의 한을 안고 조국을 떠날 때도 아리랑을 불렀고, 해방이 되어 환희에 젖어 귀국선을 타고 돌아 올 때에도 아리랑을 불렀다. 정선 아리랑, 진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 황해도 아리랑 등 팔도강산 어디에도 아리랑 가락이 있다. 서편제로도 부를 수 있고 동편제로도 부를 수 있는 곡, 심지어는 이념의 장벽을 넘어 남북이 함께 부를 수 있는 이 아리랑.

집단 체조 아리랑 공연은 아리랑으로 시작한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남부여대 혹은 가장이 홀로 조국산천 버리고 두만강 압록강을 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물론 애환에 젖은 아리랑이다. 그러나 공연의 마지막 부분은 경쾌하고 환희에 넘치는 아리랑으로 막을 내린다. 우리 민족을 ‘아리랑 민족’이라 하면서 “지구상에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있지만 우리는 반만년 역사 속에 함께 살아온 문화 민족, 항상 새것을 창조하며 살아온 아리랑 민족이다. 그러나 강도 일제는 우리를 노예로 삼았고 외세는 우리를 갈라놓고 말았다, 아 어찌 슬프지 않는가”라고 비탄에 젖은 멘트가 나오면서 아리랑 공연은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아리랑 공연을 두고 조선일보(2007년 9월 28일자)는 탈북자 정해성(김일성 종합대학 어문학부졸, 평양 중앙 TV 기자)의 말을 빌어서 아리랑 공연의 유래를 두고 소련에서 모방해 온 것이라고 한다. 즉, 1959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이 소련을 방문하여 소련이 10월 혁명 기념 매스 게임을 보고 돌아와 3000명 규모로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1970년 김일성 주석 60회 생일 때부터 시작하여 노동당 업적 찬양과 김일성 우상화를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김일성 민족화와 선군정치에 중점을 두고 각색의 각색을 한 것이 지금의 아리랑 공연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것은 완전히 어린이 학대이상도 이하도 아닌 인권 유린임으로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리랑 공연을 어떻게 보는가는 각자의 자유에 맡기고 지금으로부터 만 70 년전 1937년 6월에 있었던 간삼봉 마루에 울려 퍼졌던 아리랑으로 돌아가 아리랑 공연을 생각해 본다. 1937년 6월 7일 보천보 전투는 실로 김일성 항일유격화동의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보천부 전투만을 전부라고 해선 안 된다. 김주석은 “비유해서 말하면 간삼봉 전투와 구시산 전투는 보천보 전투의 메아리라고 볼 수 있다”(6권-222쪽)라고 회고하고 있다. 간삼봉 전투는 무적 황군 일본군의 신화를 완전히 깨뜨려 버리고 백두산 지구에 진출한 항일 혁명의 전성기를 마련하는 하나의 중요한 전투였다.

바로 이 전투에서 김주석은 일본의 ‘야마도 정신’과 ‘아리랑의 얼’을 대비시키고 있다. “부정의를 정의로 알고 악을 선으로 착각하는 천치들, 총구 앞에 부나비처럼 뛰어들어 보람 없는 개죽음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무사도라고 자부하는 청과매니들, 타민족의 시체더미 위에서 축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야수들, 자기가 죽으면 천조대신의 혼이 자기를 굽어살피고 천황이 자기 명복을 빌며 일본국민이 자기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망상하는 정신불구자들”(6-218)의 정신 이것이 ‘야마도 정신’이라면서 일본 군벌과 대신들은 이렇게 죽은 장병들을 잠깐 피었다 지는 ‘사구라꽃’에 비기면서 이것이 황군의 정신이라고 미쳐 날뛰면서 적들은 간삼봉 마루에 개미떼 같이 기어오른다.

보천보 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적들은 이것을 설욕하려 조선군 주둔 최정예 함흥 74연대를 이 전투에 동원하였다. 간삼봉은 13도구와 8도구에 이르는 1백여 리에 이르는 대지위 서강 고원 북쪽에 솟아 있는 세 개의 봉우리이다. 1937년 6월 30일 안개가 자욱한 간삼봉 마루에는 2000여 적들은 산으로 기어오른다. 비는 억수 같이 쏟아지고 피아가 하루 종일 전투를 하여도 심지어는 육박전까지 벌렷다.

그런데 이때에 산마루 중턱에서 난 데 없이 ‘아리랑’이 울려 퍼지지 않는가? 젊은 여성 유격대원들이 이 와중에 아리랑을 합창하고 있는 것이다. 1절은 우리가 다 아는 가사에다 2절에서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저기 저산이 백두산이라지/동지섣달에도 꽃만 핀다” 간삼봉 너머엔 원시림이 끝없이 펄쳐있고 그 위에 백두산이 흰 구름위에 떠 있다.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아리랑이 울려 퍼지자 최정예를 자랑하던 74연대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지경으로 허물 허물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병사들은 스스로 투항해 기어들기 시작하였다. 간삼봉 전투에서 생긴 ‘가보짜’란 용어 하나가 황도 일군의 참패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호박’이란 뜻이다. 죽은 일군의 시체를 가마니에 넣어 실어 나르는 데 마을 농민들이 달구지에 싣고 가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일본 장교가 하는 말이 ‘가보짜’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이를 놀리기 위해 “금년엔 호박 풍년이라서 좋겠수다”라고 했다고 한다. 간삼봉 전투이후 일본놈들을 두고 ‘호박대가리’라는 은어마저 생겨날 정도였다.

김주석은 ‘야마도 정신’에 ‘아리랑 얼’을 대비시키면서 “녀 대원들이 싸움을 하면서 부른 ‘아리랑’이 전대오에 퍼졌다. 격전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강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간삼봉 전투에 울린 ‘아리랑’은 혁명군의 정신적 종심을 비쳐 보이고 락천주의를 시위하였다. 적들이 ‘아리랑’을 듣고 어떤 기분에 잠기었는가는 그리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6-218)

잡힌 포로들을 상대로 이 노래를 듣고 느낀 감상에 대하여 후에 포로들이 고백하기를 ‘그 노래를 듣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졌고 다음 순간 공포에 잠기었으며 나중에는 인생 허무를 느꼈다고 하였다. 부상자들 가운데는 신세를 한탄하여 우는 자들도 있었으며 한쪽에서는 도망병까지 났다는 것이다” 적들은 겨우 200 여명의 패잔병을 이끌고 도망치고 말았다.

이는 마치 일본 사람들이 ‘겨울 연가’를 보고 지금 그 이상한 매력에 빠져드는 것과 같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욘사마’는 하나의 정신적 치료 역할을 한다고 북구슈 대학 김봉진 교수는 연구 발표 하였다. 인간의 마음은 희로애락애오구가 조화된 존재이다. 이런 조화에 균열이 생겼을 때에 정신 질환을 앓게 된다.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너무나 서구의 균열된 자아에 매몰되어 있다. 일본이 한국의 얼에 빠지는 이유는 아리랑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곡에 인간의 온갖 감정을 다 아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막상 북의 아리랑 공연을 보면 선군정치를 내세우는 총검술 같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그것은 극히 한 부분이다. 공연 내용 속에는 농사의 종자 혁명 나아가 환경 생태 보존적인 친환경적인 것도 있다. 김주석은 유달리 간삼봉 전투를 정신대 정신의 싸움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야마도와 아리랑의 싸움 말이다.

그런데 독자들이여 놀라지 말라 이 전투에 최악질적으로 기어 오른 인물이 다름 아닌 조선 사람 김석원(1893-1978)임을. 아니 가네야마 金山錫源임을. 생존 연대를 보면 85세까지 그는 최근까지 산 인물이다. 그는 해방 후 수도 사단장과 3사단장까지 지냈으며 지금의 성남중고등학교 설립자로서 얼마 전까지 그의 동상이 버젓이 교정에 서 있었다. 이 사람에 대하여서는 따로 반듯이 짚고 넘어 가야 한다. 김석원에 대하여 “간삼봉에서 패전은 일본의 사무라이들에게 있어서 씻을 수 없는 치욕으로 되었고 김석원이란 이름은 그 치욕의 대명사로 되었다”.(6-222)

해방 후 38선에서 김주석은 숙적 김석원을 다시 조우한다. 당시 북의 최현이 김석원을 복수하고 말겠다고 할 때에 김주석은 이를 강력하게 만류했으며 “지금은 최현도 김석원도 이 세상에 없다. ...나는 남과 북의 새 세대들이 민족의 핏줄을 두 토막 낸 인위적인 그 장벽을 하루속히 제거해 버리고 자주적인 통일조국에서 화목하게 살기를 바란다. 김석원도 말년에는 이런 념원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6-223)라고 용서의 념을 회고록에서 애틋하게 담고 있다. 나는 노병의 이 말을 진실한 것으로 믿고 싶다.

회고록은 북 주민들의 바이블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북녘 동포들도 김주석의 이 말을 유언으로 삼아 원수를 끌어안고 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오늘도 평양에서 아리랑을 공연하는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만약에 이런 큰 김주석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연의 지엽적인 것으로 헐뜯거나 북도 만약에 하나라도 체제 선전용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간삼봉 마루에서 울려 퍼진 아리랑의 의미를 남북이 다 무색케 하고 말 것이다. 이는 참으로 이 땅에 살아 갈 새 세대들에겐 불행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아리랑 공연’을 엄연한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생각하기를 바란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동막골’ 이상 가는 영화들이 나와 앞으로 벌어들일 외화를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 전쟁과 일제 36년 같은 엄청난 문학적 소재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국가보안법 같은 것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 문인들은 지금쯤 노벨 문학상을 받고도 남았을 것이다. 나는 남북 우리나라 문인들의 천재적인 소양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이 모든 것을 가로막고 있다. 이젠 이런 법은 외화벌이라는 입장에서 보아도 폐기처분해야 한다. 남과 북 가운데 먼저 쓰레기장에 버리는 쪽이 결국 국익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한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법부에 바란다. 미래는 문화의 시대이다. 제발 소아병적 잣대로 문화 콘텐츠를 난도질하지 말기 바란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고 공연은 공연일 뿐이다. 가상 세계를 현실 세계와 구별하지 못하는 것을 ‘마술적 magical´이라고 한다. 지금 정글의 토인들이나 할 법한 이런 혼동을 지금 대한민국 보수 정객들과 사법부가 자행하고 있다. 북도 마찬가지이다. 신문에 난 얼굴을 실재의 얼굴과 혼동하는 것은 이것 역시 마술적이다. 세계가 웃을 노릇이다. 이 지구상 인류의 병들은 정신을 치료할 ‘아리랑’ 그리고 그것을 담지하고 있는 아리랑 민족, 저 태고적 대 흥안령 산맥을 넘으면서 불렀다고 하는 이 아리랑이 있는 한 우리는 아리랑의 민족혼으로 통일을 이루어내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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