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독도는 조선민족의 고유령토이다(3) - ㄴ > 특집/기획/통일

본문 바로가기

본회는 동포들의 북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돕고자 북녘 매체들의 글을 "있는 그대로" 소개합니다. 이 글들이 본회의 입장을 대신하는 것은 아님을 공지합니다. 


특집/기획/통일

[문답] 독도는 조선민족의 고유령토이다(3) - 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작성일08-08-04 00:00 댓글0건

본문

최근 <우리민족끼리> 웹사이트에서 독도에 대하여 문답 형식으로 알기 쉽게 풀이하였습니다. 이에 기획 연재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웹사이트
 

  

 

문 답

독도는 조선민족의 고유령토이다 (3)

법률적고찰을 통해 본 조선의 섬 독도 (ㄴ)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후보원사 교수 박사 김유철선생과 한 기자의 문답ㅡ

물음: 근대에 들어와서도 우리 나라에서는 칙령 제41호를 내외에 공포하여 독도의 령유권을 주장하고 재확인하였다고 하는데 그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으면 합니다.

대답: 그렇습니다. 중세뿐아니라 근대시기에도 독도는 여전히 그 《법》적효력에 의해 누구도 건드릴수 없는 조선민족의 신성한 령토로 인정되였습니다.

근대시기 리조봉건국가는 매개 나라의 령토소유권이 국가적인 법령으로 발표되여야 효력을 발생한다고 인정한 국제법의 법규범을 정확히 인식하고있었습니다. 하여 리조봉건국가는 독도에 대한 일본의 침략책동이 강화되고있던 시기에 독도에 대한 령유권을 재삼 강조할 목적으로 1900년 10월 25일에 칙령 제41호를 선포하고 당시 정부신문인 《관보》 제1716호로 10월 27일에 세계에 공포하였습니다.

칙령에서는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강원도에 부속시키며 도감을 군수로 개정하여 관제중에 편입시킬것과 관할구역은 독도까지도 포함한다는 등 울릉도와 독도의 령유권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밝혔습니다.

이처럼 리조봉건국가는 일본이 소위 《시마네현고시》 제40호를 조작하기 5년전에 벌써 근대법적요구에 맞게 칙령 제41호를 공포하여 수천년전부터 대대로 우리 민족의 신성한 령역으로 되여온 독도의 령유권을 다시금 내외에 명백히 선언하고 재확인하였습니다.

물음: 그러니까 중세에 이어 근대에 들어와서도 독도는 《법》적으로 명백히 우리 민족의 령토로 되여왔구만요.

대답: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 일본반동들은 독도가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고시》 제40호에 의하여 편입된것처럼 세계여론을 오도하면서 독도를 한사코 강탈하려고 책동하고있습니다.

그러나 독도는 명백히 1905년 2월 일본에 의하여 《령토편입》된것이 아니라 1910년 전조선과 함께 병탄된것이며 따라서 1945년 8월 조국의 해방과 더불어 본래 주인에게 당연히 돌아온 조선민족의 령토입니다.

일본의 《시마네현편입》이 비법적인것이기때문에 일제패망후 일본의 령토처리를 위한 국제협약들에서도 독도는 일본령토가 아니라 조선령토로 규정되고 처리되였습니다. 이것은 1905년 일본의 독도《편입》이 비법이며 《폭력과 탐욕에 의하여 략취된것》이라는 국제적공인에 기초한것이였습니다.

물음: 그러면 독도가 우리 민족의 령토임을 규정한 국제협약들에 대해서 몇가지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대답: 예. 1945년에 패망한 일제의 령토처리를 규정한 국제협약들로서는 《까히라선언》과 《포츠담선언》, 《련합국최고사령부》의 각서와 지령, 합의서, 《쌘프랜시스코강화조약》들을 들수 있습니다.

1943년 11월 27에 서명하여 12월 1일에 발표된 《까히라선언》에서는 우선 일본이 패망한 후 폭력이나 강요에 의해 군사적으로 강점한 모든 지역에서 철수하고 그것을 반환한다는것과 조선의 령토완정을 보장한다고 되여있습니다.

결국 일본이 강점한 조선반도와 그 부속섬모두를 조선인민에게 돌려주는것이 《까히라선언》의 기본정신이고 요구인것입니다.

이러한 결의내용은 1945년 《포츠담선언》도 마찬가지입니다.

《포츠담선언》의 제8항에는 《까히라선언》은 리행될것이며 일본국의 주권은 혼슈, 혹까이도, 규슈, 시고꾸 및 련합국이 결정하는 여러 작은 섬들에 국한된다고 규제하였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작은 섬들》이라고 규정함으로써 독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지만 사실상 조선강점이전 우리의 령토였으므로 일본은 조선반도는 물론 독도를 비롯한 모든 조선령토에서 쫓겨나게 되여있었습니다.

일본은 《천황》 히로이또가 《포츠담선언수락에 관한 조서》를 발표한데 이어 일본 외상이 1945년 8월 14일 스위스주재 공사를 통하여 《포츠담선언수락통고서》를 련합국측에 전달하였으며 9월 2일에는 《포츠담선언》을 무조건 수락하는 일본국가대표가 미군함선우에서 항복문서에 공식서명하였습니다.

이리하여 《까히라선언》과 《포츠담선언》과 그에 기초하여 작성, 발표된 《련합국최고사령부》의 각서와 지령, 합의서 등은 전후 일본처리에서 법적구속력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1946년 《련합국최고사령부》는 지령 제677호 《약간의 주변지역을 정치행정상 일본으로부터 분리시키는것에 관한 각서》를 작성발표하면서 일본이 차지할 대상과 제외대상을 명백히 규제하였습니다. 여기서는 독도가 일본이 비법적으로 강점한 지역이라고 인정되여 일본렬도에서 명백히 제외되고 조선의 령토로 되였습니다.

1946년 6월 22일에 반영된 《련합국최고사령부》지령 제1033호에서도 금후 일본인의 선박 및 승무원들이 독도의 12mile이내에 접근하지 못하며 또한 그 섬에 어떠한 접근도 못한다고 명백히 규제함으로써 독도가 조선의 섬이라는것을 규정하였습니다.

그후 《련합국최고사령부》는 《련합국의 구일본령토처리에 관한 합의서》를 작성하였는데 3조에는 련합국이 조선에 주변의 모든 섬들에 대한 완전한 주권을 이양하기로 합의하였다는것과 그 섬들에는 제주도, 거문도와 함께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한다고 명백히 밝혀놓았습니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까히라선언》과 《포츠담선언》, 《련합국최고사령부》의 공식문건들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았으며 일본국가가 수락한것으로서 법적구속력이 있는 국제공약으로서의 당당한 지위를 가지는것들입니다. 때문에 이것은 련합국의 일방적인 선언이 아니라 전승국과 전패국의 합의문건으로서 일본의 령토범위를 규제하는 강력한 구속력을 가진 국제조약규범으로 되였습니다.

이처럼 국제법과 국제조약의 요구를 놓고보아도 독도가 고대와 중세, 근대에는 물론 오늘까지도 고유하고 신성한 조선민족의 불가침의 령토로 되는것은 너무나도 응당한것입니다.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인기게시물
[KCTV 조선중앙텔레비죤 보도] 6월 30일 (일)
DISBAND NATO!! 세계반제동시투쟁성명(7/7/2024)
[단상]조로정상회담을 지켜본 재미동포들의 목소리 6
[화첩] 백두풍경
[단상]조로정상회담을 지켜본 재미동포들의 목소리 5
제재를 뚫고 솟구쳐오른 조선의 오늘
[번역본]러시아 철학자 두긴의 조로관계에 대하여- 러시아가 필요로하는 조선의 주체사상
최근게시물
[KCTV 조선중앙텔레비죤 보도] 7월 24일 (수)
[사진으로 보는 로동신문] 7월 25일 (목)
미국의 반테러전의 산물은 인도주의위기를 몰아온 피난민사태
산산이 깨여져나간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
문덕군 립석농장에서 새집들이 경사/ 력포구역 소신남새농장 주민들의 감동
〈강동종합온실농장을 찾아서(하)〉남새수확의 기쁨, 근로자들의 보람찬 로동생활
[민주조선]우리 당의 령도는 과학이며 승리라고 강조
창당의 리념과 정신의 계승으로 당건설의 위대한 전성기를 열어나갈 것 강조
벨라루씨공화국 외무상 조선을 공식방문
미군 주둔 비용은 한푼도 줄수 없다.
[KCTV 조선중앙텔레비죤 보도] 7월 23일 (화)
[사진으로 보는 로동신문] 7월 24일 (수)
Copyright ⓒ 2000-2024 KANCC(Korean American National Coordinating Council). All rights reserved.
E-mail:  :  webmaster@kanc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