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북미관계가 본격적으로 풀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1박 2일간의 전격적인 평양방문을 마치고 22일 서울에 돌아와 가진 기자회견과 관련된 언론보도 내용을 종합해 보면 미국은 북미관계를 빠르게 진척시킬 입장을 어느 정도 굳힌 것이 확실해 보인다.
관련하여 가장 주목할 보도 내용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힐 국무부 차관보가 22일 평양을 떠나기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9.19 공동성명의 완전한 이행"에 대한 희망을 표시하면서 미국은 "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을 원하고 있으며,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는 그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는 조선신보의 보도이다.
북은 일관되게 미국에게 북미, 북일, 남북 관계정상화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한꺼번에 일괄타결하기를 요구해왔다.
그런 북의 요구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 9.19공동성명과 2.13합의문이다.
힐차관보가 언급한 ‘문제의 포괄적 해결’은 바로 북이 요구해온 일괄타결안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한반도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있다. 북미관계가 아무리 좋아져도 북일관계가 풀리지 않거나 남북관계가 격화되면 결국 전쟁위기로 치달아가지 않을 수 없다.
또, 북이 마음 놓고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으려면 미국이 그에 상응한 안전을 반드시 담보해주어야 하며 북에 대한 적대시정책이 완전히 폐지되고 북미관계가 정상화되어야 한다.
이런 것 중에 어느 하나만이라도 해결되지 않으면 한반도 비핵화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또다시 북핵문제는 악화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속시원하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이다. 그것이 일괄타결이다.
특히 북이 요구하는 일괄타결안에는 연락사무소 단계를 거치지 않은 즉각적인 대사급 북미수교도 들어 있다. 김계관 부상은 지난번 미국 방문에서 이를 분명히 강조하였다.
복잡한 중간단계를 거치다보면 또다시 일이 꼬이게 되고 결국 미국의 시간끌기에 말려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북의 판단이 아닌가 생각된다.
힐차관보가 잃어버린 시간을 하루빨리 만회하자는 말에서 미국도 이제는 속도를 내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힐차관보의 기자회견 중에 우려스러운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이번 방북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라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울러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겠구나라는 부담도 가졌다. 그럼에도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은 6자회담의 모든 당사국들이 역동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이다. 협력을 통해 모든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힐차관보의 22일 기자회견 발언 중에서
북과 논의를 하고 나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겠구나라는 판단을 했다는 것을 보면 아직 북의 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준비가 덜 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그럼에도 힐 차관보는 주변국이 역동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서 낙관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일본과 중국 등이 하루빨리 한반도 비핵화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평양을 방문하는 힐에게 일본정부가 북일수교를 논의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북에 전해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주변국들이 급하게 움직이고 있어서 힐이 낙관하고 있지만 사실은 미국도 급하다. 북의 모든 초점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맞추어져 있다. 미국이 확고한 입장을 조속히 세우지 않는다면 북은 분명히 신속한 물리적 조치를 취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미국이 지금 와서도 마냥 시간끌기를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이 요구한 일괄타결 방식으로 그것도 신속하게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북미관계 정상화 문제가 풀려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이번 힐 차관보의 방북을 부시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뿐만 아니라 딕 체니 부통령의 크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4인이 모두 지지했다고 폭스 뉴스가 21일 전했다는 보도이다.
미국의 체니와 같은 미국 강경파의 상징적인 인물까지 북미 직접대화를 지지했다는 것은 미국의 지배세력은 이제 더는 북과 대결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일부의 핵심 지배세력이 언론 등의 권력의 핵심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 이들이 결심했다면 결국 일은 그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체니와 같은 극 강경파까지 북미 직접대화를 통해 북핵문제 해결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명백하다. 여기서 시간을 끌면 그것은 결국 전쟁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2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조선신보는 어제도 힐 차관보 방북에 관한 종합분석기사를 쓰면서 “조선의 지향은 미국과의 대결전을 총결산하는 것"이라며 지난해 핵실험은 "그를 위한 사생결단이었다"고 말하고 "이러한 조미대화 및 6자회담의 기본구도와 목표는 2.13합의 이행이 중단되는 기간 일시적 행동 보류로 인해 흐려지기도 했지만 힐 차관보의 조선 방문을 계기로 다시 뚜렷이 부각되게 됐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지난해 북이 사생결단의 각오로 핵시험을 했다는 것은 미국과 전쟁까지 각오하고 끝장을 볼 결심으로 핵시험을 했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미국의 강경파도 깨달았기 때문에 지난해 핵시험 직후 미국은 급히 북과 만나 대화를 시작하여 2.13합의라는 항복문서에 서명까지 했던 것이다.
따라서 북이 핵시험까지 전격적으로 단행한 마당에서 미국의 강경파들까지 모두 나서서 북과 대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미국의 정책이 결국 북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굳어졌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여러 가지 경로로 북에게 바로 그런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김계관 부상을 미국으로 초청하여 극진하게 대접하였고, 4월에는 빅터 차를 중심으로 한 방북단을 평양에 급파하여 막후협상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이번에 북이 원했던 힐 차관보를 보낸 것이다. 이제부터 북미관계가 급물살을 탈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북도 이번에 힐 차관보를 호텔이 아닌 초대소에 머물게 하는 등 우호적으로 대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도 이번에는 기대를 좀 하기는 하는 것 같다.
세계 최대의 화약고이자 유일한 냉전의 섬으로 남아있는 한반도, 외세의 군홧발에 짓밟히고 저 잔인한 분단철조망에 순결한 조국 강토가 찢겨진 채 반세기도 넘게 피를 흘리며 몸서리쳐온 내 조국 한반도에 드디어 평화통일과 자주의 세 살이 차오를 수 있게 되었다는 벅찬 희망이 가슴에 용솟음친다.
이제 우리 정부와 국민들은 남북관계 진전에 박차를 가해 그날이 하루라도 빨리 올 수 있게 온 힘을 다 모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