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플러스] 점진적인 숭미타파란 가능한 개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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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6-09-28 19:46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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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인 숭미타파란 가능한 개념인가
이경렬 전 대사

청와대가 유시민 작가의 검찰개혁 비판에 이례적으로 유감을 표시했다. 유 작가가 9월 18일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당신의 검찰개혁 ‘원래 최대치’를 설명한 데 대해 국민의 기대와는 다른 것이었다며 “지금까지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말하자 청와대는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사실과 다르게 왜곡한 데 유감이라고 했다. 바로 다음 날 멕시코 동포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개혁은 “너무 빨리, 멀리, 급하게” 가면 반동을 맞는다며 노무현 정부의 국가보안법 폐지 실패를 예로 들었다. 전면폐지를 고집하다 독소조항 몇 개도 없애지 못했다는 설명이었다.
이 대통령의 말은 물론 합당하다. 정치란 원하는 것을 전부 얻는 일이 아니며, 때로는 100을 요구하다 50도 얻지 못한다. 2004년 말 여야 지도부가 국가보안법의 독소조항을 크게 손질하는 절충안에 접근했다가 열린우리당 내부의 폐지론 때문에 합의가 무산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점진개혁이 항상 옳다는 것을 보이는 사례는 아니다. 국보법 실패는 열린우리당 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한나라당도 별도의 여야 합의를 거부하고 본회의장을 점거했다. 국보법 개혁이 좌절된 책임을 ‘강경한 폐지론’ 하나로 설명하면 역사의 절반을 떼어내는 셈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점진주의가 의미 있는 개혁을 보장하지도 않는다는 데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55년 흑백학교 통합을 “신중한 속도”로 추진하도록 했다. 그 말은 남부에서 통합을 미루는 근거로 쓰였다. 14년 뒤 대법관 휴고 블랙은 이 표현이 결국 지연을 가리키는 완곡어법이 됐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도 1905년 혁명 뒤 두마와 시민적 자유를 허용했지만, 1906년 기본법을 통해 황제의 거부권과 막강한 권력을 유지했다. 제한된 개혁은 체제를 안정시켰지만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러시아는 1917년 혁명으로 황제를 제거했다.
개혁에서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어디로 가겠다는 것인지가 먼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1단계를 2단계로 이을 의지와 일정이 없다면 “먼저 가능한 것부터 하자”는 말은 얼마든지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든지 “이번엔 여기까지만 하자”로 바뀐다. 쟁점은 ‘단계적 개혁’과 ‘개혁의 무기한 연기’를 어떻게 구별하느냐다. 국보법 문제에서도 당시 폐지론자들이 우려한 것은 일부 독소조항을 고친 뒤 국보법이 오히려 정상적인 법률로 재승인되어 폐지 논의가 끝나는 것은 아니냐는 점이었다. 2004년의 실패는 점진개혁의 정당성을 증명하지 못한다.
이 문제는 국내 정치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가 초기에 보였던 외교·안보의 언어를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강조하며 전시작전통제권의 조속한 회복을 주문했고, “의존적 사고”를 구시대의 것으로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쿠팡 문제에 미국 정치권이 개입하자 “대한민국은 주권국가”라며 국내외 기업에 같은 법과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구성 핵시설 발언을 이유로 경질을 요구하는 움직임에도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가자 구호선 나포 때에는 이스라엘의 행위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런 초기의 언어와 이후의 선택 사이에는 따져볼 대목이 많다. 6월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조선 핵 문제를 현실적으로 보자며 당장 핵물질 추가 생산과 ICBM 개발을 멈추는 단계적 접근을 주장했다. 그런데 이틀 뒤 한·EU 공동성명에는 “완전한 비핵화”, 조선의 NPT상 비핵보유국 의무, 러시아·조선 군사협력 규탄 등 기존 서방의 강한 문구가 그대로 들어갔다. 두 입장이 논리적으로 모순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조선의 입장에서는 물론 일반 외교 문법에서도 상충되는 정책방향인 것은 분명하다.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다.
7월 초 앙카라 나토 정상회의도 같은 질문을 남겼다. 이 대통령은 나토 방산포럼에서 한·나토가 무기를 사고파는 수준을 넘어 공동 연구, 생산, 운용을 추진하는 ‘방위산업 파트너십 2.0’을 제안했다. 나토는 러시아를 유럽·대서양 안보에 대한 장기적 위협으로 규정함과 동시에 중국과 조선도 세계 평화를 교란하는 주범으로 지목하는 동맹이다. 한국이 나토 회원국이 된 것은 아니지만, 한국 방산을 나토 공급망과 더 깊이 연결하는 것이 러시아, 중국, 조선과의 관계에서 외교적 선택지를 넓히는지 좁히는지는 따져보지 않아도 자명한 것 아닌가.
8월 5일 외교·통일 부처 업무보고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정동영 장관이 조선을 상대가 원하는 이름으로 부르는 문제와 9·19 군사합의의 선제적 복원을 제기하자 이 대통령은 “많이 조심하셔야 한다”고 했고, 일방 복원이 평화에 실제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신중론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 자신이 야당 대표 시절부터 선제적 긴장완화 조치를 제시해 왔을 뿐 아니라 작년 8·15 경축사를 통해 먼저 제안한 사안이고 보면 이 대통령의 현실주의가 정책의 수정인지 자주 담론의 급격한 후퇴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한미관계에서의 자주문제는 재앙 수준이다. 공동 팩트시트에는 3,500억 달러 규모 투자, 한국 국방비를 GDP 3.5% 수준으로 높이는 계획, 2030년까지 미국산 군사장비 250억 달러 구매, 주한미군 지원에 관한 330억 달러 규모 계획이 담겼다. 올해에는 호르무즈 해협 안정화를 위해 군 자산과 병력을 포함한 여러 기여 방안까지 정부가 검토했다. 최근 이 대통령이 전쟁에 개입하는 파병은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것은 그나마 중요한 제한선이다. 문제는 개별 조치 하나가 아니라 이런 선택들이 어떤 외교전략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이다.
조선군 포로 두 명의 한국 이송 문제는 외교에서 지향점과 철학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이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비공개 합의를 깨고 송환 사실을 공개한 데 대해 아쉽다고 했다. 신변안전과 남북관계를 생각하면 당연한 지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미 6월부터 포로들이 헌법상 우리 국민이며 우크라이나와 한국 송환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밝히지 않았나. 한국 송환을 비공개로 하는 것이 조선에 대한 배려와 남북관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면 애당초 협상부터 비공개로 진행했어야 한다. 문제는 철학과 일관성이 결여다.
자주외교의 핵심은 선택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다. 전략적 자율성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니 미국을 유일신으로 받들고 한미동맹을 우리 헌법 위에 위치시키는 ‘숭미주의’를 타파하는 것은 자주외교의 근본이다. 문제는 숭미의 타파가 점진적으로 가능하냐는 것이다. 미국이 100을 강요하는데 50을 내주는 것이 ‘점진’일까. 아예 싹을 잘라버려 더 이상 집적대지 않게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자주가 아닐까. 자주의 본질은 우리가 ‘자주’라는 의식을 먼저 ‘급진적으로’ 깨치는 데에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의 뇌리에서 번개처럼 과격하게 벌어지는 과정이다. 철학과 전략과 일관성은 그 지점부터 창발한다.
따라서 ‘점진적인 숭미 탈피’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약탈의 점진적인 거부’라는 말은 가능할는지 몰라도 숭미의 탈피는 느닷없는 깨달음과 결기로부터만 비롯되는 것임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숭미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주의 양지로 나오는 일은 양자의 도약(quantum leap)과도 같은 불연속의 초월과정이다. 국보법 폐지가 점진적으로 가능할는지 몰라도 자주의 확보는 급진적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벼락같은 깨달음 뒤에 철학과 전략이 생겨나 전작권을 회수하고, 통상압력에 저항하고, 중국, 러시아, 조선과의 관계를 정상화할지니.
이 대통령은 ‘현실적’, ‘점진적’이라는 수사로 숭미동맹의 문제를 그대로 존치하지 말아야 한다. 한편 급진적 개혁론자들도 사실은 이 대통령의 지지자들임을 잊어서도 안 된다. 그들의 ‘쓴 소리’를 반정부로 낙인찍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이 비록 정책의 오류를 헤집는 불쾌감을 줄지언정 막상 국정지지율 조사에선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국내 개혁과 자주외교의 점진/급진 논란은 부수적인 문제다. 핵심은 그리로 갈 것이냐 아니냐의 벽력같은 결단이다. 이 대통령이 말하는 ‘진짜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 아닌가. 끝.
[출처 민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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