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을 축하하며 내놓은 연설을 읽은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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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5-12-03 20:57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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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을 축하하며 내놓은 연설을 읽은 소감
서도영
분단 80년을 맞는 이 해에 이재명이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을 축하하며 내놓은 연설을 읽어본다. 역시나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내용이다. 평화를 말하는 자가 평화의 조건을 외면할 때 얼마나 공허한수사가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을 뿐이다. 남과 북이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된 이 현실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원인은 분명히 남측의 반복된 합의 위반과 일방적 대결정책에 있음에도, 이재명은 여전히 시대가 폐기한 낡은 종이조각 몇 장을 손에 쥔 채 그 위에 허망한 책임을 세우려 한다. 6.15, 10.4, 9.19를 지킨 쪽이 누구였는지조차 직시하지 못한 태도로 평화를 논하는 것은, 애초에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의 독백에 가깝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은 주기적으로 대화의 문을 열어왔지만 그 문을 반복적으로 닫아온 것은 어느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해마다 10만 명 이상이 동원되는 한미연합군사훈련과 그것을 “연례적 방어훈련”이라 포장하며 자주성을 포기한 외교 노선, 그리고 1948년에 만들어져 2025년까지도 여전히 살아 있는 국가보안법이 한국 대북 정책의 실체였다. 북은 수십 차례 창구를 닫고 열기를 반복했지만, 합의 이행을 뒤집은 것은 남측 정권들이었고 그 책임의 가장 큰 무게는 무엇보다도 자주성을 내다버린 미국 종속이었다. 그러나 이재명은 단 한 번도 그 구조적 원인을 언급하지 않은 채 “대결 완화”, “신뢰 회복”이라는 듣기좋은 문장만을 되풀이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말, 즉 남측이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이재명의 연설에서 유일하게 읽어볼 만한 부분은 남북 현실의 어려움이다. 북은 이미 남측을 협상 상대가 아닌 적대 국가로 규정했고, 연락선은 모두 끊겼으며, 군사적 신뢰는 지난 정권들이 스스로 폐기한 9.19 군사합의와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이런 조건에서 “인내심 있게 먼저 손을 내밀면 북의 태도도 변할 수 있다”는 식의 말은 외교가 아니라 자기기만이다. 평화는 의지를 선언한다고 오지 않는다. 평화를 파괴하는 행동을 중단해야만 비로소 발걸음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재명 정권은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한 해 내내 군사훈련을 하고, 전구급 실전연습을 확대하고, 한미일 군사협력을 대폭 강화하면서도 평화를 입에 올리는 것만큼 위선적인 장면이 또 있을까.
이재명은 “전쟁 걱정 없는 한반도”를 말하면서도 정작 그 전쟁 가능성을 높여온 한미연합 억지체계를 비판하지 않고, “국민주권”을 말하면서도 민족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에 대해 단 한 번도 발언하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근거로 삼고, 한미 공조를 ‘평화의 페이스메이커’라 부르며, 국제 제재 체제의 논리를 굳건히 수용하는 순간 이미 그는 6.15의 출발점에서 멀리 이탈한 것이다. 그는 평화를 말하면서도 그 평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에 발을 딛고 서 있다.
불편한 질문이지만 피할 수 없다. 만약 남북관계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것이 북의 오기 때문이고, 한국이 늘 평화를 성실히 추구해왔다는 그의 전제가 사실이라면, 왜 북은 20년이 넘도록 남측을 신뢰하지 않는가. 왜 합의가 체결될 때마다 그 합의는 다음 정권에서 폐기되었는가. 왜 남측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가장 기본적인 자주 원칙을 실천하지 못했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한국 정부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재명은 “대화만 하면 오해가 풀린다”고 말하며 갈등의 구조적 조건을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설득이 아니라 망각을 요구하는 태도다.
6.15 공동선언의 첫 번째 조항은 그 어떤 미사여구보다 단단한 원칙이었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오늘 한국의 현실은 그 문장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자주가 삭제된 자리에 동맹이 들어섰고, 우리 민족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는 미국의 전략 속에 다루어질 뿐이다. 그 구조를 유지한 채 “평화공존”을 말하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바꿀 의지가 없다는 뜻이다. 이재명은 심지어 "한미동맹 현대화"까지 선언하며 미국 예속의 수렁으로 한발짝 더 들어갔다. 북이 남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으며, 남측이 자초한 결과다.
이재명의 연설은 길고 공손하지만 결정적으로 핵심을 비켜가며 공허하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남측이 왜 신뢰를 잃었는지를 먼저 설명해야 한다. 합의를 깬 책임, 미국의 군사전략에 예속된 구조, 국가보안법이 남북 신뢰를 어떻게 훼손해 왔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는 한 어떠한 평화 발언도 그저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북을 향한 추상적 제스처가 아니라, 남측이 스스로의 위선을 걷어내고 합의 이행의 기본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평화는 말이 아니라 실천에서 오며, 그 실천은 자주적 결단 없이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현실은 비관적이지만 길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남측이 다시 6.15의 첫번째 조항을 읽고 그것으로 다시 국가의 출발점을 세우는 일, 그것만이 무너진 신뢰를 복구하고 새로운 한반도를 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화'를 말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자주'를 선택할 용기다.
【출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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