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설] 좌절할 이유도, 조급할 이유도 없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1-03 11:02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신년사설] 좌절할 이유도, 조급할 이유도 없다
민중의소리
1.
세월호 실종자 9명을 차가운 바닷물 속에 남겨 놓은 채, 쌍용차 해고자들을 70미터 상공의 칼바람 위에 올려 놓은 채 2014년이 저물었다. 작년 우리 국민의 가슴 속에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세월호 참사를 보자. 세월호 참사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탐욕과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가 낳은 인재였다. 천재지변은 복구를 위해 투혼을 불사르는 인간의 참모습이라도 보여주지만, 세월호 이후 우리가 목격한 것은 진실을 덮고 희생자를 모욕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권력의 민낯이었다. TV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대통령은 유가족을 만나주지도 않았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한 국무총리를 대신할 사람조차 구하지 못해 다시 임명했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자고 500만의 국민이 참여한 서명은 한낱 종이장으로 취급됐다. 집권 여당은 청와대의 하명을 기다리는 집행위원회였고, 제1야당마저 세 번에 걸친 ‘야합’으로 무너져 내렸다.
국가를 무능한 존재로 만드는 통치자는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세월호와 같은 불행이 닥쳤을 때 기적을 바라고 기도하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이런 나라는 왜 필요한가? 나아가 그런 질문을 봉쇄하고 억압하는 정부는 더 이상 민주적 정부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내내 스스로의 정당성을 훼손했다.
박근혜 정부가 매달린 것은 종북몰이였다.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구든 종북으로 몰렸다. 현대사의 아픈 상처로만 남았던 ‘서북청년단’이 부활해 광화문의 농성장에서 난장을 피우고, 자신의 경험을 타인과 공유하려 한 재미동포 신은미씨의 토크 콘서트에 사제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조봉암의 진보당 해산 이후 정당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헌법 조항을 들어 통합진보당이 강제 해산됐다.
헌재가 진보당의 해산에 동원한 ‘숨은 목적’의 논리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어긴 것이다. 판결을 증거로 뒷받침하지 못할 때 사법은 정치 보복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28년 전 6월 민주항쟁은 자신의 아들이었던 헌재에 의해 배반당했다. 분단의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 민주화가 얼마나 허약할 수 있는지 우리는 보았다.
퇴락하는 국가의 중심부에는 특정 집단의 권력 사유화가 있었다. 집권 기간 내내 이어져 온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하여 청와대 내외의 몇몇 측근들이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는 비판은 연말들어 터져나온 ‘정윤회 스캔들’에서 비로소 그 꼬리를 드러냈다. 허수아비 같은 총리와 장관들을 대신해 오직 전령들이어야할 ‘십상시’가 권력을 행사하고, 정윤회파와 박지만파로 갈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싸웠다. 환관과 외척의 권력투쟁을 연상시키는 이 사태에서 판관을 맡은 검찰이 이 사건을 어떻게 무마할 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무능한 관리가 백성의 삶을 내팽겨치는 나라.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식의 판결이 이어지는 나라. 권력의 중심부에선 측근끼리 편을 갈라 다투는 나라. 민주공화국은 무너지는 중이다.
2.
새해를 맞아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소득 4만불 시대’와 ‘통일기반의 구축’을 목표로 제시했다.
“어렵게 살려낸 경제회복의 불꽃을 키워 창의와 혁신에 기반을 둔 경제로 체질을 바꾸”겠다고도 했다. 1인당 국민소득 4만불이 눈 앞이라지만 실제 우리 국민의 삶은 어떤가? 2008년의 세계경제 공황 이후 지속되어 온 불황이 이제 곧 끝나리라고 보기엔 근거가 턱없이 부족하다. 2008년 이후 각국의 정부는 돈을 더 찍어내는 완화적 정책에 의존해왔다. 그 결과 정부의 재정 건전성은 악화되었고 가계부채는 크게 늘어났다. 우리나라 역시 같은 정책을 폈고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기업은 돈을 쌓아두고, 서민의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걷는 현상이다.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위기가 시작되었던 2008년에서 조금도 늘어나지 않았다. 일본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임금 없는 성장’이다. 대신 늘어난 것은 가계 부채다. 가계부채는 모든 지표에서 계속 악화되고 있는데, 이는 최경환 경제팀의 출범 이후 더욱 심화됐다. 최경환 경제팀은 가계부채 관리를 포기하고 대신 부동산 가격 지지 정책을 폈다. 서울의 강남, 목동 등 일부 지역의 집값을 위해 더 공격적으로 ‘빚을 내라’는 정책을 편 것이다. 지금까지 놓고보면 최경환 경제팀은 단기적인 경제 활성화나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빚은 빚대로 늘어나는데, 눈 앞의 현실도 나아지지 않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장미빛 구호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일하는 사람들의 실질적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 한 ‘국민소득 4만불’은 이건희 회장의 세 자녀가 하루 아침에 5조원을 벌어들이는 ‘기적’을 가리는 위장막에 불과하다.
분단 70년을 맞아 통일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다짐도 허망하기는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래 ‘반공’과 ‘반북’을 주요한 정치 도구로 삼아왔다. 국정원의 불법적 대선 개입에 대해서는 ‘NLL대화록’ 공개와 내란음모 조작으로 대응했고, 청와대 내부 권력암투가 불거지자 진보당의 해산 결정으로 국면을 전환했다. 정권의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서 종북몰이를 수단으로 삼아와 놓고 이제와서 북과의 대화와 협력을 추진하겠다니 그 진정성을 신뢰하기 어렵다.
지난 2년간 남북의 화해와 교류협력 대신 추진된 것은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의 강화였다. 지난해 말 국회와 국민을 따돌리고 체결된 한미일정보공유약정이나, 1년 내내 이어진 사드배치관련 논란, 그리고 결정적으로 전시작전권 회수의 포기는 박근혜 정권의 본질을 드러낸 일이었다. 반면 세계는 이미 이념에서 벗어나 실제의 이익을 중심으로 한 편가르기와 손잡기에 열중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대리전쟁을 치르면서, 다른 한 편에서는 쿠바와의 국교정상화를 단행했다. 아베의 일본은 평화헌법을 무시하면서 공격적 보통국가화에 몰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낡은 한미일 동맹을 오히려 강화하면서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을 적대하는 길로 가고 있지 않은가? 이 길은 신냉전의 길이지, 평화의 길이 아니다. 신냉전의 길을 가면서 통일 기반을 구축한다고 다짐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3.
집권세력이 반민주, 반평화의 길을 가는데, 이에 맞설 야당은 지리멸렬하다. 진보당의 강제 해산으로 제도정치권내에서의 진보의 교두보도 크게 힘을 잃었다. 모든 것이 암울하다면 하나의 남은 길로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아래로부터 굳게 연대하고 단합하여 맞서는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연대와 단합을 새삼 강조하는 것은 야권의 상층이 국민적 기대를 집결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장 전당대회를 앞둔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렇다. ‘친노’니 ‘호남’이니 세력을 나누어 갈등하는 데다, 일각에서는 이른바 ‘중도파 야당’을 추진하는 인사도 있다. 여기에 진보진영을 포함한 재편성을 거론하는 경우까지 합치면 도무지 종잡기가 어렵다. 야권의 다양한 정치세력이 자신의 노선을 뚜렷이하고 경쟁하는 것은 결코 백안시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런 노선 차이도 없이, 친소관계나 과거의 경험 등을 이유로 분리하는 것은 공감받기 어렵다.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는 박근혜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의 방파제가 될 각오를 다지는 게 우선일 것이다.
진정으로 위력적인 것은 스스로의 변화에서 태어난다. 당장의 결과를 기대한다면 요행을 기대하지만, 스스로의 힘을 믿고 함께하는 이들을 믿는다면 조급할 이유가 없다. 조급함은 분리, 분열을 통해 정당성을 인정받으려 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을 반대하는 대열에서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분리하고 분열하는 것이 과연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가? 혁신은 자신의 껍질을 벗기는 일이다. 스스로는 변화하지 않으면서 다른 이들의 껍질을 벗기려는 것으로 혁신은 이뤄질 수 없다.
대중 자신의 연대, 대중 자신의 단결을 추구하는 데서는 박근혜 정권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과 조직이 앞장서야 한다. 연대와 단결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벗어던지고 무엇이든 양보해야 한다. 집권세력은 민중을 분열시켜 통치한다. 세월호 유족과 ‘국민’을 분리하고, ’종북진보’와 ‘반북진보’를 갈라세우고, 공무원 연금과 국민연금을 대립시킨다. 분단체제에서 반북이 진보일 수 없다. 종북이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의 생각일 수 없다. 민족의 반쪽을 사랑하면서 어떻게든 동질성을 이어나가는 것이 진보다. 그러나 집권세력의 통치술에서는 종북이 아니면 반북일 뿐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양분법에서 벗어날 용기가 필요하다. 집권세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놓고 비정규직 문제의 책임을 정규직 노동자에게 돌리려 한다. 투쟁에 나선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방패삼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경험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본가가 아닌 그 누구에게 책임을 돌렸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현장을 알지 못하는 지식인들이 ‘그럴지도 모른다’고 부르짖은 것을 빼면 이런 주장은 애초 존재한 바 없다. 이런 기만적 통치술을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정권에 의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과 조직은 누구보다 먼저 마음을 열고 부족점을 감싸 안으면서 단결의 밀알이 되어야 한다. 작은 차이를 부각하기보다 공통성을 찾고 당장 투쟁의 중심에 선 사람들을 보호하면서 연대의 폭과 깊이를 확대해 나가면 된다.
독재는 결국 민중의 힘에 의해 좌절된다. 가까이는 김영삼 정권이 노동자들의 총파업에 무릎을 꿇었고, 멀리는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좌절할 이유도, 조급할 이유도 없다.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