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90]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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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1-03 13:19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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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90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를 연재하며
편집국
북은 해방 후부터 통일에 역행하는 남쪽의 친일친미 사대매국노 집권무리들과 반대로 지금까지 조국의 자주평화 통일을 위하여 줄기차게 노력해온 사실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 지금 <우리민족끼리>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 기사도 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북의 전쟁없이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분단이후 지금까지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고 줄기차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촉구한 북의 참모습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적 사실들이 때로는 감춰지거나 왜곡되게 남쪽에 전해진 사실도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 연재기사를 통해 독자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노력해온 북의 진실된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같이 일관되게 노력해온 북의 참모습을 알면 조국통일이 더 쉽게 더 빨리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누가 매국노인지 누가 애국자인지 잘 가려보아야 할 것이다.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단결 단합하여 반통일세력을 짓부수고 조국통일 이룩하여 민족번영을 맞이하자.
우리민족끼리에 소개된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90) 이어지는 지맥>기사를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 (90)
력사의 온갖 도전을 과감히 뚫고 헤쳐온 우리 공화국의 력사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력사적책임감을 다한 성스러운 로정이였으며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확신과 락관을 심어준 숭고한 통일의 년대기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시였으며 그 길에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평생업적을 토대로 하여 존엄높고 부흥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밑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온 겨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이어지는 지맥
력사적인 6. 15북남공동선언의 발표이후 나라의 통일문제를 북과 남이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려는 민족공조의 열기가 날로 높아가는 속에 60년 가까이 두동강났던 삼천리강토의 지맥을 하나로 잇는 민족사적사변이 일어났다.
2002년 4월 5일 북과 남사이에 두차례에 걸쳐 진행된 회담에서 발표된 공동보도문은 쌍방이 북남사이의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련결하는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아래 동해지구에서 새로 동해선철도 및 도로를, 서해지구에서 신의주-서울사이의 철도 및 개성-문산사이의 도로를 빨리 련결하며 철도와 도로련결 및 협력사업을 토의하기 위하여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아래 분과들을 가동할데 대한 합의내용을 담았다.
이어 2002년 8월과 10월에 진행된 제7차, 제8차 북남상급회담들에서도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에 관한 내용이 담겨진 공동보도문들이 발표되였으며 그해 8월에 열린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2차회의에서는 북과 남이 동해선철도 및 도로와 신의주-서울사이의 철도 및 도로련결을 동시에 병행시켜 실현해나갈데 대한 합의문이 채택되였다.
9월 13일부터 17일까지 금강산에서 진행된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분과 제1차회의에서는 동해선과 서해선의 철도와 도로련결을 최단기간내에 끝낼수 있는 제반 조치들을 협의하고 합의서를 발표하였다. 합의서에는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을 위한 착공식은 9월 18일에 하며 철도는 1차적으로 온정리-저진사이 27. 5㎞구간을 단선으로 련결하고 강릉방향에로의 남측구간련결공사를 중단없이 빨리 추진시키며 도로는 고성-송현리사이의 구간을 2차선으로 련결하되 우선 12월초부터 차량이 다니게 하는 문제, 서해선에서 철도는 종전의 철길로선을 따라 개성역으로부터 중앙분계선까지의 15. 3㎞구간과 미진된 남측구간을 련결하고 도로는 개성공업지구건설부지의 남쪽경계선으로부터 철도로선우측을 따라 4차선으로 련결할데 대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와 함께 9월 16일과 17일 판문점에서 진행된 북남군사실무회담에서는 동해지구와 서해지구 북남관리구역설정과 북과 남을 련결하는 철도, 도로작업의 군사적보장을 위한 합의서가 채택되였다. 이 합의서가 발효됨으로써 분렬사상 처음으로 동해지구와 서해지구의 비무장지대에 북남관리구역이 생겨나고 여기에서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작업을 동시에 착공하고 동시에 완공하며 동시에 운영할수 있는 확고한 군사적담보가 마련되였다.
2002년 9월 18일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청년역과 개성역에서는 력사적인 착공식이 진행되였다. 종착역 아닌 종착역으로 되여있던 동서의 두 역에서는 같은 시간에 격동적인 착공보고와 토론들이 진행되고 철길과 도로를 련결하는 의식이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온 겨레는 금시 통일이 되기라도 한듯 감격과 기쁨의 환성을 터치였다.
남조선의 언론들도 《뭉클한 감격으로 온몸의 혈관이 박동친다.》, 《대립과 갈등의 분단 반세기를 넘어 남북협력과 화해의 시대를 연 의미있는 일》 등으로 일제히 이 소식을 대서특필하였다.
착공식이후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공사를 다그쳐 끝내기 위하여 동, 서해안의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에서 군사적대결의 상징물인 지뢰들이 제거되기 시작하였고 잡초만 무성하던 황량한 벌판과 골짜기로 대통로와 두줄기 궤도가 시원스레 뻗어나가게 되였다.
그런데 철도 및 도로련결을 위한 비무장지대 지뢰제거작업이 마감단계에 들어서자 미국은 체면마저 버리고 그 무슨 《정전위원회의 허가》문제를 들고나오면서 이 사업을 로골적으로 방해해나섰다.
미국이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사업에 빗장을 지르려고 하는것과 관련하여 2002년 11월 1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철도성 대변인은 성명을 발표하여 북남철도, 도로련결공사를 방해하는 미국의 간섭책동을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갈라진 북과 남의 지맥을 이으려는 우리 민족의 념원과 지향에 대한 횡포한 도전으로 단죄규탄하면서 미국의 반평화적, 반통일적책동은 북남 온 겨레의 거족적인 반미성전에 부딪치게 될것이라는데 대하여 경고하였다. 이어 11월 17일과 18일 북남철도, 도로련결공사를 가로막는 미국의 행위를 규탄하는 북남상급회담 북측대표단 단장의 담화와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북측위원장의 담화가 각각 발표되였다.
그러한 시기 미국은 또다시 11월 26일에 판문점 조미장령급회담 미군측대표인 남조선강점 미군사령부 부참모장이란자를 내세워 북남철도와 도로가 련결되면 그 통로가 《남침목적에 리용》될수 있다는 망발을 하였다.
이에 대처하여 12월 1일 미국이야말로 북과 남 온 민족의 불구대천의 원쑤라고 단죄하고 북과 남의 전체 조선민족이 북남철도, 도로련결을 방해해나서는 미국의 부당한 책동에 전민족적인 반미성전으로 대답할것을 호소하는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분과 북측단장의 담화가 발표되였다.
이렇듯 공화국정부의 적극적인 조치에 의해 2003년 2월 5일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련결사업의 일환으로서 군사분계선 10m너비의 2. 4㎞구간에 걸쳐 동해선 림시도로가 완공되여 금강산륙로관광을 위한 시험답사가 실현되였다. 이에 기초하여 2월 14일에는 민족분렬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을 꿰지르며 북과 남을 련결하는 림시도로를 따라 수많은 남녘동포들이 조선의 명산 금강산에 대한 시범륙로관광의 길에 오르는 극적인 사변이 일어났다. 또한 2월 21일에 개성-문산사이 림시도로가 개통되여 개성공업지구건설을 위한 현지답사가 진행되였다.
그리고 개성에서 진행된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을 위한 제5차 실무접촉에서는 북과 남이 북남철도련결행사를 2003년 6월 14일 동, 서해선 철도련결지점에서 공동으로 동시에 진행할데 대한 합의서가 채택되였다.
이에 따라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발표 3돐을 맞으며 6월 14일 북남동서해선철도련결행사가 각각 현지에서 진행되였다.
드디여 군사분계선 분리선상에서 북과 남으로 뻗어간 레루를 련결하는 작업이 진행되였다. 말그대로 삼천리강토가 하나의 지맥으로 이어지게 되였다.
남조선의 《CBS》방송은 북남철도련결행사에 대하여 《지난 1950년 6. 25전쟁으로 끊어진 남북의 철길이 6월 14일 분단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에서 다시 련결되였다. 군사분계선 바로 아래 옛 장단역자리에는 지난 50년 전쟁당시 북쪽으로 향하던 렬차가 지금도 녹이 쓴채 멈추어서있다. 이 철도를 통해 앞으로 렬차가 달리는 모습을 다시 볼 날도 머지않아 오게 되였다. 남북은 14일 오전 11시부터 군사분계선상의 경의선과 동해선철도공사현장에서 궤도련결행사를 함께 했다. … 오늘 행사는 련결사에 이어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25m짜리 레루를 서로 련결하는것으로 끝났다. 오늘 궤도련결로 렬차가 곧 달릴수 있는것은 아니지만 분단 반세기만에 남북의 혈맥이 다시 이어졌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라고 전하였다. 또한 로씨야의 《엔떼웨TV》도 《조선반도의 북과 남이 철도를 련결하였다. 6월 14일 북남조선이 끊어졌던 반도의 철도를 련결하는 상징적인 의식을 군사분계선에서 진행하였다.》고 하면서 북과 남의 철도련결로 우리의 강토가 하나로 이어지고있는데 대하여 상세히 전하였다.
그후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련결사업이 힘있게 추진되여 2007년 5월 17일에는 북남철도련결구간 렬차시험운행이 동서해선에서 각각 금강산청년역에서 남측 제진역까지, 남측 문산역에서 개성역까지 진행되였다.
두줄기 궤도를 따라 민족적화해와 단합, 조국통일의 기적소리 높이 울리며 북과 남을 달리는 렬차들의 모습은 그대로 민족의 혈맥과 지맥이 이어지는 력사의 화폭이였으며 이것을 통하여 온 겨레는 통일된 조국의 래일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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