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 [연재 89]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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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0-31 17:24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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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89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를 연재하며
편집국
북은 해방 후부터 통일에 역행하는 남쪽의 친일친미 사대매국노 집권무리들과 반대로 지금까지 조국의 자주평화 통일을 위하여 줄기차게 노력해온 사실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 지금 <우리민족끼리>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 기사도 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북의 전쟁없이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분단이후 지금까지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고 줄기차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촉구한 북의 참모습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적 사실들이 때로는 감춰지거나 왜곡되게 남쪽에 전해진 사실도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 연재기사를 통해 독자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노력해온 북의 진실된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같이 일관되게 노력해온 북의 참모습을 알면 조국통일이 더 쉽게 더 빨리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누가 매국노인지 누가 애국자인지 잘 가려보아야 할 것이다.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단결 단합하여 반통일세력을 짓부수고 조국통일 이룩하여 민족번영을 맞이하자.
우리민족끼리에 소개된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89) 다각적인 대화와 협력, 교류의 실현>기사를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 (89)
력사의 온갖 도전을 과감히 뚫고 헤쳐온 우리 공화국의 력사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력사적책임감을 다한 성스러운 로정이였으며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확신과 락관을 심어준 숭고한 통일의 년대기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시였으며 그 길에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평생업적을 토대로 하여 존엄높고 부흥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밑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온 겨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다각적인 대화와 협력, 교류의 실현
조국통일의 리정표인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옳게 구현하여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북과 남의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자면 모든것을 민족공동의 리익에 복종시키며 사대와 외세의존을 배격하고 민족공조를 실현하여야 한다.
민족의 대단결로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실현해나갈데 대한 일관한 립장을 견지하여온 공화국정부는 6. 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민족공조로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벌렸다.
공화국정부는 2003년 새해를 맞으며 발표한 《로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공동사설에서 민족공조를 실현하는것은 통일에로의 지름길이라는것, 피줄도 하나, 언어도 하나, 문화도 하나, 력사도 하나인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민족공조는 당연한 리치이고 생존방식이라는것, 민족공동의 리익을 첫자리에 놓고 민족자주, 애국애족의 리념에 기초하여 민족대단결을 실현하며 외세와의 《공조》를 추구하는 반민족적인 책동을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는것 등 민족공조를 이룩할데 대하여 적극 호소하였다.
그러나 북과 남이 힘을 합쳐 통일을 이룩하는것을 달가와하지 않는 내외의 반통일세력들은 북남관계발전에 제동을 걸면서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미국은 2003년 1월 남조선군부와 함께 《우발계획》이라는 《대북선제공격계획》작성을 적극 다그쳤다. 그리고는 3월 4일 《독수리》전쟁연습을 벌려놓았고 19일부터는 《련합전시증원연습》을 련이어 진행하였다. 또한 《한나라당》을 비롯한 남조선의 반통일세력들은 미국의 반공화국압살책동에 편승하여 6. 15공동선언의 리행과 북남관계를 파탄시키려고 발악적으로 책동하였다. 그해 2월에 새로 집권한 남조선당국도 미국의 계속되는 압력에 굴복하여 이라크침략전쟁마당에 추가파병을 결정하였으며 《주한미군재배치》문제에서도 대미굴종자세를 드러냈다.
조성된 정세는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민족공조로 외세의 전쟁책동을 단호히 짓부셔버리며 6. 15북남공동선언을 계속 실천해나갈것을 요구하고있었다.
이에 대처하여 2003년 3월 18일 평양에서는 공화국정부, 정당, 단체합동회의가 열리였다. 회의에서는 민족공조로 민족의 자주권과 평화를 수호해나가기 위한 당면대책이 토의되였다. 회의에서는 우리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의 침해자는 미국이라는것, 조선반도의 대결구도가 전체 조선민족 대 미국으로 되고있는 오늘 온 겨레가 거족적으로 단합하여 남조선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핵문제》를 구실로 미국과 남조선호전세력이 벌리는 군사연습을 저지시키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가야 한다는것, 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을 막고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며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실현해나가기 위한 최선의 방도는 민족공조에 있다는것, 그런것만큼 민족공조의 실현을 첫자리에 놓고 민족자주, 애국애족의 리념에 기초하여 민족대단결을 실현해나가야 한다는것 등을 호소하였다. 회의는 온 겨레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을 앞당기자!》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6. 15북남공동선언발표 3돐을 맞는 2003년에 민족공조를 훌륭히 실현하여 조국통일을 앞당기는데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와야 할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회의에서는 7천만겨레에게 보내는 호소문이 채택되였다. 호소문은 6. 15북남공동선언발표 3돐을 계기로 평양에서 북과 남, 해외의 각계층 대표들이 참가하는 민족통일대축전을 성대히 개최할것과 8. 15해방의 날과 개천절을 비롯한 민족공동의 기념일들에 북과 남의 각계층 동포들의 화합과 련대를 도모하기 위한 민족통일행사들을 활발히 벌려나갈것을 호소하였다.
6. 15시대에 들어와 민족공동의 통일행사들도 성대히 진행되였다.
2001년부터 해마다 6. 15와 8. 15에 북과 남을 오가면서 북, 남, 해외 3자가 참가한 민족통일축전행사들이 성황리에 진행되였으며 2003년 3월 1일에는 공화국의 주동적인 조치에 의하여 서울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3. 1민족대회》가 진행되였다. 또한 6. 15공동선언지지관철을 위한 북남로동자들의 통일대회, 북남농민통일대회, 북남청년학생통일대회, 북남녀성통일대회 등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녀성 그리고 학자, 예술인, 언론인, 종교인을 비롯한 북과 남의 계층별통일대회들과 상봉모임, 토론회들이 광범히 벌어졌다. 2005년 7월 20일에는 평양에서 민족분렬사상 처음으로 되는 북, 남, 해외작가들의 대회합인 6. 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가 성대히 진행되였다.
공화국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하여 한편 북과 남사이에는 당국간 회담을 비롯하여 다방면적인 대화와 협상이 힘있게 추진되였다.
력사적인 6. 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 2007년 7월까지 북남당국사이에는 21차의 상급회담과 13차의 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 그리고 8차의 적십자회담과 6차의 장령급군사회담을 비롯하여 무려 140여차의 회담과 접촉이 진행되였으며 매번 합의문건이 채택되였다. 이것은 북남대화력사에 전례없는 기록으로서 1971년부터 6. 15북남공동선언채택이전까지 무려 29년간 346회의 회담에서 북과 남이 35건의 합의를 이루어냈다는 사실과 비교해볼 때 6. 15이후 북남대화에서 얼마나 놀라운 성과가 이룩되였는가를 잘 알수 있게 한다.
공화국정부는 북남간의 당국간 대화뿐아니라 북과 남사이의 경제와 문화, 체육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과 교류를 활발히 벌리기 위해 적극 노력하였다. 공화국에서는 2002년 11월 13일에 개성공업지구를 내올데 대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11월 20일에 개성공업지구법을 채택함에 대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각각 발표되였으며 2003년 6월 28일에는 개성공업지구개발규정이 발표되였다. 이에 토대하여 북과 남은 2003년 6월 30일 개성공업지구건설착공식을 진행하였으며 2004년 12월 15일에는 현지에서 《개성공업지구 첫 제품생산기념식》이 진행되였다.
이리하여 북남경제협력사업이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밑에 민족자주의 원칙에서 명실공히 조국통일성업에 이바지하는 사업으로 진행되게 되였다. 공화국의 뜨거운 동포애적조치에 의하여 1998년 11월에 시작된 금강산관광사업은 더욱 활발히 진행되여 2005년말까지 금강산을 다녀간 남조선관광객의 수는 100만명을 넘어섰다.
민족경제의 균형적발전과 북과 남사이의 화해와 단합을 실현하기 위한 공화국정부의 이러한 활동에 의하여 경제협력을 위하여 북을 방문하는 남녘동포들의 수가 계속 늘어났으며 북남경제협력사업은 농업, 공업, 임가공 등 여러 부문과 지역으로 확대되였다.
북과 남사이의 협력과 교류는 체육문화분야에서도 활발히 벌어졌다.
2002년 9월에 부산에서 진행된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에 이어 2003년 8월 대구에서 진행된 제22차 세계대학생체육경기대회, 2005년 9월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륙상선수권대회에 또다시 북의 선수단과 응원단이 참가하였다. 이보다 앞서 2002년 9월과 10월에 평양과 서울에서 북남태권도시범단의 출연이 있었다. 2003년 10월에 제주도에서는 민족통일평화체육문화축전장을 펼치고 백두산과 한나산에서 채화한 성화가 타오르는 속에서 북과 남의 체육인들이 함께 어울려 경기를 하며 피줄과 언어, 력사와 문화도 하나이며 통일애국의 마음과 뜻도 하나인 우리 민족의 단합된 힘을 힘있게 과시하였다. 그리고 2000년 8월에 진행된 국립교향악단의 서울공연, 2002년 9월 남조선 《KBS》교향악단과 남조선 《MBC》공연단의 평양방문공연을 비롯하여 북남예술인들의 합동공연과 합동연주회들 그리고 북남력사학자들의 평양과 서울, 금강산토론회와 공동자료전시회 및 사진전시회 등 다양한 예술문화교류도 활발히 벌어졌다.
6. 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 2004년 5월말까지의 기간에 북에서 남쪽을 방문한 인원수는 6. 15북남공동선언발표이전까지의 10년간에 비해 근 5배, 같은 기간 남쪽에서 북쪽을 다녀간 인원수는 금강산관광객을 빼고 4. 5배 늘어난것으로 된다.
민족공조로 6. 15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공화국정부의 적극적인 활동과 노력에 의하여 북과 남사이에 대화와 협상, 협력과 교류가 활발히 전개됨으로써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통일운동은 더욱 줄기차게 전진해나갈수 있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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