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연재 82]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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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0-17 05:42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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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82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를 연재하며
편집국
북은 해방 후부터 통일에 역행하는 남쪽의 친일친미 사대매국노 집권무리들과 반대로 지금까지 조국의 자주평화 통일을 위하여 줄기차게 노력해온 사실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 지금 <우리민족끼리>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 기사도 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북의 전쟁없이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분단이후 지금까지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고 줄기차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촉구한 북의 참모습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적 사실들이 때로는 감춰지거나 왜곡되게 남쪽에 전해진 사실도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 연재기사를 통해 독자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노력해온 북의 진실된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같이 일관되게 노력해온 북의 참모습을 알면 조국통일이 더 쉽게 더 빨리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누가 매국노인지 누가 애국자인지 잘 가려보아야 할 것이다.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단결 단합하여 반통일세력을 짓부수고 조국통일 이룩하여 민족번영을 맞이하자.
우리민족끼리에 소개된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82)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북남공동선언의 채택>기사를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주체104(2015)년 10월 13일 《우리 민족끼리》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 (82)
력사의 온갖 도전을 과감히 뚫고 헤쳐온 우리 공화국의 력사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력사적책임감을 다한 성스러운 로정이였으며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확신과 락관을 심어준 숭고한 통일의 년대기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시였으며 그 길에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평생업적을 토대로 하여 존엄높고 부흥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시려는 위대한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밑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온 겨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북남공동선언의 채택
력사적인 4. 8북남합의서발표이후 온 민족은 커다란 격정과 기대속에 평양상봉의 그날을 손꼽아기다렸다. 드디여 분렬의 아픔을 안고 55번째 년륜이 새겨지던 삼천리조국강산이 통일의 열풍으로 끓어번질 력사의 순간이 다가왔다.
남조선의 각 정당, 사회단체인사들이 평양상봉을 환영하는 담화, 성명을 발표하였고 모임도 가지였으며 6월 13일 아침 남조선의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북남수뇌회담을 통하여 《55년 불신과 대립의 력사를 뛰여넘어 민족사적전환점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념원한다.》고 밝혔고 극우보수정당인 《한나라당》까지도 대세에 밀리워 《〈정상회담〉의 성과를 기원》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6월 13일을 앞두고 서울에서 7 000여명 시민들의 참가하에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국민들의 겨레대합창축제》가 열린것을 비롯하여 남조선의 각지에서 경축행사들이 매일같이 벌어졌다.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6월 11일 이례적인 축하성명을 발표하여 《전세계인들과 함께 조선반도에 평화가 깃들고 민족의 대화합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하였다.
2000년 6월 13일 오전 10시 15분, 남조선 《대통령》의 일반수행원들과 기자 114명을 태운 비행기가 평양비행장에 먼저 착륙한데 이어 남측당국자일행이 탄 전용기가 서서히 내리였다.
10시 35분 수천명의 환영군중이 터쳐올리는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성과 환영곡이 하늘땅을 진감하는 가운데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영접간부들과 함께 비행장구내에 나오시였다.
그 시각 비행기안에서 남측의례관계자를 통해 위대한 장군님께서 마중나오신것을 알게 된 남측당국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천만뜻밖의 일로 하여 한동안 움직일줄 몰랐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상상도 못한 영접행사로 하여 당황해하는 남측당국자와 뜨겁게 포옹하시고 굳은 악수를 나누신다음 조선인민군 륙해공군명예위병대를 사열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남측당국자와 함께 타신 승용차는 모터찌클의 호위를 받으면서 60여만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환호속에 환영일색으로 단장한 중심거리들을 돌아 숙소로 정해진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하였다.
백화원에 이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숙소의 홀에서 먼저 김대중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신데 이어 그들내외 그리고 공식수행원들과 각각 기념촬영을 하시였으며 그들과 함께 응접실에 들어가시여 담화를 하시였다.
6월 14일 오후 백화원 영빈관에서는 위대한 김정일동지와 김대중 《대통령》사이에 력사적인 단독회담이 진행되였다. 민족분렬 55년만에 처음으로 북남의 수뇌분들이 마주앉아 나라의 통일과 민족의 장래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상론하는 력사적인 회담이였다.
남측당국자는 예견했던대로 《평화정착》이요, 《경제협력》이요 하면서 이미 《베를린선언》이라는데서 언급한 《제안》을 되풀이하는 준비된 발언을 길게 하였다.
남측당국자의 발언을 인내성있게 다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것은 이미 보내온 《친서체계》에 다 있는 내용들이라고 하시면서 2000년대를 맞이하는 첫해에 우리가 처음으로 상봉하는것만큼 7천만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락관을 주는 선언적인 문건을 하나 내놓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어 선언적인 문건에 담을 자주통일사상과 합리적인 통일방안들을 철의 론리로 펴나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첫째로, 이번에 구시대의 유물을 청산한다는 의미에서 2000년대에 《우리 민족끼리》를 공동의 리념으로 하여 나라의 통일을 민족자주적으로 실현한다고 천명하자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오늘 우리들사이에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자는데 합의했다고 문건에 밝히자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둘째는 련방제문제이라고, 북과 남의 두 제도, 두 체제를 그대로 두고 련방제통일을 지향하되 당면하여 이번 선언에서는 낮은 형태의 련방제문제를 담자는것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쪽에서 《대통령》이 내놓은 《련합제》와 우리의 낮은 단계의 련방제가 같기때문에 호상 협의해서 하기로 했다고 선언에 밝히자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셋째로, 당국대화를 개최하고 련방기구를 내올데 대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북남사이에 경제, 사회문화, 인도적문제도 풀어나갈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사리정연하고도 애국애족적인 주장앞에서 남측당국자는 시종 깊은 리해와 공감을 표시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제 공동선언이 나가면 아마 세상이 또 한번 놀랄수 있다고, 북과 남이 민족주체를 찾았다고 할것이라고, 바로 우리 민족끼리 한다는것이 중요하다고, 《우리 민족끼리》라는 이 말에 방점이 있다고 힘주어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비전향장기수문제를 평양상봉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로 내세우시고 흩어진 가족, 친척문제와 함께 인도적문제의 테두리안에서 해결하도록 하시였으며 단독회담과 회담이 끝나고 남측당국자와 목란관연회장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그리고 연회도중에 상론하시여 결말을 보시였다.
북남수뇌분들사이의 단독회담은 무려 4시간여에 걸쳐 진행되였다.
그리하여 공동선언문에 대한 북남쌍방의 최종합의가 이룩되였다.
북남공동선언은 6월 15일 날자로 발표되였다.
6. 15북남공동선언
…
1. 북과 남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기로 하였다.
2. 북과 남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북측의 낮은 단계의 련방제안과 남측의 련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나가기로 하였다.
3. 북과 남은 올해 8. 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하였다.
4. 북과 남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기로 하였다.
5. 북과 남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안에 당국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
북남공동선언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세워주신 21세기 조국통일의 리정표이다. 그것은 새로운 력사적기원을 연 민족자주선언이고 민족단합선언이며 통일지향선언이였다. 또한 그것은 영생불멸의 주체사상, 민족자주로선을 구현한 위대한 자주통일대강이였다.
력사적인 6. 15북남공동선언의 채택은 온 삼천리를 감격과 환희로 들끓게 하였다.
남조선의 정계, 사회계, 학계, 종교계가 앞을 다투어 공동선언에 지지를 표시하였다. 당시 남조선의 집권당이였던 민주당은 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되자 즉각 《이번 합의문은 남북정상들이 직접 만나 허심탄회하게 론의하고 세계인이 주목하는 가운데 공동선언에 합의함으로써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대전환점을 마련했다.》고 평하였고 야당인 자민련대변인은 《반세기의 분단력사에 종지부를 찍는 결정적초석을 쌓았다.》고 지지립장을 밝혔다.
남조선의 언론들도 북남공동선언을 적극적으로 지지환영하면서 그 력사적의의를 대서특필하였다.
《…통일문제의 자주적해결, 남북통일방안의 공통점 모색, 〈리산가족〉상봉과 경제, 사회 등 다방면의 교류협력 및 당국간 대화 계속 등 5개항은 〈우리도 할수 있다, 통일을 이룰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그것도 비공개장소에서의 은밀한 합의가 아니라 생방송으로 전세계, 온 인류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룩한 합의이기때문에 그 약속이 더욱 값지다. 이제 남북관계는 한개의 큰 산을 넘었다. 단 한번의 만남으로 이런 정도의 합의를 도출해낸것은 수뇌회담의 력사에서 일찌기 없었던 일이다.》(《동아일보》 2000. 6. 15), 《6. 15남북공동선언의 채택으로 남북은 반목과 대립, 대결로 지나온 불행과 과거력사에 종지부를 찍고 화해와 협력에로 나아가 통일로 이어지는 디딤돌을 마련했다.》(《경향신문》 2000. 6. 16), 《이번 공동선언에서 무엇보다 충격으로 다가온것은 바로 1항의 〈자주〉라는 표현과 2항의 통일방안일것이다. 누구도 남북정상이 첫 만남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인 통일방안을 합의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시사져널》 2000. 6. 29), 《남북의 두 지도자가 만나 자리를 함께 한 날은 2박 3일에 불과했다. 55년만의 만남치고는 너무 아쉬울만큼 짧은 시간이였다. 그러나 그사이에 〈평양대특급〉이라 할만 한 세기적작품을 성공리에 완성시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평양대특급〉은 〈21세기의 마지막분단국가〉라는 오명을 청산하는 동시에 랭전시대를 최종마무리하는 기념비적작품이였다.》(《월간중앙》 2000. 8)
전세계도 벅적 끓어번졌다.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16일 위대한 장군님앞으로 축하전보를 보내왔으며 로씨야대통령도 장군님께 축하의 뜻을 담은 친서를 보내왔다. 미국대통령은 성명을 발표하고 북남공동선언이 조선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희망적인 출발이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일본도 이번 선언을 력사적인 사변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조일관계개선에 나설 의향을 표명하였다.
180여개 나라의 국가 및 정부수반들과 정당, 단체책임자들은 공동선언의 채택을 《세계를 진감시킨 특대사변》, 《김정일각하의 애국애족의 대용단이 낳은 빛나는 결실》, 《조선통일의 휘황한 전망을 펼쳐놓고 조선민족앞에 화해와 단합의 문을 열어놓은 결정적계기》로 평가하면서 적극적인 지지와 찬동을 표시하였다.
세계가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을 지구에 던진 《평양의 통일핵폭탄》으로 묘사한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였다.
이렇듯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이루어지고 6. 15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됨으로써 북남관계발전과 조국통일실현을 위한 투쟁에서는 새로운 전환적국면이 열리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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