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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도서]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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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9-29 14:1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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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편집국

 

 

 

 

재미동포전국연합회는 북 바로알기 운동을 위해 북 문예소설 작품인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소개합니다. 《새 나라》는 윤경찬 저자이며 2013년 문학예술출판사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1945년 해방된 북 조국 땅에 어떻게 새나라가 건설되었는가를 문학적 감동과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8

 

수영이가 제 방으로 건너간 뒤 정근식은 혼자 생각에 잠겼다. 자기가 조카딸에게 객적은 소리를 한것 같아 마음이 무죽했던것이다.

 

(흠, 착하고 뜨겁게 살지 말라고?… 이런 로망이라구야.)

 

이제 겨우 인생초엽에 들어선 마음씨고운 조카딸에게 선하고 바르게 살라는 말은 못할망정 세상은 어둡다는따위의 설교로 생활에 대한 공포와 허무를 강조했은즉 이게 로망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십장생도에 그려진 사슴마저도 그렇게밖에 말할수 없었냐는듯 측은한 눈매로 정근식을 질책하고있었다.

 

(그래, 잘못했다. 나도 한때는 착하게 살고싶었지. 그런데 세상은 너처럼 순하지 못했어. 그래서 나도 이렇게 이지러졌구나.)

 

그는 순한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십장생도의 사슴과 눈을 맞추고 지나온 자취를 얼핏얼핏 더듬어보았다.

 

일찌기 서유럽의 문명을 숭상해온 정근식의 부친은 거치장스러운 갓이며 두루마기를 개화의 돌개바람에 날려버리고 평양장안에서 제일먼저 양복에 중절모를 쓰고다니던 선각자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아버지는 구한국시대에 벌써 자그마한 고무공장을 차려놓고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 외아들 근식을 공부시켰다. 아버지의 소원은 사각모까지 아들의 머리에 씌워주는것이였다. 중학시절에도 수재로 이름을 날리던 근식은 아버지의 소원대로 일본에 가서 대학공부까지 하게 되였고 당시 청년들속에 류행병처럼 퍼지던 맑스주의서적을 읽어보면서 세상의 모순을 발견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맑스의 학설이 옳다는것만은 인정하였다.

 

맑스는 자기의 학설에서 무산자가 잃을것은 철쇄요, 얻을것은 전세계라고 피압박무산대중을 계급투쟁의 마당으로 부르면서 수탈자를 수탈하라고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끓게 해주었다. 지금도 정근식은 자기자신의 운명에 종지부를 찍는듯 한 《공산당선언》의 한구절을 똑똑히 기억하고있었다.

 

《오늘날 부르죠아지에 대립하고있는 모든 계급중에서 오직 프로레타리아트만이 참다운 혁명적인 계급이다. 기타의 모든 계급은 대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몰락하며 멸망한다. 그런데 프로레타리아트는 대산업자체의 산물인것이다. 제 중간층, 즉 소상인, 소산업가, 수공업자 및 농민 이들은 모두 중간층으로서 자기의 존재를 멸망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부르죠아지와 투쟁하는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혁명적이 못되고 보수적이다. 아니, 그들은 반동적이기조차 하다.》

 

만약 맑스의 이 론리대로 세상의 구조가 변한다면 중소기업가인 아버지나 내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플라톤은 소유는 절도품이라고 했지만 근식은 아버지의 정직성을 믿었고 따라서 아버지의 고무공장은 수탈의 대상으로 될수 없었다. 선천적으로 마음이 착했던 그는 같은 민족끼리 피터지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계급투쟁의 리론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가문의 재산을 남에게 수탈당하기도 싫었다.

 

어느날 그는 대학안에 조직되였던 좌익독서회에서 혁명의 동력과 대상에 대한 문제로 격렬한 론쟁을 벌린적이 있었다.

 

독서회성원들은 계급투쟁에 관한 맑스의 학설이야말로 모든 피압박민중에게 정신적노예상태로부터의 출로를 밝힌 위대한 혁명리론이라고 격찬했다.

 

한참동안 말없이 듣기만 하던 정근식은 자신없는 소리로 자기 견해를 꺼내놓았다.

 

《그런데 말이요, 맑스나 엥겔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던 시기 다시말하면 로동계급이 혁명의 동력으로 성장하고있던 시기에 활동했기때문에 잉여가치학설을 발견했고 계급투쟁의 원리를 내놓을수 있었소. 그러나 우리 나라는 봉건통치체제를 무너뜨리지 못한채 일제의 식민지통치에 예속되였소. 이런 력사적조건에서 조선혁명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속에서 일어날 혁명이 아니지 않겠는가 하는거요.》

 

《그럼 조선혁명은 프로레타리아혁명이 아니라는거요?》

 

정근식이보다 한학년 선배가 날카롭게 물었다.

 

《나도 잘 모르겠소. 어쨌든 우리 아버지도 왜놈을 미워하는 마음은 남못지 않단 말이요. 그런데 만약 조선에서도 저 유럽에서처럼 계급혁명이 일어난다면 우리 집은 혁명의 동력이 아니라 대상으로서 타도돼야 하고 나도 자기 집안을 제손으로 때려부셔야 한다는 결론에 떨어진단 말이요.》

 

《야!》

 

선배는 정근식을 쏘아보며 낭떠러지에 몰아세웠다.

 

《자기 집안이냐, 계급혁명이냐? 립장을 명백히 밝혀라!》

 

다른 학우들도 이구동성으로 투항주의라느니, 혁명성이 부족하다느니 하면서 정근식을 몰아댔다.

 

정근식은 가슴이 싸늘하게 식는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나고말았다.

 

맑스의 리론도 칼날처럼 예리한데 그 리론을 대하는 자세까지 날카로와서야 어떻게 그 학설에 정을 품겠는가. 이제 겨우 좌익서적을 몇권 읽어보았을뿐인데 설사 진리탐구에서 오유를 범한다 해도 리해해주고 용납해야 할게 아닌가.

 

(하긴 계급혁명이니까…)

 

당시 그가 리해하고있는 혁명은 인간들이 욕심스레 움켜쥐고있는 온갖 허접쓰레기들을 휘말아올려 허공중에 흩날려버리는 돌개바람과 같은것이였다. 따라서 혁명은 무자비할수밖에 없고 그앞에서는 어떤 포근함이나 자비를 기대할수도 없었다. 맑스의 계급혁명리론에 대한 몰리해로부터 결국 그는 《자본론》을 성서와 바꾸어쥐였다. 있는자와 없는자의 대립을 주장하는 맑스의 학술보다는 사람들에게 화목과 단합을 호소하는 예수의 교리가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아버지가 급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근식은 공부를 걷어치우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고무공장을 경영하면서 그는 일요일례배때면 장로교회의 장대재교회당에 가군 하였다. 예수는 박애주의사상으로 인류를 교화하고 세계적인 통일을 이룩하려고 했다. 예수가 일찌기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누구를 숭배하고 누구에게 자기를 의탁하며 왕벌의 주위에 뭉친 벌떼처럼 어떤 방법으로 세계적인 통일을 이룩하겠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했을수도 있지 않았을가. 선한것에 의한 세계적인 통일, 결코 재부나 권력에 의한 피라미드형의 종적인 통합이 아니라 민족과 민족, 개인과 개인호상간의 평등과 균형에 의한 횡적인 통일에 대한 요구는 계급사회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된 전인류적인 념원이였다. 케자르나 나뽈레옹, 칭기스한과 같은 정복자들이 말발굽소리 높이 울리며 세상을 돌아친것도 결국은 자기나름대로 전세계를 통일할 야망에 의한것이였다.

 

허나 그들이 실패한것은 세계를 통일하겠다고 하면서 칼을 추켜들었기때문이였다. 칼은 물체를 자르는데 필요한 도구이다. 파괴와 분렬에 필요한 도구를 통일의 유일한 방도로 리용했다는것이 모순이였고 실패의 근본원인이였으며 그들이 위인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 무엇이든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점착제가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인류는 칼과 칼이 부딪치고 대포소리 울리는 력사의 동란속에서도 그 점착제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렇게 찾아낸것이 하느님이였다. 하느님이야말로 전인류를 형제처럼 사랑으로 통일시킬수 있는 점착제이며 꿀벌집단의 왕벌과 같은 존재였다. 때문에 근식은 있는자건 없는자건 전인류가 하느님이 만든 점착제인 박애주의에 의해 화목과 단합을 이룩할수 있다고 믿었다. 《노아의 방주》에 양과 승냥이가 함께 타고있었다는것만 봐도 그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것이라고 믿고싶었던것이다.

 

정근식은 지구의를 하나 구해다 책상우에 놓고 빙글빙글 돌려보며 천진한 공상에 잠기기를 좋아했다.

 

이 지구우에 새끼양들이 승냥이곁에서 재롱을 피우며 마음놓고 뛰놀수 있는 세상을 건설할수는 없을가? 조선사람은 예로부터 선을 사랑하는 민족이니 인류전체가 참되고 영원한 평화를 누릴수 있는 생활원리와 생활방식을 궁리해내여 에덴동산과 같은 락원을 이 땅우에 제일먼저 실현함으로써 세상의 본보기가 될수 없을가.

 

그 유토피아적인 리상을 그의 머리속에서 깨끗이 쓸어버린것은 1942년의 대홍수때였다. 홍수피해로 공장이 파괴되고 그 후과로 군수품조달이 미달되자 정근식은 《전시법》에 걸려 류치장신세를 지게 되였다. 친구들의 주선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 그는 막대한 벌금을 물고서야 류치장에서 나올수 있었다. 홍수에 심하게 파괴된 자기 공장의 한가운데 주저앉아 그는 음산한 구름이 떠도는 하늘을 향해 목터지게 웨쳤다.

 

《아, 하느님이시여! 당신이 창조한 우주만물은 왜 이다지도 악착하나이까? 자연도 인간도 정녕 당신의 교리대로 선하게 개조할수 없나이까?》

 

이것이 그가 세상에 던진 마지막물음이였다.

 

정근식은 왜놈들에게 맞은 어혈로 집에 누워있으면서도 성경책을 펴들고 왜놈들을 용서해야 할 《진리》의 문장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글줄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기를 모욕하던 놈들의 가증스러운 몰골과 고문장의 스산한 광경만이 눈앞에 얼른거렸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책장을 번져도 자비와 용서의 감정이 생기는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억울함을 속시원히 복수하겠는가 하는 생각만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렇다면 예수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도대체 이 세상의 본질은 무엇이고 나라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세상의 구조가 착하게 돼있지 못하다면 인간이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게 산다는것은 불가능하다는게 아닌가.

 

그의 뇌리에는 홀연 신앙은 거짓이라는것과 인간은 자기가 당한 모욕을 잊어버리거나 상대를 용서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떠올랐다. 그는 성경책을 아무런 미련도 없이 부엌아궁에 던져버리고말았다.

 

그때부터 그는 교회당에 발길을 끊었다. 최장로가 몇번이나 그를 찾아와 설복도 하고 유다가 되려는가고 위협도 해보았으나 그의 마음을 돌려세우지는 못했다. 나중엔 조만식이까지 정근식에게 이단자가 되지 말라고 막아나섰다.

 

《그쯤한 일로 하느님을 책망하면서 외람된 반역을 하면 더 큰 불행이 닥쳐올것이요. 우주는 나보다 먼저 나고 하느님은 나보다 더 아신다고 생각하시오. 그러면 노여움이 가라앉을것이요.》

 

정근식은 한껏 비양조로 웃고나서 조만식에게 물었다.

 

《장로님, 일본놈들은 예수보다 천황을 더 숭배합니다. 그런데도 우주만물을 창조했다는 하느님은 이번수해때 일구월심 자기를 믿고따르던 나에게는 불행을 주고 자기를 믿지 않는 일본놈들에게는 아무런 벌도 주지 않았습니다. 이건 분명 하느님이 나나 토성랑백성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내가 왜 하느님을 사랑하겠습니까? 하느님은 원쑤가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대라고 했는데 이번에 내가 그 꼴이 되였습니다. 하느님을 믿은 덕분에 차례지는것이 모욕을 감수하는것뿐이라면 무슨 리득을 보자고 신앙에 충실하겠습니까?》

 

《사람이 제 리성이란것을 과신하면 교만이 오는 법이요. 일단 하느님을 믿었으면 끝까지 믿어야 할것이요. 그래야 이 땅에 천국이 펼쳐질것이요.》

 

《그만두시오. 하느님을 믿는다고 인간이 아름다워진다면 교인이 많은 나라는 이미전에 하느님의 섭리대로 완성되였어야 할게 아닙니까? 그런데 세상은 점점 더 흉흉해지고 인간은 더 악해졌습니다. 결국 종교의 력사는 하느님이 지키라는 그 모든 계률을 그대로 실천할 능력이 인간에게 없다는걸 증명한것밖에 없습니다. 사실 인간에게 예수를 닮으라고 설교하는건 욕심많은 인간에 대한 엄청난 기대이지요.》

 

그날 정근식은 큼직한 붓으로 지구의에 먹칠을 했다. 그것은 무정한 자연과 사회에 대한 자기식의 복수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세상을 징벌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었다.

 

먹을 갈면서 그는 타고르의 시를 다시 상기했다. 과연 조선이라는 등불이 다시 켜질 날이 있을가? 그 등불이 동방을 밝게 비쳐 혼돈과 암흑속에 묻힌 이 지구상에 자기의 존재를 빛내일 날이 있을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벼루우에 떨어져 먹물과 합쳐지군 했다. 정신적지탱점을 잃어버린 그에게는 인생에 대한 허무와 회의가 파도처럼 덮쳐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자기가 그토록 분노했던것도 우습게 느껴졌다. 문제는 이 세상에 에덴의 동산을 건설할수 없을가 하는 공상에 집착했던 자신의 욕망에 불행의 화근이 있었다. 만약 인생의 초엽에 이 세계가 악하고 헛된것이라는것, 인간의 일체 욕구나 욕망의 추구가 다 부질없는것이라는것을 깨달았더라면 일찌감치 금욕과 체념속에서 정신을 안정시킬수 있었을게 아닌가.

 

인간세상에서 당하는 불행과 고통이 다 숙명적인것으로서 어차피 거기에 순응할수밖에 없다는걸 미리 알았더라면 현실을 도피하여 그 고통에서 벗어날수 있지 않았는가. 그래서 어느 철학자는 《사회를 외면할수 있는 사람, 사회관계를 내던질수 있는 사람만이 고귀한 사람으로 된다.》고 말한 모양이였다.

 

결국 한때는 자기가 몸과 마음을 다 태워서 식어가는 이 세상을 덥혀보려던 꿈도 없지 않았던 정근식이 대문에도 마음에도 빗장을 지르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살기 시작한것이다.

 

그는 파괴된 공장을 다시 복구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결국 하루에 수백컬레의 신발을 만들어내던 공장의 생산규모는 대폭 작아지고말았다. 자식이 없는 정근식은 재물에도 별로 마음쓰지 않았던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해방이 되였다. 해방바람은 그의 마음에 지른 빗장을 덜컹덜컹 흔들며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꾸짖는듯싶었다. 하지만 너무도 오래동안 거짓된 세상에서 살아온 정근식으로서는 생의 허무로부터 생의 환희로 급상승하여 건국의 한마당에 뛰여들기가 수월치 않았다. 더구나 항간에서는 북조선이 쏘련의 가맹공화국으로 된다는 말이 나돌고 실지로 쏘련군대가 주둔해있는 눈앞의 현실은 개인기업가인 정근식의 마음을 편안치 않게 해주었던것이다.

 

과연 이 땅에는 어떤 세상이 건설될것인가?

 

이런 복잡한 심리적굴곡으로 하여 자기가 조카딸에게 무심히 던졌던 말 한마디가 뜻밖에도 그의 가슴에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것이였다.

 

다음날 아침 정근식의 집에서는 사랑채를 정리하느라 부산을 피웠다. 먼지도 털어내고 불도 살렸다. 정근식이도 망치를 들고 건들거리는 부엌문접철에 못을 박았고 마누라는 부엌세간을 몇가지 갈라내왔다. 몇해동안 비여있어서 곰팡내가 좀 나긴 했지만 토성랑움막에 비하면 궁전과 같은셈이였다.

 

그리하여 오성재는 뜻밖의 귀인을 만나 정근식의 사랑채로 이사하게 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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