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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조국소식 | 나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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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9-05-23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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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갔다.

 

사랑하는 남편 윤이상을 잃고 방황하는 마음의 안정을 평양에서 찾았다. 그곳에서 그가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저주로운 남조선을 결별하고 반생을 서방세계에서 살아온 그녀가 생의 말년에 자기삶의 보금자리로 정한 북부조국이 어떤곳이였는지 그의 마음속 독백을 통해 들여다 본다.

 

나의 독백

 

책을 내면서

 

1961년 박정희가 군사정변을 일으킨후 독재 40년의 세월동안 동백림사건으로 강제랍치되여 고생하다가 다시 독일로 돌아온 후로는 줄곧 가정주부로서 예술가인 남편 윤이상을 받들어 열심히 살아왔다.

 

남편은 1995년 ll월에 어둡고 추운 독일 땅에서 나를 혼자 두고 눈을 감았다.

 

큰집에 혼자 남은 나는 살아갈 힘을 잃고 생사를 헤매였다. 그 소식을 접한 북의 최고책임자께서는 나를 간곡히 초대하였다.

 

서로 의지하고 살던 부부가 한짝을 잃은후 3 개월을 유지하지 못하고 따라 죽는 례를 흔히 보아온 나는 나도 곧 그렇게 되고 말것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그때 죽음이 내 눈앞에 있음을 알고 짐을 쌌다. 그리고 남편의 생애를 내손으로 쓸때까지는 절대 죽을수 없다는 일념에서 김주석이 선물로 내주신 비워두었던 북의 집으로 떠났다. 거기서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며 남편의 예술과 조국애를 두권의 책으로 묶어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지 5년이 넘었으나 남편의 고향이 있는 남에서는 아직도 그의 명예가 회복되지 못했다.

 

나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평양근교 산속에 있는 집에 자주 온다. 나는 일제식민지시대에 교육을 받았고 해방되여 대학을 다녔고, 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았다. 그러한 나의 사고와 체질은 북의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놀라움을 겪는다. 나는 분단 50년의 세월이 엄연히 거기 존재함을 느꼈다.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이북에 대한 견해.

 

그러나 나는 북에서 우리에게서 사라져가고 있는 인간의 정을, 지독히 개인주의적인 사고보다는 전체를, 국가를,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북의 사람들의 정신자세를 보며 그것이 벌써 생리화된 그들의 마음가짐임을 느낀다.

 

언제인가 통일을 이루어 우리 자손들이 분단의 고통없이 번영된 조국에서 살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는가. 사람은 자기가 아는만큼 상대를 생각할수 있고 판단할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곳 북의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고 아름다운 강토와 문화고적에 대해서 남의 동포들에게 알려주고 같이 느끼고 싶다. 그리하여 통일을 향한 뜻이 과거에 집착하는 개인감정이나 고질화된 정치적리념에 구애받지 않고 남이 북을 북이 남을 서로 리해하면서 서로 손잡고 살아가기를 간절히 비는 마음에서 마치 일기처럼 쓴 글이다.

 

문필가도 철학가도 또 어느 전문분야에 몰두하는 예술가도 아닌 사람이 쓴 서툰 글이라 외람되기는 하나, 다만 나의 마음가짐이 독자들에게 전달이 되여 도움이 되였으면 하고 비는 마음에서 이 글을 책으로 묶었다.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물심량면으로 애써준 북의 여러 고마운 분들과 남녘의 윤이상명예회복추진위원회 여러분들 그리고 한겨레 통일문화재단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모두 소중한 인연들이다.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후에 우리 나라의 화해분위기가 급속도로 고조되고있다.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 일인가

 

2000년 12월 1일

 

눈이 하얗게 덮인 평양근교 산장에.

 

젊은 인민군과 군밤

 

북의 인구는 전국에 산재해있으며 평양인구는 200만명 정도이다. 평양의 거리는 깨끗하고 아름답다. 가로수는 은행나무와 버드나무가 많은데, 그러다보니 가을이 되면 황금빛으로 물드는 은행잎이 우리에게 특별한 정서를 안겨준다. 유원지로 꾸민 대동강변의 한가함이 아니더라도 인구가 도시에 집중되지 않은 평양은 숨쉬는 여유가 있다.

 

나의 집은 평양 중심지에서 자동차로 25분 거리에 있다.

 

낮은 산이 집주변을 두르고있어서 산자락이 모두 정원인 셈이다. 봄에는 개나리꽃, 진달래꽃, 복숭아꽃, 벗꽃 할것없이 색색의 꽃이 피고, 가을에는 온 산에 단풍이 들어, 넓은 정원을 금빛으로 물들인 금잔디와 조화를 이룬다.

 

철따라 철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정겹기 그지없다. 특히 부엉이처럼 우는 5월의 소쩍새에게는 가난한 우리 조상들의 전설이 많이 깃들어있다.

 

가난한 처녀가 사는 집에 빚쟁이가 와서 빚을 갚지 않는다고 솥을 떼갔단다. 굶어죽은 처녀가 《소쩍새》로 환생하여 《솥주소, 솥죠, 솥죠》한단다. 슬픈 전설때문인지 밤새 쉬지 않고 우는 소쩍새소리를 들으면 귀한 새라 반가우면서도 슬픈 마음이 같이 든다.

 

집주변을 병풍처럼 두르고있는 산에는 온통 밤나무가 우거져있다. 밤나무는 5월에 꽃을 피우는데, 밤꽃이 만발하면 산자락이 온통 밤꽃향기로 가득 찬다.

 

밤은 9 15일부터 10 5일 사이에 익는다. 나는 여름내내 밤송이가 달려있는 나무를 올려다보며 밤이 익기를 기다렸다.

 

밤은 조상때부터 내려오는 문화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추석명절때나 조상님들의 제사상에 없어서는 안될 품종이다.

 

밤에는 우리 삶의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게 하는 깊은 정서가 서려있다. 겨울밤 어머니와 함께 화로의 숯불에 구워먹던 밤,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파는 군밤……. 모두 오늘날 사라져가는 소중한 우리의 생활상이다.

 

우리 나라가 둘로 가라지기전에는 《밤》하면 누구든 작지만 달고 맛있는 평양밤을 생각했다.

 

기다리던 9 20일이 되니 집 바로 뒤에 있는 큰 밤나무에 밤이 익었단다.

 

《어머니, 밤 따러 갑니다.

 

젊은 료리사들의 말에 나도 신발을 신고 따라나섰다.

 

나는 높은 곳에서 보기 위해 산으로 조금 올라갔다. 그곳은 가끔 식구들이랑 소풍가는 자리이다. 숯불을 피워 불고기를 구워도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 그 작은 평지우에 밤나무잎이 우산처럼 덮여있다. 산에서 졸졸 흘러내려오는 물이 마치 약수같이 맑고 차다.

 

집의 젊은이가 나무우에 올라가서 밤이 떨어지게 긴 장대로 가지를 친다. 아래에서는 온 식구가 달려들어 떨어진 밤송이를 주워 큰 포대에 담는다.

 

바라보는 내 마음은 어느덧 세상 떠난 남편을 생각한다. 같이 나누던 모든 정감을 오늘은 나 혼자 바라보며 혼자 생각하며 혼자 느낀다.

 

이때 내 눈앞에 세 사람의 젊은 인민군이 나타났다. 사람이 밤나무에 올라가서 가지를 치는 모양을 못마땅하게 보는 눈치다.

 

《밤은 땅우나 풀속에 떨어진것을 줍는게 더 재미가 있고 풍치가 있습니다. 또 나무가 상하지도 않습니다.

 

세사람중 상관인듯한 사람이 내곁으로 오며 말했다. 그리고 나를 자세히 살펴본다. 대체 여기가 어디고 어떤 사람인가 싶어……. 내모습이 흔히 볼수 있는 할머니같이 보이지 않았는지 대뜸 이렇게 묻는다.

 

《손님께서는 4호에 계십니까?

 

분명히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으로 판정한듯 했다.

 

내가 사는 곳은 산에 가려 집들이 보일듯 말듯 한두채있는 곳이다.

 

《아닙니다. 거기서 살지 않습니다.

 

《그럼 어디 계십니까?

 

《요 바로 아래에 살고 있어요.

 

《요 바로 아래는 윤이상선생님 댁인데요?

 

《네, 그렇습니다.

 

그 대답이 떨어지자 군인은 바른 자세를 하고 얼굴 가득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올려 경례를 한다.

 

그러면서 데리고 온 두 젊은 군인을 시켜 그 언저리에 널려있는 마른 나무가지를 주워 모은 뒤 돌 세개를 세모로 놓고 불을 피운다. 그리고 지고있던 배낭에서 석쇠를 꺼내 그우에 밤을 얹고 굽기 시작한다. 잔가지로 저가락까지 만들어 앞뒤로 뒤집으며 굽는 모습이 여간 살갑지 않다.

 

밤이 다 익자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익은 밤을 담고는 공손히 두 손을 들어 내앞에 놓으면서 먹기를 권한다. 해볕에 그을린 젊은 피부에 눈이 수정처럼 맑다.

 

해는 어느덧 산마루에 걸쳐 붉은 노을이 서쪽하늘을 덮는다.

 

《고맙습니다.》하며 뜨거운 밤을 한 개 주워드니 눈에 눈물이 고인다. 얼마나 소박하고 따뜻한 정인가.

 

인민군, 인민군…….

 

1997 9 25일 평양에서

기사제공: 우리민족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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