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6 > 새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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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도서]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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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9-26 16:13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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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편집국

 

 

 

 

재미동포전국연합회는 북 바로알기 운동을 위해 북 문예소설 작품인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소개합니다. 《새 나라》는 윤경찬 저자이며 2013년 문학예술출판사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1945년 해방된 북 조국 땅에 어떻게 새나라가 건설되었는가를 문학적 감동과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6

 

땡, 땡, 땡…

 

낡은 파철무지같은 전차는 월향동정류소에 대여섯명의 승객들을 부리워놓고 또 그만큼 태우더니 다시 종을 울리며 떠나갔다. 전차에서 내린 사람들중에는 건축가 김운상도 있었다. 와이샤쯔깃을 밖으로 내놓고 회색양복을 받쳐입은 단정한 차림새, 훤칠한 키, 반고수머리에 어글어글한 눈매…

 

그는 지금 평양제1인민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는 고향친구를 찾아가는 길이였다. 하숙집어머니가 열이 난다면서 자리를 펴고 누웠는데 왕진을 청하든가 하다못해 약이라도 지어갈 생각이였다. 병원에 들어선 그는 복도를 따라가다가 《내과》패쪽이 붙은 출입문앞에 멎어섰다. 문안에서 녀의사의 상냥한 말소리가 새여나왔다.

 

《숨을 크게 쉬세요, 한번 더…》

 

운상은 손기척소리를 내며 문을 열었다.

 

그런데 만나려는 친구는 보이지 않고 선녀같이 아름다운 처녀의사가 묻는듯 한 시선으로 운상을 바라보는것이였다.

 

《미안합니다. 태호군을 찾아왔습니다.》

 

《태호선생은 왕진나갔습니다.》

 

《언제 돌아옵니까?》

 

《글쎄요. 대기실에서 기다려보세요.》

 

치료중이니 빨리 문을 닫고 나가라는 소리였다. 운상은 할수없이 대기실의 나무의자에 앉아 친구의사를 기다렸다. 오늘은 특별히 바쁜 일도 없고 친어머니처럼 다심한 하숙집어머니가 앓는데 빈손으로 들어갈수도 없었다. 일찌기 남편을 잃고 애지중지 키운 아들을 징병에 떼우고 종로뒤골목에서 쓸쓸하게 살아가던 하숙집어머니는 친아들에게 못다 준 정을 운상에게 쏟아붓고있었다. 그러니 자기도 아들구실을 해야 할게 아닌가.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도 운상은 꾹 참고 앉아있었다. 남들은 건국을 한다고 분주하게 뛰여다니는데 특별한 일거리도 없이 허송세월하고있는 자신의 현재가 운상으로서는 불만스럽기짝이 없었다. 작년 8월 중국 장춘대학에서 왜놈들이 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해방된 제땅에서 건축가로서의 리상을 실현해보리라 가슴을 들먹이던 운상이였다. 그가 고향에도 가지 못하고 평양에서 하숙생활을 하고있는것도 건축가로서의 일감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였던가.

 

그런데 지금은…

 

운상의 고향은 강남 벽지도리 섬마을이였다. 그의 부모들은 남새농사로 근근히 가세를 유지해나갔다. 아버지는 네남매나 되는 자식들중에서 둘째 운상이만은 어떻게 하나 식자있는 사람으로 키우고싶어했다.

 

《네가 총기가 밝은걸 보면 커서 뭐가 될 놈이다. 사내가 세상에 나서 뚜질게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땅이고 하나는 학문이다. 학문을 못 뚜지면 나처럼 평생 땅만 뚜져야 한다. 우리 집안에서 너만이라도 학문을 깊숙이 뚜져봐라. 그래서 세상에 흔치 않은 인물이 되여다오.》

 

아버지의 소원대로 운상은 평양에서 중학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아버지는 학비를 걱정했지만 향학열에 불타는 아들의 길을 막을수 없었다. 운상은 대학에서 건축학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조선사람들이 지어준 법륭사도 저희들 재간이라고 우기는 심보나쁜 왜놈들이 조선의 건축술은 단층집밖에 못 짓는다고 시비하는게 밸이 꼴리기도 했지만 대대로 초가집에서 살아오는 조선사람들도 저 유럽에서처럼 큼직한 고층살림집에서 살게 하고싶었던것이다. 그는 모자라는 학비를 보충하느라 부두로동을 하면서도 수재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할무렵에 그는 심한 자체모순에 빠졌다. 조선사람들을 위해 현대건축학을 배웠지만 제 나라가 없는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것이였다.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전에는 식민지지식인청년의 리상이 아무리 황홀하다 해도 그것을 실현할수는 없었다.

 

운상은 리상과 현실의 불일치로 평생 고통을 겪어야 할 자기의 어두운 앞날을 내다보며 한숨을 지었다. 그 고통에서 다소나마 벗어나자면 현실에서 어느 정도 가능한 방향으로 자기의 리상을 수정해야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것이 조선농촌주택의 개량이였다.

 

당장 현대적인 아빠트는 건설하지 못한다 해도 농촌의 초가집들을 조선에 흔한 석비레로 벽을 쌓고 기와를 얹어준다면 농민들의 생활이 한결 문명해질게 아닌가. 그러나 운상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그 소박한 꿈조차 실현시킬수 없었다. 운상의 재능을 인정한 왜놈들은 그를 일본에 붙잡아놓고 별장의 설계를 요구하는가 하면 비행장활주로를 석비레로 포장하는데서 나서는 기술공학적문제들을 해결하라고 강요했던것이다.

 

해방되기 전해에 겨우 섬나라를 벗어난 그는 중국의 장춘대학에서 연구사업에 몰두하다가 해방이 되자 조국으로 달려나왔다.

 

조국해방! 운상에게는 비로소 자기의 리상을 실현할수 있는 현실적조건과 가능성이 마련된것이였다.

 

이제는 조선사람들을 위해 어떤 현대적건축물이든 마음대로 지을수 있었다.

 

환희로 부푼 가슴을 안고 서울로 나가던 그는 고향에 들려보기 위해 평양에 내렸다가 김일성장군님께서 평양으로 입성하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

 

그는 두말없이 서울행을 포기하고 친구들의 주선으로 시내에 하숙을 정했다. 다음날부터는 김정희, 강처한 등 시내의 건축가들을 찾아다니며 새 조국건설에서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의논하느라 밤을 새우군 했다. 그런데 아무리 열변을 토해봐야 당장은 무엇부터 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수 없었다. 현대적인 고층건물을 짓자 해도 기중기 한대 없는 형편이였던것이다.

 

어느날 김운상은 속이 답답해서 평남도당을 찾아갔다가 빨찌산출신의 림춘추를 만나게 되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 평양에 입성하시면 여기부터 들리시겠지요? 저를 여기서 일하게 해주십시오. 청소부라도 좋습니다.》

 

 

 

《동문 누굽니까?》

 

《전 건축가입니다. 장군님을 만나뵈워야 우리 건축가들이 무슨 일부터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게 아닙니까?》

 

림춘추는 김운상의 손을 반갑게 잡아주었다.

 

《건축가선생은 여기서 청소나 하고있으면 안됩니다. 새 조국건설에서 선생이 할 일이 많습니다. 장군님께서 개선하시면 내 꼭 선생에 대해 말씀올리겠습니다.》

 

운상은 그때 림춘추로부터 장군님의 고향이 평양 만경대라는것과 아직 조부모님들과 친척들이 살고계신다는것 그리고 장군님생가가 초가집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선뜻 믿어지지 않았다. 전설적영웅이신 장군님께서 초가집에서 탄생하시다니…

 

운상은 그달음으로 만경대를 찾아떠났다. 모든걸 제눈으로 보기 전에는 신화적인 그 이야기를 믿을수 없었던것이다. 과연 이게 신화가 아니란 말인가? 무엇이 다른가.

 

운상은 만경대로 가서 그 신화를 제 눈으로 확인하였다. 우리 나라 서북부일대 특히는 대동강류역에 널리 분포되여있는 외통류형의 초가집은 땅에서 솟아오른듯 납작하고 자그마한 쌍채집이였다. 고삭은 조짚이영우에서는 큼직한 박이 익어가고있었다.

 

가난에 맞선 집주인들의 품성을 보여주는듯 잘 손질해놓은 사립문이며 장독대에 허리를 꼬부리고있는 쭈그렁독…

 

마침 김보현할아버님께서는 군데군데 떨어진 바람벽을 땜질하느라 진흙과 벼짚을 버무리고계시였다. 운상은 할아버님께 인사를 드리고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메주덩이처럼 빚은 진흙으로 떨어진데를 매질했다.

 

《젊은이, 손적시지 마오.》

 

《할아버님께서 어떻게 이런 험한 일을 다 하십니까?》

 

《근일에 우리 장군이 20년만에 고향집으로 돌아오겠는데 바람벽 떨어진 꼴을 보일수야 없지 않겠소.》

 

운상은 할아버님앞에 머리를 수그렸다.

 

《할아버님, 집을 짓는 기술을 배운 조선사람으로서 오늘처럼 민족앞에 죄스러워본적은 없습니다. 김일성장군님의 생가가 이런 초가집이라는걸 아는 사람이 3천만백성중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젊은이, 그러지 마오. 난 이 초가집을 자랑으로 생각하오. 이런 집에서 나서자랐길래 만백성의 아픔을 아는 장군이 될수 있은거요.》

 

운상은 초가집의 구석구석을 다시한번 살펴보았다.

 

《이 집을 지은지 퍼그나 오래된것 같습니다.》

 

《오래됐지.》

 

할아버님께서는 대통에 담배를 재우며 초가집의 래력을 들려주시였다.

 

장군님의 일가는 전라도 전주에 본을 두고 살아오시다가 김계상선생대에 북으로 이주하여 평양에 자리잡으신 때부터 장군님대까지 12대를 살아오시였다고 한다. 평양성안의 중성리에서 생활하시던 일가가 만경대로 이주해온것은 증조할아버님때인 1862년이였다. 증조할아버님은 오막살이 한칸도 마련할 길이 없어 지주 리평택이네 묘를 보아주기로 하고 산당집을 얻어 산지기와 소작살이를 하게 되신것이였다. 1860년경에 지은 산당집은 건축초기에는 우진각지붕의 집이였다. 그런데 당시 지주의 자식들이 투전판에서 돈을 잃게 되자 지주놈은 산당집과 산직토지를 팔겠다고 당장 집을 내놓으라고 했다. 그래서 증조할아버님은 집세간과 이웃에서 빚돈까지 내였고 증조할머님은 머리태를 솎은 달비와 길쌈한 포목 그리고 닳아진 놋대접까지 장마당에 들고가시여 판 돈을 지주에게 주고 초가집으로 된 산당집을 사시였다.

 

운상은 할아버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울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가난한 가정에서 그렇게도 위대하신분이 탄생하시였을가?

 

만경대와 그 일대를 돌아보면서 운상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동강과 순화강을 량옆에 끼고있는데다 만경봉과 송산이 병풍처럼 둘러서있는 지세가 풍수쟁이들이 무릎을 칠만큼 묘했다. 그리고 송림이 우거진 주변풍치 또한 아름답기 이를데 없었다. 만경대야말로 성인이 나올만 한 성지였다. 성지는 성지답게 꾸려야 할것이다. 운상은 조선의 건축가로서 자기가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를 깨달았다. 그는 농촌주택개량에 대한 자기의 소박한 꿈을 여기 만경대에서부터 실현해보고싶었다. 우선 장군님의 일가분들을 위해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집을 지어드리자. 그리고 이 주변에 사는 농민들에게는 저기 남리마을에 번듯한 기와집들을 규모있게 지어서 농촌마을의 리상향으로 꾸리자. 운상은 여기 만경대를 성지답게 꾸리는것을 민족이 자기에게 지워준 력사적사명감으로 받아안았다.

 

우리가 아무리 신의를 모르는 백성이라 해도 만민이 흠모하여마지않는 민족의 구세주를 어떻게 20년전에 떠나시였던 추녀낮은 초가이영밑으로 들어서시게 한단 말인가. 안될 말이다! 해방의 은인을 그렇게 성의없이 모신다는건 안될 말이다. 하늘이 내신분이 이 초가집을 나서시여 나라를 구원해주시였고 그 일가분들이 아직도 여기서 살고계시는데 그분들을 위해 3천만이 지성을 모아 번듯한 기와집 한채를 지어드릴수 없단 말이냐…

 

만경대에 다녀온 날부터 운상은 고향집설계에 달라붙었다. 친구들도 운상의 결심을 적극 지지해나섰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하루는 림춘추가 그를 찾아왔다.

 

《장군님께서는 동무가 만경대에 새집을 짓겠다고 한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고맙긴 하지만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랑비하지 말고 건국의 큰 몫을 담당할 준비를 착실히 해두라고 말씀하시였소.》

 

그래도 운상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난 의견이 있습니다. 설사 장군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였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야 그래선 안되지요.》

 

《건축가선생, 선생은 우리 장군님이 어떤분이신지 다 모르고있소. 아마 온 나라인민들이 기와집을 쓰고사는 그때에 가서도 장군님께서는 그 설계를 허락하지 않으실거요.》

 

운상은 그만 손맥이 풀렸다. 그럼 자기가 당장 할수 있는 일은 뭐란 말인가.

 

실업자가 되여버린 그는 하루가 지루해졌다. 요새는 건축인동맹을 뭇는 사업을 주관하면서 뛰여다니긴 하지만 도판앞에 마주설 일감이 차례지지 않으니 손목이 근질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저녁시간이 다되도록 기다렸으나 친구의사는 들어오지 않았다. 운상은 더이상 기다릴수 없어 문기척소리를 내며 치료실에 들어섰다. 퇴근시간이 되였는지 처녀의사는 위생복을 벗고 양복차림으로 가방을 챙기고있었다.

 

《의사선생님, 태호군이 오지 않아서 그러는데 종로에 왕진을 좀 가줄수 없을가요? 우리 하숙집어머니가 앓아서 그럽니다.》

 

《어떻게 앓습니까?》

 

《감기같기는 한데… 잘 모르겠습니다.》

 

《약처방을 떼주면 안될가요? 전 다른데 가볼데가 있어서…》

 

《…》

 

그때 갑자기 복도에서 다급한 발자국소리가 들리더니 치료실문이 벌컥 열렸다. 웬 중늙은이가 치료실에 뛰여들었다.

 

《선생님, 의사선생! 좀 가봐주시우, 우리 로친네가 급하우다.》

 

그는 오성재였다. 숨차게 달려온 그는 가쁜숨을 몰아쉬며 사정했다. 처녀의사는 친절한 태도로 가르쳐주었다.

 

《저녁에는 구급과에서 왕진을 간답니다. 접수실 반대쪽으로 첫번째 방이예요.》

 

《갔댔지요. 방이 잠겼수다. 여기서 말소리가 들리길래…》

 

처녀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직일의사가 나왔겠는데…》

 

《의사선생, 어떻게 좀…》

 

오성재의 표정은 간절했다.

 

《환자가 어떻게 아파해요?》

 

《그저 아래배를 붙잡구 꼼짝을 못하는데 하루새에 반쪽이 됐수다. 이마가 불덩이같애요.》

《집이 어디예요?》

 

《아래토성랑이우다.》

 

처녀는 락심한 기색으로 의자에 앉았다. 집이 요근방이라면 몰라도 토성랑까지는 정말 자신이 없었던것이다.

 

《우선 이 약을 가져다먹이세요. 그리구 이름과 집주소를 대주세요. 직일의사가 나오면 꼭 보낼게요.》

 

오성재도 다른 방도가 없다는걸 리해했는지 고개를 맥없이 떨구었다.

 

《우리 집은 주소라는게 없수다. 서성리에 와서 아래토성랑을 찾으면 큰 오물장이 있는데 거기서부터 열두번째 움막이우다. 그럴거없이 오성재네 집을 찾으시우. 그런데… 저…》

 

오성재는 딱한 표정을 짓고 머밋거리다가 힘들게 말을 뗐다.

 

《저… 왕진비가 얼마쯤 들가요?》

 

지금껏 왕진 한번 청해본적 없었던 오성재로서는 돈걱정을 안할수 없었던것이다.

 

《우리 병원에선 약값만 받는답니다.》

 

그래도 오성재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수중에 5원짜리 지전 한장밖에 없는데 왕진을 청했다가 만약 돈이 모자란다면 의사한테 욕되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오성재는 다시 물었다.

 

《한 5원쯤이면 될가요?》

 

《그거면 될거예요. 너무 걱정마세요.》

 

처녀는 오성재를 안심시키며 얼핏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오성재도 영 눈치가 무딘 사람은 아니였다.

 

《그럼 부탁하우다.》

 

그때까지 운상은 아무 말도 않고 한옆에 비켜서서 처녀를 지켜보았다. 그러느라니 공연히 화가 났다. 자기는 물론이고 급하게 달려온 토성랑사람의 왕진요구까지 거절해버리는 처녀의사의 랭담성이 눈에 거슬렸던것이다. 의사의 직분은 제껴놓고라도 인간으로서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이라도 표현해야 할게 아닌가. 처녀의 얼굴은 고왔지만 고운 얼굴에 가리워져있는 마음씨는 고와보이지 않았다.

 

운상은 치료실을 나서다가 문가에서 돌아섰다. 속이 풀떡거려서 한마디 하지 않고는 곱게 물러가기도 싫었다.

 

《의사선생은 직업을 잘못 잡은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왜정때도 아닌데 환자측의 요구를 그렇게 거절할수 있습니까? 의사라면 심장이 뜨거워야지요.》

 

《뭐라구요?》

 

처녀의 얼굴은 해쓱해졌다. 그러거나말거나 운상은 인사도 없이 치료실을 나와버리고말았다.

 

하지만 병원문을 나서자마자 운상은 자기를 후회했다. 초면인 처녀의사에게 주제넘은 훈시질을 하면서 무례하게 행동한것이 부끄러워졌던것이다. 따지고보면 자기에게는 그 처녀를 시비할 아무런 자격도 없지 않는가.

 

(그 처년 날 싱거운 놈이라고 비웃겠지.… 허참…)

 

운상은 쓸쓸한 심정으로 천천히 걸었다. 별로 바쁜 일도 없고 가볼데도 없는 실업자의 걸음새였다. 그러고보면 방금 처녀의사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것도 자신의 생활이 불만스러운데서 산생된 감정의 여파라고 할수 있었다. 그렇다 한들 제 마음이 불편하다고 다른 사람한테까지 상처를 입힌다는건 잘못된 처사가 아니겠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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