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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 [연재 68]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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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9-23 17:1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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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68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를 연재하며

 

 

 

편집국

 

 

북은 해방 후부터 통일에 역행하는 남쪽의 친일친미 사대매국노 집권무리들과 반대로 지금까지 조국의 자주평화 통일을 위하여 줄기차게 노력해온 사실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 지금 <우리민족끼리>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 기사도 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북의 전쟁없이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분단이후 지금까지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고 줄기차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촉구한 북의 참모습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적 사실들이 때로는 감춰지거나 왜곡되게 남쪽에 전해진 사실도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 연재기사를 통해 독자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노력해온 북의 진실된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같이 일관되게 노력해온 북의 참모습을 알면 조국통일이 더 쉽게 더 빨리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누가 매국노인지 누가 애국자인지 잘 가려보아야 할 것이다.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단결 단합하여 반통일세력을 짓부수고 조국통일 이룩하여 민족번영을 맞이하자.

 

우리민족끼리에 소개된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68) 북남고위급회담의 로정> 기사를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 1990년 10월 1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 인민문화궁전
북 연형묵 총리, 남 강영훈 총리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18일 제2차 북남고위급회담이 열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 (68)

 

 

력사의 온갖 도전을 과감히 뚫고 헤쳐온 우리 공화국의 력사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력사적책임감을 다한 성스러운 로정이였으며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확신과 락관을 심어준 숭고한 통일의 년대기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시였으며 그 길에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평생업적을 토대로 하여 존엄높고 부흥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밑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온 겨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북남고위급회담의 로정

 

 

조선반도의 평화보장문제는 나라의 통일과 민족의 안녕을 위하여 우선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가장 긴급한 문제의 하나이다.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는 언제나 정치적대결상태와 첨예한 군사적인 대치상태가 결합되여있는 조건에서 북과 남사이의 긴장상태를 해소하고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서는 정치적대결상태와 군사적긴장상태를 다같이 풀어야 하였으며 이것은 북과 남의 정치와 군사분야의 실권자들이 마주앉아 그 해결책을 론의하는 조건에서만 원만히 해결될수 있었다.

 

이로부터 공화국정부는 분렬된 첫날부터 평화적방법으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수많은 제안들과 방안들을 내놓고 그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왔다.

 

특히 1988년 11월에 제시한 북남사이에 불가침선언을 채택하고 조미사이에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미군과 핵무기의 단계적철수, 북남군대의 점차적축감을 예견한 포괄적인 평화방안, 1990년 5월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정무원련합회의에서 제시한 북남신뢰조성, 북남무력축감, 외국군대의 철수, 군축과 그후의 평화보장 등 4개 부분으로 되여있는 새로운 평화제안 등 1980년대 중엽이후에만도 여러차례에 걸쳐 현실성있는 평화방안들을 내놓고 그 실현을 미국과 남조선당국에 강력히 촉구하여왔다.

 

이러한 제안들은 국제무대에서 랭전구조가 붕괴되고 평화애호인민들이 군축을 요구하는것이 시대적추세로 되고있는 때 긴장완화와 평화문제를 가능한 한 민족내부의 힘으로 풀어나가려는 주체적립장에서 출발한 정당한 방안이였다.

 

북과 남의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회담을 친히 발기하시고 회담의 진전에 깊은 관심을 돌려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1990년대에도 이 회담에 중대한 의의를 부여하시고 회담이 겨레의 념원에 부합되는 훌륭한 결실을 가져오도록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공화국정부는 적극적인 공세로 1989년 2월부터 1년반이나 끌어오던 북남고위급회담 예비회담을 결속하고 쌍방의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제1차 북남고위급회담을 1990년 9월 서울에서 진행하기로 남측과 합의하였다.

 

마침내 1990년 9월 5일과 6일 서울에서 제1차 북남고위급회담이 열리였다. 북측대표단은 이 회담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정부의 확고한 립장을 밝히면서 회담 전과정에 지켜야 할 세가지 원칙을 천명하였으며 이어 《북과 남사이의 정치군사적대결상태를 해소하며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를 실현할데 대하여》의 의제와 관련한 구체적인 제안들을 내놓았다.

 

회담에서 남측은 종전의 자기 주장을 되풀이한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기본합의서안》, 《다각적인 교류협력실시방안》, 《정치군사적신뢰구축방안》, 《남북간의 군비축감추진방향》 등을 내놓았다.

 

남측이 제기한 《방안》들은 통일문제해결에서 근본문제라고 할수 있는 정치군사적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남조선에서의 미군과 핵무기철수문제,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의 중지문제, 북을 적대시하고 통일운동을 가로막는 《보안법》의 철페문제 등 기본문제를 외면한것이였다.

 

제1차 회담은 남측의 불성실한 자세와 립장으로 하여 아무런 합의도 보지 못하였다.

 

1990년 10월 17일과 18일에 진행된 제2차 회담에서 북측은 평화통일에 대한 공화국정부의 의지를 명백하게 밝히고 《북남불가침에 관한 선언》을 채택발표할데 대한 중대한 제안을 내놓았다.

이것은 북과 남사이에 조성된 첨예한 정치군사적대결상태를 해소하고 민족적화해와 단합, 통일에로의 전환의 길을 열어나갈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제안이였다.

 

그러나 남측은 북남사이의 정치군사적대결상태해소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토의를 회피하면서 《교류, 협력》문제와 같은 부차적인 문제를 들고나와 문제토의에 인위적인 난관을 조성하는 한편 분렬주의적인 《실체인정》이니, 《현실인정》이니 하는것을 고집하였다.

 

특히 남측은 《절차상 어떻소.》, 《권한이 없소.》라는 당치않은 구실을 내대며 평화와 통일에 대한 온 민족의 념원을 반영하고있으며 저들의 제안내용까지 충분히 고려하고있는 북측의 《북남불가침에 관한 선언》제안에 끝내 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남측은 대화의 막뒤에서 《유엔단독가입》책동에 매달리는 한편 미국과 함께 공화국을 반대하는 《팀 스피리트》전쟁연습을 계속 벌릴데 대해 모의하고 군사적도발과 무력증강으로 정세를 더욱 긴장시키는 길로 나갔다. 또한 공화국을 방문한 민주인사들을 여전히 감옥에 가두어두고 해외에 나가 북과 통일문제를 론의한 통일애국인사들까지 《보안법》의 제물로 만드는것과 같은 반민족적이며 반통일적인 행위를 감행해나섰다.

 

이러한 정세하에서 1990년 12월 12일과 13일 서울에서 제3차 회담이 진행되였다.

 

회담에서 공화국측은 나라의 평화를 위하여 북과 남이 상대방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무력으로 침해하지 않을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북남사이의 불가침을 약속하는데서 나서는 원칙적이고도 근본적의의를 가지는 문제들을 조항화하여 사리정연하게 제기하였다. 그러면서 남조선당국자들의 사대매국행위와 말과 행동이 다른 성의없는 대화자세를 버릴데 대해서와 북측이 1차, 2차회담때 제기하였던 유엔가입문제,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 중지문제, 공화국을 방문한 인사석방문제 등을 다시금 제기하고 긍정적인 답변을 강력히 촉구하였으며 북의 불가침선언초안과 남측의 화해협력에 관한 선언초안을 통합하여 하나의 문건을 채택하자는것을 제의하였다.

 

공화국측의 정정당당하고 완벽한 론거앞에 더는 어쩔수 없게 된 남측은 저들의 분렬주의적인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기본합의서》에 대해 더 고집하지 못하고 《불가침선언을 안하자는것이 아니다.》느니, 《너무 몰아대지 말라.》느니 하면서 변명을 되풀이하였다. 결국 제3차 회담도 남측의 불성실한 태도로 공전되였다.

 

하지만 공화국정부는 남조선당국자들의 회담파괴책동에 최대의 인내성을 보이면서 어떻게 하나 회담이 다시 이어져 회담과정을 지켜보고있는 전민족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하려고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이였다.

 

공화국정부는 1991년 1월 25일 미국과 남조선당국자들이 《팀 스피리트 91》합동군사연습계획을 발표한것과 관련하여 1월 2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교부 성명, 1월 27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 2월 18일 북남고위급회담 북측대표단 성명 등 그후의 여러 성명, 담화들을 발표하여 분렬주의세력들의 핵전쟁연습과 회담파탄행위를 준렬히 규탄하면서 온 민족의 의사에 맞게 회담의 개최를 강력히 촉구하였다.

 

1991년 6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당, 사회단체들은 련합성명을 발표하여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이 날이 갈수록 더욱 엄중해지고있는것을 규탄하고 남조선에 배치된 핵무기를 철수시키고 조선반도에 비핵지대를 창설할것을 호소하였다.

 

이 호소는 남조선인민들과 국제사회의 한결같은 찬동과 지지를 받았다.

 

남조선의 청년학생들과 각계각층 애국적인민들은 6월인민항쟁기념일을 전후하여 파쑈적폭압과 박해가 계속되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주, 민주, 통일의 구호를 높이 들고 남조선당국의 분렬주의적책동과 전쟁도발책동을 반대하여 격렬한 시위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와 함께 재야, 정계, 학계, 문학예술계를 비롯한 각계층 인사들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선언을 발표하여 남조선에 있는 미군의 핵무기를 공개할것을 요구해나섰다.

 

공화국정부는 남조선당국의 《유엔단독가입》음모를 짓부시고 1991년 9월 유엔에 가입함으로써 공화국을 《개혁》, 《개방》에로 유도하고 사회주의제도를 붕괴시키려던 미국과 남조선당국자들의 책동을 파탄시켰다.

 

사태가 이렇게 번져지자 궁지에 빠진 남조선당국자들은 종전과는 달리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전환적인 조치》에 대하여 요란스럽게 광고하면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불가침선언을 채택하며 《대북교류》도 할 용의가 있다는것을 표방해나섰다.

 

그리하여 제4차 북남고위급회담을 재개할데 대한 북측 총리의 전화통지문이 서울로 보내졌고 그에 대한 남조선당국의 회답도 보내여왔다.

 

이렇게 되여 대화거부와 반북대결책동만을 일삼던 남조선당국이 다시금 대화마당에 나오게 되였으며 3차회담후 중단된지 10개월이 지나서 1991년 10월 23일부터 24일까지 평양에서 제4차 북남고위급회담이 진행되게 되였다.

 

회담이 재개되였지만 남측의 대화자세와 립장에는 변함이 없었다.

 

남측은 종래의 《교류우선론》, 《신뢰우선론》을 되풀이하면서 정치군사적대결상태를 해소하고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를 실현하며 불가침선언을 채택할데 대한 북측의 제안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회담에서는 의연히 분렬과 통일, 전쟁과 평화, 사대와 자주의 대립되는 두 립장사이의 공방전이 거듭되였다.

 

결국 이것은 동서랭전질서의 변화와 《화해》의 물결에 현혹된 남조선당국자들이 북남고위급회담을 비롯한 북남간의 대화공간을 통하여 공화국을 《개혁》, 《개방》에로 유도하여 《흡수통합》을 실현해보려는 의도의 발로였다.

 

공화국정부는 남조선당국의 이러한 불성실한 반통일대화자세에 타격을 주며 전민족의 기대에 맞게 북남고위급회담을 성공에로 이끌어내기 위하여 성의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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